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웬리 함대 Yang Fleet | ヤン艦隊 | |||
함대 사령관 양 웬리 원수 | |||
관련 문서: 자유행성동맹군
Yang Fleet/ヤン艦隊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군사조직. 사실 양 함대는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 시절에 붙인 별칭으로, 정식 명칭은 자유행성동맹군 13함대 → 자유행성동맹군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 → (양 비정규함대)[2] → 엘 파실 독립정부 혁명예비군 → 이제르론 혁명군 순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제국군은 계속해서 양 함대라고 칭했고,[3] 동맹 내부에서도 편의상 양 함대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자유행성동맹의 일개 부대로 시작했으나, 동맹이 패망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민주공화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제국에게 최후까지 저항하였다.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군사조직. 사실 양 함대는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 시절에 붙인 별칭으로, 정식 명칭은 자유행성동맹군 13함대 → 자유행성동맹군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 → (양 비정규함대)[2] → 엘 파실 독립정부 혁명예비군 → 이제르론 혁명군 순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제국군은 계속해서 양 함대라고 칭했고,[3] 동맹 내부에서도 편의상 양 함대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았다. 자유행성동맹의 일개 부대로 시작했으나, 동맹이 패망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민주공화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제국에게 최후까지 저항하였다.
양 함대는 통합작전본부장 시드니 시톨레 원수의 이제르론 요새 공략을 위해 일시적으로 편성된 임시함대로 탄생하였다. 국방위원장 욥 트뤼니히트을 견제하던 시톨레는 통합작전본부장 임기가 끝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재선과 발언권 강화를 노리고 아스타테 회전에서 참패하여 심각한 타격을 입은 제4함대와 제6함대를 통합하고 신병까지 더해 제13함대를 창설하고, 자신이 예전부터 눈여겨본 양 웬리 소장을 초대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이제르론 요새 공략을 추진했다.
문제는 이렇게까지 끌어모은 13함대의 규모는 함정 6,400척, 장병 70만 명이라는 정규 함대의 절반 이하에 불과한 반쪽짜리 함대. 시톨레 원수는 13함대를 양 웬리 소장에게 맡겨 난공불락의 이제르론 요새를 함락하라는 불가능한 임무를 하달하지만, 양 웬리 소장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아군의 손실 없이 이제르론 요새를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제국군으로 위장한 특작부대를 잠입시켜 요새 사령부를 제압하고, 주둔함대가 돌아오기 전에 전 함대가 이제르론에 입항하여 요새를 무혈 접수한 것이다. 이 활약으로 임시함대에 불과한 13함대는 정규함대로 승격되었고 아스타테에서 사령관 파에타 중장이 중상을 입어 제 전력을 내지 못하던 2함대를 합병하여 제대로 된 함대 전력을 갖추게 된다.
이후 제국령 침공작전 시기에는 2진에 포함되어 작전에 투입, 다른 함대가 처참하게 패퇴하는 상황에서 제국군 칼 구스타프 켐프 함대를 상대로 승전을 거두고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제독이 이끄는 함대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전력의 9할을 유지한 채로 암릿처로 후퇴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암릿처 회전에서 다른 모든 함대들이 처절하게 무너지는 가운데에서도 볼프강 미터마이어 함대를 격퇴하고 슈바르츠 란첸라이터를 궤멸시키는 공적을 세웠고, 최종적으로 장병 생존율 70% 이상이라는 경이로운 결과를 이루어내기에 이른다.
동맹 정규군이 사실상 전멸하고 이제르론 요새가 동맹의 존립을 좌우하는 최중요 거점으로 떠오르자 13함대는 사령관의 승진과 함께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로 재편성, 살아남은 10함대 병력이 통합되며 최전선에서 제국군을 막아세우는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함대의 정식 명칭보다 '양 함대'라는 별칭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의 일이다.
