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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태경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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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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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
현직 | 보험연수원장 국민의힘 북한인권 및 탈·납북자 위원장 | ||||||||||||||||||||||||
재임기간 | 제19대 보험연수원장 | ||||||||||||||||||||||||
서명 | |||||||||||||||||||||||||
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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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하태경/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
초선 때는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와 가까이 지내면서 친무에 속하면서도 김진태 등과 함께 강경 보수 정치인으로 꼽혔으나,[21] 재선으로 20대 국회에 재입성한 직후부터 성향이 많이 바뀌어 새누리당-바른정당 내에서는 오히려 남원정을 위시한 소장파나 중도 개혁 보수 성향에 가까운 인물이었고, 심지어 바른미래당 내에서는 구 국민의당계와 비슷한 성향을 보이는 편이었다. 정치 입문 이전을 포함해서 좌우 이념적 변화의 진폭이 매우 큰 편인데 극좌에서 새누리당 초선 당시에는 당내 최고의 우파로[22] 또 바른정당, 바른미래당에서는 중도우파 성향이 강해지는 등 다소 짧은 편인 정치 경력에 비해 정치관의 변화가 잦고 변화의 정도도 심한 편이다.
실제 그가 광주광역시당 개편 대회에서 했던 연설을 보면,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이어 북한의 민주화와 남북통일을 이루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바 있는데, 이 부분이 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주요 보수 정치인들과 미묘하게 성향이 다른 편이다. 과거에는 한때 범민련 활동을 할 만큼 친북적이었으나, 전향 이후에는 대북 민간 라디오 방송 운영, 북한 인권활동 등을 이어가고 있다.
북풍 관련에서도 홍준표의 북풍몰이를 비판하지만, 한편으로 본인도 김일성 닮은 가면 사건 등으로 북풍몰이를 시전하는 모순되는 행보를 보인다. 그러나 홍준표의 북풍몰이는 처음에는 억지 부리는 거라고 호응을 받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등 북한의 일방적 합의 파기가 지속되어 맞는 말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청소년 정치 참여 문제에 있어 권오을 경북도당 위원장과 함께 상당히 개방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는데, 선거권을 16세로 낮추고[23], 청소년의 선거 운동 등의 정치 참여 보장을 주장할 정도. 심지어 김동철 원내대표 등과 함께 민중당의 청소년 선거권 보장 집회에도 참석했다.
다만 연동형 비례대표제 대해선 반대하는 등 선거제에 대해선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다.
여담이지만 같은 당 내에 이종철 부대변인이 그와 같은 커리어를 밟은 인물(운동권→북한민주화운동→개혁보수)이다. 다만 이종철은 상대적으로 하태경보다는 보수적인 인물로 꼽힌다.
계파적으로는 2020년까지는 범친유에 속했으나 친유 색이 옅고 딱히 따르는 계파가 없는 소장파에 속한다고도 볼 수 있었다. 친유계의 많은 사람들과 이념이나 노선 (바른정당 -> 바른미래당 -> 새로운보수당 -> 국민의힘)이 유사하지만, 유승민에 대한 비판도 가끔 하는 등 명확한 계파는 없었으나 2021년 윤석열의 국민캠프에 합류하면서 친윤으로 보기도 한다.[24] 하지만 국민캠프 내에서 비판 의견도 많이 내는 등 소장파에 가깝고[25] 선거 내내 이준석 당 대표 편에 서면서 친윤으로 보기에는 애매해다는 평가도 많다. 그래서 이준석 대표와의 사이는 여전히 좋은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 시기에는 유승민, 이준석 계열과 거리를 두고 주요 이슈들에서 윤석열 정부의 논란을 옹호하는 등 친윤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대 대선 국민의힘 경선에서는 최저임금 동결화, 해고 자유화, 여성가족부 폐지, 출산장려 정책 포기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개인적으로 중국과 인연이 깊은 이력의 소유자인데, 중화인민공화국 인사들 앞에서 하나의 중국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 천명한 바 있다. 홍콩 문제, 위구르 문제, 대만 문제에서 '하나의 중국'을 전제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도 전했다. #
22대 총선에서 영남 지역구를 내려놓고 서울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서울특별시 중구·성동구 을에 출마하겠다고 했지만 이혜훈에 밀려 공천 탈락했다.[26]
종합하면, 현재는 딱히 특정 계파를 언급하기는 애매한 정치인으로 볼 수 있다.
