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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독일군이 운용했던 4발 중폭격기. 포케불프 사에서 개발 및 생산했다.
1937년 첫 비행할 때 쿠르트 탕크가 조종간을 잡았다. 본래 여객기를 기반으로 한 폭격기로, 여객기였을 당시에는 루프트한자에서 운용했으며 최대 26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었다. 또한 초기에는 미국의 프랫&휘트니에서 만든 호넷 공랭식 성형 엔진을 4개 탑재하였으나, 전쟁이 터지면서 국산화 차원에서 BMW제 엔진으로 바꿨다.
프로토타입 V1 "D-ACON" |
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촉망받던 장거리 여객기였고 따라서 각종 장거리 비행에 실험적으로 투입되었다. 대표적으로, 프로토타입인 V1은 추가연료탱크를 달고 1938년 베를린을 출발해 대서양을 건너 뉴욕까지 시험으로 4,000마일을 논스톱 운항했다. V1은 이후 동년 11월 베를린에서 바스라, 카라치, 하노이를 거쳐 최종적으로 46시간만에 도쿄에 도달하는 초장거리 비행을 성공시키기도 했다.[1]
참고로 일본 해군은 이 기체의 긴 항속거리와 넉넉한 폭장량에 관심을 보였고, 해상초계기로서의 활용을 검토했다. 이 관심에 발맞춰 쿠르트 탕크가 직접 해상초계형 버전인 Fw 200 V10을 제작하기도 했지만, 개발 도중 2차 세계 대전이 터지면서 기체는 끝내 일본에 인도되지 못했다. 다만, 해당 기체는 이후 정식으로 생산된 해상초계기형의 모태가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전쟁이 터지자 폭탄 장착을 위한 하드포인트가 날개에 장착되고, 폭탄투하 및 방어기총 장착을 위해 동체 아래에 곤돌라가 장착되었다. 2차 세계대전 전쟁 기간 동안에는 긴 항속거리를 이용, U보트와 함께 북해와 대서양 등에서 연합군 수송선단에 대한 "통상파괴작전"에 주로 사용되었다. 수는 크게 많지 않았지만, 독일 해군항공대의 몇 없는 항공기로[2] 꽤나 짭잘한 전과를 세웠다. 탑재한 자체 무장을 이용해서 직접 공격하기도 했지만, Fw 200이 정찰 후 수송선단의 위치와 규모 등의 정보를 U보트에게 알려주는 형태의 연계 전술도 병행했다.
특히 영국과 미국의 지상기지 항공기의 항속거리가 닿지 않던 "에어갭"을 주된 활동 무대로 삼아, 연합군 수송선단에 적잖은 위협을 가했다. 전쟁 초기 1940년 6월 부터 1941년 2월 까지, 독일측 전과보고에 따르면 Fw 200은 331,112톤의 수송선을 격침시킨 것으로 기록되었다. 때문에 영국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전투기를 ('1회용'으로) 캐터펄트로 발진'만' 시킬 수 있는 "캠 쉽" 같은 궁여지책을 동원하기도 했다. 이탓에 아이슬란드와 그린란드에 미국과 영국이 비행장을 세워 P-38 라이트닝을 배치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후 호위항공모함의 투입과 B-24등 장거리 항공기들이 배치되며 "에어갭"이 사라지자 Fw 200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Fw 200은 생존성이 낮다고 보았으며[3] 주로 원양을 초계하다 호송선단 등을 발견하면 아군 U보트 등에 무전을 보내고 도주하는 초계기로 운용되었으며, 해군이 겨우 얻어낸 Ju 88, He 177, Ju 290같은 신형기체가 대신 폭격 활동을 하게 되었다.
Fw 200은 본래 여객기였기에 수송기로도 쓰였으며, 제6군의 보급을 위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투입되기도 했다. 1943년에는 유도장치와 함께 헨셸에서 개발한 Hs 293 전파유도 미사일의 발사플랫폼으로도 사용되었다.
다만 Fw 200 자체가 생산량이 굉장히 적은데(총 276대) 1937년부터 1944년까지 생산된 것치고는 생산효율이 나쁜 편이다.[4]
2021년 6월에 Fw 200 한 대가 성공적으로 복원됐다. 1942년에 노르웨이 해안에 추락해 수심 60m 아래 잠들어 있던 것을 1999년 5월 26일에 인양해 2008년부터 과거 포케불프에 근무했던 직원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복원에 참여했다. 현재는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의 7번 격납고에 전시되어 있다.
