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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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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10월 8일 경기도 진위군[2] 북면[3](現 평택시 진위면)에서 아버지 이정헌(李正憲, 1913 ~ 1950)과 어머니 평강 채씨 사이에서 2대 독자,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다. 진위초등학교, 양정중학교, 서울 양정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6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기자로 근무하던 중 1975년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 때 자유언론 활동을 하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결성에 관여한 혐의로 해직되었다. 이후 1978년부터 1981년까지 럭키금성그룹 이사, 1981년부터 1984년까지 한국방송공사 해설주간, 1986년 4월 2일부터 1989년 3월 16일까지 제11대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1991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KBS 아침마당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제37대 교통부장관을 지냈으나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로 경질되었다.
1999년 문화일보 부사장, 2000년 디지털타임스 창간 사장, 프라임프로덕션 회장 등을 지냈다. 2003년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이후 호서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하며 아코디언 연주, 누드크로키 전시회, 마라톤 등 취미생활을 영위했고, 이러한 취미들을 살려 북한 어린이 돕기 등 사회복지 사업에 종사하기도 했다.
2016년 1월 31일 오후 지병으로 사망했다.
1963년 동아일보에 입사하여 기자로 근무하던 중 1975년 동아일보 광고탄압사건 때 자유언론 활동을 하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결성에 관여한 혐의로 해직되었다. 이후 1978년부터 1981년까지 럭키금성그룹 이사, 1981년부터 1984년까지 한국방송공사 해설주간, 1986년 4월 2일부터 1989년 3월 16일까지 제11대 한국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1991년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KBS 아침마당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제37대 교통부장관을 지냈으나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로 경질되었다.
1999년 문화일보 부사장, 2000년 디지털타임스 창간 사장, 프라임프로덕션 회장 등을 지냈다. 2003년 민주화운동 보상심의위원회로부터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받았다. 이후 호서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하며 아코디언 연주, 누드크로키 전시회, 마라톤 등 취미생활을 영위했고, 이러한 취미들을 살려 북한 어린이 돕기 등 사회복지 사업에 종사하기도 했다.
2016년 1월 31일 오후 지병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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