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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한국경제인협회 韓國經濟人協會 The Federation of Korean Industries (FKI) | |
이전 명칭 | 전국경제인연합회[1](全國經濟人聯合會) |
국가 | |
설립일 | |
소재지 | |
회장 | 류진[2] |
기관 분류 | 사단법인 |
웹사이트 | |
전화번호 | 02-3771-0114 |
대한민국의 대기업 모임. 약칭은 한경협. 대한상공회의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3] 한국경영자총협회[4]를 포함한 경제5단체 중의 하나다.
1961년 8월 16일에 삼성 이병철 회장이 대기업들을 모아 ‘한국경제인협회’로 출범하였다. 이후 1968년 주요민간기업체·금융기관·국책회사 등을 대상으로 하여 회원을 크게 확보하여 '전국경제인연합회'로 변경하였다. 2023년 9월 18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다.
설립목적은 자유시장경제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올바른 경제정책 구현과 한국 경제의 국제화 촉진이다.[5]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며 사회 환원 활동도 하고 있다.[6]
1961년 8월 16일에 삼성 이병철 회장이 대기업들을 모아 ‘한국경제인협회’로 출범하였다. 이후 1968년 주요민간기업체·금융기관·국책회사 등을 대상으로 하여 회원을 크게 확보하여 '전국경제인연합회'로 변경하였다. 2023년 9월 18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다.
설립목적은 자유시장경제 창달과 건전한 국민경제 발전을 위한 올바른 경제정책 구현과 한국 경제의 국제화 촉진이다.[5]
대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며 사회 환원 활동도 하고 있다.[6]
회장직은 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회장 선출을 위한 정기총회에서 4백 여명에 달하는 회원들의 추천으로 선임되는 절차를 밟는다. 주로 대기업 회장이 선임되며 간혹 중견기업 회장이 선임될 때도 있다.
회원은 제조업, 무역, 금융, 건설등 전국적인 업종별 단체 67개와 한경협의 회원사는 공기업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기업 436개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여기에는 외자계기업도 포함되어 있다.[7]
한경협 산하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경제 싱크 탱크로 유명하다.[8] 한편 산하단체로 EIC(Elite Intensive Course)와 YLC(Young Leaders’ Club)을 두어 대학생들의 시장경제 이해와 시장경제 체제의 친화성을 높이는 활동을 하고 있다.[9]
2023년부터는 한국경제인협회 청년자문단이 신설되어 한경협 전반의 운영과 경제정책에 대해서 청년들의 자문을 받고 있다.[10] 또 다른 자문단인 경영자문단은 대기업 CEO나 임원으로 구성되며 중소기업의 경영자문을 통한 사회환원 활동을 하고 있다.[11]
역대 한경협 회장들 중에서 대기업 총수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회장대행 임기도 같이 포함된다. 이름 뒤에 붙은 직위는 회장 재임 당시의 직위다.
자세한 내용은 FKI타워 문서 참고하십시오.
1953년 7월 한국 전쟁 이후 복구 사업과 미국의 지원으로 인한 삼백산업으로 한국에서 대기업이 등장했다. 민간 시장이 발전하기 전 단계에서 기업은 정경유착으로 발전을 도모했고 이승만 정부 말기 각종 뇌물사건과 비리로 대기업 처벌의 목소리가 높아져 갔다.
이후 1960년 4.19혁명이 발생하여 자유당 이승만 정부가 몰락하고 민주당 장면 내각이 출범하였다. 장면 민주당 정부는 대기업 회장들에 대해 조사를 착수했다. 하지만 1961년 5.16 군사정변이 발생하여 6월 26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과 이병철 삼성 회장이 면담을 가진 후 조사가 취소되었다. 기존에 연행된 기업인들도 6월 30일 모두 조사를 중지하고 '부정 축재 기업인들에게 산업 재건에 이바지할 기회를 준다'는 명분으로 모두 풀어주었다.[19]
그후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은 다시 이승만의 자유당 시절 처럼 박정희의 국가재건최고회의에 뇌물을 전달하면서 정경유착으로 발전을 추구했으나, 각종 법적 조사와 정치적 격변에 따른 불이익을 경험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1961년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을 초대 회장으로 한국경제인협회가 출범하였다.
이후 1960년 4.19혁명이 발생하여 자유당 이승만 정부가 몰락하고 민주당 장면 내각이 출범하였다. 장면 민주당 정부는 대기업 회장들에 대해 조사를 착수했다. 하지만 1961년 5.16 군사정변이 발생하여 6월 26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과 이병철 삼성 회장이 면담을 가진 후 조사가 취소되었다. 기존에 연행된 기업인들도 6월 30일 모두 조사를 중지하고 '부정 축재 기업인들에게 산업 재건에 이바지할 기회를 준다'는 명분으로 모두 풀어주었다.[19]
그후 대한민국의 대기업들은 다시 이승만의 자유당 시절 처럼 박정희의 국가재건최고회의에 뇌물을 전달하면서 정경유착으로 발전을 추구했으나, 각종 법적 조사와 정치적 격변에 따른 불이익을 경험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의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1961년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을 초대 회장으로 한국경제인협회가 출범하였다.