Fw 200은 본래 여객기였기에 수송기로도 쓰였으며, 제6군의 보급을 위해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투입되기도 했다. 1943년에는 유도장치와 함께 헨셸에서 개발한 Hs 293 전파유도 미사일의 발사플랫폼으로도 사용되었다.
다만 Fw 200 자체가 생산량이 굉장히 적은데(총 276대) 1937년부터 1944년까지 생산된 것치고는 생산효율이 나쁜 편이다.[4]
2021년 6월에 Fw 200 한 대가 성공적으로 복원됐다. 1942년에 노르웨이 해안에 추락해 수심 60m 아래 잠들어 있던 것을 1999년 5월 26일에 인양해 2008년부터 과거 포케불프에 근무했던 직원들을 포함한 사람들이 복원에 참여했다. 현재는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의 7번 격납고에 전시되어 있다.
월드 앳 워의 스탈린그라드 미션 시작때 공중에서 날아가고 있다.
워 썬더에 독일 2랭크 폭격기로 등장한다. 폭장량은 좋으나 매우 느린 속도와 나쁜 기동성, 빈약한 방어무장 때문에 평가는 좋지 않다. 속도가 얼마나 느리냐면 웬만한 순항고도에서도 300km/h를 넘기 힘들다(동 랭크 비행기에 비해 매우 느림). 하지만 폭장량이 상당하기 때문에 정말 운좋게도 요격하러 오는 전투기가 하나도 없다면 혼자서 미니베이스 3개를 다 파괴해버릴 수 있다.(리얼리스틱 기준)
월드 오브 워플레인(2.0 이후 버전)에서 8~9티어 방의 사령부 호출 폭격기로 등장한다.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 에서 독일 중폭격기 프리미엄 기체로 등장했다. 하지만 비슷한 다른 4발기종 폭격기들의 비행성능이 더 좋았기에 극소수의 매니아층 위주로만 사용되다가 정규라인업에 완벽한 상위호환급 기체인 Me 264 폭격기가 출시되며 완전히 관짝행으로 직행했다.
워 썬더에 독일 2랭크 폭격기로 등장한다. 폭장량은 좋으나 매우 느린 속도와 나쁜 기동성, 빈약한 방어무장 때문에 평가는 좋지 않다. 속도가 얼마나 느리냐면 웬만한 순항고도에서도 300km/h를 넘기 힘들다(동 랭크 비행기에 비해 매우 느림). 하지만 폭장량이 상당하기 때문에 정말 운좋게도 요격하러 오는 전투기가 하나도 없다면 혼자서 미니베이스 3개를 다 파괴해버릴 수 있다.(리얼리스틱 기준)
월드 오브 워플레인(2.0 이후 버전)에서 8~9티어 방의 사령부 호출 폭격기로 등장한다.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 에서 독일 중폭격기 프리미엄 기체로 등장했다. 하지만 비슷한 다른 4발기종 폭격기들의 비행성능이 더 좋았기에 극소수의 매니아층 위주로만 사용되다가 정규라인업에 완벽한 상위호환급 기체인 Me 264 폭격기가 출시되며 완전히 관짝행으로 직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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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V1은 이후 마닐라로 비행하던 도중, 연료 누출로 인해 엔진이 모두 정지하면서 마닐라만에 불시착하는 최후를 맞았다. 조종사들은 다행히도 모두 구조되었지만 기체는 수리불과 판정을 받았고 인양 후 스크랩되었다.[2] 이 원인은 항공병과에 대해 광적인 집착을 보였던 헤르만 괴링 때문이다. 함상에서 운용하는 수상기까지 공군 소속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해군 항공대의 규모가 크게 축소된 현대 유럽에서 함재기가 공군이나 육군 소속인 경우가 있는 건 이상하지 않지만, 당시 유럽 각국에서는 공군의 역사가 일천해서 전통의 해군이 공군에게 주도권을 넘겨준 것이 눈에 띄는 것이다.[3] 당시에는 항속거리를 길게 하는게 느긋하게 달리는 거였으니 전투기 따돌리기도 뭐하고 여객기 기반이었다.[4] 이에 대해서는 필요는 한데 수요가 적어서 가끔씩 제작한 탓으로 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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