실제 그가 광주광역시당 개편 대회에서 했던 연설을 보면,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이어 북한의 민주화와 남북통일을 이루는 것이 목표라고 밝힌 바 있는데, 이 부분이 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주요 보수 정치인들과 미묘하게 성향이 다른 편이다. 과거에는 한때 범민련 활동을 할 만큼 친북적이었으나, 전향 이후에는 대북 민간 라디오 방송 운영, 북한 인권활동 등을 이어가고 있다.
북풍 관련에서도 홍준표의 북풍몰이를 비판하지만, 한편으로 본인도 김일성 닮은 가면 사건 등으로 북풍몰이를 시전하는 모순되는 행보를 보인다. 그러나 홍준표의 북풍몰이는 처음에는 억지 부리는 거라고 호응을 받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 남북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등 북한의 일방적 합의 파기가 지속되어 맞는 말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청소년 정치 참여 문제에 있어 권오을 경북도당 위원장과 함께 상당히 개방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는데, 선거권을 16세로 낮추고[23], 청소년의 선거 운동 등의 정치 참여 보장을 주장할 정도. 심지어 김동철 원내대표 등과 함께 민중당의 청소년 선거권 보장 집회에도 참석했다.
다만 연동형 비례대표제 대해선 반대하는 등 선거제에 대해선 보수적인 성향을 보였다.
여담이지만 같은 당 내에 이종철 부대변인이 그와 같은 커리어를 밟은 인물(운동권→북한민주화운동→개혁보수)이다. 다만 이종철은 상대적으로 하태경보다는 보수적인 인물로 꼽힌다.
계파적으로는 2020년까지는 범친유에 속했으나 친유 색이 옅고 딱히 따르는 계파가 없는 소장파에 속한다고도 볼 수 있었다. 친유계의 많은 사람들과 이념이나 노선 (바른정당 -> 바른미래당 -> 새로운보수당 -> 국민의힘)이 유사하지만, 유승민에 대한 비판도 가끔 하는 등 명확한 계파는 없었으나 2021년 윤석열의 국민캠프에 합류하면서 친윤으로 보기도 한다.[24] 하지만 국민캠프 내에서 비판 의견도 많이 내는 등 소장파에 가깝고[25] 선거 내내 이준석 당 대표 편에 서면서 친윤으로 보기에는 애매해다는 평가도 많다. 그래서 이준석 대표와의 사이는 여전히 좋은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 시기에는 유승민, 이준석 계열과 거리를 두고 주요 이슈들에서 윤석열 정부의 논란을 옹호하는 등 친윤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0대 대선 국민의힘 경선에서는 최저임금 동결화, 해고 자유화, 여성가족부 폐지, 출산장려 정책 포기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개인적으로 중국과 인연이 깊은 이력의 소유자인데, 중화인민공화국 인사들 앞에서 하나의 중국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 천명한 바 있다. 홍콩 문제, 위구르 문제, 대만 문제에서 '하나의 중국'을 전제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도 전했다. #
22대 총선에서 영남 지역구를 내려놓고 서울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서울특별시 중구·성동구 을에 출마하겠다고 했지만 이혜훈에 밀려 공천 탈락했다.[26]
종합하면, 현재는 딱히 특정 계파를 언급하기는 애매한 정치인으로 볼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하태경/논란 문서 참고하십시오.
- 국민의당 제보 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제19대 대통령 선거 내내 문준용 불법취업 특혜의혹에 대하여 비판을 받았다. 본인은 결정적인 증거가 있다고 언급하였으나 공개적으로 밝히진 않았고 대선 이후는 여론 조작용 뻥카로 인식되고 있다. 다만 이용주처럼 이 건으로 유명해지진 않아서인지 크게 유명해지진 않은 상태이다.
