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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영(1858) - 나무위키

이하영(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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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효 등이 고종의 퇴위에 협조한 대신들을 암살하려다 처벌된 사건은 이완용이 고종 퇴위를 반대하던 대신들을 제거하기 위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주장도 있음

조선귀족
朝鮮貴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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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작
백작 → 후작
자작 → 백작
고희경 · 송병준
[1] 1912년 도박죄로 구속되어 일시적으로 예우 정지.
[2] 1872년생 이완용(李完鎔)으로 1858년생 이완용(李完用)과 동명이인임.
[3] 1927년 파산자로 선고되어 조선귀족령 제8조 1항에 따라 1928년 2월 29일부로 자작의 예우가 정지되었지만 아들인 조중수가 자작 작위를 습작함.
[4] 1919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협조하여 습작 불능 처리됨.
[5] 1924년 추가로 남작 작위를 수작함.
[6] 재산 분쟁으로 일시적으로 예우 정지.
※ 작위를 거부한 8인은 모두 1910년 남작 작위 수작 대상자였음.
오등작공작 작위의 인물은 없었음. 그에 준하는 작위와 관련한 정보는 왕공족 문서 참고.
취소선 표시는 작위를 박탈당한 인물을 뜻함.
작위 박탈 사유 [ 펼치기 · 접기 ]
  • 윤치호: 1913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됨에 따라 작위 박탈
  • 조희연: 1915년, 파산으로 작위 반납
  • 김사준: 1916년, 조선보안법 위반 사건에 연루되어 작위 박탈. 신한혁명당의 간부 중 한 명인 성낙형이 고종을 망명시키고자 했는데, 김사준이 이를 수락하고 실행에 옮기려다 일제에 발각됨.
  • 김윤식: 1919년, 독립 청원서 제출로 인해 작위 박탈
  • 이용직: 1919년, 독립 청원서 제출로 인해 작위 박탈
  • 민영린: 1919년 7월, 아편흡식죄로 작위 박탈
  • 김병익: 1919년 8월, 아편흡식죄로 작위 반납 명령이 내려졌으나 작위 유지
  • 민태곤: 1941년 12월, 도쿄에서 조선민족독립운동 사건으로 구속되어 작위 박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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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조선총독부 정무총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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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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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규
김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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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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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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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제영
윤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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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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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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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조
정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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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환
조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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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이
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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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운표
홍재하
[ 1920 ]
고문
고희경
부찬의
김현수
칙임 참의
김영진
김영한
김한목
남규희
민영찬
민형식
박승봉
박이양
박승봉
박의병
백인기
상호
서상훈
신석린
어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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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맹
유성준
유정수
이건춘
이겸제
정진홍
조진태
조영희
조희문
한진창
주임 참의
강병옥
권태환
김교성
김기태
김명규
김명준
김상설
김상섭
김연상
김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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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필희
김현수
나수연
노창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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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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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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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렬
박흥규
박희양
방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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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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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재풍
오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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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호
유빈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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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익
이동우
이만규
이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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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직
이흥재
이희덕
장대익
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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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식
정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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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
정태균
정호봉
조병건
천장욱
최석하
피성호
한영원
한상봉
한창동
허명훈
홍성연
현은
참의
김한목
김희작
남규희
박기순
원응상
윤갑병
윤정현
정건유
현기봉
[ 1930 ]
고문
칙임 참의
고원훈
김관현
김명준
김서규
김영진
남궁영
박두영
박영철
박용구
서상훈
신석린
엄준원
염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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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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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희
강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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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김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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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호
김종흡
김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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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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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석
박종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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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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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태영
서병조
서병주
석명선
성원경
손재하
손조봉
송지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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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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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환
원덕상
유승흠
유태설
이경식
이교식
이근수
이근우
이기찬
이기승
이동우
이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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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이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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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우
이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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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적
인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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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헌근
정관조
정대현
정석모
정석용
정해붕
조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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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희열
최양호
최연국
최윤
최윤주
최준집
최지환
최창조
하준석
한영원
현헌
홍치업
황종국
참의
강필성
김병원
김성규
김제하
어윤적
유만겸
유성준
[ 1940 ]
고문
칙임 참의
고원훈
김관현
김명준
김사연
김영배
김영진
김우영
김윤정
김화준
박두영
서상훈
신석린
안종철
원덕상
유만겸
유진순
이겸제
이경식
이계한
이원보
정교원
정연기
진학문
한규복
주임 참의
강이황
권중식
김경진
김동준
김병욱
김부원
김사연
김원근
김재환
김태집
노준영
민재기
박지근
박창하
박필병
방의석
서병조
손창식
송문화
신현구
양재창
원병희
위정학
이경식
이기찬
이승우
이신용
이영찬
이익화
이종덕
임창수
장용관
장준영
전덕룡
조병상
조상옥
차남진
최윤
최승렬
최정묵
최준집
한익교
한정석
황종국
참의
김하섭
이승구
†- 재직 중 사망.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대한제국 중추원 의장
이하영
李夏榮 | Lee Ha-young
091406459000
출생
경상도 기장현 동면 이천리
(現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읍 이천리)[1]
사망
1929년 2월 27일 (향년 70세)
본관
직업
치행 (致行)
금산 (琹山)
종교
작위
부모
부: 증 내부대신 이유수
모: 증 정경부인 서산 추씨
형제
제: 이준영[3], 이태영[4], 이선영[5]
자녀
자: 이규삼(출)[6], 이규원, 이규복, 이규성
녀: 서정교의 처, 이규성의 처
비고

