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일본 도쿄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황수일은 야구에만 집중하다가 아버지로부터 격투기를 한번 했으면 좋겠다는 권유를 받고 태권도를 시작했다.[1]
조선대학교 시절에는 전일본 선수권 라이트급 3연패를 시작으로 미들급도 제패하는데 기여했고 1992년에는 일본에서 개최된 제8회 ITF태권도 세계선수권대회 부문 라이트급 맞서기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도 지닌 뛰어난 선수였다.[2]
그리고 철권 3에서 화랑의 모션 캡처를 맡아[3] 찌르기와 발차기 등 일반인은 할 수 없는 어려운 기술들을 소화해 내며 제작진들을 놀라게 하고 이후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게 되었고, 철권 5에서는 화랑의 사범 백두산의 모션도 담당했다.
조선대학교 시절에는 전일본 선수권 라이트급 3연패를 시작으로 미들급도 제패하는데 기여했고 1992년에는 일본에서 개최된 제8회 ITF태권도 세계선수권대회 부문 라이트급 맞서기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도 지닌 뛰어난 선수였다.[2]
그리고 철권 3에서 화랑의 모션 캡처를 맡아[3] 찌르기와 발차기 등 일반인은 할 수 없는 어려운 기술들을 소화해 내며 제작진들을 놀라게 하고 이후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게 되었고, 철권 5에서는 화랑의 사범 백두산의 모션도 담당했다.
- 당시 태권도를 처음했을 때 몸이 엄청 굳어 있어서 제대로 발차기가 되지 않았다가 스트레칭을 하며 조금씩 발이 올라가기 시작했고, 수업이 끝나면 도장에서 연습하며 조금씩 자신의 기술이 향상되어 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 소속된 국제태권도연맹의 계열은 장웅계이다.
[1] TV로 격투기 중계를 본 적은 있어도 태권도를 해 보겠다는 생각은 없어서 중학교에 들어가면 도장에 가겠다고 했더니 아버지가 그렇게 이도저도 아니게 하지 말라고 화를 내서 결국 별 수 없이 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이게 평생 직장이 되었으니 아이러니.[2] 우승했을 당시 올라간 국기는 한반도기, 울려 퍼진 국가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다.[3] 철권 2의 백두산은 기술 동작에 문제가 생겨 태권도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자 차기 작품부터 진짜 태권도다운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실제 태권도 선수의 모션 캡처가 필요했다. 그리고 당시 태권도 대회가 열린 경기장에서 멋진 발차기를 선보였던 황수일은 한번 모델 해 보면 어떻겠냐는 제작진들의 제의를 받고 이에 동의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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