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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at Caccia Rosatelli 42 Falco |
- 전장 : 8.25m
- 전폭 : 9.70m (아래쪽 익폭 : 6.50m)
- 전고 : 3.59m
- 익면적 : 22.4㎡
- 익면하중: 102kg/m²
- 엔진 : 피아트 A.74 RIC38 복열 14기통 공랭식 성형엔진, 840마력
- 자체중량 : 1,782kg (전비중량 2,295kg)
- 최대속도 : 441km/h (고도 6,096m)
- 순항속도: 399km/h
- 항속거리 : 780km[2]
1930년대 이탈리아 공군의 주력전투기로 이름 날리던 CR.32의 후계기종으로 CR.32의 설계를 기반으로 장비들을 업그레이드하고 기존 설계를 개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기에 CR.32의 파생형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사상 최고의 복엽전투기를 논할 때 항상 거론되는 기종이지만 문제는 이 기종이 배치되고 활동한 시기가 2차대전이란 점이다!
1930년대 후반 이탈리아 공군은 대세에 따라 차세대 단엽전투기 개발을 의뢰한 상태였고, 훗날 차기 주력전투기로 채택되는 MC. 200의 원형기가 1937년 12월에 초도비행에 성공한 시점에서 뜬금없이 피아트사에서 제출한 복엽전투기 CR. 42의 개발계획이 승인되었다. 게다가 CR. 42를 발주받은 피아트사는 차세대 단엽전투기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4]
그렇지만 스페인 내전 등지에서 CR.32가 맹활약을 하여 검증받은 상태였고 이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방식이었으니 개발속도도 빨랐고 당연히 성능 향상도 있었다. 여기에 MC. 200을 비롯한 차세대 전투기들의 배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라 이탈리아의 빈약한 산업력때문에 차세대 단엽 전투기 계획을 진행하면서 생산량에 대한 고민을 하는 차에 CR.42는 이탈리아군에게 나름 매력적인 안이었다. 마키(Macchi)사의 C.200은 이탈리아 최초의 단엽 전금속 전투기였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이 호커 허리케인과 슈퍼마린 스핏파이어를 병행 생산하게 된 이유가 전금속 전투기인 스핏파이어의 생산성이 떨어질 것을 염려해서 나온 결과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탈리아군의 발상은 나름 합리적이었다.
1930년대 후반 이탈리아 공군은 대세에 따라 차세대 단엽전투기 개발을 의뢰한 상태였고, 훗날 차기 주력전투기로 채택되는 MC. 200의 원형기가 1937년 12월에 초도비행에 성공한 시점에서 뜬금없이 피아트사에서 제출한 복엽전투기 CR. 42의 개발계획이 승인되었다. 게다가 CR. 42를 발주받은 피아트사는 차세대 단엽전투기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4]
그렇지만 스페인 내전 등지에서 CR.32가 맹활약을 하여 검증받은 상태였고 이를 업그레이드시키는 방식이었으니 개발속도도 빨랐고 당연히 성능 향상도 있었다. 여기에 MC. 200을 비롯한 차세대 전투기들의 배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라 이탈리아의 빈약한 산업력때문에 차세대 단엽 전투기 계획을 진행하면서 생산량에 대한 고민을 하는 차에 CR.42는 이탈리아군에게 나름 매력적인 안이었다. 마키(Macchi)사의 C.200은 이탈리아 최초의 단엽 전금속 전투기였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영국이 호커 허리케인과 슈퍼마린 스핏파이어를 병행 생산하게 된 이유가 전금속 전투기인 스핏파이어의 생산성이 떨어질 것을 염려해서 나온 결과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탈리아군의 발상은 나름 합리적이었다.