문제는 이렇게까지 끌어모은 13함대의 규모는 함정 6,400척, 장병 70만 명이라는 정규 함대의 절반 이하에 불과한 반쪽짜리 함대. 시톨레 원수는 13함대를 양 웬리 소장에게 맡겨 난공불락의 이제르론 요새를 함락하라는 불가능한 임무를 하달하지만, 양 웬리 소장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아군의 손실 없이 이제르론 요새를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제국군으로 위장한 특작부대를 잠입시켜 요새 사령부를 제압하고, 주둔함대가 돌아오기 전에 전 함대가 이제르론에 입항하여 요새를 무혈 접수한 것이다. 이 활약으로 임시함대에 불과한 13함대는 정규함대로 승격되었고 아스타테에서 사령관 파에타 중장이 중상을 입어 제 전력을 내지 못하던 2함대를 합병하여 제대로 된 함대 전력을 갖추게 된다.
이후 제국령 침공작전 시기에는 2진에 포함되어 작전에 투입, 다른 함대가 처참하게 패퇴하는 상황에서 제국군 칼 구스타프 켐프 함대를 상대로 승전을 거두고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 제독이 이끄는 함대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전력의 9할을 유지한 채로 암릿처로 후퇴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암릿처 회전에서 다른 모든 함대들이 처절하게 무너지는 가운데에서도 볼프강 미터마이어 함대를 격퇴하고 슈바르츠 란첸라이터를 궤멸시키는 공적을 세웠고, 최종적으로 장병 생존율 70% 이상이라는 경이로운 결과를 이루어내기에 이른다.
동맹 정규군이 사실상 전멸하고 이제르론 요새가 동맹의 존립을 좌우하는 최중요 거점으로 떠오르자 13함대는 사령관의 승진과 함께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로 재편성, 살아남은 10함대 병력이 통합되며 최전선에서 제국군을 막아세우는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게 된다. 함대의 정식 명칭보다 '양 함대'라는 별칭이 일상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부터의 일이다.
제국령 침공작전 직후 제국은 프리드리히 4세 사후 제위 계승분쟁이 벌어져 동맹 원정을 벌일 여건이 안 되었고, 동맹은 기존 전력을 복구하는 것도 벅찼기 때문에 한동안은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명으로 잠입한 아서 린치로 인해 일부 군 간부들이 구국군사회의를 전복하여 민간 정부를 무너뜨렸다. 그러자 양 함대는 사령관 양 웬리의 명에 따라 쿠데타 참여를 거부하고 헌정질서 복원을 명분으로 구국군사회의 토벌을 선언했다.
양 함대는 가장 먼저 반란군이 점거한 샴풀 행성을 해방하고, 도리아 성역에서 쿠데타를 지지한 제11함대를 격파하였으며 최종적으로 하이네센을 지키는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마저 격파하여 쿠데타군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구국군사회의가 무너지자 양 함대는 아직 남은 지방의 반란군에게 항복을 받아낸 뒤 임지인 이제르론 요새로 복귀하였다. 이때 은하제국에서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제독이 동맹으로 망명하여 객원제독 칭호를 받고 양 웬리의 참모가 되었다.
쿠데타 직후 동맹군은 군부대를 재건할 인적자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유일한 최정예 함대였던 양 함대로부터 숙련병을 차출하고, 그 빈자리를 신병으로 메웠기 때문에 숫자는 비슷해도 전력이 약화되었다. 이 때문에 회랑의 조우전에서 신병의 부족한 숙련도 때문에 제국군 아이헨도르프 함대를 상대로 고전했지만 양 웬리가 최대한 많은 증원군을 전선에 투입하여 아이헨도르프 함대를 쫓아냈다. 한편 동맹 정부는 양 웬리가 훗날의 위험이 될 거라고 판단, 페잔 자치령의 참소를 받아들여 양 제독을 전선에서 불러내 사문회에 회부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때 제국군이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이끌고 동맹을 침공했다. 사령관 대리 카젤느는 후방에서 서류업무나 보던 군사행정가라서 전투 지휘에 익숙하지 못했고, 간부들이 하나같이 비슷한 지위에 있어서 명확한 지휘관가 없었다. 결국 카젤느를 필두로 집단지대체제를 구성하여 제국군의 침공에 대응했지만 제국군의 허를 찌르는 전법에 요새가 함락될 위기에 몰린다. 그러나 제국에서 망명한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객원제독이 함대 지휘권을 양도받아 나이트하르트 뮐러 제독을 격파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난다. 이후 양 웬리가 사문회에서 풀려나 이제르론으로 돌아가자 주둔함대를 내보내 제국군을 격파하고, 나아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도 양 웬리의 작전에 따라 격파하였다.
