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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4년에 신문사를 창업했는데 창설 이전에 신문을 팔 때 노래가락을 붙여 신문 기사를 읽어주면서(讀) 팔았다(賣)고 하여 요미우리라는 이름이 되었다. '가와라반'(瓦版)이라고도 하며 에도시대에 긴급한 소식을 기왓장이나 목판에 새겨서 군중들 앞에서 크게 읽어내려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역사가 제법 오래된 신문이지만 20세기 초반엔 아사히 신문이나 도쿄니치니치 신문의 위상에 밀려 2류 신문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경영난에 시달리다 좌익 성향의 아카(アカ)[2]를 채용하기도 했으나, 1924년 도쿄대학을 졸업한 경찰 관료 출신인 쇼리키 마쓰타로(正力松太郎, 1885-1969)[3]가 인수한 이후부터는 동시대의 많은 언론들처럼 친정부적인 논조로 변하게 된다. 새로운 사장으로 취임한 쇼리키는 당시 다른 신문사가 하지 않았던 라디오 방송란을 신문에 게재하거나 일요일 석간을 발행하는 등의 상술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수도권 내 최대의 전국지로 떠오르게 된다. 1945년 미군이 일본에 들어서자 한자를 폐지하자며 상용한자 제한과 약자 사용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21세기에 접어든 지금도 요미우리는 한자 사용에 부정적이다. 소위 '어려운 한자'는 쓰지 않고 히라가나나 카타카나로 표기하고 있다. 심지어 로마자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종전 직후인 1945년 9월에는 좌파 성향의 기자들이 "내부 민주화"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사장이었던 쇼리키는 면담을 거부했고 오히려 기자들 중 선두격인 5명을 퇴사시킨다. 그러나 일본공산당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노동 문제 등에서 전범들을 몰아내는데 몰두하던 연합군 최고사령부도 관심을 보이면서 연합군 최고사령부와 공산당 합작에 일이 커지고 쇼리키가 A급 전범으로 기소되면서 감방에 가는 바람에 경영진과 직원은 합의를 한다. 그러나 1948년에 이르러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중국공산당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다시 재무장하는 방침을 잡으면서 좌파 추방이 이뤄지고 요미우리 쟁의는 흐지부지된다. 그리고 이후 신임 사장은 좌파 성향의 직원들을 솎아내 퇴출시킨다.
상술했듯 기자와 사장이 대립하면서 좌익 성향의 기자들은 회사를 떠나게 되지만, 그래도 일단 1970년대까지는 자유주의 논조에 가까웠다. 1979년에 이르러 와타나베 쓰네오(渡邉恒雄, 1926-)[4]가 논설위원이 되면서 내부 정치적으로 좀 더 보수주의 성격과 친미 성향이 확립된다. 현재는 자유주의 성향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역사가 제법 오래된 신문이지만 20세기 초반엔 아사히 신문이나 도쿄니치니치 신문의 위상에 밀려 2류 신문 취급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경영난에 시달리다 좌익 성향의 아카(アカ)[2]를 채용하기도 했으나, 1924년 도쿄대학을 졸업한 경찰 관료 출신인 쇼리키 마쓰타로(正力松太郎, 1885-1969)[3]가 인수한 이후부터는 동시대의 많은 언론들처럼 친정부적인 논조로 변하게 된다. 새로운 사장으로 취임한 쇼리키는 당시 다른 신문사가 하지 않았던 라디오 방송란을 신문에 게재하거나 일요일 석간을 발행하는 등의 상술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수도권 내 최대의 전국지로 떠오르게 된다. 1945년 미군이 일본에 들어서자 한자를 폐지하자며 상용한자 제한과 약자 사용 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21세기에 접어든 지금도 요미우리는 한자 사용에 부정적이다. 소위 '어려운 한자'는 쓰지 않고 히라가나나 카타카나로 표기하고 있다. 심지어 로마자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종전 직후인 1945년 9월에는 좌파 성향의 기자들이 "내부 민주화"를 요구하기도 했지만 사장이었던 쇼리키는 면담을 거부했고 오히려 기자들 중 선두격인 5명을 퇴사시킨다. 그러나 일본공산당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노동 문제 등에서 전범들을 몰아내는데 몰두하던 연합군 최고사령부도 관심을 보이면서 연합군 최고사령부와 공산당 합작에 일이 커지고 쇼리키가 A급 전범으로 기소되면서 감방에 가는 바람에 경영진과 직원은 합의를 한다. 그러나 1948년에 이르러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중국공산당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을 다시 재무장하는 방침을 잡으면서 좌파 추방이 이뤄지고 요미우리 쟁의는 흐지부지된다. 그리고 이후 신임 사장은 좌파 성향의 직원들을 솎아내 퇴출시킨다.
