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폐교가 나오는 주원인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이촌향도로 인해 촌락 지역의 학교들이 폐교되는 경우가 많았고, 도시에서도 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인해 구도심 지역에 있는 학교들이 폐교되는 경우가 생겼고, 저출산이 극심해지면서 앞으로도 폐교 절차를 밟게 될 학교가 늘어날 전망이다.
농어촌 인구가 한창 절정에 달했을때인 1960년대에는 촌락에도 학생 수가 많았기 때문에 하나의 읍이나 면 내에 국민학교(초등학교)가 2~3개 이상씩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1960년대 후반부터 도시로 떠나는 인원이 농촌의 인구증가율을 추월하면서 많은 학교들이 폐교되었다. 2018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가 아예 없는 읍면이 23개, 초등학교 단 1개만 있는 경우도 192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왔다.[1] 아직까지 잔존하고 있는 촌락 지역 학교들도 상당수가 광역통학구역으로 설정되어 인근 도시 지역 학생들을 끌어오는 형태로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형태라 정작 소재지에 거주하는 학생은 별로 없는 경우가 많고, 매년 학교들이 학생들을 한 명이라도 끌어들이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서라도 치열한 유치전을 펼치고 있어 해당 학교의 교사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2]
신도심 조성과 주거환경 변화 등의 여파로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구도심 지역에서도 폐교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3]
전라남도교육청에서는 신입생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2012년부터 거점고등학교 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많은 고등학교가 통폐합 절차를 밟았다.
경상북도교육청에서는 고등학교에 입학생이 없거나 심각한 미달, 일정 학생수를 채우지 못하여 학급 편성이 불가능하거나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될 경우 그 다음 해부터 바로 모집 정지를 하여 마지막 입학생이 졸업할 때 폐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2017년의 경우 4곳의 고등학교가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여 문을 닫았다.
학생이 주로 유입되는 시설의 인원 감소로 사라진 경우도 있다. 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에 소재했던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등학교는 2018년 3월 1일부로 폐교되었는데, 이 학교는 학교 특성상 부산 소년의 집에서 운영하는 가톨릭계 미션스쿨이었으며 일반 학생[4]들의 유입은 거의 없었고 부모가 없는 위탁청소년들이 주로 다녔으나, 소년의 집 아동 수가 줄어듦에 따라 자연스레 학생 정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재단에 속한 서울의 알로이시오초등학교와 알로이시오중학교 역시 같은 이유로 폐교됐으며 부산의 경우 알로이시오중학교가 2016년 3월 1일자로 이미 폐교되었다.[5]
대학교 역시 지금도 전체 대학교 입학정원이 학생 수보다 더 많은 추세이고 입학할 학생 수는 계속 줄어들 것이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2040년에는 대학의 절반 이상이 폐교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6]
농어촌 인구가 한창 절정에 달했을때인 1960년대에는 촌락에도 학생 수가 많았기 때문에 하나의 읍이나 면 내에 국민학교(초등학교)가 2~3개 이상씩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1960년대 후반부터 도시로 떠나는 인원이 농촌의 인구증가율을 추월하면서 많은 학교들이 폐교되었다. 2018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학교가 아예 없는 읍면이 23개, 초등학교 단 1개만 있는 경우도 192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왔다.[1] 아직까지 잔존하고 있는 촌락 지역 학교들도 상당수가 광역통학구역으로 설정되어 인근 도시 지역 학생들을 끌어오는 형태로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형태라 정작 소재지에 거주하는 학생은 별로 없는 경우가 많고, 매년 학교들이 학생들을 한 명이라도 끌어들이기 위해 막대한 돈을 들여서라도 치열한 유치전을 펼치고 있어 해당 학교의 교사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2]
신도심 조성과 주거환경 변화 등의 여파로 학령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구도심 지역에서도 폐교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3]
전라남도교육청에서는 신입생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 2012년부터 거점고등학교 정책을 실시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많은 고등학교가 통폐합 절차를 밟았다.
경상북도교육청에서는 고등학교에 입학생이 없거나 심각한 미달, 일정 학생수를 채우지 못하여 학급 편성이 불가능하거나 더 이상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될 경우 그 다음 해부터 바로 모집 정지를 하여 마지막 입학생이 졸업할 때 폐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2017년의 경우 4곳의 고등학교가 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여 문을 닫았다.
학생이 주로 유입되는 시설의 인원 감소로 사라진 경우도 있다. 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에 소재했던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등학교는 2018년 3월 1일부로 폐교되었는데, 이 학교는 학교 특성상 부산 소년의 집에서 운영하는 가톨릭계 미션스쿨이었으며 일반 학생[4]들의 유입은 거의 없었고 부모가 없는 위탁청소년들이 주로 다녔으나, 소년의 집 아동 수가 줄어듦에 따라 자연스레 학생 정원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재단에 속한 서울의 알로이시오초등학교와 알로이시오중학교 역시 같은 이유로 폐교됐으며 부산의 경우 알로이시오중학교가 2016년 3월 1일자로 이미 폐교되었다.[5]
대학교 역시 지금도 전체 대학교 입학정원이 학생 수보다 더 많은 추세이고 입학할 학생 수는 계속 줄어들 것이 기정사실이기 때문에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 2040년에는 대학의 절반 이상이 폐교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6]
2020년경에는 동구 좌천동 소재 금성고등학교의 형제 학교인 금성중학교가 폐교되었다. 금성고등학교와 같은 재단의 이 학교는 금성고등학교의 건물 면적과 시설이 협소하여 불편함이 많았다.[8] 굳이 폐교시키지 않고 학교를 명지국제신도시나 일광신도시 등의 다른 곳으로 이전시킬 수도 있었으나 재단에서 폐교를 결정하였다고 한다.
금성중학교 폐교와 같이 해운대구 반송동 소재 반송중학교가 운송중학교와 통합이 이루어졌다. 기존 반송중학교 건물은 1970년대에 준공하여 너무 노후화되었으며 오래된 주택가 인근에 학교가 위치해있어 교육환경도 별로 좋지 못하였고 부지도 협소하여 2015년도부터 운송중학교와 통합 논의가 진행된 바가 있다. 결국 통합이 확정되어 1990년대에 지어진 비교적 신식 건물인 운송중학교 건물을 사용하며 교명은 반송중학교의 교명을 사용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금성중학교 폐교와 같이 해운대구 반송동 소재 반송중학교가 운송중학교와 통합이 이루어졌다. 기존 반송중학교 건물은 1970년대에 준공하여 너무 노후화되었으며 오래된 주택가 인근에 학교가 위치해있어 교육환경도 별로 좋지 못하였고 부지도 협소하여 2015년도부터 운송중학교와 통합 논의가 진행된 바가 있다. 결국 통합이 확정되어 1990년대에 지어진 비교적 신식 건물인 운송중학교 건물을 사용하며 교명은 반송중학교의 교명을 사용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실업계 고등학교의 경우 1960년대,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인문계 고등학교에 비해 그렇게 위상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고등학교는커녕 중학교 문턱조차 밟지 못하던 청소년도 적지 않았고,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중등교육이 대중화되었지만 대학진학률은 20%안팍에 머물렀으며 1990년대 초반까지도 대학진학률은 30%대 가량의 수준이었다. 즉, 대학의 문턱이 비용상의 이유나 합격률이 낮았던 연유로 인해 높았고, 3D산업은 성행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빨리 먹고살 기술을 배울수있던 실업계 학교의 인기가 많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대졸자 우대 풍조가 사회 전만에 만연해지면서 서서히 쇠락하게 된다.
특히 산업화와 이농 현상에 따른 농업계 고등학교의 쇠락이 심하여, 많은 농업계 고등학교들이 문을 닫거나 종합 고등학교로 전환되었다. 대표적으로 전라북도 이리시(현 익산시)에 소재했던 이리농림고등학교는 한때 지역 내에서 명문으로 인정받았던 학교였지만, 농업계 기피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1993년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폐교하였다.[11][12] 폐교된 농업계 고등학교의 역할은 학력 인플레이션에 의해 사실상 전문대학이나 대학의 농업 관련 학과로 넘어가게 된다.
