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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란 뭔가의 목적, 예를 들자면 명예, 신념, 학문적 성취, 금전적 이익, 혹은 모험이나 스릴 그 자체를 쫓아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을 행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우연으로 어떤 사고나 사태와 맞닥뜨린 목격자들도 뭉뚱그려 모험가라 부르는 경우도 있다.
일본에서는 모험자(冒険者)라는 표현도 사용한다. 일본어의 사전적 의미로는 冒険家와 같은 의미이지만 직업으로 삼는 사람의 경우에는 冒険者보다는 冒険家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경향이 짙다.[1][2]
한국어의 경우에는 구분이 명확한데, ~자가 붙으면 행위의 주체이고, ~가가 붙으면 행위를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모험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은 모험가라고 칭하는 것이 옳다.
스윗 소로우의 노래 중 이것을 주제로 한 '모험가'라는 곡이 있다. 간주 부분의 원주민이 중얼거리는 듯한 부분이 인상적.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일을 함. 또는 그 일'이라는 사전적 정의만 잡고 극단적으로 넓게 보자면 아래와 같은 직업들도 모험가 비슷하게 취급할 수 있을 것이다.
- 사업가
벤처기업 사업가, 오지에 자원을 채굴하러 가는 사업가 등등. - 오지 여행자 / 관광객
현지 치안이나 시설이 안 좋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굳이 찾아가서 사건사고에 휘말린다.
탐험이라는 의미든 이동이라는 의미든 모험은 사실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인류가 힘을 합쳐서 마을과 도시, 국가를 만든 것은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모험은 이를 벗어나 인간이 개척하지 않은 장소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목적지가 오지일 수도 이동경로가 오지일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안전하지 않다는 것은 변함없다. 현대의 모험은 이동수단과 통신장비와 식량/보존 기술의 증가로 꽤 괜찮은 삶을 유지하면서 모험[3]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현대문명의 이기를 누리지 못하는 경우 매순간순간 목숨을 걸어야만 한다. 특히 판타지 물에서 나오는 중세시대 배경의 모험은 낭만과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
모험이라고 하면 무언가 남자의 로망 같이 야망과 꿈이 강조되는 면이 있지만, 많은 모험가는 모험 이후 모험한 지역에 대한 착취로 보상을 챙겼으며, 모험가들 중 반은 돈을 노리고 모험을 떠났단 정황이 확실시된다. 도굴꾼 같은 짓을 하며 발견한 모험지의 유물을 쓸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당연하지만 모든 이들이 돈이 남아돌아서 취미생활로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니었고 유럽 외부의 "미개척지"[4]들을 탐험하며 그곳의 돈 되는 것은 최대한 가져가 팔아넘겨야 자신이 먹고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일시적으로 존재한 사업이었던 셈. 국가 관점에서도 이런 자들이 바깥에 나가 크게 한탕 해오기 시작하자 관심을 뒀는데, 상상 이상으로 크게 대박이 터지자 이게 국력과도 연결되어 제국주의로 발전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다시 말해 모험가와 탐험가의 시대였던 16~19세기의 유럽에서 이들은 나쁘게 말하면 약탈해 먹을 만한 땅이나 자원을 발견해서 크게 한탕 쳐서 인생역전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는 유럽의 정책적 식민주의의 한 축을 담당했던 것이 사실이다.
지리학과 생물학 등 당장 돈이 될 거라 보이기 어려운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사재를 털어 나선 사람들도 결국 명성이나 상금 등의 유혹을 느끼기 마련이며, 후원자들도 공짜로 인심 좋게 자금을 퍼준 게 아니었다. 그들도 뭔가 꿍꿍이가 있거나 대가를 챙겼다. 위대한 극지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이 후원자에게 모험 도중 촬영한 사진의 판권을 전부 넘기기로 계약했던 것처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같은 인물도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모험가로 칭송되면서 동시에 악랄하게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한 악행을 벌이기도 했다. 그와 같은 많은 탐험가들은 가해자 유럽 입장에서는 영웅이지만 피해자인 다른 대륙의 입장에서는 그저 악질에 불과한 사람도 많다.[5] 이 당시 모험가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 캐릭터로 픽사의 UP에 등장하는 찰스 F. 먼츠를 들 수 있다.
