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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공무원에 대한 내용은 유용태(1932)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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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
출생 | |||||||||||||||
본관 | |||||||||||||||
현직 | |||||||||||||||
재임기간 | 제18대 노동부장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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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경기도 이천군에서 태어났다. 이천제일국민학교, 용산중학교, 오산고등학교, 중앙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 대전대학교 법학 박사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노동청(현 고용노동부)에서 공보관, 근로기준관 등을 역임하였다. 그리고 한국공인노무사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동작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평화민주당 박실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이번에도 민주당 박실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세번째로 출마하여 새정치국민회의 박실 후보를 드디어 꺾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직후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여당이 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 당시 동작 을 전임 국회의원이자 국회사무총장이던 박실측이 유용태 의원 공천과 관련해 "국가안전기획부 재직 당시 수많은 민주인사 고문에 가담한 공범을 공천하는 게 말아 되느냐", "과거 유용태 의원이 한나라당 당적을 유지하고 있었을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김대중의 남은 다리마저도 분질러버리겠다." 라고 막말을 한 파렴치하고 몰상식한 인간이 무슨 염치로 민주당에 와서 공천을 받느냐?!" 라고 강력하게 반발하였다.[2] 같은 해부터 2001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1년부터 2002년까지 노동부장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 대한민국 국회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노무현과 갈등을 빚었다. 결국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때 당시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로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를 주도하였다.
이후에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탄핵 열풍으로 열린우리당 이계안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의 주역 5명[3] 중 가장 인지도가 낮아 낙선 이후 근황이 공개되지 않았으나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미래통합당에 입당하였으며[4], 나경원 전 원내대표의 선거캠프 고문으로 활동하며 나경원 전 원내대표의 선거를 진두지휘하였으나 결국 정치초선인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의해 패배하였다.[5]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동작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평화민주당 박실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이번에도 민주당 박실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세번째로 출마하여 새정치국민회의 박실 후보를 드디어 꺾고 당선되었다. 그러나 1998년 국민의 정부 출범 직후 한나라당을 탈당한 뒤 여당이 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이 당시 동작 을 전임 국회의원이자 국회사무총장이던 박실측이 유용태 의원 공천과 관련해 "국가안전기획부 재직 당시 수많은 민주인사 고문에 가담한 공범을 공천하는 게 말아 되느냐", "과거 유용태 의원이 한나라당 당적을 유지하고 있었을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김대중의 남은 다리마저도 분질러버리겠다." 라고 막말을 한 파렴치하고 몰상식한 인간이 무슨 염치로 민주당에 와서 공천을 받느냐?!" 라고 강력하게 반발하였다.[2] 같은 해부터 2001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1년부터 2002년까지 노동부장관을 역임하였다. 이후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 대한민국 국회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였다. 그러나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노무현과 갈등을 빚었다. 결국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때 당시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로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를 주도하였다.
이후에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가 탄핵 열풍으로 열린우리당 이계안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의 주역 5명[3] 중 가장 인지도가 낮아 낙선 이후 근황이 공개되지 않았으나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미래통합당에 입당하였으며[4], 나경원 전 원내대표의 선거캠프 고문으로 활동하며 나경원 전 원내대표의 선거를 진두지휘하였으나 결국 정치초선인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의해 패배하였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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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성군파 26세 용(容)○ 항렬.[2] 유용태와 비슷한 시기에 한나라당을 탈당해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던 경기 의정부시의 홍문종과 서울 중랑구 을의 김충일 의원은 그전에 서로 다른 정당으로 3번 경쟁했던 문희상, 김덕규에게 밀려 낙천되었다. 그 중 홍문종은 불복하며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하였고, 2002년에 한나라당에 복당하였다.[3]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 홍사덕 한나라당 원내총무, 박관용 국회의장, 조순형 새천년민주당 대표, 유용태 새천년민주당 원내대표[4] 1998년 한나라당 탈당 후 22년 만에 친정에 복귀한 셈이다.[5]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선거캠프 고문을 맡았던 인물이 다름아닌 박실 전 의원이었다.[6] 1998.9.8 한나라당 탈당, 새정치국민회의 입당[7]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8] 통합민주당과 신설 합당[9] 새정치국민회의 입당을 위한 탈당[10]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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