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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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딕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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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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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운터름하우스 |
사망 | 징겐 |
직업 | 화가, 에스페란티스토, 대학 교수, 데생화가, 조각가, 판화가, 그래픽 예술가, 시각 예술가, 석판화가 |
학력 | 드레스덴 공예학교(1910~1914) 드레스덴 미술대학 |
스승 | 에른스트 슝케, 카를 센프, 리하르트 구어, 오토 구스만 |
제자 | Erika Streit |
사조 | 표현주의, 신즉물주의 |
수상 | Commander's Cross of the Order of Merit of the Federal Republic of Germany (1959) Medal Carl von Ossietzky (1964) honorary citizen of Gera (1966) Lichtwark Prize |
배우자 | Martha Dix(1923~) |
자녀 | Ursus Dix, Nelly Dix, Jan Dix |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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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The Skat players, The War | |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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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딕스(Otto Dix, 1891년 ∼1969년)은 독일의 화가이다.
생애
[편집]오토 딕스는 라이프치히 교외의 게라에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 장식화가로서의 교육을 받아 1914년부터 1918년까지 제1차 세계 대전에 종군하였고, 1922년에서 1925년까지 뒤셀도르프 미술 학교에서 수학했다. 그의 초기 회화는 후기 인상파의 흐름에 따라 그 테마는 전쟁 체험에 입각하였다. 1926년 드레스덴 미술학교에서 교직에 종사했으며 이 무렵 다다이즘을 거쳐 신즉물주의의 진영으로 들어간 그의 그림에는 사회의 부정·퇴폐·악덕·암흑 속에서 꿈틀거리는 인간의 비참, 추악을 박진(迫眞)한 묘사력으로 추구하였다.
딕스는 이 착안점과 기법을 발전시켜 마치 종교개혁의 한 가운데서 활약한 독일 르네상스의 거장(巨匠)들과 같이 윤리적 발언을 배경으로 하는 독특한 화풍(畵風)을 세워 나갔고, 그가 '프롤레타리아의 크타라나하'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나치스 시대가 되어 드레스덴 미술학교의 교직에서 추방당하여 박해와 궁핍을 견디어 내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였지만 전후에는 표현주의에 접근한 종교화와 풍경화의 건전한 작품을 제작하다가, 1969년 보덴 호반의 콘스탄츠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