- 1961
- 한국경제인협회 (약칭 한경협) 창립
- 민간외자도입 교섭단 파견
- 1963
- 인도네시아 통상사절단 영접
- 1966
- 한국민간경제사절단 방일
- 1968
- 전국경제인연합회 (약칭 전경련) 개칭
- 한-중 경제협력위원회 설립
- 1971
- 전경련 창립 10주년
- 1977
- 전경련회관 기공식
- 이부카 마사루 소니회장 초청 특별 강연
- 1978
- 전국의료보험협의회 설립
- 1979
- 전경련회관 준공
- 포드 전 미국 대통령 예방
- 서독, 영국, 프랑스 등 15개국과 양자 간 경제협력위원회 설립 (1972~1979)
- 1986
- 전경련 창립 25주년 기념 리셉션
- 1988
- <한국광고주협회> 설립
- 리콴유 싱가포르 수상 초청 간담회
- 1989
- 우루과이라운드 서비스무역 협상전망과 대응전략 세미나
- 소련 방문 경협사절단 귀국 기자간담회
- 1991
- 전경련 창립 30주년
- 1993
- 제26차 PBEC(태평양경제협의회) 서울총회
- 1996
- 추가화(鄒家華) 중국 부총리 초청 오찬간담회
- 1997
- <자유기업센터(현 자유경제원)> 설립[21]
- 1998
- 4대그룹 기업 구조조정 간담회
- <FKI 미디어 > 설립
-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경상수지 흑자 500억 달러 목표 제시
- 1999
- 전경련 회장단,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간담
- 청와대 정재계 간담회
- 2000
- 제26대 故 김각중 회장((주)경방) 취임
- 2001
- 전경련 창립 40주년 리셉션
-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KBCSD) 설립
- 2002
- 제27대 故김각중 회장((주)경방) 재선임
- 2003
- 제28대 손길승 회장((주)SK) 취임
- 한국경제 로드쇼 개최(뉴욕, 보스턴, 런던)
-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 초청 오찬 간담회
- 2004
- 제29대 강신호 회장((주)동아제약) 취임
- 전경련 회장단 청와대 간담회
- 일자리 창출을 위한 투자전략 국민보고회
- 2005
- APEC CEO Summit 2005 개최
- 2006
- 중소기업협력센터 출범
- 2007
- 제31대 조석래 회장((주)효성) 취임
- <규제개혁추진단> 발족
- 한일재계회의 한국 대표단 후쿠다 일본 총리 예방
- 2008
- 대한민국 정부 수립 60주년 기념 <I Love Korea 청소년 대장정> 개최
-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제21차 한미재계회의
- 2009
- <보듬이나눔이 어린이집> 건립사업 시작
- 아소 다로 일본 총리 초청 경제4단체 간담회
- 2010
- <300만 고용창출위원회> 출범
- 대통령 초청 30대 그룹 간담회
- 2011
- 제33대 허창수 회장((주)GS) 취임
- 전경렵 창립 50주년 기념 리셉션
- 김황식 국무총리 초청 간담회
- 2012
- <경제살리기 특별위원회> 발족
- 2013
- <창조경제 특별위원회> 발족
-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전경련 임직원 일일 상인 체험
- 2014
- 전경련 신축회관(FKI Tower) 준공
- 2015
- 제35대 허창수 회장((주)GS) 재선임
- 새정치민주연합-전경련 정책간담회
- 한·일·중 비즈니스 서밋
- 2016
- OECD 가입 20주년 기념 경제계 간담회
- 新나는 대한민국, 신산업육성 전국토론회
- 2017
- 제36대 허창수 회장((주)GS) 재선임
- 에드윈 퓰너 미국 헤리티지 재단 회장 간담
- 2018
- 보아오 아시아포럼 서울회의 2018 주관
- 평창동계올림픽 후원사 초청 간담회
- 소사이어티 5.0 특별대담(UN SDG, 일본)
- 2019
- 제37대 허창수 회장((주)GS) 재선임
- Business at OECD 총회 한국대표 참석
- 2020
- 코로나19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제계 긴급제언
- 2021
- 전경련 창립 60주년 사진전
- K-ESG Alliance 설립
- 제38대 허창수 회장(㈜GS 명예회장) 재선임
- 한국전쟁 참전용사 감사회
- 2022
- 디지털 기업인 박물관 오픈
-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 2022 서울 프리덤 포럼
- 역대 기재부 장관 초청 특별대담
- 제29회 한일재계회의 개최
- 제2연평해전 승전 20주년 기념행사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경제단체장 간담회
자세한 내용은 한국경제인협회/비판 및 논란 문서 참고하십시오.