카프로니 Ca.165 |
그래서 이탈리아군은 차세대 단엽전투기 개발과 별개로 신형 복엽기 프로젝트를 시행했다. 참가한 회사는 피아트(Fiat), 카프로니(Caproni) 두 회사였고 피아트는 CR.42를 선보였고 카프로니는 Ca.165를 내놓았다. 피아트의 CR.42는 자사의 공랭식 엔진 A.74 RC.38을 장착한 반면, 카프로니의 Ca.165는 이소타 프라스키니(Isotta-Fraschini)사의 L.121 RC.40 수랭식 엔진을 사용했다. Ca.165의 이소타 프라스키니 L.121 RC.40은 900마력으로 피아트 A.74 RC.38의 840마력보다 출력이 높았다. 거기에다가 Ca.165는 수랭식 엔진의 특징상 좀더 공기저항을 덜 받는 기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최고 속력은 461km/h였다. 화력은 처음부터 12.7mm 브레다-SAFAT 2정을 장착하고 있었기 때문에 CR.42의 7.7mm 1정, 12.7mm 1정보다 강력했다. 특히 Ca.165는 수평선회전 뿐만 아니라 에너지파이팅도 어느 정도 고려한 카프로니사의 노련한 솜씨를 보여준 대작이었다.
하지만, Ca.165는 결격사유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이소타 프라스키니 엔진이 신뢰성이 낮았던 것. 이점은 단엽전투기 생산량이 부족할 것을 예상하고 부족한 량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복엽기 프로젝트다보니 Ca.165의 성능이 우수했음에도 불구하고 탈락했다.[5] 결국 이탈리아 공군은 CR.42에 "Falco"란 이름을 부여하여 양산을 허가했다. 게다가 CR. 32의 우수한 성능을 알고 있던 벨기에, 헝가리, 스웨덴, 크로아티아 독립국 등지에서 CR. 42도 도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피아트사 입장에서는 매우 성공적인 기종으로 남게 되었다. 게다가 CR. 32와 비행특성이 유사했던 까닭에 CR. 32를 조종했던 조종사라면 별도의 기종전환 훈련 없이 적응하기에 용이한 점도 있었다.
일단 최강의 복엽기답게 속도는 441km/h, 항속거리도 780km[6], 무장도 기본이 12.7mm 기관총 2정이며, 추가로 12.7mm 기관총 2정을 더 달거나[7](CR.42 ter) 50~100kg 폭탄을 2발 달수 있었다.(CR.42 AS) 덤으로 튼튼하며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잘 버틴다. 한마디로 말해 여러가지 용도로 다양하게 사용가능하며, 취급도 쉽고 신뢰성도 높은 기체다.
CR. 42는 초기 7.7mm 기관총 만을 사용하였으나, CR. 42bis가 출범하며 기존 기관총을 12.7mm 브레다-사파트 기관총 2정으로 교체하였는데, 이 시기 생산된 CR. 42 전량 bis와 동일하게 개수를 하여 공격력이 대폭 증가하였다.
하지만, Ca.165는 결격사유가 하나 있었다. 바로 이소타 프라스키니 엔진이 신뢰성이 낮았던 것. 이점은 단엽전투기 생산량이 부족할 것을 예상하고 부족한 량을 채우기 위해 시작한 복엽기 프로젝트다보니 Ca.165의 성능이 우수했음에도 불구하고 탈락했다.[5] 결국 이탈리아 공군은 CR.42에 "Falco"란 이름을 부여하여 양산을 허가했다. 게다가 CR. 32의 우수한 성능을 알고 있던 벨기에, 헝가리, 스웨덴, 크로아티아 독립국 등지에서 CR. 42도 도입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피아트사 입장에서는 매우 성공적인 기종으로 남게 되었다. 게다가 CR. 32와 비행특성이 유사했던 까닭에 CR. 32를 조종했던 조종사라면 별도의 기종전환 훈련 없이 적응하기에 용이한 점도 있었다.
일단 최강의 복엽기답게 속도는 441km/h, 항속거리도 780km[6], 무장도 기본이 12.7mm 기관총 2정이며, 추가로 12.7mm 기관총 2정을 더 달거나[7](CR.42 ter) 50~100kg 폭탄을 2발 달수 있었다.(CR.42 AS) 덤으로 튼튼하며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잘 버틴다. 한마디로 말해 여러가지 용도로 다양하게 사용가능하며, 취급도 쉽고 신뢰성도 높은 기체다.
CR. 42는 초기 7.7mm 기관총 만을 사용하였으나, CR. 42bis가 출범하며 기존 기관총을 12.7mm 브레다-사파트 기관총 2정으로 교체하였는데, 이 시기 생산된 CR. 42 전량 bis와 동일하게 개수를 하여 공격력이 대폭 증가하였다.
