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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년은 어릴 때부터 집안이 빈곤하였고 부모도 모두 여의었기에, 그의 숙부가 그를 거두어 양육하였다. 이경년은 숙부의 말에 따라 양치는 일을 맡았는데, 공부하러 다니는 숙부의 아들을 볼 때면 항상 부러워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박사를 만나 가르침을 구걸한 끝에 한자 100여 자를 배울 수 있었고, 양을 치다가 시간이 남으면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글을 적어 공부하였다. 이를 발견한 그의 숙부는 깜짝 놀라
"네가 우리 집안의 천리마로다! 여태껏 기린이 오래도록 소금 언덕에 파묻혀 있는 꼴이었구나."
라며 감탄하고는, 곧바로 처를 구해주어 이경년을 장가보내고 아울러 수업도 받게 하였다.
하서 원년(309년) 7월, 진나라의 회남(淮南)내사 왕광(王曠) 등이 태부 사마월의 명령을 받고 황하를 건너 한나라의 초왕 유총, 정동대장군 왕미 등과 장평(長平)에서 전투를 벌였다. 한창 전투 중에 한군의 총대장인 유총의 군마가 화살을 맞고 쓰러져 진군에게 사로잡힐 위기에 처하자, 이경년은 선뜻 자신의 말을 유총에게 양보하였다. 유총이 다시 말 위에 올라 전투를 지휘하여 격전 끝에 진군을 격파할 수 있었다. 이 공로로 이경년은 양추후(梁鄒侯)에 봉작되고 호아장군으로 승진하였다.
하서 원년(309년) 7월, 진나라의 회남(淮南)내사 왕광(王曠) 등이 태부 사마월의 명령을 받고 황하를 건너 한나라의 초왕 유총, 정동대장군 왕미 등과 장평(長平)에서 전투를 벌였다. 한창 전투 중에 한군의 총대장인 유총의 군마가 화살을 맞고 쓰러져 진군에게 사로잡힐 위기에 처하자, 이경년은 선뜻 자신의 말을 유총에게 양보하였다. 유총이 다시 말 위에 올라 전투를 지휘하여 격전 끝에 진군을 격파할 수 있었다. 이 공로로 이경년은 양추후(梁鄒侯)에 봉작되고 호아장군으로 승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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