-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전경련 회장 시절, 전두환 정권 초기에 전경련 회장 퇴임 압력을 주었다. 이에 정주영은 “회원들이 뽑아준 회장인 만큼 마음대로 그만둘 수 없다”고 버텼다. 이후 전두환 정부 말기, 6월 항쟁이 발생하자 전두환은 서울 진압을 5.18 민주화운동 진압처럼 하려고 했으나 전경련에서는 서울에서 학살극을 하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유치할 수 없다고 맞받아치며 전두환을 막았다.
- 2017년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여파로 탄생한 정부이다. 이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뇌물 창구였던 전경련을 철저히 국정에서 배제하여 일자리 위원회, 2018 제3차 남북정상회담 수행원 명단에 전경련 임원들이 전원 제외되는 등 각종 행사에서 불이익을 가했다.
-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기 전까지는 신의 직장이라 불릴 정도로 취업 선호도가 높은 곳이었다. 고임금, 다양한 복지로 유명했으며 대학원 진학까지 지원해주었기에 석박사 학력의 직원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4/18/2017041802904.html 국정농단 직후에는 해체 위기까지 제기되었다. 한국경제인협회로 새로 출범한 이후 임금과 복지가 상당부분 회복되었으나 내부에서는 과거의 위상에 비해서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보는 시각이 주류라고 한다.
- 4대 그룹의 회비 납부 재개, 회원사 외연확장, 정부 패싱 해소, 자체 소유 부동산 자산의 수익률 개선 등으로 상황이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 국민연금 데이터에 따르면 급여는 대기업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보이나 성과급과 복지에 대한 최근 정보는 알려진 바가 없다.
- 임직원 규모가 대중에 알려진 것과 달리 상당히 작은 것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에 와서 채용이 재개되었으며 그 마저도 한 자릿수 채용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
[1] 줄여서 전경련이라고 불렀다.[2] 풍산그룹의 대표이사[3]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서 2006년 중소기업중앙회로 바뀌었다. 중소기업 중심조직이라 그런지 대기업 중심의 한경협과는 미묘하게 다른 입장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4] 약칭은 경총. 한경협보다도 경영자의 이익을 더 중시 여기는 경향이 있으며, 노동계와 갈등을 가장 많이 겪기도 한다.[5] 한경협 정관 제1조[6] 가처분소득의 1% 이상을 사회공헌 활동에 지출할 의사가 있는 법인 및 단체로 구성된 '1% 클럽'을 운영한다. 중증 장애인을 위한 전동휠체어 지원사업을 통해 총 3,500여대의 전동휠체어 지원과 시각장애인용 노트북인 점자정보단말기 총 1,270여대를 보급하였다. 보육취약계층을 위해 '보듬이나눔이어린이집'을 8년간 전국에 101개소를 건립하였다.[7] 외자계 기업들은 이해관계가 없어서 이름만 걸어두는 수준이다.[8] 미국 헤리티지 연구소와 같은 보수주의 싱크 탱크를 지향하며 대기업감세와 출자총액제 폐지, 노동환경 규제 완화 등 친대기업 성향의 경제연구자료를 내놓고 있다.[9] 두 산하단체 모두 대학생이 가입하여 활동하는 학술 및 미래 지도자 양성 코스이다.[10] 6개월 임기로 선임되며 사회 각계 각층의 엘리트 청년 약 10명으로 구성된다.[11] 2004년부터 신설되어 200명이 활동한다. 자문위원이 사임하면 그 인원만큼 선임하는 구조이다.[12] 삼성 초대 회장. 당시 삼성물산 사장[13] 한국양회 사장[14] 쌍용양회의 전문경영인. 당시 쌍용그룹 김성곤 회장이 민주공화당 국회의원 겸 재정위원장으로 박정희의 최측근이었기 때문에 대리인으로 계열사 사장인 홍재선을 내세웠다.[15] 전 국무총리[16] 김용완의 장남. 대를 이어서 회장직을 수행했다.[17] 전문경영인. 최종현의 사망 이후에 최태원 회장이 경험을 쌓을 동안 공동회장에 취임하여 대외업무를 수행하는 역할을 하였다.[18] 역대 최장기 재임 회장[19] 이는 위법 행위를 한 재벌 총수에게 중형을 선고하면 경제에 악영향이 우려되고 총수가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를 했으니 정상 참작 해달라는 논리의 발단이 되었다.[20] 현재는 합병하여 산하단체이다.[21] 현재는 분리독립하여 별개의 단체이다.[22] 한경협 청년자문단에서 기획했다.[23] 이 LG반도체가 현재 SK하이닉스의 전신이다.[24]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발생하자 가장 먼저 전경련을 탈퇴했다.[25] 한경협 전반의 운영과 새로운 사업에 대해서 자문을 청년들에게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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