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혀끝에 밀려오는 겨울바다…복잡미묘한 굴향기에 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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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을 마시고 바다맛이 난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파도가 바위에서 부서지듯 차갑고 짭짤하며 강렬한 바다맛이 나는 굴 향기가 코끝에 진동하는 순간, 달빛이 빛나는 겨울 바다로 마음이 이끌린다.
바다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바다보다 더 섬세하며 복합적인 맛, 그게 바로 굴의 맛이다.
맛과 영양 면에서 겨울이 제철인 굴을 자주 먹어야 할 이유가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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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서 적응 단맛·감칠맛 배가
서식지 환경 따라 향미 달라져
저지방 고단백 … 아연도 풍부
타우린 가득 ‘천연 자양강장제’
바닷물을 마시고 바다맛이 난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매끈하며 촉촉한 굴이 입속에서 녹아내리면 누구나 바다를 떠올리게 된다. 파도가 바위에서 부서지듯 차갑고 짭짤하며 강렬한 바다맛이 나는 굴 향기가 코끝에 진동하는 순간, 달빛이 빛나는 겨울 바다로 마음이 이끌린다.
여기에는 과학적 이유가 있다. 굴은 날것 그대로 먹을 때가 많다. 염도가 높은 해수에 적응해 생존하는 과정에서 굴의 당분과 아미노산 함량이 높아진다. 달콤한 맛을 내는 글리신·알라닌, 달콤쌉쌀한 프롤린, 씁쓸한 아르기닌, 감칠맛을 내는 글루탐산이 굴 속에 풍부해서다. 가열해 익히면 단백질이 응고되면서 이들 아미노산 일부가 그 속에 가둬져 맛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굴은 체내로 물을 걸러내면서 주변의 향기 분자들을 그러모은다. 식물성 플랑크톤, 해조류, 육지에서 강물과 함께 흘러들어온 흙 속 향기물질이 모두 굴 속에 농축된다.
이런 이유로 동일한 종의 굴이어도 서식지 환경과 먹이에 따라 향미가 달라진다. 게다가 패각 속에는 속살뿐만 아니라 굴이 살던 바닷물의 일부가 함께 들어 있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굴의 맛과 향을 논할 때 와인의 ‘떼루아’(포도 재배 환경)를 빗대어 ‘메루아’라고 부를 만하다.(mer는 프랑스어로 바다를 뜻한다.)
신선한 굴을 입에 넣고 씹을 때 향기는 더 복잡미묘해진다. 굴 속의 효소가 버섯·오이·수박·멜론 향을 내는 탄소화합물을 만들기 때문이다. 때로는 꽃이나 감귤을 연상시키는 향기가 나기도 한다. 바다를 떠올리게 하면서도 바다보다 더 섬세하며 복합적인 맛, 그게 바로 굴의 맛이다.
굴에는 영양도 풍부하다. 100g당 단백질이 9g 들어 있다. 저지방 고단백 식품이면서 지방 속에는 DHA·EPA와 같은 오메가-3 함량이 높다. 면역 기능, 상처 치유, 성장, 생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아연의 함량도 높다. 굴 100g에는 아연이 14㎎ 들어 있어서 쇠고기(4㎎), 돼지고기(2㎎)의 3∼7배에 이른다. 그밖에도 철분·셀레늄 등의 미네랄이 풍부하며 비타민B12도 많이 들어 있다. 타우린 함량도 높다. 굴 100g을 먹으면 섭취하게 되는 타우린은 400∼1000㎎으로 약국에서 판매되는 자양강장제 드링크 한병과 맞먹는다. 맛과 영양 면에서 겨울이 제철인 굴을 자주 먹어야 할 이유가 있는 셈이다.
굴을 살짝 익혀 먹으면 날것으로 먹을 때와 또다른 맛이 있다. 뜨겁게 데운 우유, 익힌 채소에서 나는 디메틸설파이드의 향기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생굴을 먹는 게 부담스러울 때는 집에서 굴 콩피를 만들어 먹는 것도 좋다. 깊은 팬에 올리브유를 넉넉히 두르고 다진 마늘을 볶다가 굴을 넣고 약불로 살짝 익혀준 뒤 소금으로 간하면 완성된다.
경기 용인시 수지구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D590’에서는 굴에 보리·쌀, 경남 남해에서 지인이 키운 시금치 섬초를 더해 굴 시금치 리소토를 낸다. 보리의 톡톡 튀는 식감과 굴의 부드러운 질감이 대비돼 입속에 작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시금치로 물든 리소토의 색깔이 마치 푸른 겨울 바다를 보는 듯하다. 이렇게 또 겨울이 깊어간다.
정재훈 약사·푸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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