또한 실업계 기피 등의 이유로 멀쩡한 학교를 폐지시키려는 시도도 있었으니, 유명한 것이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현 서울방송고등학교) 폐교 시도 사건###이다. 이 학교는 도심공동화 현상과도 관련 없고 잘 굴러가던 학교였다. 인근에 5천 세대 규모의 모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일정 세대 이상의 아파트를 지을 때는 건설사가 초등학교 부지를 마련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꼼수를 써서 초등학교 없이 5천세대가 입주하였다. 이후 이 아파트 주민들은 초등학교도 없겠다, 옆에 원래부터 있던 실업계 고등학교도 마음에 안 들겠다 싶어서 서울특별시교육청에 집단 민원을 넣어서 해당학교를 용산구 구 수도여자고등학교 부지로 쫓아내려 했지만 역시나 용산구민들이 반발하고, 이후에 강서구나 마포구로 쫓아내려 했지만 역시나 그곳에서도 반발하면서, 그냥 폐교 인가를 내버리고 그 자리에 초등학교를 지으려고 했는데 문제는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그것을 수용했다. 결국 이 문제가 사회문제로 커지자 폐교 계획을 백지화하고 해당학교의 운동장만 뺏어서 그 자리에 초등학교를 짓는 선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정작 초등학교가 지어졌지만, 주민들은 인근 사립초등학교에만 학생들을 보내는지, 해당학교의 규모는 시골학교 수준인 학년당 2~4학급밖에 안 된다. 여튼 멀쩡하고 학생들 넘치는 학교도 폐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특히 산업화와 이농 현상에 따른 농업계 고등학교의 쇠락이 심하여, 많은 농업계 고등학교들이 문을 닫거나 종합 고등학교로 전환되었다. 대표적으로 전라북도 이리시(현 익산시)에 소재했던 이리농림고등학교는 한때 지역 내에서 명문으로 인정받았던 학교였지만, 농업계 기피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1993년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폐교하였다.[11][12] 폐교된 농업계 고등학교의 역할은 학력 인플레이션에 의해 사실상 전문대학이나 대학의 농업 관련 학과로 넘어가게 된다.
또한 실업계 기피 등의 이유로 멀쩡한 학교를 폐지시키려는 시도도 있었으니, 유명한 것이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현 서울방송고등학교) 폐교 시도 사건###이다. 이 학교는 도심공동화 현상과도 관련 없고 잘 굴러가던 학교였다. 인근에 5천 세대 규모의 모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일정 세대 이상의 아파트를 지을 때는 건설사가 초등학교 부지를 마련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 꼼수를 써서 초등학교 없이 5천세대가 입주하였다. 이후 이 아파트 주민들은 초등학교도 없겠다, 옆에 원래부터 있던 실업계 고등학교도 마음에 안 들겠다 싶어서 서울특별시교육청에 집단 민원을 넣어서 해당학교를 용산구 구 수도여자고등학교 부지로 쫓아내려 했지만 역시나 용산구민들이 반발하고, 이후에 강서구나 마포구로 쫓아내려 했지만 역시나 그곳에서도 반발하면서, 그냥 폐교 인가를 내버리고 그 자리에 초등학교를 지으려고 했는데 문제는 서울특별시교육청에서 그것을 수용했다. 결국 이 문제가 사회문제로 커지자 폐교 계획을 백지화하고 해당학교의 운동장만 뺏어서 그 자리에 초등학교를 짓는 선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정작 초등학교가 지어졌지만, 주민들은 인근 사립초등학교에만 학생들을 보내는지, 해당학교의 규모는 시골학교 수준인 학년당 2~4학급밖에 안 된다. 여튼 멀쩡하고 학생들 넘치는 학교도 폐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무즙 파동과 창칼 파동의 여파로 1968년 전국의 중학교 평준화 방안이 마련되었고, 이에 따라 1971년 신입생(1958년생)부터 전국의 중학교 입학시험이 폐지되었다. 동시에 전국의 명문 중학교들을 폐교하거나 개명하여 과열된 입시의 흔적을 지우려고 한 시도가 있다. 이 때 폐교된 학교들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지속되어 6년제 중학교였다가 3년제 고등학교와 분리된 중학교들이다. 그래서 이 때 폐교된 학교들은 짝을 이루는 명문 고등학교가 있으며, 이들 고등학교는 지금도 존속하여 폐교된 중학교의 학적도 관리하고 있다. 폐교된 중학교들은 1968년부터 신입생 모집을 중지하여 폐교하였다.
- 1971년 폐교
- 1972년 폐교
- 1973년 폐교
사립학교의 경우 모기업의 사정으로 폐교되었고, 심지어 멀쩡한 학교가 폐교된 사례도 종종 있는데, 부산광역시 금정구에 있었던 학교였던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 청주시의 대농그룹 부설 산업체 고등학교였던 양백상고(구 양백여상)와 같은 산업체 부설학교가 그러한 사례 중 하나다.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의 경우는 모기업 태광산업의 경영난과 지원자수 감소를 구실로, 태광그룹 재단에 의해 폐교하였지만, 폐교 이전에 합격자수를 조작해 인위적으로 입학생수를 줄였다는 증언이 있는 등 폐교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구석도 제법 있었고, 교직원들의 마지막 요구대로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해서 제대로 운영한다면 부산에서 학군이 좋은 구서동 주거지역 특성을 이용해 명문학교로 재탄생할 수도 있었으나, 그딴거 없이 13년만에 폐교가 확정되어 겨우 16년만에 폐교하였다. 그리고 해당 학교 부지는 폐교 이후에 태광인력개발원으로 활용 중이고 태광그룹 재단에서는 흑역사로 여기고 있는데, 같은 시기에 같은 재단이 운영하는 서울의 고등학교들을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하겠다고 신청한 사실을 생각하면 태광여상은 충분히 살릴수 있었던 멀쩡한 학교가 재단에 의해 방치되다가 구성원들의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폐교된 꼴이었다.
이후에 부산교육청이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의 부지와 시설을 매입하여 공립 중학교(가칭 구서중학교)로 부활시키려 했지만 이마저도 부지 매입 협상이 결렬되면서 무산되었다.[15]
청주 양백상고는 대농그룹[16]이 IMF 구제금융 체제를 전후해 무너진 가운데에서도 계속 운영했지만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폐교하고 말았고 이쪽은 대농지구 재개발로 인하여 건물도 철거되어서 흔적이 남아있지 않지만 태광여상의 경우와는 달리 그 자리에 솔밭초등학교가 신설되었다.
재단에서 아파트를 짓기 위해 학생수도 1,400명 이상을 자랑할 정도로 꽤나 많고 학교 입장에서는 그런대로 잘 돌아가던 멀쩡한 사립학교를 폐교한 예가 있는데, 도심지인 부산시 연제구 연산4동에 존재했던 브니엘중학교가 그러한 예이다.
간혹 비리로 인해 학교가 폐교 조치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었던 예인음악예술고등학교로, 2007년에 운영부실및 비리가 대대적으로 발각되면서 궁지에 몰리게 되자 더 이상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해지면서 개교한지 고작 7년만에 자진해서 폐교하였고, 이쪽은 예술계열의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중에서는 처음으로 폐교가 발생한 사례가 되어버렸다.
또 다른 예로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었던 정의여자중고등학교가 있으며, 2000년에 재단에서 교사 4명을 같은 재단에 속한 섬 지역 중학교로 발령한 것이 화근이 되어 소요 사태가 벌어졌고, 이로 인한 학생 수 지원 감소로 인하여 최종적으로 2001년 중학교, 2004년 고등학교가 폐교되었다. 문제의 섬 지역 학교는 인구 감소까지 겹치면서 더 2010년대까지 존속하다가 폐교되었다.