1. 개요2. 생애3. 평가4. 기타5. 같은 가문의 인물 목록6. 여담

1. 개요[편집]

구한말의 외교관이자 정치가, 관료. 또한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을사삼흉[8]이라 부르기도 한다. 1858년 [음력] 8월 15일생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관이다.

을사조약 당시에 표면상으로는 반대를 했으나 찬성으로 입장을 바꾸었고 이후 조선귀족 자작 작위를 받고 조선총독부 중추원에서 고문으로 지내는 등 친일 행보를 이어갔다.
상세 내용 아이콘   자세한 내용은 이하영(1858)/생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3. 평가[편집]

이하영이 미국 정부로부터 백만불(현재 원화로만 계산해도 11억 원)을 당겼다는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일이다. 김옥균은 그로부터 불과 3년 ~ 4년 전 일본에 무상 차관을 빌리러 갔다가 실패했고, 차선책으로 국채 발행을 시도했지만 모두 허사였다. 게다가 그 돈을 써서 미군을 빌려온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어쨌든 이하영이 미국에 돌려주지 않은 16만 불 중 얼마를 비상금으로 놔뒀는지는 몰라도, 당시 조선으로서는 막대한 돈이었을 텐데 그 행방이 투명하지 않다. 하여간 고종이 목돈을 만들라고 사람을 보내면 곱게 오는 경우가 없었다. 갑신정변을 말아먹은 김옥균 역시 1882년 제물포 조약 직후 일본에 가서 받은 17만 엔을 귀국해서는 수중에 한 푼도 안 남았다고 하는 걸 보면, 용처가 개혁을 위한 군자금이었다고 해도 불투명하다는 지적을 면할 수 없고(한성순보를 창간하는데 썼다고도 한다), 결과적으로 개혁에 독이 됐다. 당시 아직 입장을 정하지 않았던 많은 중도적 정부 인사들마저 등 돌리게 만들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884년 무상 차관을 준대서 김옥균이 일본에 갔건만 결국 일본 정부한테 찬바람을 맞았다. 1882년 임오군란 역시 불량미라는 불투명한 재정 집행이 도화선이 된 참사였다.

이하영은 2002년 친일파 708인 명단에, 2007년 대한민국 친일 반민족 행위 진상 규명 위원회의 친일 반민족 행위 195인 명단에 올랐다. 2008년 민족 문제 연구소에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 인명 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도 선정됐다.

