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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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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본관 | |
복무 | |
1973년 ~ 2009년 | |
재임기간 | 제39대 육군참모총장 |
1950년 5월 12일,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태어났다. 서울 성남고등학교[5] 졸업 후 육군사관학교 29기로 임관했다. 동기로는 합참의장과 국방장관을 지낸 김태영 대장과 제3야전군사령관을 지낸 백군기 대장이 있다. 1984년에는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일반행정 전공으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국민의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실 국방비서관을 지냈으며, 이후 2000년 10월에 소장으로 1차 진급하여 제17보병사단장(2000.11~2002.10)과 육군군수사령부 참모장(2002.10~2003.5), 육군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2003.5~2004.10)을 지냈다. 특히 육군교육사령부 부장직은 전역을 앞둔 말년 소장들의 단골 보직으로 유명했음에도 이 자리를 거치고도 중장으로 진급을 했다.
2004년 10월에 중장으로 진급하여 제1군단장[6]을 맡았다. 그러나 2006년 11월 인사에서 대장 진급에 실패하고 동기 중에서 선두 주자였던 김태영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과 백군기 육군인사사령관 2명이 대장에 진급하여 각각 1군 사령관과 3군 사령관에 보임되었다. 대장 진급에서 낙마한 임충빈 중장은 명예직인 육군사관학교장으로 전보되었다.[7] 이대로 2007년 하반기나 2008년 상반기 인사에서 전역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2008년 3월 17일에 발표된 장성급 장교의 인사에 따라 육군참모총장 내정이 발표되었다.[8] 동기생인 백군기, 김태영 장군은 2006년 11월에 이미 대장에 진출 했던 것을 감안하면 명예직에서 전역 준비를 하다가 뒤늦게 진급을 하여 참모총장에 오른 셈이다. 보통 육군참모총장은 1,2,3군 사령관이나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중 하나를 거치고 가는 2차 대장 보직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이다.
그러나 2009년 하반기 군 인사에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1년 반만에 한민구 대장에게 이임하고 전역했다. 동기인 김태영 대장이 합동참모의장 재직 중에 전역 신고하고 1시간 만에 국방장관으로 보임됐기 때문에 장관의 지휘권 보장을 위해 아예 대장급을 전부 교체했기 때문이다. 물론 참여정부의 선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합참의장과 참모총장을 동기로 보임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으나, 서열 등의 문제 때문에 장관과 참모총장을 동기로 보임하지 않기 때문. 인사 폭도 제법 커서, 육사 30기 대장들은 이상의 합참의장을 제외하고 전부 전역했고, 육사 31기에서 대장이 배출되었다. 전역 후에 충남대학교에서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2023년 12월 제18대 성우회장으로 취임했다.
국민의 정부에서 외교안보수석실 국방비서관을 지냈으며, 이후 2000년 10월에 소장으로 1차 진급하여 제17보병사단장(2000.11~2002.10)과 육군군수사령부 참모장(2002.10~2003.5), 육군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2003.5~2004.10)을 지냈다. 특히 육군교육사령부 부장직은 전역을 앞둔 말년 소장들의 단골 보직으로 유명했음에도 이 자리를 거치고도 중장으로 진급을 했다.
2004년 10월에 중장으로 진급하여 제1군단장[6]을 맡았다. 그러나 2006년 11월 인사에서 대장 진급에 실패하고 동기 중에서 선두 주자였던 김태영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과 백군기 육군인사사령관 2명이 대장에 진급하여 각각 1군 사령관과 3군 사령관에 보임되었다. 대장 진급에서 낙마한 임충빈 중장은 명예직인 육군사관학교장으로 전보되었다.[7] 이대로 2007년 하반기나 2008년 상반기 인사에서 전역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2008년 3월 17일에 발표된 장성급 장교의 인사에 따라 육군참모총장 내정이 발표되었다.[8] 동기생인 백군기, 김태영 장군은 2006년 11월에 이미 대장에 진출 했던 것을 감안하면 명예직에서 전역 준비를 하다가 뒤늦게 진급을 하여 참모총장에 오른 셈이다. 보통 육군참모총장은 1,2,3군 사령관이나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중 하나를 거치고 가는 2차 대장 보직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례적이다.
