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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섬 내에 3개 마을이 있으며 섬의 동쪽에 1구 진리 마을이, 섬의 서쪽에 2구 돈목, 성촌 마을이 있다. 예전에는 섬 가운데에 대초, 남쪽 해변가에 예리, 선창구미라는 마을도 있었으나 예리마을에만 주민 몇명이 남아있을 뿐 나머지는 주민이 살지 않고 폐가와 생활 흔적들만이 남아있다.
섬의 중앙에 위치한 상산봉(上山峰, 361m)이 1구와 2구를 가르고 있는데 작은 산길로 연결되어 있으나 차도는 없다. 2구의 돈목, 성촌 마을도 해변을 따라 연결되어 있지만 마찬가지로 차도가 없다. 즉 섬에 있는 마을들이 차로는 이동할 수 없으며 오직 걸어서, 혹은 경운기 정도로만 이동할 수 있다.
섬의 중앙에 위치한 상산봉(上山峰, 361m)이 1구와 2구를 가르고 있는데 작은 산길로 연결되어 있으나 차도는 없다. 2구의 돈목, 성촌 마을도 해변을 따라 연결되어 있지만 마찬가지로 차도가 없다. 즉 섬에 있는 마을들이 차로는 이동할 수 없으며 오직 걸어서, 혹은 경운기 정도로만 이동할 수 있다.
북쪽 해안에는 사빈이 발달해 있고, 해안 곳곳의 돌출부에는 해식애가 형성되어 있다. 서쪽 해안은 절벽과 기암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 장관을 이룬다. 1월 평균기온은 2℃, 8월 평균기온은 26℃, 연강수량은 1,239㎜이다.
돈목해변 사구
돈목과 성촌 사이 돈목해변에 있는, '풍성사구(風成砂丘)'라고도 불리는 사구는 우이도만의 독특한 경관을 보여 주는 볼거리이다. 1990년대까지는 높이 80m, 아래 폭 20m, 위 폭 50m의 대형 사구였으나 높이가 점차 줄어들면서 현재는 50m 정도로 낮아졌다. 순수하게 모래로만 이뤄진 사구는 아니며 암반 언덕 위에 모래가 쌓인 것이다.
2005년까지는 모래 썰매를 타는 등 사구에 들어가 직접 즐길 수 있었으나 사구의 높이가 계속해서 낮아지자 이에 대한 원인을 찾기 위해 국립공원관리공단은 2006년 5월, 사구의 출입을 2011년까지 5년간 통제했다. 통제는 그 후로도 계속 연장되었고 2020년에도 재연장되어 현재 2025년 말까지 출입 통제 상태이다. 이 통제는 사구에 직접적인 출입만 막는 것이라 사구 바로 아래에서 관람은 가능하며 사구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사구 정상 주변까지 갈 수 있다.
풍성사구의 높이가 단기간에 낮아진 원인에 대한 추측은 다양한데 1차적으로는 사구에 출입이 가능하던 시절 많은 사람들이 사구에 올라가서 썰매를 타는 등 모래를 지속적으로 밀어낸 행위가 지목되고 있다. 바람이 아무리 모래를 공급해도 사람이 밀어내는 속도를 이기진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 연구자와 주민들은 외부인들에게 알려지기 전인 1990년대까지만 해도 소와 염소 수백 마리가 풀을 뜯기 위해 사구를 오르내렸지만 그때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며 오히려 사구 주변 나무를 땔깜으로 쓰기 위해 베지 않고, 방목도 하지 않으면서 잡목등이 자라 모래 공급을 막은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실제로 전성기 시절의 풍성사구를 보면 주변에 나무가 없는데 이와 연계해 우이도를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서 해제해달라는 건의를 하기도 했다.
영화 가을로의 촬영지 중 하나로 시작하자마자 이 사구가 나온다. 영화에서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는 내용으로 나온다.
우이도는 목포항과 도초도에서 갈 수 있으며 섬사랑6호가 하루 2항차로 운항한다.
도초도에서 06:20분에 출발하는 1항차는 07:20분에 2구 돈목마을에 도착한다. 그 후 동소우이도, 서소우이도를 거쳐 08:00에 1구 진리마을에 도착한다. 진리마을을 떠난 후 도초도에 08:40분에 도착하였다가 다시 목포로 떠나 11:00분에 목포항에 도착한다.