이후 다시 평화가 찾아오지만 그것도 은하제국 정통정부 수립 선언과 제국의 선전포고로 깨졌다. 동맹 정부는 양 웬리의 사병화를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메르카츠와 율리안 민츠를 각각 정통정부 군무상서와 페잔 주재무관으로 발령보냈고 두 사람은 이제르론을 떠나게 된다. 몇 달 뒤 오스카 폰 로이엔탈 제독의 대함대가 이제르론을 침공했고 양 웬리는 훌륭하게 막아내었지만 그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했다.
양 함대가 로이엔탈과 무의미한 공방을 주고받을 때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지휘하는 제국군 본대는 페잔 자치령을 급습하여 자치정부를 무너뜨리고 페잔 회랑을 장악했다. 이제르론 요새는 전략적 가치를 잃었고 동맹령에 남은 함대는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에서 참패하여 괴멸하였다. 이렇게 되자 동맹에 멀쩡한 정규함대는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자 양 웬리는 동맹령에 널리 퍼진 84개 보급기지를 자유롭게 이용하여, 특정한 근거지를 두지 않고 보급기지를 전전하며 제국군을 공격하는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제국군 수송선단이 첫 제물이 되었고 슈타인메츠, 렌넨캄프, 바렌 함대가 양 웬리의 속임수에 휘말려 참패하였다. 분노한 라인하르트는 버밀리온 성역을 전장으로 1:1 대결에 나섰고, 양 웬리도 이에 호응하여 근거지 루드밀라를 떠나 진군했다. 이때 제14, 제15함대가 양 함대에 합류하여 워프 가능한 함정이 전부 양 함대에 집결했기 때문에 양 함대가 사실상 동맹군 전체가 되어버렸다.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양 함대는 라인하르트 함대를 격파했고, 구원하러 온 뮐러 함대마저 박살내어 라인하르트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 사이 미터마이어, 로이엔탈 함대가 하이네센을 공격했고, 욥 트뤼니히트가 정전 명령을 내리면서 동맹은 패배했다. 양 함대 내부에서는 정부의 정전 명령을 거부하자는 주장이 터져나왔지만 양 웬리는 이를 거부하고 전투를 중단했다.
바라트 화약 체결 이후 양 함대는 해체되었으며, 주요 간부들은 퇴역하거나 변경의 한직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퇴역한 양 함대 간부들은 은하제국 고등판무관부와 동맹정부의 감시를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양 함대는 가장 먼저 반란군이 점거한 샴풀 행성을 해방하고, 도리아 성역에서 쿠데타를 지지한 제11함대를 격파하였으며 최종적으로 하이네센을 지키는 아르테미스의 목걸이마저 격파하여 쿠데타군의 항복을 받아내었다. 구국군사회의가 무너지자 양 함대는 아직 남은 지방의 반란군에게 항복을 받아낸 뒤 임지인 이제르론 요새로 복귀하였다. 이때 은하제국에서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제독이 동맹으로 망명하여 객원제독 칭호를 받고 양 웬리의 참모가 되었다.