CR. 42는 제2차 세계 대전동안 이탈리아가 생산한 기체중에 생산량이 많은 편에 속해 여러가지 개량형이 존재한다.
Caccia Rosatelli 42 B |
"CR. 42B"는 CR. 42를 기반으로 훈련을 위해 복좌기로 개수한 파생형이다. 소량이 개수되어 사용되었으며, 종전 이후 냉전 시기에도 훈련기로 사용되었다.
Caccia Rosatelli 42 Egeo |
"CR. 42 에게오"는 지중해 전역 당시 에게 해에서 활동하기 위해 CR. 42에 추가 연료탱크를 장착해 항속거리를 늘린 버전이다.
Caccia Rosatelli 42 Africa settentrionale |
"CR. 42 AS"는 CR. 42를 북아프리카 환경에 맞게 모래먼지를 막기 위해 전방에 엔진 필터를 달고 주익 하단에 폭탄을 장착할 수 있는 파일런을 단 파생형이다. 도합 150kg의 폭장을 장착할 수 있었으며, 북아프리카 전역 당시 지상 공격 임무용도로 사용되었다.
Caccia Rosatelli 42 ICR |
"CR. 42 ICR"은 1938년 피아트 사에서 신형 수상기 계획을 진행하기 위해 CR. 42의 랜딩기어를 제거하고 폰톤을 장착한 수상기 파생형이다.
테스트는 성공적이었으나 당시 IMAM사에서 제작한 Ro. 43이나, Ro 44 등의 걸출한 수상전투기가 이미 존재하였기에 제식화 되지 못하고 사장되었다.
테스트는 성공적이었으나 당시 IMAM사에서 제작한 Ro. 43이나, Ro 44 등의 걸출한 수상전투기가 이미 존재하였기에 제식화 되지 못하고 사장되었다.
Caccia Rosatelli 42 Caccia Notturna |
"CR.42 CN"은 CR. 42를 야간전투기로 개수한 파생형으로, 배연관을 길게 늘리고 동체를 검게 칠해 야간 전투 능력을 증가시켰다.
Caccia Rosatelli 42 Luftwaffe |
"CR.42 LW"는 독일 공군이 생산을 지시해서 만들어진 독일 공군 전용의 파생형으로, 주로 정찰이나 초계와 같은 보조 임무를 맡았지만 종종 이탈리아 공군이 한 것 처럼 지상공격에 동원되기도 했다. 생산량은 300기 정도 되며 북이탈리아에서 독일군이 항복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J11 |
"J11"은 CR. 42의 스웨덴 라이센스 버전으로서, 기존 이탈리아제 부품이나 무장을 스웨덴 자국내 현지 생산 부품으로 개수한 파생형이다.
하지만 당시 전투기 개발 추세를 보면 복엽전투기에 기동성을 중시하는 설계는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구식이었다. 이미 대세는 저익단엽기에 고속성능을 이용한 전술을 구사하는 시기였으며, 이미 기동성 중시의 복엽전투기는 한 주먹감도 안된다는 것을 유럽 각지에서 독일 공군이 증명하고 있었다. 게다가 결정적인 민폐가 있었으니 당시 CR. 42가 사용하던 840마력급 피아트제 공랭식엔진은 다른 차세대 전투기들도 같이 쓰는 엔진이었다! 결국 CR. 42 만든답시고 다른 차세대 전투기들이 쓸 엔진들을 떼먹는 상황이었고 최소 생산량에서 3할 가량의 엔진이 CR. 42 개발을 위해 소진된 것으로 보고 있다.(CR. 42의 생산량은 무려 1,817대) 그만큼 다른 전투기들이 피해를 본 셈이다.[9] 다만 MC. 202 폴고레가 생산되면서 알파-로메오 엔진에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CR. 42중기 생산분부터는 큰 민폐가 아니다.