상술했듯 기자와 사장이 대립하면서 좌익 성향의 기자들은 회사를 떠나게 되지만, 그래도 일단 1970년대까지는 자유주의 논조에 가까웠다. 1979년에 이르러 와타나베 쓰네오(渡邉恒雄, 1926-)[4]가 논설위원이 되면서 내부 정치적으로 좀 더 보수주의 성격과 친미 성향이 확립된다. 현재는 자유주의 성향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보수 우파 논조의 언론이며, 일본 자민당의 주장과, 자민당 내의 주류 보수파 다수의 의견을 대변한다. 이른바 일본의 보수본류 노선을 표방하는 논조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전반적으로 일본 내의 주류적 보수 우익의 의견을 취합, 혹은 가공해서 제공하는 편이다. 전반적으로 일본경제단체연합회 등 대기업 이익단체의 의견을 대변하고, 자위대의 군대 전환 등을 옹호하며, 노동운동, 탈원전 등에 반대할 때가 많다. 자민당 내의 보수 강경파인 보수방류, 혹은 넷 우익 같은 극단주의 진영과는 다소 거리를 두는데, 이는 보수 우파 진영이라도 극우 성향인 산케이 신문이 넷 우익 등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는 것과는 비교된다.
철저하게 미일관계를 중시하는 친미 노선인 만큼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는 비판적인 입장이며, 과거사 관련해서도 어느 정도 전향적인 성향을 띈다. 그렇다고 해서 진심어린 역사 반성을 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제2차 세계대전 전범 문제가 미국 정계 주류 사회에서도 매우 껄끄러워하는 문제이고, 야스쿠니 참배를 통해 이를 들추는 것 자체가 미일관계를 해치는 행위이기 때문.
와타나베 쓰네오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는 정치인들은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일본 우익들이 카미카제 특공대를 '천황을 위한 자발적인 순교자'로 미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한 사람이다.# 요미우리 신문과 사이가 괜찮았던 아베 신조조차 총리 퇴임 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하자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가 일본 내각의 야스쿠니 참배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자, 야스쿠니 신사 대신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을 국립 추도시설로 삼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철저하게 미일관계를 중시하는 친미 노선인 만큼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는 비판적인 입장이며, 과거사 관련해서도 어느 정도 전향적인 성향을 띈다. 그렇다고 해서 진심어린 역사 반성을 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어디까지나 제2차 세계대전 전범 문제가 미국 정계 주류 사회에서도 매우 껄끄러워하는 문제이고, 야스쿠니 참배를 통해 이를 들추는 것 자체가 미일관계를 해치는 행위이기 때문.
와타나베 쓰네오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는 정치인들은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일본 우익들이 카미카제 특공대를 '천황을 위한 자발적인 순교자'로 미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한 사람이다.# 요미우리 신문과 사이가 괜찮았던 아베 신조조차 총리 퇴임 후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를 하자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2013년에는 미국 국무장관 존 케리가 일본 내각의 야스쿠니 참배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자, 야스쿠니 신사 대신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을 국립 추도시설로 삼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과거 1970년대에는 한국의 군사정권에 꽤나 비판적인 논조도 보였다. 그래서인지 북한 관련 호의적인 기사[5]를 올렸던 1972년, 김대중 납치 사건 관련 의혹을 제기했던 1973년과 1977년 세 차례에 걸쳐 서울지국이 폐쇄되고 한국 내 배포가 금지된 적도 있었다.#1, #2
한국 민주당계 정당 진영에 대해 부정확한 표현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예를 들어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중도 리버럴(centrist-liberal) 정당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외신에서도 중도좌파(centre-left)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있어도[6] 좌파(left-wing)로 표현하는 경우는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7], 요미우리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을 중도좌파도 아닌 단순하게 좌파(左派)로 표현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가령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좌파 계열 여당"#이라고 표현한다거나, 윤석열 정부 시기에는 "좌파계 제1야당"이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물론 이런 표현이 그냥 단순한 줄임말일 수도 있으나,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일본 독자가 보면 한국 민주당계 정당이 북미식 리버럴 정당이 아닌 유럽식 사민주의 정당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는 표현이다. 혹자는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의 강경 대일 외교정책 등으로 인한 편견이 내재된 것 아니냔 주장도 한다. 한국 일각에서 일본 자민당의 내치 정책보다는 대한 외교 스탠스만을 가지고 극우정당으로 인식하는 것과도 비슷하다는 것.