목포항에 도착한 섬사랑6호는 목포에서 11:40에 출발, 2항차를 시작한다. 2항차는 도초도를 경유하며 도초도에서 14:10분에 우이도로 출발해 15:00분에 1구 진리마을에 도착한 후 서소우이도, 동소우이도를 거쳐 2구 돈목마을에 15:50분에 도착한다. 돈목마을을 떠나면 도초도에 16:50분에 도착한 후 정박하였다가 다음 날 06:20분에 다시 우이도로 출발한다. 목포항에서 우이도항까지는 편도로 4시간이 소요된다.
섬의 서쪽인 2구 돈목마을에 돈목선착장이 소재하며 섬의 동쪽인 1구 진리마을에 우이도항이 소재한다. 우이도항은 현대화 시설 공사가 되어있으며 2구 돈목선착장은 아직 부두만 있는 간이 선착장이다.
도초도에서 06:20분에 출발하는 1항차는 07:20분에 2구 돈목마을에 도착한다. 그 후 동소우이도, 서소우이도를 거쳐 08:00에 1구 진리마을에 도착한다. 진리마을을 떠난 후 도초도에 08:40분에 도착하였다가 다시 목포로 떠나 11:00분에 목포항에 도착한다.
목포항에 도착한 섬사랑6호는 목포에서 11:40에 출발, 2항차를 시작한다. 2항차는 도초도를 경유하며 도초도에서 14:10분에 우이도로 출발해 15:00분에 1구 진리마을에 도착한 후 서소우이도, 동소우이도를 거쳐 2구 돈목마을에 15:50분에 도착한다. 돈목마을을 떠나면 도초도에 16:50분에 도착한 후 정박하였다가 다음 날 06:20분에 다시 우이도로 출발한다. 목포항에서 우이도항까지는 편도로 4시간이 소요된다.
섬의 서쪽인 2구 돈목마을에 돈목선착장이 소재하며 섬의 동쪽인 1구 진리마을에 우이도항이 소재한다. 우이도항은 현대화 시설 공사가 되어있으며 2구 돈목선착장은 아직 부두만 있는 간이 선착장이다.
2구 돈목, 성촌마을이 해변과 사구 등 자연 경관으로 알려져 있다면 1구 진리마을에는 역사 유물들이 있다. 진리마을에는 1745년에 만든 선창(船艙)이 있는데 이는 현존하는 선창들 중 가장 오래된 것이고 당시의 형태가 지금까지 보존된 유일한 것으로 전라도 기념물 제243호에 지정되어 있다.
정약전이 1801년부터 1806년까지 우이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1807년에 유배지를 흑산도로 옮겼다가 1814년에 정약용이 유배에서 풀려날 것 같다며 형을 만나러 가겠다고 하자 흑산도는 너무 머니 육지에서 그나마 가까운 우이도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여 1816년, 우이도로 다시 옮겼지만 그 해에 사망했다.
정약전은 우이도 귀양생활 전반기에 홍어상인 문순득과 교류했으며 정약전이 섬에 있을 때 세운 서당의 터, 홍어상인 문순득의 생가가 진리마을에 있다.
tvN 예능 섬총사 시즌1의 첫 번째 촬영지이다.
김대중의 최측근인 한화갑이 이 섬 출신이다. 예리마을 출신으로 추정된다.
정약전이 1801년부터 1806년까지 우이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1807년에 유배지를 흑산도로 옮겼다가 1814년에 정약용이 유배에서 풀려날 것 같다며 형을 만나러 가겠다고 하자 흑산도는 너무 머니 육지에서 그나마 가까운 우이도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여 1816년, 우이도로 다시 옮겼지만 그 해에 사망했다.
정약전은 우이도 귀양생활 전반기에 홍어상인 문순득과 교류했으며 정약전이 섬에 있을 때 세운 서당의 터, 홍어상인 문순득의 생가가 진리마을에 있다.
tvN 예능 섬총사 시즌1의 첫 번째 촬영지이다.
김대중의 최측근인 한화갑이 이 섬 출신이다. 예리마을 출신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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