[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51> 모자반, 몸, 몰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2024. 11. 26.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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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오독 씹으면 확 끼치는 바다향…모자반의 계절이 돌아왔다

찬 바람이 불면 기다려지는 바다 해초들이 있다. 우선 김과 미역 파래 톳과 모자반 등이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매생이와 감태도 겨울을 기다리게 하는 해초들이다. 이들은 각각의 독특한 향과 맛으로 다양한 음식의 식재료로 이용된다.그중 모자반은 여타 해초들보다 귀하고 비싼 몸값을 자랑한다. 싱그럽고 향긋한 해초 향에 오돌오돌한 식감, 줄기에 달린 기낭(공기주머니)이 씹을 때마다 톡톡 터지는 재미도 여간 아니기에, 지역마다 각양각색의 식재료로 널리 쓰인다.

모자반과 콩나물 등을 함께 무쳐 자작한 국물과 떠먹는 향토 음식 몰설치.


- 전국 연안서 생산되는 해초
- 모재기 몸 몰망 몰 마재기 등
- 지역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려

- 제주 몸국·통영 물메기국 등
- 시원한 탕요리 필수 부재료
- 초무침 등 밑반찬으로도 인기

모자반은 살짝 데쳐서 초장이나 젓국에 찍어 먹기도 하거니와 나물로 무쳐 먹고 국으로 끓여 먹는다. 지역에 따라 각종 탕이나 국의 부재료나 고명으로 올려 먹기도 하고, 전을 부치거나 튀김 등 주전부리로도 먹는다. 요즘은 라면을 끓일 때 넣어서 먹기도 한다. 말려서 두고두고 식재료로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 전 연안에 분포한 해초

모자반


모자반은 모자반속의 여러해살이 갈색 해조류(다년생 갈조류)이다. 우리나라 전 연안에 분포하고 있으며 바닷속에서 1~3m 이상 자라며 거대한 해초 숲을 이루며 군집, 자생한다. 줄기 사이에는 공기주머니인 기낭이 작은 구슬처럼 달려있다. 이 기낭으로 바닷속을 길게 일어서서 햇빛 광합성을 한다.

모자반 자생지는 여러 어족의 산란처이자 먹이 활동을 하는 곳으로 바다의 숲, 해중림(海中林)이라 불린다. 마치 육지의 숲처럼 다종다양한 바다 것들의 주요 서식지가 되기도 한다.

모자반을 양념장에 무친 모자반 무침.


동해에서는 이 모자반을 이용한 ‘손꽁치잡이’라는 어로법이 있다. 모자반 해중림에 산란하는 꽁치의 습성을 이용한 우리 전통의 어로법이다. 꽁치는 한때 동해의 최대 어획 어종 가운데 하나로, 동해 포항이나 울릉도 등지에서는 한때 꽁치를 손으로 잡는 ‘손꽁치잡이’가 활발했었다. 꽁치 산란철이 되면 어부들은 가마니에 모자반을 매달아 바다에 길게 늘어뜨려 놓으면, 꽁치가 그 모자반에 산란하기 위해 떼로 모여든다. 이때를 기다려 어부들이 맨손으로 꽁치를 잡아들인다.

일명 ‘참모자반’이라고 불리는 모자반은 경상도에서는 ‘모재기’, 제주도에서는 ‘몸’ ‘몰망’, 전라도에서는 ‘몰’,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마재기’ 등으로 불린다. 현재 제주 추자도, 전라남도 진도 등지에서는 양식을 하고 있다.

▮해장국 감칠맛 더하는 식재료

모자반과 바다 어류 삼세기를 맑게 끓인 마산 탱수국.


모자반을 끓는 물에 데치면 밝은 연둣빛 색감이 곱다. 이를 다양한 양념장과 무 등속의 채소를 채 썰어 무쳐서 먹는다. 식초를 넣고 새콤달콤하게 무쳐 먹거나 간장에 참기름 몇 방울 떨어뜨려 조물조물 먹기도 한다. 생선 젓국에 버무려 먹으면 그 구수함이 일미를 자랑한다.

개인적으로 겨울 해장국으로 제일 반기는 음식이, 모자반으로 끓인 ‘몰국’이다. 알긴산이 풍부해 숙취 해소에 큰 도움이 되기에 그러하다. 과음한 다음 날, 된장을 옅게 풀고 모자반 넉넉히 넣어 끓인 ‘몰국’은, 한겨울에도 땀 뻘뻘 흘려가며 ‘어허~! 어허~ 좋다~!’ 연신 장에서 올라오는 탄성을 연발하며 먹게 되는 해장국이다.

진도를 비롯한 전라도 해안 지역에서도 이 모자반을 말려두었다가 ‘몰국’을 끓여 먹는다. 말린 모자반이 특유의 해초 향이 더 향긋하고 진하게 나면서 감칠맛이나 오돌오돌한 식감이 더 좋기에 그렇단다. 생선이나 소내장 등을 넣고 어간장으로 간을 해 끓여 먹기도 한다.

