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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 미국명 맥 필즈(Mack Fields[1]) |
자 / 호 | 영선(永善) / 죽암(竹嵒) |
본관 | |
출생 | |
사망 | |
국적 | |
가족관계 | 부인 조순희(1884∼1929) 장녀 전경숙(로즈마리 전), 차녀 전경영(마거릿 전), 장남 알프레드 전[3]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218호 |
상훈 |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
1884년 6월 25일 한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아버지 전성근(田聖根)과 어머니 전주 이씨 이성녀(李姓女)[이씨] 사이의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으며 아호는 죽암(竹嵒)이다. 관립 한성학교(현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03년 하와이로 이민을 가면서 미국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904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하여 알래스카 어장과 철도공사 등에서 노동자로 일하였는데 한때 도산 안창호가 조직한 공립협회 회원으로 활동했던 적이 있다.
더럼 스티븐스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는 당연한 결과이며, 한국인은 일본 덕분에 잘 살게 될 것"이라는 발언을 하자 전명운은 격분하여 스티븐스를 암살하기로 계획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기차 역에서 레저 열차에 탑승하던 스티븐스를 향해 저격 사격을 시도했지만 권총이 오발되어 백병전이 이어졌다. 전 박사는 권총을 뒤집어 스티븐스의 얼굴을 그립으로 가격했다. 같은 목적으로 그곳에 왔던 장인환 박사는 전명운의 고함소리에 상대가 더럼 스티븐스임을 깨닫고 그의 등에 권총 세 발을 발사했다. 한 발은 전 박사의 팔에 명중했고, 나머지 두 발은 스티븐스의 가슴에 명중했다. 스티븐스는 병원으로 급히 후송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장인환과 전명운은 서로 만난 적도 없었고, 사전에 암살에 대해 논의한 적도 없었으며, 두 사람이 동시에 스티븐스를 쏜 것은 우연이었다. 이후 장인환과 함께 체포되어 팔이 치료된 후 미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지만, 전명운은 사건의 직접적인 범인이 아니었고 장인환과 사전에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증거 불충분으로 살인 사건으로 기소되지 않는다.
더럼 스티븐스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는 당연한 결과이며, 한국인은 일본 덕분에 잘 살게 될 것"이라는 발언을 하자 전명운은 격분하여 스티븐스를 암살하기로 계획했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기차 역에서 레저 열차에 탑승하던 스티븐스를 향해 저격 사격을 시도했지만 권총이 오발되어 백병전이 이어졌다. 전 박사는 권총을 뒤집어 스티븐스의 얼굴을 그립으로 가격했다. 같은 목적으로 그곳에 왔던 장인환 박사는 전명운의 고함소리에 상대가 더럼 스티븐스임을 깨닫고 그의 등에 권총 세 발을 발사했다. 한 발은 전 박사의 팔에 명중했고, 나머지 두 발은 스티븐스의 가슴에 명중했다. 스티븐스는 병원으로 급히 후송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장인환과 전명운은 서로 만난 적도 없었고, 사전에 암살에 대해 논의한 적도 없었으며, 두 사람이 동시에 스티븐스를 쏜 것은 우연이었다. 이후 장인환과 함께 체포되어 팔이 치료된 후 미국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되지만, 전명운은 사건의 직접적인 범인이 아니었고 장인환과 사전에 공모했다는 혐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증거 불충분으로 살인 사건으로 기소되지 않는다.
말년의 전명운 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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