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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선왕 22년(기원전 806년), 그는 형인 주선왕에게 정나라의 백작으로 봉해졌다.
주선왕 46년(기원전 774년), 주선왕은 그를 사도로 봉했다.
주선왕이 죽고 주유왕이 즉위하면서 포사를 총애하며 정사를 돌보지 않자 그는 주유왕에게 그러지 말 것을 간했으나 주유왕이 괵석보를 총애했고, 그가 그것을 부추겼기 때문에 정환공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국인들의 원성을 사고 제후들의 이반이 가속화 되었다.
주유왕 11년(기원전 771년), 신후는 자신의 딸을 내친 주유왕에게 앙심을 품고 견융족을 끌어들였다. 주유왕은 봉화를 이용해 제후들을 불렀으나 포사의 장난질과 주나라의 권위가 떨어진 것이 겹쳐서 결국 제후들은 오지 않았고, 주유왕은 급히 가마에 타 피난길에 올랐지만 결국 견융족의 기마부대에 따라잡혀 여산에서 죽임을 당했다. 이때 정환공은 주유왕의 가마를 지키다가 전사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주나라에서는 주평왕이 왕이 되고, 정나라에서는 자신의 아들 희굴돌이 정나라 군주에 오르니 그가 바로 정무공이다.
주선왕 46년(기원전 774년), 주선왕은 그를 사도로 봉했다.
주선왕이 죽고 주유왕이 즉위하면서 포사를 총애하며 정사를 돌보지 않자 그는 주유왕에게 그러지 말 것을 간했으나 주유왕이 괵석보를 총애했고, 그가 그것을 부추겼기 때문에 정환공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럼으로써 국인들의 원성을 사고 제후들의 이반이 가속화 되었다.
주유왕 11년(기원전 771년), 신후는 자신의 딸을 내친 주유왕에게 앙심을 품고 견융족을 끌어들였다. 주유왕은 봉화를 이용해 제후들을 불렀으나 포사의 장난질과 주나라의 권위가 떨어진 것이 겹쳐서 결국 제후들은 오지 않았고, 주유왕은 급히 가마에 타 피난길에 올랐지만 결국 견융족의 기마부대에 따라잡혀 여산에서 죽임을 당했다. 이때 정환공은 주유왕의 가마를 지키다가 전사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주나라에서는 주평왕이 왕이 되고, 정나라에서는 자신의 아들 희굴돌이 정나라 군주에 오르니 그가 바로 정무공이다.
그의 아들 정무공은 위무공, 진문후와 함께 견융족을 몰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정무공이 죽고 그의 손자인 희오생(姬寤生)이 정나라 백작이 되니 그가 바로 정장공이다. 정장공이 주 왕실을 무시하고 영역 넓히기에 급급하자 주환왕은 크게 노해 그를 정벌하려 했으나 정장공의 부하인 축담의 화살에 맞아 주나라의 권위는 떨어졌다. 다만 정장공 또한 천자를 쏘아 맞힌 축담을 용서하지 않아 그를 내쳤고, 축담은 그 충격으로 죽었다. 그리고 정장공 사후 진나라는 정소공, 정여공, 공자 미, 공자 영이 왕자의 난을 일으키는 내분이 일어나 정나라의 국력이 쇠했고, 정문공 때 안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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