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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염주(현 북한의 황해남도 연안군) 출신.
기록에 의하면 후삼국시대 염주 지방의 호족 유긍순(柳矜順)의 기실(記室)이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비서 겸 서기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궁예가 유긍순이 다스리던 염주에 쳐들어와 그의 세력을 무너뜨렸고 태평 역시 궁예에게 항복했다.
그러나 궁예는 염주 지방이 오랫동안 항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태평을 보복성으로 군졸에 예속시켰다고 한다. 군대로 따지면 영관급 장교에서 현역병으로 강등된 셈이다. 이후 궁예가 몰락할 때까지 정확한 행적은 알 수 없지만 왕건을 만나 왕건의 휘하에서 활동하다가 고려 개국에 공을 세우고 918년 순군낭중에 임명되었다.[1] 순군낭중 이전에는 기졸(騎卒: 기병)로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아마 왕건과 함께 전쟁터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궁예를 몰아낸 반정에도 참여하지 않았나라고 추측된다.
기록에 의하면 후삼국시대 염주 지방의 호족 유긍순(柳矜順)의 기실(記室)이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비서 겸 서기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궁예가 유긍순이 다스리던 염주에 쳐들어와 그의 세력을 무너뜨렸고 태평 역시 궁예에게 항복했다.
그러나 궁예는 염주 지방이 오랫동안 항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태평을 보복성으로 군졸에 예속시켰다고 한다. 군대로 따지면 영관급 장교에서 현역병으로 강등된 셈이다. 이후 궁예가 몰락할 때까지 정확한 행적은 알 수 없지만 왕건을 만나 왕건의 휘하에서 활동하다가 고려 개국에 공을 세우고 918년 순군낭중에 임명되었다.[1] 순군낭중 이전에는 기졸(騎卒: 기병)로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아마 왕건과 함께 전쟁터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동시에 궁예를 몰아낸 반정에도 참여하지 않았나라고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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