그 외에 부산광역시 남구에 있었던 배정중학교도 재단의 경영난 및 건물의 노후화로 인한 안전문제에다가, 1970년대 국유지 강제 환수로 인하여 국유지를 침범하는데다가 국유지 사용료 체납 문제가 겹치고, 결정적으로 부산진구 개금동 예비군훈련장 근처로 이전하려던 계획마저도 완전히 무산되는 바람에 2000년과 2004년에 재단에서 폐교를 계속 시도하다가 학부모들과 동문들의 반발로 교육청에서 폐교가 불승인되면서 폐교를 보류하고 연명중인 상태였는데# ##, 2010년에 재단의 비리가 발각된 것을 계기로 결국 재단에서 배정중학교의 연명을 자진해서 포기하고 2012년에 최종 폐교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배정중학교의 폐교는 상당히 논란이 있는 사안인데, 시설이나 국유지 체납 문제가 있기는 했어도 폐교 당시 학생수가 600명대로 그런대로 돌아가던 학교였고 부산시내에서 교사 채용 비리로 폐교까지 간 사례도 전무한데도 불구하고, 배정중학교가 폐교된 것은 해당학교 재단과 부산시 교육청이 짜고 해당 학교 재단 비리에 대한 관선이사 파견이라는 사립학교가 받을 수 있는 최악의 징계를 회피하기 위해 꼬리 자르기식 폐교로 사건을 최대한 덮어버렸다는 설이 정설이다. 어차피 재단 산하에 학교도 여러개 있어서 필요없는 학교 하나 날려봤자 재단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도 없고 그저 애꿎은 교사들만 학교에서 쫓겨날뿐... 결정적으로 배정재단은 이전부터 배정중학교를 계속 폐교하고 싶어했으나, 폐교 승인이 나지 않아서 그냥 억지로 떠안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는 사실 교육청이 배정재단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면서 사학비리를 척결 하는 것 처럼 보이게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한 것이었다. 오히려 배정중학교의 폐교 과정을 보면 부산시 교육청이 재단의 편의를 정말로 잘 봐줬다는 사실이 여실없이 드러났었는데, 부정채용된 14명을 제외한 과원교사 전원을 공립학교로 특채 했으며 설립자의 아들이었던 배정중학교 교장은 배정중학교가 폐교되면서 배정고등학교로 무난하게 갈아타버렸다. 폐교된 배정중학교 부지와 시설은 재단으로 회수 되면서 결국 재단은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배정학원 재단은 배정중학교를 폐교하는 댓가로 학교 통폐합 인센티브 57억을 받았었다고 한다. #
특이한 경우로 1960~70년대에 군사정권 시절 당시 토지 매입 절차상의 문제로 난데없이 국유지로 강제로 환수당하는 바람에 폐교되는 사립 학교도 종종 있는데, 위의 배정중학교 말고도 1980년에 최종 폐교된 부산진구 서면의 북부산고등학교가 그 예이다. 당초에는 같은 학교법인의 북부산중학교와 같은 건물을 공유하여 사용하였는데, 1974년부터 고교 평준화가 시행되었지만 북부산중학교와 건물을 같이 쓰면서 교실을 빌려쓰는 형태로 얹혀살이를 하면서 교육여건이 협소하던 북부산고등학교는 고등학교 평준화 대상으로써의 여건을 만족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새로 고등학교 건물을 따로 짓자니 국유지 문제도 있고 해서 새로 건물을 지을수도 없는 골룸한 상황이 되자 결국 학생을 배정받을 수 없게된 북부산고등학교를 폐교하고 북부산중학교만 존치시켰다. 북부산중학교는 서면중학교로 개칭하여 현재까지도 남아있지만 이쪽도 앞서 말한대로 학교 부지가 국유지로 강제로 환수당한 일로 인하여 북부산중학교의 후신인 서면중학교 역시도 현재로서는 한국철도공사 소유 부지를 무단 점거하고 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코레일과 종종 마찰을 빚고 있다.#[17]
사립중고등학교의 경우 재단이 갈리고 교사진도 완전히 갈리고 학교 이름까지 바뀌어서 사실상 폐교나 다름 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폐교되는 경우는 단 1명도 예전 학교 관련자가 학교에 남아 있지 않는다. 21세기 들어가면서 경기도의 고교비평준화 정책이 철회되자 시설과 교사진이 미비한 학교는 아예 신입생이 안 들어갔다.[18][19] 이런 학교의 올드보이들은 사실 학교가 없어진 것과 다름 없기 때문에 학적 증명을 떼려면 해당 지역의 교육청으로 찾아가야 한다. 생활기록부는 불가능한데 학교의 운영주체가 바뀌면서 폐기해버리거나, 창고에 곰팡이가 쓸든 말든 처박아 두고 잊기 때문이다.
일부 사립학교(특히 전수학교)의 경우는 과원교사들을 처리하기 위해 겉으로는 학교 개편이라고 하면서 뒤로는 서류상으로 학교를 폐교 처리하기도 하는데, 사립학교가 폐교되면 교사들이 교육청에 의해 공립학교 교원으로 특별 채용되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그걸 이용한 것. 과원 교사들을 학교 재단에서 마구잡이로 짜를 수가 없다보니, 이런 꼼수를 쓴다는 것이다. 그런 학교들은 교육청에 학교 폐교를 신청하자 마자 바로 이어서 신설학교 설립 인가를 제출해서 실상은 기존의 폐교신청된 학교의 건물을, 바로 이어서 설립인가를 제출한 신설학교가 이어쓰게 되는데 이렇게 하면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겉으로는 폐교가 아닌 개편 전환같아 보이지만, 법적으로는 폐교된 학교가 되기 때문에 엄연히 폐교 사례에 집계가 되고 그렇게 신설된 신설학교의 경우도 개교기념일이나 설립인가일은 아예 새로 부여받게 된다. 특히 학교총량제를 시행하는 지역에서는 이 방법이 아예 불가능하다.
그 외에 답이 없는 꼴통 사립 학교들의 경우도 재단과 마찰이 있는 교사들을 털어냄과 동시에 학교의 좋지 못한 이미지와 역사를 세탁시키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서류상으로 폐교후 재개교 라는 방법을 쓰는 사례도 제법 있다. 물론 이렇게 폐교되는 경우에도 일부 과원교사들은 교육청에 의해 공립학교로 특별 채용 되기도 하지만, 특별 채용 되지 못한 경우는 학원가로 흘러가는 경우도 있고, 원래 재직했던 학교 이미지가 너무 나빠 낙인이 찍혀서 학원가로도 가지 못하고 결국은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홍하가 구속 수감되어 이홍하 소유의 학교법인인 홍복학원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치닫게 되어 현재 폐교 위기에 몰린 고등학교가 몇 있는데 그 학교들이 바로 광주광역시에 소재한 대광여자고등학교, 서진여자고등학교와 나주시에 소재한 광남고등학교가 있다. 이미 광남고등학교 이외의 두 고등학교에는 관선이사가 파견되었다.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의 경우는 모기업 태광산업의 경영난과 지원자수 감소를 구실로, 태광그룹 재단에 의해 폐교하였지만, 폐교 이전에 합격자수를 조작해 인위적으로 입학생수를 줄였다는 증언이 있는 등 폐교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구석도 제법 있었고, 교직원들의 마지막 요구대로 일반계 고등학교로 전환해서 제대로 운영한다면 부산에서 학군이 좋은 구서동 주거지역 특성을 이용해 명문학교로 재탄생할 수도 있었으나, 그딴거 없이 13년만에 폐교가 확정되어 겨우 16년만에 폐교하였다. 그리고 해당 학교 부지는 폐교 이후에 태광인력개발원으로 활용 중이고 태광그룹 재단에서는 흑역사로 여기고 있는데, 같은 시기에 같은 재단이 운영하는 서울의 고등학교들을 자립형 사립고로 전환하겠다고 신청한 사실을 생각하면 태광여상은 충분히 살릴수 있었던 멀쩡한 학교가 재단에 의해 방치되다가 구성원들의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폐교된 꼴이었다.
이후에 부산교육청이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의 부지와 시설을 매입하여 공립 중학교(가칭 구서중학교)로 부활시키려 했지만 이마저도 부지 매입 협상이 결렬되면서 무산되었다.[15]
청주 양백상고는 대농그룹[16]이 IMF 구제금융 체제를 전후해 무너진 가운데에서도 계속 운영했지만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폐교하고 말았고 이쪽은 대농지구 재개발로 인하여 건물도 철거되어서 흔적이 남아있지 않지만 태광여상의 경우와는 달리 그 자리에 솔밭초등학교가 신설되었다.
재단에서 아파트를 짓기 위해 학생수도 1,400명 이상을 자랑할 정도로 꽤나 많고 학교 입장에서는 그런대로 잘 돌아가던 멀쩡한 사립학교를 폐교한 예가 있는데, 도심지인 부산시 연제구 연산4동에 존재했던 브니엘중학교가 그러한 예이다.