- 전두환의 회고록에서 5.18 민주항쟁에 대한 왜곡에 대해서 날카로운 비판을 가했다. 진정 본인이 쓴 게 맞냐고 말하면서 치매에 걸리지 않고서는 이 따위로 쓸수 없다는 말까지 하였다. 사실 하태경 본인의 이름으로 출간되었기에 꽤나 민감한 요소가 될수 있었기에 이런 면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특히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종북 논란은 말이 안 된다. 대통령이 직접 불러야 한다"고 직접 비판했다가 찍힌[32] 전력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 이와 관련하여 대중 예술인에게 예술체육요원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을 2018년부터 꾸준히 해 왔다. 실제로 정부 및 국회에서도 해당 사안을 논의해 왔지만 이 논의의 핵심이었던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2022년부터 순차적으로 병역을 이행하기로 함에 따라 이 논의는 사실상 흐지부지되었다.
- 그동안 SNS나 당 행사 등에서 큰딸에 대해서 언급을 많이 할 정도로 딸바보의 모습도 많이 보인다. 물론 위의 두 아들들에 대한 언급도 많이 하나, 특히 딸에 대한 애정을 많이 드러냈던 편이다.
- 의외로 존경하는 정치인이 정반대 스탠스에 가까운 유시민, 박지원이라고 한다. 유시민에 대해서는 대학생 시절 전설이어서 지금까지도 꼭 만나보고 싶은 분이다라고까지 밝혔는데, [37] "저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면 보수 정당으로 안 가셨을 것 같은데, 보수 정당에 간 계기는 무엇인가?"라는 유시민 전 장관의 질문에 박형준 교수의 영향도 많이 받아 현재의 스탠스를 취하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38] 특히 박지원에 대해서는 "정치계 대선배이시지만 청년층 못지 않게 소통을 하는 모습은 우리가 본받아야 한다." "통합신당에 참여하셨으면 여러모로 도와드렸을 텐데 아쉽다."는 견해까지 밝혔을 정도. 특히 만일 박지원이 통합신당에 참여했으면 본인이 박지원 키즈가 되었을 것이라며 아쉽다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 현재는 사이가 좋지 않은 편.
- 2018년 초 총선 때 보자는 발언이 실검 1순위로 올랐다. 오해를 풀자면 총선은 2020년이다.
-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정의화 전 국회의장을 부산광역시장 후보로 등판하겠다며 자신감을 내보였지만 결국 조용히 묻혔고, 그가 직접 출마한다는 썰도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이성권이 출마했다.
-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팬이다. 2020년 5월 17일 경기에서 이승헌 부상과 관련한 뉴스를 하태경의 라디오하하 페이지에서 올렸으며 롯데 팬이며 이승헌 선수의 쾌유를 빈다고 언급했다.
어디서 굴러먹던 하태경, 김종인 따위가 당으로 들어오더니날더러 극우라네. 극우란다, 극우. 극좌인 너희들 눈엔 그렇게 보이겠지. 정통 우파 미래통합당 당원들이 그냥 말랑말랑하게 보이지?민경욱 전 의원 페이스북
- 온라인 게임 던전앤파이터에서 터진 막장 사건 던전앤파이터 직원 권한 남용 논란 사건을 뉴스로 접했는지 넥슨 경영진을 불러 항의하고 철저한 조사와 피해 소비자들에 대한 대책 마련을 주문했다고 하태경의 라디오하하에서 밝혔다. 이미 검경이 수사에 들어간 사건인데 국회의원의 귀에까지 들어가고 질타를 받았다는 점에서 해당 사건은 그야말로 일파만파로 확대되는 중이다.
- 배우 정민성을 닮았다.
- 24년 1월 하태경 의원이 이용 등 친윤계의 '한동훈 지지 철회' 글에 대해 "이간질 당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자중할 것을 요청했다. 이는 당 내 분열을 막기 위한 조치로 해석되고 있다.