다행히 1939년 말에서 1940년 중반까지 영국이 영국 본토 방어에 더 신경을 쓰느라 워낙 후달려 제2선에 신경을 못쓰고 있었기에 몰타항공전이나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CR. 42가 활약할 여지가 있었다. 일단 당시에 몰타 섬에는 같은 복엽기인 글래디에이터 3대만 배치되어있었고[10] 항공모함 함재기로 쓰이는 풀머가 있었지만 풀머는 복좌전투기라 아주 떨어지는 기동성을 자랑했다.[11] 하지만 1940년 9월부터 2선급 전선에도 호커 허리케인이 배치되자 그저 격추스코어 셔틀로 전락했어야 하는데, 허리케인을 성공적으로 격추했다. 심지어 슈퍼마린 스핏파이어와 교전해서 이긴 사례도 존재한다. 이것은 교리면에서 뒤떨어지고 숙련도가 낮았던 북아프리카 영국 공군 파일럿의 문제가 컸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비행장에 쳐들어가 폭탄을 퍼붓는 등 모기처럼 영국군을 괴롭했다. 복엽기 주제에 나름 영국입장에서는 대단해보였는지 적성무기 평가표에서 CR. 42를 통칭 피아트(Fiat)라고 부르곤 했는데,[12] 꽤나 좋은 평가를 내렸고 신참들한테는 적에게 등을 보이면 꽤 강력한 화력에 당하니 주의하라고 적혀있다.
다행히 1939년 말에서 1940년 중반까지 영국이 영국 본토 방어에 더 신경을 쓰느라 워낙 후달려 제2선에 신경을 못쓰고 있었기에 몰타항공전이나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CR. 42가 활약할 여지가 있었다. 일단 당시에 몰타 섬에는 같은 복엽기인 글래디에이터 3대만 배치되어있었고[10] 항공모함 함재기로 쓰이는 풀머가 있었지만 풀머는 복좌전투기라 아주 떨어지는 기동성을 자랑했다.[11] 하지만 1940년 9월부터 2선급 전선에도 호커 허리케인이 배치되자 그저 격추스코어 셔틀로 전락했어야 하는데, 허리케인을 성공적으로 격추했다. 심지어 슈퍼마린 스핏파이어와 교전해서 이긴 사례도 존재한다. 이것은 교리면에서 뒤떨어지고 숙련도가 낮았던 북아프리카 영국 공군 파일럿의 문제가 컸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비행장에 쳐들어가 폭탄을 퍼붓는 등 모기처럼 영국군을 괴롭했다. 복엽기 주제에 나름 영국입장에서는 대단해보였는지 적성무기 평가표에서 CR. 42를 통칭 피아트(Fiat)라고 부르곤 했는데,[12] 꽤나 좋은 평가를 내렸고 신참들한테는 적에게 등을 보이면 꽤 강력한 화력에 당하니 주의하라고 적혀있다.
40년도내에서의 복엽기치곤 밥값을 한 수준이나 42년 후반까지 계속 생산됐다. 물론 초기 모델을 계속 생산한 건 아니고 상황에 맞게 조금씩 개량한 버전들이 나오기도 했고, DB 601엔진을 넣은 개수 버전도 만들어보는 등 그야말로 별짓을 다했다. 여기에는 다른 기종 생산량이 후달리다보니 그나마 양산이 용이하고 다양한 목적으로 굴릴 수 있는 CR. 42를 계속 찍어낸 탓도 있다. 당시 이탈리아 전투기중에 멀티롤(Multi-role)이 가능한 것은 레지아네사의 Re. 200x 시리즈인데 이 시리즈는 유독 양산허가가 잘 안나서 전장에서 쓸만한 멀티롤 기는 CR. 42정도였다. 일단 200kg 수준이 폭장이 가능한데[13] 복엽전투기치고 상당한 폭장이었고 실속하는 속력이 낮다보니 여러므로 잘 써먹었다는 모양이다.[14]
프랑스 침공 직전 이탈리아-프랑스 국경 인근의 이탈리아 왕립 공군 소속 CR. 42 팔코[15] |
프랑스 침공과 벨기에 침공 당시 CR. 42 팔코는 최초의 데뷔전을 겪었다.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서퍽 인근에 추락한 이탈리아 왕립 공군 소속 CR. 42 팔코[16] |
영국 본토 항공전에도 참가하였는데, 당시 Bf-109와 Ju 87을 운용하던 독일군은 CR. 42를 타고 지원을 온 이탈리아군을 당혹스런 눈길로 보았다.