간혹 비리로 인해 학교가 폐교 조치된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전라북도 익산시에 있었던 예인음악예술고등학교로, 2007년에 운영부실및 비리가 대대적으로 발각되면서 궁지에 몰리게 되자 더 이상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해지면서 개교한지 고작 7년만에 자진해서 폐교하였고, 이쪽은 예술계열의 자립형 사립고등학교 중에서는 처음으로 폐교가 발생한 사례가 되어버렸다.
또 다른 예로 충청남도 서천군에 있었던 정의여자중고등학교가 있으며, 2000년에 재단에서 교사 4명을 같은 재단에 속한 섬 지역 중학교로 발령한 것이 화근이 되어 소요 사태가 벌어졌고, 이로 인한 학생 수 지원 감소로 인하여 최종적으로 2001년 중학교, 2004년 고등학교가 폐교되었다. 문제의 섬 지역 학교는 인구 감소까지 겹치면서 더 2010년대까지 존속하다가 폐교되었다.
그 외에 부산광역시 남구에 있었던 배정중학교도 재단의 경영난 및 건물의 노후화로 인한 안전문제에다가, 1970년대 국유지 강제 환수로 인하여 국유지를 침범하는데다가 국유지 사용료 체납 문제가 겹치고, 결정적으로 부산진구 개금동 예비군훈련장 근처로 이전하려던 계획마저도 완전히 무산되는 바람에 2000년과 2004년에 재단에서 폐교를 계속 시도하다가 학부모들과 동문들의 반발로 교육청에서 폐교가 불승인되면서 폐교를 보류하고 연명중인 상태였는데# ##, 2010년에 재단의 비리가 발각된 것을 계기로 결국 재단에서 배정중학교의 연명을 자진해서 포기하고 2012년에 최종 폐교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배정중학교의 폐교는 상당히 논란이 있는 사안인데, 시설이나 국유지 체납 문제가 있기는 했어도 폐교 당시 학생수가 600명대로 그런대로 돌아가던 학교였고 부산시내에서 교사 채용 비리로 폐교까지 간 사례도 전무한데도 불구하고, 배정중학교가 폐교된 것은 해당학교 재단과 부산시 교육청이 짜고 해당 학교 재단 비리에 대한 관선이사 파견이라는 사립학교가 받을 수 있는 최악의 징계를 회피하기 위해 꼬리 자르기식 폐교로 사건을 최대한 덮어버렸다는 설이 정설이다. 어차피 재단 산하에 학교도 여러개 있어서 필요없는 학교 하나 날려봤자 재단 입장에서는 손해볼 것도 없고 그저 애꿎은 교사들만 학교에서 쫓겨날뿐... 결정적으로 배정재단은 이전부터 배정중학교를 계속 폐교하고 싶어했으나, 폐교 승인이 나지 않아서 그냥 억지로 떠안고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는 사실 교육청이 배정재단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면서 사학비리를 척결 하는 것 처럼 보이게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한 것이었다. 오히려 배정중학교의 폐교 과정을 보면 부산시 교육청이 재단의 편의를 정말로 잘 봐줬다는 사실이 여실없이 드러났었는데, 부정채용된 14명을 제외한 과원교사 전원을 공립학교로 특채 했으며 설립자의 아들이었던 배정중학교 교장은 배정중학교가 폐교되면서 배정고등학교로 무난하게 갈아타버렸다. 폐교된 배정중학교 부지와 시설은 재단으로 회수 되면서 결국 재단은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 결정적으로 배정학원 재단은 배정중학교를 폐교하는 댓가로 학교 통폐합 인센티브 57억을 받았었다고 한다. #
특이한 경우로 1960~70년대에 군사정권 시절 당시 토지 매입 절차상의 문제로 난데없이 국유지로 강제로 환수당하는 바람에 폐교되는 사립 학교도 종종 있는데, 위의 배정중학교 말고도 1980년에 최종 폐교된 부산진구 서면의 북부산고등학교가 그 예이다. 당초에는 같은 학교법인의 북부산중학교와 같은 건물을 공유하여 사용하였는데, 1974년부터 고교 평준화가 시행되었지만 북부산중학교와 건물을 같이 쓰면서 교실을 빌려쓰는 형태로 얹혀살이를 하면서 교육여건이 협소하던 북부산고등학교는 고등학교 평준화 대상으로써의 여건을 만족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새로 고등학교 건물을 따로 짓자니 국유지 문제도 있고 해서 새로 건물을 지을수도 없는 골룸한 상황이 되자 결국 학생을 배정받을 수 없게된 북부산고등학교를 폐교하고 북부산중학교만 존치시켰다. 북부산중학교는 서면중학교로 개칭하여 현재까지도 남아있지만 이쪽도 앞서 말한대로 학교 부지가 국유지로 강제로 환수당한 일로 인하여 북부산중학교의 후신인 서면중학교 역시도 현재로서는 한국철도공사 소유 부지를 무단 점거하고 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코레일과 종종 마찰을 빚고 있다.#[17]
사립중고등학교의 경우 재단이 갈리고 교사진도 완전히 갈리고 학교 이름까지 바뀌어서 사실상 폐교나 다름 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폐교되는 경우는 단 1명도 예전 학교 관련자가 학교에 남아 있지 않는다. 21세기 들어가면서 경기도의 고교비평준화 정책이 철회되자 시설과 교사진이 미비한 학교는 아예 신입생이 안 들어갔다.[18][19] 이런 학교의 올드보이들은 사실 학교가 없어진 것과 다름 없기 때문에 학적 증명을 떼려면 해당 지역의 교육청으로 찾아가야 한다. 생활기록부는 불가능한데 학교의 운영주체가 바뀌면서 폐기해버리거나, 창고에 곰팡이가 쓸든 말든 처박아 두고 잊기 때문이다.
일부 사립학교(특히 전수학교)의 경우는 과원교사들을 처리하기 위해 겉으로는 학교 개편이라고 하면서 뒤로는 서류상으로 학교를 폐교 처리하기도 하는데, 사립학교가 폐교되면 교사들이 교육청에 의해 공립학교 교원으로 특별 채용되는 조항이 있기 때문에 그걸 이용한 것. 과원 교사들을 학교 재단에서 마구잡이로 짜를 수가 없다보니, 이런 꼼수를 쓴다는 것이다. 그런 학교들은 교육청에 학교 폐교를 신청하자 마자 바로 이어서 신설학교 설립 인가를 제출해서 실상은 기존의 폐교신청된 학교의 건물을, 바로 이어서 설립인가를 제출한 신설학교가 이어쓰게 되는데 이렇게 하면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는 겉으로는 폐교가 아닌 개편 전환같아 보이지만, 법적으로는 폐교된 학교가 되기 때문에 엄연히 폐교 사례에 집계가 되고 그렇게 신설된 신설학교의 경우도 개교기념일이나 설립인가일은 아예 새로 부여받게 된다. 특히 학교총량제를 시행하는 지역에서는 이 방법이 아예 불가능하다.
그 외에 답이 없는 꼴통 사립 학교들의 경우도 재단과 마찰이 있는 교사들을 털어냄과 동시에 학교의 좋지 못한 이미지와 역사를 세탁시키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서류상으로 폐교후 재개교 라는 방법을 쓰는 사례도 제법 있다. 물론 이렇게 폐교되는 경우에도 일부 과원교사들은 교육청에 의해 공립학교로 특별 채용 되기도 하지만, 특별 채용 되지 못한 경우는 학원가로 흘러가는 경우도 있고, 원래 재직했던 학교 이미지가 너무 나빠 낙인이 찍혀서 학원가로도 가지 못하고 결국은 다른 일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홍하가 구속 수감되어 이홍하 소유의 학교법인인 홍복학원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치닫게 되어 현재 폐교 위기에 몰린 고등학교가 몇 있는데 그 학교들이 바로 광주광역시에 소재한 대광여자고등학교, 서진여자고등학교와 나주시에 소재한 광남고등학교가 있다. 이미 광남고등학교 이외의 두 고등학교에는 관선이사가 파견되었다.