2023년 6월에는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유언비어로 조선인이 학살된 사실을 신문 1면에 일본 정부의 공식 보고서를 인용해 이례적으로 보도했다.# 상기했듯 쇼리키 마쓰타로가 이 사태의 장본인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꽤 아이러니한 일이다. 다만 이와 반대로 관동대지진 100주기를 앞둔 8월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은 공식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학살을 부정했다.#
2023년 10월에는 요미우리의 오이카와 회장이 한국 SBS와 인터뷰를 했다.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서는 "A급 전범과 일반 피해자가 같이 합사된 곳에 참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라고 말했고, 간토대학살에 대해서도 일본인들이 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정상회담 직전에 윤석열 대통령의 인터뷰를 9개 면에 걸쳐 크게 보도한 것에 대해서는 한국의 대일관계 개선 노력에 호응해야 한다는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한국 민주당계 정당 진영에 대해 부정확한 표현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예를 들어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는 중도 리버럴(centrist-liberal) 정당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외신에서도 중도좌파(centre-left)라고 표현하는 경우는 있어도[6] 좌파(left-wing)로 표현하는 경우는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7], 요미우리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을 중도좌파도 아닌 단순하게 좌파(左派)로 표현하는 경우가 제법 있다. 가령 문재인 정부 시기에는 "좌파 계열 여당"#이라고 표현한다거나, 윤석열 정부 시기에는 "좌파계 제1야당"이라는 식으로 표현한다.# 물론 이런 표현이 그냥 단순한 줄임말일 수도 있으나, 기본적인 지식이 없는 일본 독자가 보면 한국 민주당계 정당이 북미식 리버럴 정당이 아닌 유럽식 사민주의 정당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는 표현이다. 혹자는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당의 강경 대일 외교정책 등으로 인한 편견이 내재된 것 아니냔 주장도 한다. 한국 일각에서 일본 자민당의 내치 정책보다는 대한 외교 스탠스만을 가지고 극우정당으로 인식하는 것과도 비슷하다는 것.
2023년 6월에는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유언비어로 조선인이 학살된 사실을 신문 1면에 일본 정부의 공식 보고서를 인용해 이례적으로 보도했다.# 상기했듯 쇼리키 마쓰타로가 이 사태의 장본인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꽤 아이러니한 일이다. 다만 이와 반대로 관동대지진 100주기를 앞둔 8월 마쓰노 히로카즈 일본 관방장관은 공식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학살을 부정했다.#
2023년 10월에는 요미우리의 오이카와 회장이 한국 SBS와 인터뷰를 했다.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서는 "A급 전범과 일반 피해자가 같이 합사된 곳에 참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라고 말했고, 간토대학살에 대해서도 일본인들이 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일정상회담 직전에 윤석열 대통령의 인터뷰를 9개 면에 걸쳐 크게 보도한 것에 대해서는 한국의 대일관계 개선 노력에 호응해야 한다는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 프로 스포츠에서 지역명을 붙이는 것을 상당히 싫어한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보듯 자이언츠 원정 유니폼에 도쿄를 빼버려 오히려 자이언츠 팬들에게 욕을 먹은 사례는[8] 매우 유명하다. J리그도 마찬가지인데, 1993년 J리그 출범시 요미우리가 운영하던 요미우리 축구단의 팀명에서 요미우리 대신 지역명으로 바꾸라고 하자[9] 이에 강력히 반대하다가 1999년 J리그에서 손을 떼버린 사례를 보면 확실하다. 그런데 여기에는 납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는데 대한민국 프로야구단 비롯한 대부분의 프로스포츠 구단들처럼 요미우리 역시 운영비 적자를 모기업 홍보비 내지 광고비로 보전하기 때문에 기업명을 붙이는 것이 상당히 신경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일본 프로야구와 달리 J리그에서 팀명에 기업명 사용이 중지되자 누적되는 적자를 이기지 못 하고 철수하였다. 이로 인해 피해를 본 팀이 바로 도쿄 베르디로, 요미우리 산하이던 시절에는 손꼽히는 명문 구단이었으나 요미우리에서 손을 뗀 후에는 최약체로 전락한 상황이다.