이는 그럴 수 밖에 없었는데, 복엽기와 저익단엽기 간의 속력 차이로 편대비행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문제점과, 당대 최신예 비행기였던 Bf 109 및 Ju 87도 영국군의 강렬한 저항에 힘에 부치고 있는 상황에 복엽전투기인 팔코는 영국군이 지닌 호커 허리케인과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등의 고속단엽전투기와의 전투에서 도저히 승산이 없어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탈리아군의 팔코는 영국군을 상대로 대등한 활약을 벌였는데, 이 당시 영국군 또한 신입 조종사들에게 팔코가 복엽기라고 무시하지 말고 진지하게 전투에 임하라는 훈시를 내릴 정도로 데뷔전에서의 미묘한 활약과는 달리 연합군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결국 영국 본토 점령에 실패하며 지중해 전역과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팔코를 재배치하게 되었다.
이는 그럴 수 밖에 없었는데, 복엽기와 저익단엽기 간의 속력 차이로 편대비행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문제점과, 당대 최신예 비행기였던 Bf 109 및 Ju 87도 영국군의 강렬한 저항에 힘에 부치고 있는 상황에 복엽전투기인 팔코는 영국군이 지닌 호커 허리케인과 슈퍼마린 스핏파이어 등의 고속단엽전투기와의 전투에서 도저히 승산이 없어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탈리아군의 팔코는 영국군을 상대로 대등한 활약을 벌였는데, 이 당시 영국군 또한 신입 조종사들에게 팔코가 복엽기라고 무시하지 말고 진지하게 전투에 임하라는 훈시를 내릴 정도로 데뷔전에서의 미묘한 활약과는 달리 연합군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그러나 결국 영국 본토 점령에 실패하며 지중해 전역과 북아프리카 전역으로 팔코를 재배치하게 되었다.
지중해 전역 당시 이탈리아 공군의 주력 전투기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마지막으로 CR. 42는 복엽기로써 최후의 공중전 전과를 냈다고 본다. 1944년, 알프스 일대에서 독일군 소속 CR. 42 편대가 비행중에 미 육군항공대의 P-38 라이트닝과 조우해서 교전했는데 CR. 42 3대가 격추되었고 라이트닝은 부대로 귀환했다. 이걸로 끝이면 활약이 아니겠지만 부대에 귀환했을때 라이트닝 2대가 돌아오지 못한 것이다! 상황을 보면 CR. 42의 피해가 누적되어 결국 격추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여러므로 복엽기의 시대가 아니었지만 화려하게 마무리를 장식하고 사라졌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외 초계활동도 해서 대잠전과도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영국 U급 잠수함 HMS 얼지(Urge)가 CR. 42의 공격으로 격침되었다고 하지만 2019년, 얼지의 잔해를 발견하면서 밝혀진 원인에 따르면 얼지의 격침원인은 기뢰였다고 한다.
그외 초계활동도 해서 대잠전과도 있다. 대표적인 예시로 영국 U급 잠수함 HMS 얼지(Urge)가 CR. 42의 공격으로 격침되었다고 하지만 2019년, 얼지의 잔해를 발견하면서 밝혀진 원인에 따르면 얼지의 격침원인은 기뢰였다고 한다.
이탈리아 공군 박물관 소장 이탈리아 왕립 공군 소속 CR. 42 팔코 |
원조 개발국이자 사용국으로, 이탈리아군이 참여한 여러 전장에서 활약하였으며, 1945년 종전과 동시에 퇴역하였다.
현재 1기가 이탈리아 공군 박물관에 정태보존 중이다.
현재 1기가 이탈리아 공군 박물관에 정태보존 중이다.
덕스포드 제국 전쟁 박물관 소장 영국 왕립 공군 노획 CR. 42 팔코 |
영국 본토 항공전 당시 해변가에 추락한 1기를 노획하여 면밀분석 및 대항군 기체로 사용하였다.
항공 시뮬레이션 게임 워 썬더에서 등장한다. 워 썬더/항공 병기/이탈리아 트리/피아트 · 마키 1티어에 위치해있다. 게임상 같은 트리에선 다들 복엽기타고 다니니 확실히 우수한 기체임을 느낄 수 있다.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에서도 이탈리아 초기 전투기 트리로 등장했다. 놀랍게도 이 게임에서는 20mm 기관포 2문을 장착할 수 있었다. 덕분에 복엽기전 대전모드에서는 사기적인 기체였다. 잠수함 패치로 복엽기전 모드에서 기관포를 사용할 수 없게끔 막은 뒤로는 사용 빈도가 줄어들었다.