간혹 학교를 새로 지으려니 공사시간과 부지 확보 문제가 걸리는데다 일반계 및 특성화고등학교 개교로 인하여 중학교를 없애버리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서울특별시 동대문구에 있었던 해성여중이나, 고양시에 있었던 고양여중, 과천시에 있는 과천여중, 부산광역시 영도구에 있었던 대양중학교, 사상구에 있었던 사상중학교 등. 해성여중과 사상중학교의 경우는 주변에 중학교는 남아도는데 고등학교는 매우 부족하다보니(둘 다 근방에 남고와 여고가 없었다.) 해성여중을 폐교하고 그 자리에 혜성여고를 만들거나 사상중학교를 폐교하고 그 자리에 사상고등학교를 만들었으며, 고양여중은 기피학교로 폐교 직전 당시 전교생 41명에 신입생이 8명에 불과한 유령화 되어가는 상황이라 폐교될 수 밖에 없었고 폐교와 동시에 고양예고가 신설되었다. 또한 과천여중은 과천외고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폐교되었고, 대양중학교의 경우 당시 학생수는 1000명을 충분히 넘겨서 폐교를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지어질 당시부터 부지가 비좁아 운동장이 거의 없는 등 시설이 좋지 못한데다가 바로 옆에 부산남중학교가 위치하여 서로 중복되는 문제도 있고, 장기적으로 영도구 학령인구 급감이 예상되어 폐교되었다.[20]
학생수는 적은데 학교가 많이 몰려 있어 특정 지역으로 편중되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 멀쩡한 학교가 폐교되는 경우도 있다. 그 예로 대전광역시 중구에 있었던 중앙여자중학교와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있었던 감삼중학교와 대구남중학교가 있다. 실제로 이들 학교 근방에 상서중학교, 경암중학교, 원화중학교, 구남중학교, 본리중학교, 동본리중학교, 성당중학교 등 여러 중학교가 많이 몰려있었다. 이들 학교 중 본리중학교와 동본리중학교는 2016년에 새본리중학교로 통합했다.
1999년에는 1997년 외환 위기의 영향으로 인해 한해동안 무려 971곳의 학교가 대대적으로 통폐합되기도 했다. 기사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창씨개명을 거부한 학교를 폐교했다.
학생수는 적은데 학교가 많이 몰려 있어 특정 지역으로 편중되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 멀쩡한 학교가 폐교되는 경우도 있다. 그 예로 대전광역시 중구에 있었던 중앙여자중학교와 대구광역시 달서구에 있었던 감삼중학교와 대구남중학교가 있다. 실제로 이들 학교 근방에 상서중학교, 경암중학교, 원화중학교, 구남중학교, 본리중학교, 동본리중학교, 성당중학교 등 여러 중학교가 많이 몰려있었다. 이들 학교 중 본리중학교와 동본리중학교는 2016년에 새본리중학교로 통합했다.
1999년에는 1997년 외환 위기의 영향으로 인해 한해동안 무려 971곳의 학교가 대대적으로 통폐합되기도 했다. 기사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창씨개명을 거부한 학교를 폐교했다.
초/중/고의 경우 학사일정과 내신 때문에 대부분 2월에 폐교하고, 폐교 결정이 나와도 대부분 신입생부터이고 기존 재학생들은 졸업할 때 까지 다닌 후 폐교된다. 반면 대학교는 보통 8월에 폐교된다. 본래는 초/중/고와 마찬가지로 2월에 많이 폐교되었으나, 수시모집 등 신입생과 관련된 문제로 인하여 8월에 많이 폐교하는 것이며 더 중요한 이유는 대학기본역량진단의 결과에 따라 폐교할 대학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대학기본역량진단이 각 대학교에서는 공포의 평가인게 어느 대학을 폐교할지 결정하는 평가이기 때문인데 아래에서 설명하는 등급으로 여러번 선정되면 교육부에서 폐교시킨다.
가끔 초등학교/중학교가 8월에 폐교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2학기에는 인근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보낸다.
가끔 초등학교/중학교가 8월에 폐교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2학기에는 인근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서 보낸다.
건물을 바로 철거하거나 다른 용도로 활용하게 되면 문제가 없겠지만, 용도를 찾지 못해 방치한다면 비행청소년이나 노숙자나 조직폭력배 등의 습격을 받아 여기저기 더더욱 낡고 지저분해지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을씨년스러운 폐교의 이미지가 완성된다. 대표적인 예가 용산구 후암동의 구 수도여자고등학교.[21] 학교가 2000년에 학교가 동작구 신대방동으로 이전한 후 구 수도여자고등학교 부지는 당초에는 쫓겨나게 될 처지의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를 이 곳으로 이전시키려 했지만, # 용산구민들이 크게 반발하면서 결국 무산되었고,[22], 금싸라기 땅인데도 불구하고 7년간 부지를 둘러싼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마땅한 용도를 찾지 못했으나, 다행히도 용도를 찾게 되어 2007년부터 서울시 교육시설 관리사업소로 이용됐고[23] 2014년에는 조희연 교육감 당선인 인수위원회 사무실로 쓰이기도 했으나, 서울특별시교육청 청사가 구 수도여자고등학교 부지로의 이전이 결정됐고, 2021년 현재 신축공사가 진행 중이다.
그나마 도시의 시내에 위치한 폐교는 재개발이나 재건축, 다른 공공시설의 청사용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지방, 특히 아예 인구 자체가 적은 시골의 폐교는 이러한 수요도 매우 적어 어떻게 재활용할지에 대해 난항을 겪는다. 해당 지역의 회관이나 공동 작업장, 관광용 체험 시설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며, 일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대도시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인수하여 다른 복지 시설로 사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특별시에서 전국 각 지역의 폐교 시설을 이용하여 운영하는 서울캠핑장이다.
그리고 중소기업에서 폐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사무실로 이용하기도 한다.
그나마 도시의 시내에 위치한 폐교는 재개발이나 재건축, 다른 공공시설의 청사용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지방, 특히 아예 인구 자체가 적은 시골의 폐교는 이러한 수요도 매우 적어 어떻게 재활용할지에 대해 난항을 겪는다. 해당 지역의 회관이나 공동 작업장, 관광용 체험 시설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편이며, 일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대도시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인수하여 다른 복지 시설로 사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특별시에서 전국 각 지역의 폐교 시설을 이용하여 운영하는 서울캠핑장이다.
그리고 중소기업에서 폐교 건물을 리모델링해 사무실로 이용하기도 한다.
역사와 전통이 오래된 학교이거나 학교나 동문들이 폐교에 반발하고 '학교 신설과 통폐합 연계 정책'(학교 총량제), 학교 폐지 및 신설학교 설치에 관한 절차나 비용 등이 귀찮은 경우에는 폐교 대신에 신도심에 새로 지어지는 학교 건물로 학교 자체를 이전하기도 한다.[24] 대표적인 예가 광주광역시의 전남고등학교로 광주 구도심[25]에서 상무지구로 이전하였다. 부산광역시의 부산중앙중학교도 구도심인 부산진구 전포동에 있었으나 전포동의 학생수가 감소하여 폐교 위기에 처했으나, 기장군 정관신도시에 새로 들어서는 중학교 건물로 이전시켜서 폐교를 면하고, 남녀공학으로 전환했다.
특이한 케이스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에 있던 서울수송국민학교는 1922년 개교해 1977년 2월 53회 졸업생까지 배출하다가 도심 공동화로 인해 폐교되었으나 2001년 9월 외곽지역인 강북구 번1동에 신설된 초등학교가 학교의 전통을 만든다며 구 수송국민학교의 교가 등을 복원하고 기수를 이어가서 24년 만에 서울수송초등학교로 부활하게 되었다.# [26][27]
현재 개교 128주년으로 전국에서 3번째로 긴 역사를 자랑하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신풍초등학교는, 도심 공동화[28]로 학생수도 줄어든데다가 수원 화성행궁 복원도 할 겸 학교를 폐교하고 그 자리에 화성행궁을 복원시키고자 하였으나, 동문 및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광교신도시로 이전하여 학교 이름의 명맥을 유지하려고 하였지만 등교거리 증가 및 전학갈 학교 학생들의 텃세 등을 우려한 재학생 학부모들의 반대로 결국 2013년 3월부로 본교는 광교신도시로 이전하고 신풍동 기존 교사(校舍)는 분교장의 형태로 남겨서 신입생은 더 이상 받지 않되 기존 재학생들이 졸업하는 2018년 2월까지 폐교 및 화성행궁 복원을 유예하기로 합의하였다.# 2016년 2월 29일 신풍분교장이 폐교되었다. 또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소재의 남곡초등학교의 경우 이전 사유는 조금 다르지만[29] 위의 신풍초등학교와 비슷한 방식으로 본교는 2018년에 e편한세상 용인 한숲시티 내부로 이전하였고 기존 교사는 남곡초등학교 남곡분교장으로 개편하여 기존 재학생들이 모두 졸업하는 2024년에 폐교되었다.