4. 기타[편집]

  •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최형배(하정우) 시골집 벽사진의 주인공이다. 찢어지게 없는 집에 태어나서 온갖 우연의 연속으로 출세 후, 가족들에게 벼슬을 안겨주었고, 게다가 자기 회사에 정계 거물들을 주주로 앉혀놓고 빽으로 성공한다는 방식도 영화 내용과 비슷하다. 윤종빈 감독이 알고 사진을 썼는지는 미지수.
  • 이하영은 1959년 발간된 경주이씨찬성공파세보(慶州李氏贊成公派世譜)에 5남1녀 중 차남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1988년에 발간된 경주이씨대동보와 1999년에 편찬된 경주이씨상서공파세보에서는 이름이 지워져 있다. 즉, 경주이씨대동보에서는 그의 증조부 이흥혁의 후손을 모두 삭제하였고, 상서공파세보에서는 이흥혁도 포함하여 모두 삭제하였다.
  • 일뽕들 사이에서 최근 들어 추종하고 있는 인물이기도한데, 밑바닥에서 시작해 고위직 친일파로 출세해서 성공했다는 점 때문에 자기들도 밑바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함께 일뽕/비판 문서에도 나와있다시피 식민지 시대에 대한 환상과 식민지 수혜론에 대한 정당한 비판의 반발로 추종하고 있다.

5. 같은 가문의 인물 목록[편집]

※ 을사삼흉 이하영은 선조 때 영의정 이항복의 장남 이성남의 9대손이고, 독립명문가[11] 이회영 6형제[12]는 이항복의 차남 이정남의 9대손이다. 이회영의 형 이석영의 양부이기도 한 고종 때의 영의정 이유원 역시 이정남의 후손이다. 같은 가문의 일원임에도 동시대에 극과 극의 행보를 보였다. 족보에서는 이하영의 증조부 이흥혁 및 그 후손을 모두 삭제하였다.[13]

: 친일반민족행위자, : 독립유공자[14]


  • 9대조: 이성남. 증 이조판서. 이항복의 장남.
  • 8대조: 이시중. 증 호조참판.
  • 7대조: 이세형. 도사[15].
  • 6대조: 이이좌. 직장[16].
  • 5대조: 이종영(계)[17].
  • 4대조: 이경한.

(이하영의 증조부 이하 족보에서 삭제)


  • 11촌(방계조상): 이정남. 인조 때 낭청[22]. 이항복의 차남.
  • 12촌: 이시술. 현종 때 의주부윤[23].
  • 13촌: 이세필. 숙종 때 형조참판[24]. 이조판서·좌찬성 추증.

  • 14촌: 이태좌. 영조 때 좌의정. 이세필의 장남. 이항복의 4대손.
  • 15촌: 이종성. 영조 때 영의정.
  • 16촌: 이경륜[25]. 정조 때 황해도 관찰사.
  • 17촌: 이정규. 순조 때 강원도 관찰사.
  • 18촌: 이계선. 철종 때 사간.
  • 19촌: 이유승. 고종 때 이조·예조·형조·공조판서, 한성부판윤, 우찬성, 궁내부특진관. 이항복의 9대손.
  • 20촌(형제): 이건영, 이석영(출)[26], 이철영, 이회영, 이시영(대한민국 초대 부통령), 이소영[27], 이호영. 이항복의 10대손.
  • 21촌: 이규룡(계)[28], 이규면, 이규훈 / 이규준, 이규서, 성명미상(女) / 이규붕, 성명미상(女), 이규상, 이규화 / 이규룡(출)[29], 이규학, 이규온(女), 이규숙(女), 이규창[30], 이경숙(女), 이현숙(女), 이규동[31] / 이규창[32], 이규열[33], 이규웅 / 성명미상(女) / 이규봉(이규황?), 이규린(이규준?)
  • 22촌: 이종찬(이규학의 3남), 이종걸(이규동의 장남)

  • 14촌: 이정좌. 이세필의 차남. 이항복의 4대손.
  • 15촌: 이종주.
  • 16촌: 이경관. 증 좌찬성.
  • 17촌: 이석규. 이조판서.
  • 18촌: 이계조. 이조판서.
  • 19촌: 이유원. 철종·고종 때 전라도·함경도·황해도관찰사, 예조·형조·공조판서, 한성부판윤, 좌의정, 영의정. 이항복의 9대손. 이유승의 차남 이석영의 양부.
  • 20촌: 이석영(계)[34], 이수영, 성명미상(女), 성명미상(女), 이호영, 이표영.