- 하태경 의원이 2020 도쿄올림픽 양궁 선수 안산의 장비가 일제라는 이유로 매국노 논란이 일자 이에 대응하여 "정치적 이슈로 부각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4031872317
- 1993~94년 (사)통일맞이 연구원
- 1996~97년 부산통역번역협회 회장
- 1998년 미국 미시건 주립대 객원 연구원
- 2001~05년 SK텔레콤 동북아협력팀, 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 2005년 미국 워싱턴 국제민주주의연구소(International Forum for Democratic Studies) 객원연구원
- 2005~2012 열린북한방송 대표
- 2009~2012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2012~2014 새누리당 북한인권 및 탈북자 납북자 위원장
- 2014~2016 부산시당 대변인
- 2014~2016 새누리당 정책위 정보정책 조정위원회 부위원장
- 2024~ 제19대 보험연수원장
- 민주주의는 국경이 없다』 (2011년, 글통)
- 『만화 김정은』 (2011년, 시대정신)
- 대한민국 인권상 수상(2011년, 국가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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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운대구 갑 선거구의 제20대 국회의원이다. 사실 현재의 해운대구 갑은 舊 해운대-기장 을에서 기장군을 분리시키면서 舊 해운대 갑에서 일부 지역을 받아오면서 생긴 지역구이다. 舊 해운대-기장 갑에 속했던 지역구 대부분은 해운대구 을로 재편되었고 일부 지역만이 해운대구 갑으로 넘어가게 되었다.[2] 해운대구 을 선거구의 제20대 국회의원이다.[3]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 판결 나기 전에 의원직을 사퇴하였다.[4] 기장군 선거구의 제20대 국회의원이다.[5] 해운대구·기장군 갑 선거구의 제19대 국회의원이다.[6] 해운대구·기장군 을 선거구의 제19대 국회의원이다.[7] 국회에서는 한자로 이름 표기를 하고 있다. "한자는 원래 동아시아 공용어였다"며 "공동체에서 역사의 기억을 같이 한다는 게 중요한데, 우리 세대에서 한자 사용을 중단한다면 그 기억의 흐름이 단절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같은 당의 김세연 전 의원도 비슷한 이유로 국회에서 이름을 한자로 표기했다.[8] 조기입학으로 1974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9] 現 부산광역시 동구[10] 배우자인 김숙영 을지대학교 교수가 대전광역시에 직장이 있다보니 대전광역시에서 출퇴근하기도 한다. 제20대 대통령 선거 경선 기간에 KBS 시사직격에서 국민의힘 경선 후보들을 인터뷰할 때도 대전광역시에서 출근하는 장면이 나왔다. 해당 영상 29분 26초부터[11] 2016년 5월 3일 사망하였다.[12] 2023년 2월 9일 사망하였다.[13] 장남은 2002년생이라고 한다. 이 때문에 하태경 전 의원이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14] 국제협력 전공[15] 석사 학위 논문: Regionalism, open regionalism and GATT article XXIV (1999)[16] 중국 대학이지만 방학기간에만 수업을 듣고 한국어로 강의가 진행되는 박사과정 이라고 한다. 박사 학위 논문: Research on Northeast Asia IT Community Strategy (2004)[17] 1989년 10월 12일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1992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음. 1992년 2월 28일 수형으로 인해 소집면제 판정을 받았다. 완전 면제인 6급(병적 영구제명)은 징역 6년부터 적용된다.[18] 이 사이트에서 신자 당선인으로 표시되어 있다.출처.[19] 전체 정당으로 봤을때 한 국회 대수에서 최고위원을 두번 역임한 경험이 있는 유일한 인물.[20] 의외로 국민의힘에서 같은 커리어를 가진 의원들이 몇 명 있는데 이종철, 이학재가 있다. 이학재는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했었던 환경운동가 출신이며 심지어 이종철은 북한 인권운동을 했던 사람이다. 민주화운동권까지 포함하면 그 범주는 훨씬 넓어진다.[21] 다만, 초선 당시에도 친박에 속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초선 당시에는 김무성과 가까워 친무 쪽이었다고 볼 수 있다. 김무성이 다선 국회의원이 된 직후에는 같은 당의 후배 초선 의원을 반갑게 대하며 잘 챙겨주려고 하는 성격을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 잘 알려져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하태경이 초선 당시 김무성과 가깝게 지냈다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22] 다만 상술했다시피 하태경은 김진태와는 달리 친박이 아니었고 김무성계로 분류됐다.