이 외에도 구도심 지역에 있었다가 이전한 초등학교로는 울산광역시 중구의 울산초등학교[30], 경기도 안성시의 백성초등학교[31], 충청북도 청주시의 청주중앙초등학교[32], 제천시의 동명초등학교[33], 경상북도 포항시의 포항중앙초등학교[34], 안동시의 안동영호초등학교[35],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의 학성초등학교[36] 등이 있다.
특이한 케이스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송동에 있던 서울수송국민학교는 1922년 개교해 1977년 2월 53회 졸업생까지 배출하다가 도심 공동화로 인해 폐교되었으나 2001년 9월 외곽지역인 강북구 번1동에 신설된 초등학교가 학교의 전통을 만든다며 구 수송국민학교의 교가 등을 복원하고 기수를 이어가서 24년 만에 서울수송초등학교로 부활하게 되었다.# [26][27]
현재 개교 128주년으로 전국에서 3번째로 긴 역사를 자랑하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의 신풍초등학교는, 도심 공동화[28]로 학생수도 줄어든데다가 수원 화성행궁 복원도 할 겸 학교를 폐교하고 그 자리에 화성행궁을 복원시키고자 하였으나, 동문 및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광교신도시로 이전하여 학교 이름의 명맥을 유지하려고 하였지만 등교거리 증가 및 전학갈 학교 학생들의 텃세 등을 우려한 재학생 학부모들의 반대로 결국 2013년 3월부로 본교는 광교신도시로 이전하고 신풍동 기존 교사(校舍)는 분교장의 형태로 남겨서 신입생은 더 이상 받지 않되 기존 재학생들이 졸업하는 2018년 2월까지 폐교 및 화성행궁 복원을 유예하기로 합의하였다.# 2016년 2월 29일 신풍분교장이 폐교되었다. 또한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소재의 남곡초등학교의 경우 이전 사유는 조금 다르지만[29] 위의 신풍초등학교와 비슷한 방식으로 본교는 2018년에 e편한세상 용인 한숲시티 내부로 이전하였고 기존 교사는 남곡초등학교 남곡분교장으로 개편하여 기존 재학생들이 모두 졸업하는 2024년에 폐교되었다.
이 외에도 구도심 지역에 있었다가 이전한 초등학교로는 울산광역시 중구의 울산초등학교[30], 경기도 안성시의 백성초등학교[31], 충청북도 청주시의 청주중앙초등학교[32], 제천시의 동명초등학교[33], 경상북도 포항시의 포항중앙초등학교[34], 안동시의 안동영호초등학교[35],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의 학성초등학교[3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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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난화국민학교 (1988~1996): 난향국민학교에서 분리 개교했으나 학생 수가 점점 줄면서 다시 난향국민학교와 통합하는 형식으로 폐교했다. 1997년 이 자리에 서울정문학교가 개교했다.
- 서울수송국민학교 (1922~1977, 2001 재개교): 구 교사 자리가 현 종로구청 위치에 있었으며 4.19 혁명 당시 시위에 재학생들이 참여한 것으로 유명하다. 2001년에 번동 옛 신진자동차운전학원 자리에 서울수송초등학교로 재개교하면서 역사는 이어가고 있으나 구교사의 흔적은 찾아볼수 없으니 사실상 별개의 학교다. 특이하게 현 학교가 졸업기수를 계승하고 있다.
- 서울신설국민학교 (1962~1977)
- 서울염강초등학교 (1994~2020):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2020년 1월 19일 25회 졸업식 이후 폐교 조치되었고, 재학생들은 인근의 가양초등학교, 염경초등학교로 전학갔다.
- 서울오곡초등학교 (1972~1999): 서울특별시 강서구 오곡동 551-1번지에 있었던 공립 초등학교였다. 그러나 학교가 있었던 동네가 김포국제공항 활주로 바로 옆이었고, 설상가상으로 1980년대에 김포공항 활주로가 오곡동 쪽으로 하나 더 개설되면서 소음피해가 심해졌다. 결국 1990년대 후반 공항동 쪽에 이주단지를 조성하여 주민들을 모두 이쪽으로 이주시켰고, 학교는 폐교되었다. 폐교 부지는 심형래가 불하받아 영구아트 본사를 세웠으나, 2011년 파산하면서 법원에 압류되었다. 이후 경매로 나와서 한 사업가에게 40억원에 낙찰되었고, 2017년 기준 이 부지는 재활용품 처리 회사가 들어와 있다. 꽤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학교 건물은 큰 변화 없이 남아 있다.
- 서울일신국민학교 (1896~1973, 2000 재개교) : 1896년 일본인 거류민단에서 만든 히노데(日出)심상고등소학교가 전신으로 현재의 충무로3가 60-1번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덕혜옹주의 모교로 유명하며,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인 학교로 있다가 1946년 서울일신국민학교로 개명된 후 1973년 폐교되었다. 폐교 이후 부지가 극동그룹의 본사로 재개발되었고, IMF 이후 매각하여 현재는 남산스퀘어 빌딩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2000년 성북구 종암동에 동명의 초등학교가 개교하여 구 일신국민학교의 학적은 관리하나 졸업기수는 계승하지 않았다. 빌딩 주차장 한 쪽에 구 일신국민학교 터라는 비석이 있다.
- 부산충무초등학교 (1952~1998): 부산시 서구 토성동에 있던 초등학교로 도심공동화 현상에 따른 학생 수 감소로 1998년 인근 부산토성초등학교와 통폐합되고 현재 구 교사는 부산광역시 서구청이 그 자리에 옮겨와 활용하고 있다.
- 춘도국민학교 (1933~1991) :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소재
- 가평국민학교 경반분교 (1960~1984): 화전민 자녀들을 위해 칼봉산 계곡에 설립한 분교. 화전정리법 시행으로 화전농업이 금지되어 칼봉산에 거주하던 화전민들이 이주하면서 학생수가 줄어 폐교되고 이후 은행원 출신의 민간인에게 매각되어 현재는 캠핑 시설로 활용되고 있다.
- 보장초등학교 (1967~2015) : 포천시 창수면 소재
- 상색국민학교 두밀분교(1936~1994) : 폐교 과정을 취재한 PD수첩 방송으로 널리 알려졌다. 본래는 정식 학교였으나 학생 수 감소로 분교가 되었던 곳이다.
- 봉덕초등학교 (1946~2005): 횡성군 청일면 갑천리 360에 있던 초등학교. 2005년에 폐교된 이후 학교 부지는 인삼 농장으로 추정되는 농업용지로 사용중이다.
- 삼화초등학교 삼흥분교장
특수학교로 사용될려다가 무산되었다.
이 다섯 곳말고도 더 있다.
- 경동중학교: 지금은 경동고등학교만 남아 있다.
- 경복중학교: 지금은 경복고등학교만 남아 있다.
- 계성여자중학교: 학교법인 가톨릭학원에서 운영하던 여중. 폐교되고 계성여자고등학교만 남았고, 명동성당 옆에 있던 계성여고는 2016년부터 성북구 길음동으로 이전하여 남녀공학으로 전환, 계성고등학교가 되었다.
- 공진중학교(1993년~2020년): 학령인구 감소로 인근의 염강초등학교와 함께 폐교됐다. 기존의 재학생들은 대부분 성재중학교로 전학조치됐고, 일부 학생들은 경서중학교로 전학갔다. 폐교 소식에 대한 재학생의 인터뷰를 재구성한 기사도 있다.