그러나 2009년 하반기 군 인사에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1년 반만에 한민구 대장에게 이임하고 전역했다. 동기인 김태영 대장이 합동참모의장 재직 중에 전역 신고하고 1시간 만에 국방장관으로 보임됐기 때문에 장관의 지휘권 보장을 위해 아예 대장급을 전부 교체했기 때문이다. 물론 참여정부의 선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합참의장과 참모총장을 동기로 보임하는 것은 큰 문제가 없으나, 서열 등의 문제 때문에 장관과 참모총장을 동기로 보임하지 않기 때문. 인사 폭도 제법 커서, 육사 30기 대장들은 이상의 합참의장을 제외하고 전부 전역했고, 육사 31기에서 대장이 배출되었다. 전역 후에 충남대학교에서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2023년 12월 제18대 성우회장으로 취임했다.
3.1. 문영일의 제12보병사단 훈련병 사망 사건의 피의자 옹호 및 피해자 막말 논란[편집]
하나회 출신 군 원로인 문영일 예비역 중장이 제12보병사단 훈련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성우회 사이트에 사건을 일으킨 중대장을 구속하면 국군이 패망한다면서 개인의 운명으로 생각하라는 글을 올렸고# 이로 인해 큰 공분을 사고 있다. 성우회에서는 해당글을 사흘동안 지우지 않고 있었고, 국민들의 관심도가 높아지자 그제서야 해당 글을 삭제하며 ‘공식입장 아님’이라며 선을 그었다.
2024년 6월 21일, 법사위에서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을 포함해 군인들을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시켜 질의했던 사항에 대해 본인의 생각을 기고했다. 문제는 군복을 모욕한다는 제목으로 시작하여 국회의원들니 이종섭을 포함한 전현직 군인들에게 모욕을 준것을 비판하며 장병들 사기, 북한의 도발을 연계짓는 안드로메다를 보여주었다. 누가 군을 모욕하고, 누가 장병들의 사기를 꺾었는지, 누가 이적행위를 했는지는 모두가 아는 사실인데, 이를 통해 임충빈 장군 스스로가 전형적인 극우의 모습을 보여주는 글이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23/0003843552
[1] 대흥공파(大興公派) 29세 빈(彬) 항렬.#[2] 일반행정 전공[3] 석사 학위 논문 : 現代 軍組織의 發展에 관한 硏究 -特性을 中心으로-(1984).[4] #[5] 육사에 많은 학생들을 입학시킨 학교다. 설립자가 바로 예비역 중장인 김석원이다.[6] 중장 2차 진급.[7] 전임자였던 김선홍 중장(육사 28기)과 동일한 루트였다. 이 쪽도 1군단장 - 육사 교장을 하고 전역했다.[8] 10년만의 정권 교체로 군 인사도 대거 바뀔 거란 예측이 나왔다. 이때 주목받았던 것이 당시 제1야전군사령관인 김태영 대장이 육군참모총장으로 가는가 아니면 합동참모의장으로 직행하느냐였다. 만일 육군 총장으로 갈 경우에는 해군 출신의 송영무 제독이 합참의장으로 올라갈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김태영 대장을 합참의장에 올리고 동기인 임충빈 육사 교장(중장)을 대장 진급시켜 육군참모총장에 올리는 방법이 나왔다. 그리고 육사 30기가 대장에 진출했다. 보통 육군총장을 대장 2차 보직으로 올리는 걸 생각하면 이 인사로 전 정권의 최고위급 장성 인사들을 상당 부분 밀어낸 셈이다. 그리고 당시 대한민국 해병대는 합동참모차장에 대장 보직을 한다는 걸 생각해 해병대장이 35년만에 다시 나오길 기대했지만 이계훈 공군대장이 맡았고 2008년을 끝으로 합참차장에 대장이 보임되지 않았다 그리고 역사는 반복되고 10기수 후배인 김용우가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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