- 한국일보와 1960년 이후 제휴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 신문발행부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도 자본력 자체는 꽤 건실한 편이라 신문 자체의 매출액만으로도 상당히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10] 한국의 주요 신문사들이 한창 신문시장이 호황이었던 1990년대에도 매출액의 대다수를 광고비로 채운데 반해, 요미우리 신문은 매출액의 대다수를 구독료로 채운다. 이외에도 사업 다각화를 위해 구독자에게 상세한 의료 정보를 제공하는 요미닥터(yomiDr) 서비스, 조간 수송을 마치고 돌아오는 화물·항공에 지역 특산품 등을 실어 매장에 운송해주는 '에코 다이렉트 메일'등 다양한 신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 바둑 분야에서, 1976년 창설된 일본 기성전(Kisei, 키세이)을 매년 후원하고 있다. 일본 국내기전이다. 요미우리신문 단독 후원으로 우승상금이 5,000만 엔(약 5억~5억 5,000만원 정도). 전 세계 모든 바둑 대회에서 일본 기성전 이상의 우승상금을 주는 대회는 없다. 국제대회인 응씨배도 40만 달러로 기성전에 못미치며, 제2의 응씨배라 불리는 신아오배도 32만 달러밖에 안 된다. 총 상금은 거의 2억 엔에 가까운 그야말로 돈만 따지면 세계 최대의 기전. 한국은 언론사가 대회를 주최할 경우 후원사가 끊기면 바둑 대회를 없애는 경우가 많은데, 요미우리 신문은 자체적으로 돈이 제법 많은 모양.
- 도서관 전쟁 만화판 2권에서 등장한다.
- HBO Max 오리지널 드라마 도쿄 바이스(Tokyo Vice)에서 주인공이 입사하는 메이조(Meicho) 신문은 요미우리 신문을 모델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은 일본어 위키피디아의 요미우리그룹 본사 항목의 대주주의 현황란에서 가져왔다.
2012년 3월 31일 시점
1. 요미우리 신문 그룹 본사임원지주회(読売新聞グループ本社役員持株会)[11] 31.69%
2. 공익재단법인 쇼리키 후생회(公益財団法人正力厚生会)[12] 20.96%
3. 사단복지법인 요미우리 빛과 사랑의 사업단(社会福祉法人読売光と愛の事業団)[13] 9.78%
4. 세키네 다츠오関根達雄(正力松太郎の孫))[14] 7.83%
5. 학교법인 요미우리 이공학원(学校法人読売理工学院)[15] 6.03%
6. 쇼리키 겐이치로(正力源一郎(正力松太郎の孫、正力亨の子))[16] 4.97%
7. 쇼리키 미오(正力美緒)[17] 4.94%
8. 고바야시 우메코(小林梅子(正力松太郎の娘、小林與三次元社長の妻))[18] 4.25%
9. 고지마 아키(小島あき) 2.77%
10. 쇼리키 미네코(正力峰子)[19] 1.96%
주식 지분 구성을 보면 알겠지만 대주주가 전부 쇼리키 가문의 일원 또는 요미우리 신문 산하의 재단, 또는 임원진으로 요미우리 신문의 오너는 쇼리키 가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012년 3월 31일 시점
1. 요미우리 신문 그룹 본사임원지주회(読売新聞グループ本社役員持株会)[11] 31.69%
2. 공익재단법인 쇼리키 후생회(公益財団法人正力厚生会)[12] 20.96%
3. 사단복지법인 요미우리 빛과 사랑의 사업단(社会福祉法人読売光と愛の事業団)[13] 9.78%
4. 세키네 다츠오関根達雄(正力松太郎の孫))[14] 7.83%
5. 학교법인 요미우리 이공학원(学校法人読売理工学院)[15] 6.03%
6. 쇼리키 겐이치로(正力源一郎(正力松太郎の孫、正力亨の子))[16] 4.97%
7. 쇼리키 미오(正力美緒)[17] 4.94%
8. 고바야시 우메코(小林梅子(正力松太郎の娘、小林與三次元社長の妻))[18] 4.25%
9. 고지마 아키(小島あき) 2.77%
10. 쇼리키 미네코(正力峰子)[19] 1.96%