- 마포여자중학교 :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와 함께 한국전력학원에서 운영했으나 한국전력학원이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운영에 전념하기 위해서 수도중학교와 함께 삼문학원(현 미림학원)에 넘겨버렸다. 하지만 대학교가 탐이났던 삼문학원 측에서는 국제대학(현 서경대학교)을 학교 인가만 인수해서 중학교 건물을 대학시설로 유용하기 위해 1986년에 폐교했으나 이마저도 제대로 풀리지 않자 결국 국제대학을 명지학원에 넘겨버렸고, 그걸 넘겨받은 명지학원은 국제대학 인가만 가지고 남가좌동으로 이전시키고, 용도를 잃어버린 공덕동 부지는 매각해서 공덕 현대아파트를 지어버렸다.
- 미림중학교(1979년~1993년) : 학교법인 삼문학원(현 미림학원)에서 운영하던 중학교로 1979년에 미림여자고등학교와 동시에 개교했으나 1990년을 끝으로 폐교가 결정된뒤 1993년 2월 28일에 마지막 졸업생들이 모두 졸업하면서 최종적으로 폐교되었으며, 폐교 이후 미림중학교의 시설은 1991년에 개교한 미림여자정보과학고등학교가 사용하게 되었다.
- 서대문중학교: 서대문중이 폐교된 뒤 한성과학고등학교가 개교되었다.
- 서울중학교: 지금은 서울고등학교만 남아 있다.
- 수도여자중학교: 지금은 수도여자고등학교만 남아 있다.
- 수도중학교 : 위의 마포여자중학교,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와 함께 한국전력학원에서 운영했으나 한국전력학원이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 운영에 전념하기 위해서 마포여자중학교와 함께 삼문학원(현 미림학원)에 넘겨버렸다. 하지만 대학교가 탐이났던 삼문학원 측에서는 국제대학(현 서경대학교)을 학교 인가만 인수해서 중학교 건물을 대학시설로 유용하기 위해 1984년에 폐교했으나 이마저도 제대로 풀리지 않자 결국 국제대학을 명지학원에 넘겨버렸고, 그걸 넘겨받은 명지학원은 국제대학 인가만 가지고 남가좌동으로 이전시키고, 용도를 잃어버린 공덕동 부지는 매각해서 마포 현대아파트를 지어버렸다.
- 이화여자중학교(1971년 폐교): 이화여자고등학교만 남았고, 1992년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가 설립되어 이화여고와 교정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 장훈중학교(2000년 폐교): 지금은 장훈고등학교만 남아 있다.
- 진명여자중학교(1987년 폐교): 지금은 진명여자고등학교만 남아 있다.
- 마산중학교: 지금은 병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 아우내중학교(2005년 폐교): 인구 감소로 병천중학교와 통폐합되었다.
- 남일중학교(1971~2009년): 농촌인구 감소로 인한 이유로 2009년 폐교되었다.
- 알로이시오중학교(1976년~2016년):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등학교와 더불어 부산 소년의집학원(알로이시오 슈월츠 신부가 세운 고아원 재단의 학교법인) 소속의 중학교로 학교 특성상 외부 학생들의 유입이 없었고, 소년의집 원생이 줄어듦에 따라 자연스레 재학생 수 감소로 폐교되었으며 2년 후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마저 폐교되었다.
- 덕천여자중학교(1992~2022): 인근의 덕천중학교와 통합되어 폐교하였다.
- 단산중학교(1954~2017): 현재는 기업 연수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 철도고등학교 (1967~1986) : 자세한 내용은 한국철도대학 문서 참고.
- 서울 경일고등학교 (1968~1970) :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 지금의 서경대학교 자리에 있었던 사립고등학교로 1968년에 개교하여 형제학교로 경일중학교를 두고 있었으나 무리한 차입으로 인한 학교법인의 파산으로 개교한지 겨우 2년만인 1970년 5월 11일에 경일중학교와 함께 폐교되었으며 파산으로 인하여 학기중에 학교가 폐교된 정말 특이한 케이스이다.# 폐교 당시 학생들은 주변 학교로 특별 전편입이나 재배정이 이루어지면서 전원 구제 되었으나 교직원들은 모두 실직하였다. 그 이후로는 사립학교가 파산[43]하여 폐교된 사례가 사실상 전무하며 대부분 타 재단이나 기업으로 인수되게 중재하였다. 폐교 이후 경일중고등학교 건물은 3년간 방치되다가 1973년 성한학원이 매입하여 1988년 까지 대일고등학교 건물로 쓰이다가 1988년 이후로는 서경대학교가 들어와서 쓰고 있다. (현 서경대학교 대일관)
- 수송전기공업고등학교 (1940~1978): 숙명여자고등학교, 중동고등학교와 함께 서울 중구 수송동에 위치했다. 중동고등학교와는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1960년에 두 학교 학생들간의 충돌(투석전, 중동고생들의 담벼락 철거시도 등)로 조선일보에 크게 보도되었다. 중동고등학교에 인수돼 중동전기공업고등학교로 교명이 변경된 적이 있다. 해당 학교법인은 이후에 대원고등학교(서울)를 설립하였다.
- 알로이시오전자기계고등학교(1976~2018) : 부산광역시 서구 암남동 소재. 가톨릭계 미션스쿨로서 '알로이시오 소년의 집'으로 출발해 지난 반세기 동안 부모 없는 고아들에게 무상교육을 해왔던 '알로이시오학교'가 2018년 3월 1일부로 폐교되었다. "알로이시오 소년의 집"에서 자라온 아이들이 학교 재학생들이었는데 해마다 학생 수가 줄어듦에 따라 2018년 폐교를 결정했다고 한다.[46] 뉴스 영상 부산에서는 2004년 태광여자상업고등학교 이후 14년만에 이례적인 고등학교의 폐교인데 해당 위치는 서구와 사하구를 잇는 길목에 위치해있으며 학교 특성상 일반모집을 하지 않아서 외부의 중학생들의 진학이 거의 없다보니 학생 수가 턱없이 부족할 수 밖에 없었다. 2018년 2월 9일 졸업식 당시 졸업생 수는 69명에 불과하였다.
- 예인음악예술고(2000~2007) : 전라북도 익산시 춘포면 인수리에 있있던 특성화고이다. 설립 당시에는 피아노 전문 교육기관으로 명칭도 예인피아노고등학교였으나, 점차 피아노뿐 아니라 관악·현악·성악·작곡·재즈피아노·뮤지컬·가야금까지 다양하게 가르쳤다. 전국에서 학생들을 모집하였으며 2003년 2월 1회 졸업생 20명을 배출하였다. 하지만 계속 입학생이 적어지고 2007년 학교에 재학 중이던 1학년 학생들이 수업을 거부하였다. 그 이유는 교원 수 미달과 열악한 학교 시설 때문이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인근 학교로 전학을 희망하였고, 결국 학교는 폐쇄되었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시설이 상당히 나빴다. 기숙사에 쥐똥이 나오고 악취가 났다고. 그리고 어제 저녁,다음날 아침,점심등 같은 급식 반찬이 나와서 학생이 선생님께 건의했으나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욕을 했다고 한다. 심지어 여학생을 뇌진탕 시키는 등 엉망이다. 교장은 비난을 직격탄으로 맞고 있다. 여기에 들어가면 이 학교의 실체를 알 수 있다.
- 백수고등학교(1984~2000)
- 광주인화학교(1961~2012): 광주 인화학교 사건 참조.