6. 여담[편집]

윤치호 역시 구한말에 영어를 습득한 인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 경주 이씨 집성촌이다.#[2] 백사공파 10대손. 중시조 35세 '榮'자 항렬이다.[3] 대한제국 법부·학부협판, 강원도관찰사. 일본 훈3등욱일중수장.[4] 군수.[5] 참봉.[6] 동생 이준영의 양자로 출계.[7] 을사조약 당시에는 중립을 지키거나 반대하였지만 후에 친일로 전향한 민영기, 이하영과 함께 고종을 압박한 이재극 이렇게 3인을 통틀어 말하는 용어로 정식 학술 용어는 아니다.[8] 이하영, 민영기, 이재극[음력] [10] 다만 이완익은 1870년대에 친일파로 전향했으며, 을사늑약이 체결되기도 전인 1904년에 죽었다.[11] 이회영 일가는 명문가의 후손으로 전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그 공로로 광복 후 일가에서 건국훈장·건국포장 13명을 배출하였다. 건국훈장(12명) : 이건영, 이석영, 이철영, 이회영, 이시영, 이호영 등 6형제, 이회영의 부인 이은숙, 이건영의 장남 이규룡(생부는 이회영), 이석영의 장남 이규준, 이회영의 차남 이규학·3남 이규창, 이회영의 사위 장해평(이규숙의 남편). 건국포장(1명) : 이시영의 장남 이규창(초명은 이규봉).[12] 요절한 이소영을 제외하고 흔히 이회영 6형제로 칭한다.[13] 이흥혁부터 삭제한 것은 이하영의 후광으로 증조부 이흥혁은 비서승, 조부 이응효는 의정부참찬, 부친 이유수는 내부대신으로 추증되어 이하영의 친일행적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었기 때문인 듯하다.[14] 광복 후 건국훈장, 건국포장 등을 받은 인물들만 포함함. 기타 독립운동가들은 포함하지 않았음.[15] 都事. 종5품 관직.[16] 直長. 종7품 관직.[17] 입양되었다. 생부 성명미상.[18] 李準榮.[19] 協辦. 각부 대신(大臣)의 하위직. 갑오개혁 이전에 각조 판서(判書)를 보좌하던 참판(參判)과 유사함.[20] 이규원은 종2품까지 가자(加資; 정3품 통정대부 이상의 품계를 올리는 일)되었다.[21] 찬시(贊侍). 한일병합 이후 일제가 이왕직(李王職)에 개설한 시종과 같은 관리이다.[22] 郞廳. 일반적으로 정3품 이상 당상관에 비교하여 종3품 당하관 이하의 관원을 지칭하나, 좁은 의미로는 6조의 정5품 정랑 또는 종6품 좌랑을 지칭한다. 또한 비변사, 경리청, 준천사 등 일부 관청에는 낭청 자체가 종6품~정7품의 관직 명칭이다.[23] 부(府)를 관할하던 종2품 지방 장관직. 경주·평양·전주·영흥·함흥·의주·강화·광주 등 8곳의 부가 있었다. 부윤은 절제사(節制使)를 겸직하였다.[24] 참판은 6조의 장관인 판서를 보좌하는 종2품 차관직이다. 각 조의 중요 사무는 판서, 참판, 참의가 합의하여 시행하는 것이 관례였으므로 상당한 발언권이 있었다.[25] 조부는 이세필의 3남 충청감사 이형좌(李衡左), 부친은 이조판서 이종백(李宗白)이다. 이세필의 장남 이태좌의 아들 이종성에게 입양되었다.[26] 고종 때 영의정 이유원의 양자로 출계.[27] 일찍 사망.[28] 생부는 이회영.[29] 이건영의 양자로 출계.[30] 초명은 '이규호'.[31] 초명은 '이규석'.[32] 초명은 '이규봉'.[33] 초명은 '이규홍'.[34] 생부는 이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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