지리학과 생물학 등 당장 돈이 될 거라 보이기 어려운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사재를 털어 나선 사람들도 결국 명성이나 상금 등의 유혹을 느끼기 마련이며, 후원자들도 공짜로 인심 좋게 자금을 퍼준 게 아니었다. 그들도 뭔가 꿍꿍이가 있거나 대가를 챙겼다. 위대한 극지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이 후원자에게 모험 도중 촬영한 사진의 판권을 전부 넘기기로 계약했던 것처럼.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같은 인물도 아메리카라는 신대륙을 발견한 위대한 모험가로 칭송되면서 동시에 악랄하게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한 악행을 벌이기도 했다. 그와 같은 많은 탐험가들은 가해자 유럽 입장에서는 영웅이지만 피해자인 다른 대륙의 입장에서는 그저 악질에 불과한 사람도 많다.[5] 이 당시 모험가의 어두운 면을 보여준 캐릭터로 픽사의 UP에 등장하는 찰스 F. 먼츠를 들 수 있다.
- 안토니오 다 막달레나: 최초로 앙코르 와트 유적을 방문한 서양 탐험가다.
- 이븐 바투타: 중세 말 (14세기)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3대륙에 발자국을 찍었다.
- 자크 카르티에: 캐나다 발견
- 피테아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인물. 역사상 최초의 전문 모험가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일 것이다.
- 로버트 피츠로이: 찰스 다윈이 참가한 비글 호의 항해 당시의 비글 호의 함장이었던 사람이다. 당시 비글 호는 남아메리카에서의 측량 활동과 더불어, 브라질이나 페루 등, 당시 남아메리카의 친영 국가들의 군사 지원을 목적으로 항해를 했다. 하지만, 로버트 피츠로이 함장 본인이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아서[10], 일부러 과학자인 다윈을 승선시키고 그의 탐험 및 표본 채집 활동을 지원하였으며, 이 와중에 피츠로이 본인도 남아메리카 곳곳에서 지층 탐사를 하여 당시에만 해도 가설에 불과했던 지층의 생성 원리에 대한 이론을 확실하게 입증했다[11].
- 크리스 맥캔들리스: 왜 이렇게 분류됐는지는 문서 참고.
자세한 내용은 모험가(판타지 용어) 문서 참고하십시오.
판타지물의 모험가는 모험가(판타지 용어) 문서에 작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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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이라 시리즈》
- 《언차티드 시리즈》
- 《이트맨》
-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3》 - 배경시대가 시대인지라, 유럽 국가들은 일종의 영웅 유닛으로 모험가를 한 명 갖고 시작한다.