히어로즈 인 더 스카이에서도 이탈리아 초기 전투기 트리로 등장했다. 놀랍게도 이 게임에서는 20mm 기관포 2문을 장착할 수 있었다. 덕분에 복엽기전 대전모드에서는 사기적인 기체였다. 잠수함 패치로 복엽기전 모드에서 기관포를 사용할 수 없게끔 막은 뒤로는 사용 빈도가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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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슷한 예로 로사텔리가 설계한 폭격기인 B.R. 20 치코냐의 B는 Bombardiere이다. 읽는 법은 봄바르디에레.[2] 에게 해에서 활동하기 위한 버전인 CR.42 egeo은 1000km[3] 초기형은 7.7mm 브레다-SAFAT 1정, 12.7mm 브레다-SAFAT 1정[4] 이 전투기가 바로 G.50 프레치아이다.[5] 이소타 프라스키니 L.121 RC.40은 SM. 79나 Z.1007 알치오네에도 장착되었다가 심각한 신뢰성때문에 엔진을 교체하게 된다.[6] 보조연료탱크를 장착한 Bf 109 E형보다 길며, 복엽기중에서는 거의 A6M 제로 수준이다.[7] 이렇게 되면 12.7mm 기관총 4정으로 대전기 주력전투기인 MC. 202 폴고레보다 우수한 화력을 가지게 된다.[8] 이 정도라면 무려 후기형 영식 함상전투기와도 맞먹는 속력이다. 게다가 복엽기이기에 선회력은 단엽전투기인 A6M과 비교해도 전혀 밀리지 않았을 것이다.[9] 다만 CR. 42 자체는 자잘한데 쓰기 좋은데 비해 더 큰 문제는 같은 피아트사가 생산한 G.50 프레치아였다. G. 50은 단엽기 주제에 CR. 42보다 후지다!!(당연히 경쟁작인 MC. 200 사에타에 탈락한 놈이다.) 심지어 같은 엔진을 쓰고 있다는 점. 이마저도 683라는 적지않은 수가 생산되었고 진짜 엔진부족의 원인중 하나로 본다.[10] 원래 4대였지만 1대는 폭격으로 파손, 예비부품용으로 쓰였다.[11] 실제로 풀머보다 CR.42의 최대 속력이 더 빠르다. 그러나 영국군 조종사들은 풀머가 단엽기라는 점을 이용해서 에너지파이팅으로 발랐다.[12] 피아트사에서 만들어서 피아트라고 한다. G.50 프레치아도 피아트사 작품인데 프레치아를 피아트로 부르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고 한다.[13] Bf 109가 고작 250kg 폭탄달고 겨우 지상지원을 나가는 걸 보면 알겠지만 일단 전투기에 폭장이 되면 쓸 때가 있는 법이다. F4F 와일드캣이 고작 100lb 폭탄 2발만 장착 가능해서 용도가 제한적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14] 당시 이탈리아의 주력 폭격기인 SM. 79와 함께 자주 영국군을 괴롭혔는데, 영국이 제법 열받았는지 크루세이더 전차 기반 대공자주포를 만드는 이유중 하나였다고 한다.[15] 1940년 1월 촬영된 사진이며 이로부터 약 5개월 뒤, 이탈리아가 개입을 천명함으로서 실전 투입이 이루어졌다.[16] 1940년 11월 11일에 촬영된 사진이며, 해당 기체는 프로펠러의 경미한 손상 외에는 멀쩡했기에 전시 중, 영국군 소속으로 편제되어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덕스포드 제국 전쟁 박물관에 정태보존 중에 있다.[17] 헝가리 최고 에이스 파일럿은 'Dezső Szentgyörgyi'(데죄 센트죄르지)로 Re.2000(MAVAK 헤야)와 Bf109 G형을 탔으며 30.5대를 격추했다. 센트죄르지가 격추한 기체는 I-16같은 구식 기체가 아니라 Yak-9, La-5, Il-2였으며 P-51 머스탱과 P-38 라이트닝도 격추한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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