돼지고깃국에 모자반을 넣은 몸국.


지역에 따라서 향토 음식의 부재료로도 널리 쓰이는데 제주의 돼지고깃국 ‘몸국’, 통영의 ‘물메기국’, 마산의 ‘탱수국’, 거제의 ‘대구탕’ 등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이 모자반이다. 몸국은 제주도 향토 음식으로, 많은 손님을 치르는 마을의 대소사에는 빠져서는 안 되는 ‘잔치 음식’이었다. 제주의 마을 대소사에는 대부분 돼지를 잡았다. 잔치가 시작되면 우선 가마솥에 고기를 삶아내고 그 뒤 내장, 수애(순대) 등을 순서대로 삶고 나면 진한 국물과 고기 부산물이 남는다. 여기에다 제주 연안의 ‘참모자반’과 배추 넣고 메밀가루 풀어 걸쭉하게 끓여내면 ‘몸국’이 되는 것이다. 제주 사찰에서는 절을 찾는 이들에게 공양 음식으로 내기도 한다. 사찰 몸국은 돼지고기 국물 대신 채수를 이용해 몸국을 끓여낸다. 된장을 풀고 채소로 국물을 낸 후 잘 말려둔 모자반을 물에 불려서 끓여 먹는다.

‘탱수’는 바다 어류 ‘삼세기’의 마산 지역 말이다. 쏨뱅이목 삼세기과로 우리나라 전 연안에 분포하는 흉측하고 못생긴 생선이다. 탱수(경남), 삼숙이(강원), 삼식이(전라 충청)로 불리기도 한다. 주로 매운탕으로 먹는다. 그러나 마산에서는 탱수 본연의 맛을 즐기기 위해 맑은국으로 끓이는데, 이 ‘탱수 맑은국’은 마산 중년 남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해장국이기도 하다. 마산에서는 이 탱수국에 ‘모재기’를 넉넉하게 넣는다. 모재기는 모자반의 경남 해안지역 말이다.

물메기에 모자반을 넣어 시원한 국물이 일품인 물메기국.


이 모재기를 넣으면 해초 향이 물씬 나 천연 조미료 역할을 한다. 먹기 전 복국처럼 식초를 조금 타면 더욱 깔끔하고 개운하게 먹을 수가 있다. 모재기를 넣은 ‘탱수국’은 날이 추워지면 질수록 더욱더 맛있어진다. 제철은 찬 바람이 부는 11월에서 이듬해 4월까지다.

겨울 생선 양대 산맥이라 하면 바로 대구와 물메기이다. 이들은 주로 생선국으로 널리 소용되는데, 시원하면서도 생선 특유의 감칠맛이 좋아 해장국으로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매운탕으로든 맑은국으로든 모두 그 시원하고 화끈한 국물 맛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대구나 물메기는 냄비에 큰 토막으로 잘라 넣고 무를 서벅서벅, 두부를 더벅더벅, 대파를 숭덩숭덩 썰어 넣는다. 그 위로 땡초를 어슷어슷 넉넉하게 썰어 얹어 매운맛을 올린다. 이때 경남에서는 지역에 따라 모자반을 고명처럼 올려낸다. 국물 한 술 떠먹어 보면 처음에는 담백하다. 지방이 적은 생선이라 깔끔하니 시원하다. 그 뒤로 ‘짜르르~’ 뜨거운 국물이 온몸을 확~ 데우며 목을 타고 넘어가는데 속까지 환해진다. 거기다가 화룡점정, 고명으로 올라간 모자반으로 국물에 시원한 갯냄새가 물씬 퍼져 나는 ‘해장 생선국’의 정점을 찍는 것이다.

부산 기장을 비롯해 경남 남해안 지역에는 미역이나 모자반으로 ‘설치’를 해 먹기도 한다. ‘설치’는 해조류를 콩나물 등과 함께 무쳐서 자작한 국물과 함께 떠먹는 ‘국물 있는 나물’이라 보면 된다. 해초무침처럼 해초의 식감을 즐기면서 나물 냉국처럼 국물도 먹을 수 있는 향토 음식이다. 주로 ‘미역 설치’와 ‘몰(모자반) 설치’가 대표적인데 미역을 넣으면 ‘미역 설치’이고, 몰을 넣으면 ‘몰 설치’가 된다. 평소 반찬으로 먹기도 하지만 큰 잔치나 동네 행사 때는 빠져서는 안 되는, 잔치 음식 중 하나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전 연안에 나는 해초이지만 그 이름만큼 지역마다 다른 음식으로 변주되는 식재료가 모자반이다. 지역의 말과 지역의 음식이 서로 연동되는 것 또한 지역 음식문화를 들여다보는 재미 중 하나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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