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이인에 대한 내용은 이세호(동명이인)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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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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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사망 | |
본관 | 나주 이씨 |
호 | 산남(山南) |
학력 | 송도고등학교 (졸업) |
재임기간 | 제21대 육군참모총장 |
종교 | 개신교 |
군사 경력 | |
복무 | |
1945년 ~ 1979년 | |
임관 |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2기) |
최종 계급 | 대장 (대한민국 육군) |
최종 보직 | |
주요 보직 |
1925년 경기도 개성군(현 개성시) 출생. 송도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 2기 졸업. 제33보병사단장, 제28보병사단장, 제37보병사단장, 제6군단장, 주월한국군사령관, 제3야전군사령관, 육군참모총장 등을 역임했다. 박정희의 육군사관학교 동기로 막역한 친구 사이[1]로 알려지며 무려 4년간 참모총장으로 재임하여 현재까지도 최장 기간 재임한 참모총장이다. 1979년 참모총장에서 퇴임한 후 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전두환에게는 본의 아니게 은인이 되었는데, 이세호는 자신이 예편한 이후 보안사령부에서 보안사령관 직위를 기존의 중장 계급에서 대장 계급으로 격상시키려 한다는 것을 들었다.
재임 시절 보안사령부의 권력 남용과 폐단을 인식한 이세호는 박정희에게 탄원서를 올려 권력 남용의 폐단을 막으려면 군 수사기관은 계급을 오히려 소장으로 낮추어야 한다고 탄원했다.
이세호의 탄원서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존 보안사령관인 진종채 중장이 물러난 후 본래 보안사령관은 중장 보직인데 그것도 군단장을 거친 후인 2차적으로 맡는 보직인데 이제 막 사단장을 지낸 소장 전두환이 1979년 3월 전격적으로 보안사령관에 오르게 된 것이다.[2] 그야말로 파격적 인사였는데 이 인사 후 9개월이 지나 전두환은 보안사령부를 기반으로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한다. 전혀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전두환의 정권 장악에 기여하게 된 셈.
과거 인터뷰에서 “그 후 갑자기 10·26 사건이 터지면서 보안사령관이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대통령까지 되는 것을 보면서, 참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내 충정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본의 아니게 내 탄원서가 전두환의 권력 만들기에 일조를 해버린 셈이 되고 말았다"며 씁쓸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1980년 전두환과 신군부(하나회)가 정권을 장악하자 구정권의 유력인사로서 부정축재 혐의로 몰려 재산을 강제 헌납당했으며[3] 이후에도 신군부로부터 감시를 받았다고 한다..
2013년 4월 28일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안장식 영상
전두환에게는 본의 아니게 은인이 되었는데, 이세호는 자신이 예편한 이후 보안사령부에서 보안사령관 직위를 기존의 중장 계급에서 대장 계급으로 격상시키려 한다는 것을 들었다.
재임 시절 보안사령부의 권력 남용과 폐단을 인식한 이세호는 박정희에게 탄원서를 올려 권력 남용의 폐단을 막으려면 군 수사기관은 계급을 오히려 소장으로 낮추어야 한다고 탄원했다.
이세호의 탄원서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존 보안사령관인 진종채 중장이 물러난 후 본래 보안사령관은 중장 보직인데 그것도 군단장을 거친 후인 2차적으로 맡는 보직인데 이제 막 사단장을 지낸 소장 전두환이 1979년 3월 전격적으로 보안사령관에 오르게 된 것이다.[2] 그야말로 파격적 인사였는데 이 인사 후 9개월이 지나 전두환은 보안사령부를 기반으로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한다. 전혀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전두환의 정권 장악에 기여하게 된 셈.
과거 인터뷰에서 “그 후 갑자기 10·26 사건이 터지면서 보안사령관이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대통령까지 되는 것을 보면서, 참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내 충정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본의 아니게 내 탄원서가 전두환의 권력 만들기에 일조를 해버린 셈이 되고 말았다"며 씁쓸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1980년 전두환과 신군부(하나회)가 정권을 장악하자 구정권의 유력인사로서 부정축재 혐의로 몰려 재산을 강제 헌납당했으며[3] 이후에도 신군부로부터 감시를 받았다고 한다..
2013년 4월 28일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안장식 영상
[1] 이세호 총장이 올린 인사안은 단 한번을 제외하고 박정희에게 반려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단 한번이 바로 1976년 초 전두환이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임명된 것으로, 박정희가 이세호의 인사안을 반려하고 직접 지시하여 총애하던 전두환을 요직인 경호실 차장보로 임명했다. 이 인사를 계기로 전두환은 '박정희의 양아들'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2] 보안사령관을 중장에서 소장보직으로 낮춘 첫 케이스로 임명된 전두환은 곧바로 술 한병을 사들고 뛰어와 '총장님 앞으로 잘 지도해 주십시오'라고 인사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게, 소장 보직으로 격하당하긴 했지만 여전히 보안사령관은 막강한 권한을 지닌 자리였으니 전두환 입장에서는 매우 고마웠을 것이다.[3] 사실 이세호 대장은 육군참모총장 재임 당시 하나회 출신 박희도와 악연이 있었다. 박희도가 준장계급으로 진급한 뒤 공수1여단장에 처음 부임한 시기에 무장공비가 1여단의 위수지역을 마음껏 돌아다니다가 복귀에 성공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이때 이세호 대장은 불같이 화를 내며 박희도를 보직해임하고 전역시켜버리려 했지만, 박희도의 상관이자 육군특수전사령관인 정병주 소장이 이세호 대장에게 싹싹 빌어서 더이상 문책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리고 박희도는 이런 은인인 정병주 소장에게 동서고금에 드물 정도의 강력한 뒤통수로 보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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