[23] 18세로 낮추는 것은 바른미래당 내에서 이견이 없다. 다만 하태경 의원은 아예 16세로 낮추어, 고등학생부터 투표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24] 제20대 대통령 선거 국민의힘 후보 경선에서 2차 컷오프 후 윤석열 지지 선언을 했다.[25] 친윤 소장파로 분류되는 김은혜는 홍준표에 대해 어느정도는 협조적인 편이지만 하태경은 윤핵관, 친윤 강경파 뺨치는 정도로 홍준표에 대해 비협조적이다.[26] 지상욱 전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다.[27] 뉴라이트의 사상적 뿌리인 안병직은 원래 마르크스와 마오쩌둥 연구자였기에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하다.[28] 실제로 해운대구는 선거구가 갑과 을로 나눠지는데, 이 중 대중적으로 알려진 해운대의 이미지인 해운대 해수욕장,센텀시티등은 해운대구 갑(중동, 우동, 좌동)에 있다. 반면 윤준호 의원이 있는 해운대구 을(재송동, 반여동, 반송동)의 이미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해운대구의 이미지와 다르다, 굳이 어떤지 알고 싶다면 직접 가보거나, 아니면 재송동 출신의 정은지가 부른 하늘바라기 뮤비를 보면 된다.[29] 같은당 내에서는 유승민, 지상욱, 이언주, 김수민 등도 마이너 갤러리가 있다.[30] 국회 출석 당시 총리 권한으로 출석했기 때문에 총리로 작성한다.[31] 사실 하태경에게는 그런 문자폭탄이 어느 정도 전화위복이 된 면이 있기도 했기 때문이다.[32] 실제로 청와대에서 자제하라고 내려왔었다고 한다.[33] 예를 들어 남북정상회담을 위장평화쇼라고 발언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이 되어서 지금은 맞는 말로 재평가받고 있다.[34] 상술했다시피, 친윤 소장파로 분류되는 김은혜는 홍준표에 대해 어느정도는 협조적인 편이지만 하태경은 윤핵관, 친윤 강경파 뺨치는 정도로 홍준표에 대해 비협조적이다.[35] 더불어민주당뿐만 아니라, 국민의당, 바른정당의 당론이기도 하다. 다만 초창기 바른정당에서는 기존 보수파의 반발 때문에 애매한 스탠스를 취했었는데, 지금 그 보수파가 나가면서 그들의 눈치를 보지 않게 되었다.[36] 권오을은 현행 25세에서 피선거권을 인하하자는 제안을 한 상태다.[37] 실제 나중에 썰전에서 직접 유시민을 만나게 된다.[38] 여담으로 박형준도 하태경처럼 운동권에서 보수로 넘어간 계통으로 특히 운동권 내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손꼽히는 이론가 이기도 했다.[39] 다른 청문회 스타로는 김성태, 장제원, 황영철, 권성동이다. 다 2017년이 지나가기 전에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40] 반면, 하태경은 혜화역 시위를 지지한 바가 있다. 자세한 것은 하태경/논란 문서에 나온다.[41] 운동권 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하태경은 86학번으로 대학에 들어간 후 민주화 운동 끝물에 학생운동을 처음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기는 민주화 이후이다. 감옥에 갔다 온 이유도 민주화 이후에 NL의 기수로서 이적단체인 범청학련 결성때문이었다. 다만, 그 당시 군사독재의 후신인 노태우가 대통령에 앉아있어서 NL의 반미, 반독재 불길이 아직 남아있던 걸 감안하면 본인은 NL 주사파의 활동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믿었을 가능성은 있다. 즉, 전향을 하긴 했지만 그 시절의 사상과 활동을 부정하지는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 참고로, 이러한 추측은 NL시절의 과거와 전향 이후의 행적에 대한 하태경의 태도와도 일맥상통한다.[42]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탈당[43] 국민의당과 신설 합당[44] 당내 노선 차이로 인한 탈당[45] 자유한국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46] 2016.12.27. 새누리당 탈당.
2017.1.24. 바른정당 창당.
2018.2.13. 바른미래당 창당. (신설 합당)
2020.1.3. 바른미래당 탈당.
2020.1.5. 새로운보수당 창당.
2020.2.17. 미래통합당 신설 합당.
2017.1.24. 바른정당 창당.
2018.2.13. 바른미래당 창당. (신설 합당)
2020.1.3. 바른미래당 탈당.
2020.1.5. 새로운보수당 창당.
2020.2.17. 미래통합당 신설 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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