- 《탐험대장 떡철이》 - 모험 그 자체만을 추구하는 주인공 떡철이가 탐험을 빙자하며 온갖 행패와 민폐를 부리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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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약관 20세에 익스플로러즈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일본의 여대생 모험가 미나미야 마린에 대한 내용이 뉴스에 보도되었을 때도 NHK를 비롯한 대부분의 채널에서 冒険家라는 단어를 사용했다.[2] 오지 탐험 등 미지의 영역을 전문으로 모험하는 사람은 탐험가(探検家)로 별도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어째서인지 탐험자라는 호칭은 거의 안 쓰인다.[3] 여차하면 아예 대형 오프로드 캠핑카를 끌고 생활공간 째로 이동하는 짓거리도 가능하다.[4] 유럽인 입장에서나 미개척지이자 미지의 장소지 상당수 지역은 원주민이 있고 자기들끼리 잘 살고있던 곳이다.[5] 미국에선 콜럼버스 데이 폐지 논의도 나올 정도다.[6] 인류 최초는 아니다. 인류 최초로 희망봉을 돌아서 아프리카를 일주한 사람은 아래에 언급된 고대 페니키아의 항해사인 항해자 히밀코이며, 당시에 이집트의 파라오가 이들을 고용해서 아프리카 방면으로 무역로를 확보하고자 탐험을 지시해서 아프리카를 빙 돌아서 이집트로 되돌아오는 항해를 했다. 참고로 히밀코가 그 먼 거리를 항해하는 방식이 실로 파격적인데, 항해하면서 지나가는 곳마다 밀농사를 지은 다음에 이를 수확해서 먹어가면서 항해를 지속했다고 한다.[7] 일설에는 아메리카까지 도달했다는 설도 있으나, 확실치는 않다.[8] 스페인 북부에서 프랑스 일대를 말한다.[9] 이 같은 사실은 헤로도토스의 기록을 현대의 고전학자들이 분석해서 알아내었다. 헤로도토스가 '항해자 히밀코가 태양이 정오에 북쪽에 떠있었다고 말한 것'을 언급한 기록이 실제 남반구에서 북향으로 태양이 뜨는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이를 입증할 수 있었다.[10] 사실 그냥 관심이 많은 정도가 아니라, 당대 최고의 대기과학자였다. 당시에 비글 호가 맡은 중요한 군사 업무에 로버트 피츠로이가 내정된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었다.[11] 여담으로 로버트 피츠로이의 말년은 상당히 기구했다. 지층의 생성 원리를 밝혀내는 불멸의 업적을 세운 그였지만, 정작 본인은 창조설을 강력하게 믿은 기독교 근본주의자였고, 때문에 진화론을 열렬히 반대했다. 하지만, 진화론이 옳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확실히 입증되자, 이에 빡친 나머지 칼로 자기 목을 그어서 자살했다. 자살하기 전에는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뉴질랜드의 총독을 지냈는데, 당시의 백인 제국주의자들과는 달리 백인 우월주의를 혐오했던 로버트 피츠로이는 이 점때문에 마오리족의 땅을 침략한 백인들에게 규제를 가하고 마오리족들의 권리를 보장해줌으로서 양자를 중재하고자했는데, 정작 마오리족들은 그를 씹선비 취급하면서 개무시했고, 백인들도 총독이라는 자가 마오리족 편만 든다고 탄핵해서, 결국 2년 만에 총독직에서 짤리고 본국인 영국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야말로 인생이 암울한 사람이었다.[12] 여담으로 이 탐험에 참가했던 사람 중의 한 명이 바로 아래에서 언급된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였고, 이 탐험은 월리스에게는 진화론과 그 핵심 이론인 자연선택을 입증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13] 이로 인해 당시 영국의 여왕이었던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도 받고, 죽을 때까지 두둑한 연금을 타먹으면서 행복하게 살았다. 참고로 그의 업적을 처음 조명한 사람이 다름아닌 찰스 다윈이며, 애초에 자연선택을 최초로 다룬 논문도 다윈과 월리스 두 사람의 공동명의로 발표되었다.[14] 제주3읍 추쇄경차관으로 부임하였다가 부친상을 당해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표류당해 명나라 남부에 가까스로 도달했다. 이후 양주, 북경을 거쳐 명 황제를 알현한 뒤, 한양으로 돌아왔다.[15] 모험가 캐릭터라고 하기에는 애매하지만 보우켄저의 힘을 받았기 때문에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16] 왕이 되기 이전 시절 한정.[17] 선별인원 시절 한정.[18] 모험가라고 보기엔 애매하지만 32화 한정으로 모모이 타로를 쓰러뜨린다는 욕망으로 인해 굉굉귀로 각성한다.[19] SSR부터 모험용 배낭을 들고 다닌다.[20] 샤를 세리스의 특이한 입맛이 산전수전을 겪었던 그의 젊은 시절부터 비롯되었다는 배경 스토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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