[1] 학교가 하나도 없는 농어촌 23곳...대책 시급[2] "학교를 살립시다"... 교사·지역주민 함께 '학생 유치전' 안간힘[3] 텅텅 비어가는 도심 속 학교[4] 그 중 한 명이 김병지였다. 학교가 축구부를 운영하고 있었고 김병지 또한 축구를 하기 위해 진학했던 것이다.[5] 부모로 학교로 50년…희망의 산실 문 닫는다. 부산 알로이시오고 내년 폐교[6] 2040년 대학 절반 이상 사라져…“정부-대학-지자체-산업계 협력체계 마련해야”[7] 그나마 용연초는 동문들의 노력으로 2004년에 야음동에서 재개교하였다. 참고로, 현재의 용연초등학교는 비슷한 시기에 개교한 야음중학교, 대현고등학교, 신선여자고등학교와 같은 자리에 모여 있다.[8] 운동장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자체강당이 없어 급식실을 자체 강당으로 쓰고 있는 형국이었다.[9] 3월 개교 용인 청운초 학생 적어 폐교[10] 주민 진학기피로 초등교 폐교[11] 현재 이리농림고 자리에는 전북대학교 익산캠퍼스(舊 익산대학)가 있다.[12] 도에서 설립한 도립전문대학들도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개교하였다. 자세히 말하자면 충북도립대학교은 옥천공업고등학교 자리에, 경북도립대학교은 예천종합고등학교 자리에, 강원도립대학교은 주문진수산고 자리에, 전남도립대학교은 추성고 자리에 개교하였다.[재개교] [14] 6년제 중학 분리 이후에 만들어진 경우이나, 특이하게 당시 광주농업고등학교의 병설로 지어졌다.[15] 실제로 과거 사립학교가 있던 자리에 공립학교가 들어선 사례가 있는데, 1983년 11월에 영남상고가 사상구 주례동(現 동서대학교 디자인홀)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부산시 교육청이 舊 영남상고 부지와 건물을 매입하여 이듬해인 1984년 2월에 부산서여고가 그 자리에 들어서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잘 쓰고 있다. 그리고 정읍시에 있었던 태인여자중학교도 2007년에 폐교한 후, 그 자리에 공립 대안학교인 전북동화중학교가 2010년에 개교하였다.[16] 지금은 사라진 미도파 백화점의 모기업으로 유명하다.[17] 재단이 있는 사립이기에 함부로 폐교시키지 못하고 있다. 만일 공립이었으면 중학교가 필요한 신도시로 이전되었거나 진작에 폐교되었을 것이다.[18] 대표적인 예로 의왕시에 있었던 정원고등학교(현 경기외국어고등학교)와 고양시에 있었던 벽제고등학교(현 고양외국어고등학교)가 있다. 다만 정원고등학교의 경우는 조회 결과 확실히 폐교처리된 것이 맞으며, 벽제고등학교의 경우는 개교기념일과 설립일(1988년)이 고양외고로 그대로 이어진것으로 봐서 개편쪽에 가까워 보이지만 고양외고 연혁에 벽제고등학교 시절 연혁이 아예 빠져있고 기수도 다시 1회부터 시작하는것으로 봐서 실질적으로는 폐교되었다고 보는게 맞다.[19] 물론 사립중학교의 경우는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가는 상황은 평준화 제도가 잘 유지되는 중학교라는 특성상 거의 없으나 평준화 미적용 중학교 중에서는 정말 드물게 재단이 갈리고, 교사진도 갈리고, 커리큘럼도 완전히 바뀌면서 기존의 학교가 사실상 폐교와 다름없게 된 상황이 있는데, 2007년 이전의 부산의 브니엘예술중학교가 그러한 사례다. 2006년경 재단이 바뀌면서 2007년 부터 교사진도 완전히 갈리고, 커리큘럼도 완전히 갈아엎고, 교무실은 물론이고 건물 조차도 따로 쓰고, 당시 학교 교명도 브니엘국제예술중학교(2016년 편법운영으로 법원에 패소하면서 브니엘예술중학교로 다시 환원되었다.)로 바뀌는 등 2007년 이후로는 아예 담당 부서 조차도 싹 날리고 새로 만드는등 사실상 다른 학교가 되면서 예전 학교 관련자들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렸으며 학교 측에서도 2006년 까지는 흑역사로 치고 있다.[20] 다만 대양중학교의 경우는 폐교되면서 그 대신에 설립된 일반고인 지산고등학교가 멀리 떨어진 금정구의 신축건물에 위치하다보니, 구 대양중학교 교사는 영도구가 매입한 이후 영도 어린이도서관으로 잘쓰고 있다.[21] 해당 건물은 뮤직비디오와 영화촬영장(영화 여고괴담 같은 경우.), 서바이벌 게임 용도로 대여되기도 했다. 2007년에 서울시 교육시설 관리사업소로 이용이 확정되면서 해당 용도로는 대여가 불가능하게 되었다.[22] 아파트 주민들이 그 부지에 초등학교를 만들기 위해 쫓아내려던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는 용산구에서도 받아줄 수 없게 되자 이후에 강서구나 마포구로도 이전을 타진했지만 이마저도 강서구민들과 마포구민들도 크게 반발하면서 무산되었다. 결국은 폐교 위기에도 처했지만, 동호공고를 쫓아내려던 아파트 주민들이 역풍을 맞으면서 동호공고의 이전이나 폐교는 없던 일이 되어버리고 대신 운동장을 떼어서 서울동호초등학교를 새롭게 만드는 선에서 끝났다. 그 이후 동호정보공업고등학교는 방송영상콘텐츠분야 특성화학교로 변경되어 2008년에 서울방송고등학교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었다.[23] 서울특별시 교육시설관리본부는 2021년 현재 성북구 종암동에 자리잡고 있다.[24] 한 예로 부산의 경남고등학교와 부산고등학교가 센텀시티 내에 개교 예정이었던 센텀고등학교와 이전 통합할 예정이었으나 동문들과 학부모들의 거센 반발을 맞고 무산되었던 적이 있다. 경남고는 건물 연식이 건재하며 부산고의 경우 아예 건물 재건축을 했다. 부경고등학교도 이전을 추진했으나 동문회 투표 결과 반대표가 많아 무산되었다. 경남고와 부경고는 2019년 1학년 입학생 수가 200명 미만일 정도로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25] 무등경기장 인근 전남방직 공장과 붙어 있었다. 학교가 떠난 자리에는 한국아델리움 아파트가 들어섰다.[26] 원래 수송국민학교 자리에는 종로구청이 자리잡았다가, 건물이 너무 오래되어 철거후 신축을 결정하였다. 신축 기간동안은 대림빌딩으로 임시 이전.[27] 비슷한 케이스로 1926년에 개교해 1993년 온산비철금속단지 조성으로 폐교되었던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대정리 구 온산국민학교가 2003년 온산읍 덕신리에 신설된 초등학교에 10년만에 그대로 옛 교가와 기수를 계승하여 부활한 사례도 있다.[28] 같은 팔달구에 있는 매향여중도 비슷한 이유로 100년의 전통을 깨고 남녀공학인 매향중학교로 전환하게 된다. 또한 이 지역에 있었던 연무중학교도 같은 이유로 2008년부터 4년간 휴교를 거쳐 2012년에 광교신도시에서 재개교하였다.[29] 신풍초등학교의 경우 구도심 지역의 학령인구 감소 및 문화재 복원으로 인한 이전이지만 이 학교는 원래 허허벌판 농촌 지역에 있었으나 근처에 대단지 아파트가 입주하며 이전한 것이다.[30] 2014년 유곡동으로 이전.[31] 2018년 옥산동으로 이전.[32] 2015년 율량동으로 이전.[33] 2013년 하소동으로 이전.[34] 2017년 우현동으로 이전.[35] 2012년 옥동으로 이전.[36] 2020년 태장동으로 이전.[37] 정확히는 강서구 관내 마곡지구로 이전했다.[38] 이름과는 달리 광진구 군자동에 있다. 정작 군자초등학교는 동대문구 장안동에 있다.[39] 동일로를 건너 성동구 성수동에 있다.[40] 1996년 3월 1일 현천국민학교에서 현천초등학교로 교명 변경[41] 중고등학교 과정의 신학교를 소신학교, 신학대학과 신학대학원을 대신학교라 한다.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대신학교를 졸업해야 하는데, 연세 지긋하신 신부님들 중에는 대신학교뿐 아니라 중고등학교까지도 소신학교(성신중, 성신고)를 졸업하신 분들이 많다.[42] 애초에 기흥초등학교는 구 기흥중 부지나 기흥고와 엄청 떨어져 있다. [43] 사립학교가 파산한 사례는 서울 경일중고등학교가 파산한지 49년이 지난 2019년 8월 에서야 강원도 동해시의 광희중고등학교가 학교법인 파산선고를 받았으나, 이쪽의 경우는 서울 경일중고등학교와는 달리 공립 전환을 추진한다고 하면서, 결국 서울 경일중고등학교가 사립학교가 파산으로 폐교한 마지막 사례로 남을것으로 보인다.[44] 소신학교는 천주교 신학교의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말한다.[45] 대신학교는 천주교 신학교의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말한다.[46] 2000년대에 비해 비슷한 복지시설이 부산에 많이 늘어나기도 하였으며 소년의 집 원생들이 자연스레 감소추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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