주식 지분 구성을 보면 알겠지만 대주주가 전부 쇼리키 가문의 일원 또는 요미우리 신문 산하의 재단, 또는 임원진으로 요미우리 신문의 오너는 쇼리키 가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1] 한때는 러시아 신문인 프라우다가 발행부수가 더 많은 적도 있었지만, 소련 붕괴 이후에 발행부수가 급감하면서 요미우리 신문이 1위를 차지했다.[2] 한국어로 굳이 번역하자면 빨갱이에 해당된다.[3] 경찰 간부로 재직하던 당시 관동 대지진이 일어나자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많은 조선인들이 학살당하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후에 요미우리 신문을 경영하며 1934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직업 야구단을 창단하는 등 일본프로야구 성립에 기여를 많이 했는데 일본프로야구 최고권위의 상 이름이 쇼리키 마쓰타로상인 것에서 그의 입김을 짐작할 수 있다. 2차대전 이후 전범으로 기소돼 스가모 교도소에 들어갔다가 1947년에 공직추방의 형태로 석방됐다. 그후 일본 최초의 상업방송인 닛폰 방송을 운영하며 원자력의 친환경적인 이미지를 홍보하며 일본에 원전을 들여오는데 힘을 쓰는 공로로 '일본 원자력의 아버지’로 알려졌는데 일본에 미국 원자력을 수출하려는 CIA와 협력했다는 설이 있다.[4] 자기 입으로 스스로를 독재자라고 하는 사람이다. 도쿄대학 문학부 출신으로 정계와 재계에 고루 연이 닿은 사람이다. 또한 일부 일본 야구 팬들(특히 안티 자이언츠)에게는 일본 야구계의 꼰대로 매우 악명 높은데, 요미우리 신문의 대표라는 지위를 무기로 일본야구기구(일본프로야구 운영기구)의 총재보다도 사실상 위에 군림하여 리그의 운영을 좌지우지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허나 후술되어있듯 그조차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맹렬히 비판했다.[5] 단순히 호의적인 기사라기에는 선을 많이 넘긴 했다.#[6] 일본 위키백과도 중도좌파로 표기하고 있다.[7] 진짜 사민주의 정당인 정의당조차 엄격히 따지면 중도좌파~좌파 수준이지 이론적으로 완전한 좌파라고 보긴 어렵다.[8] 정확히는 YOMIURI를 앞에 넣은 것. 12구단 골수팬들은 팀을 요미우리라고 줄여 부르는 것을 비하 명칭으로 인식한다. 그렇다고 요미우리 자체를 없앤 건 아니고 팔에 작게나마 YOMIURI가 적혀있다.[9] 다만 J리그 수뇌부가 요미우리가 기업명을 사용하고 이를 통해 막대한 투자로 슈퍼클럽이 되는 것을 반대했던 당시 의사결정에 대해 일본 축구팬들은 요미우리가 언론 장악력으로 리그 입김을 거세게 불어넣는 수도의 슈퍼 클럽이 되어 리그를 지배하면 유럽 대부분의 리그처럼 몇개의 슈퍼구단이 지배하는 그런 리그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긍정론이 존재하지만, 근래 J리그 수뇌부가 J리그 부흥의 마지막 한큐로 스타들이 즐비한 도쿄 연고의 슈퍼클럽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을 보면 그리고 전세계 모든 프로스포츠 리그에 자연스럽게 리그 전체 인기를 좌우하는 슈퍼클럽이 출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이것을 인위적으로 막아서 결국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몇십년 후에 힘들게 돌아가게 만든 어리석은 결정이었다는 비판론도 존재한다.[10] 다만 2020년 기준 일본 신문사 매출 순위 1위는 기존 1위이던 아사히 신문과 요미우리 등을 제친 니혼게이자이 신문이다. 아무래도 전문 경제지 특성상 전 세계를 상대로 영업할 수 있고 구매력이 높은 유료 구독자 등이 많기 때문인듯.[11] 그룹이사들이 보유한 주식을 관리한다.[12] 암치료재단을 운영하고 있다.[13] 요양원, 각막기증재단, 장학재단 등을 운영하고 있다.[14] 창업주 쇼리키 마쓰타로의 외손자[15] 전문대학을 운영하고 있다.[16] 창업주 쇼리키 마쓰타로의 손자, 쇼리키 쿄우의 아들[17] 쇼리키 마쓰타로의 손녀, 쇼리키 쿄우의 딸[18] 창업주 쇼리키 마쓰타로의 딸[19] 창업주 쇼리키 마쓰타로의 며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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