쿠데타 직후 동맹군은 군부대를 재건할 인적자원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유일한 최정예 함대였던 양 함대로부터 숙련병을 차출하고, 그 빈자리를 신병으로 메웠기 때문에 숫자는 비슷해도 전력이 약화되었다. 이 때문에 회랑의 조우전에서 신병의 부족한 숙련도 때문에 제국군 아이헨도르프 함대를 상대로 고전했지만 양 웬리가 최대한 많은 증원군을 전선에 투입하여 아이헨도르프 함대를 쫓아냈다. 한편 동맹 정부는 양 웬리가 훗날의 위험이 될 거라고 판단, 페잔 자치령의 참소를 받아들여 양 제독을 전선에서 불러내 사문회에 회부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때 제국군이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를 이끌고 동맹을 침공했다. 사령관 대리 카젤느는 후방에서 서류업무나 보던 군사행정가라서 전투 지휘에 익숙하지 못했고, 간부들이 하나같이 비슷한 지위에 있어서 명확한 지휘관가 없었다. 결국 카젤느를 필두로 집단지대체제를 구성하여 제국군의 침공에 대응했지만 제국군의 허를 찌르는 전법에 요새가 함락될 위기에 몰린다. 그러나 제국에서 망명한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객원제독이 함대 지휘권을 양도받아 나이트하르트 뮐러 제독을 격파함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난다. 이후 양 웬리가 사문회에서 풀려나 이제르론으로 돌아가자 주둔함대를 내보내 제국군을 격파하고, 나아가 가이에스부르크 요새도 양 웬리의 작전에 따라 격파하였다.
이후 다시 평화가 찾아오지만 그것도 은하제국 정통정부 수립 선언과 제국의 선전포고로 깨졌다. 동맹 정부는 양 웬리의 사병화를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메르카츠와 율리안 민츠를 각각 정통정부 군무상서와 페잔 주재무관으로 발령보냈고 두 사람은 이제르론을 떠나게 된다. 몇 달 뒤 오스카 폰 로이엔탈 제독의 대함대가 이제르론을 침공했고 양 웬리는 훌륭하게 막아내었지만 그 이상의 역할은 하지 못했다.
양 함대가 로이엔탈과 무의미한 공방을 주고받을 때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지휘하는 제국군 본대는 페잔 자치령을 급습하여 자치정부를 무너뜨리고 페잔 회랑을 장악했다. 이제르론 요새는 전략적 가치를 잃었고 동맹령에 남은 함대는 제1차 란테마리오 성역 회전에서 참패하여 괴멸하였다. 이렇게 되자 동맹에 멀쩡한 정규함대는 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자 양 웬리는 동맹령에 널리 퍼진 84개 보급기지를 자유롭게 이용하여, 특정한 근거지를 두지 않고 보급기지를 전전하며 제국군을 공격하는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제국군 수송선단이 첫 제물이 되었고 슈타인메츠, 렌넨캄프, 바렌 함대가 양 웬리의 속임수에 휘말려 참패하였다. 분노한 라인하르트는 버밀리온 성역을 전장으로 1:1 대결에 나섰고, 양 웬리도 이에 호응하여 근거지 루드밀라를 떠나 진군했다. 이때 제14, 제15함대가 양 함대에 합류하여 워프 가능한 함정이 전부 양 함대에 집결했기 때문에 양 함대가 사실상 동맹군 전체가 되어버렸다.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양 함대는 라인하르트 함대를 격파했고, 구원하러 온 뮐러 함대마저 박살내어 라인하르트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 사이 미터마이어, 로이엔탈 함대가 하이네센을 공격했고, 욥 트뤼니히트가 정전 명령을 내리면서 동맹은 패배했다. 양 함대 내부에서는 정부의 정전 명령을 거부하자는 주장이 터져나왔지만 양 웬리는 이를 거부하고 전투를 중단했다.
바라트 화약 체결 이후 양 함대는 해체되었으며, 주요 간부들은 퇴역하거나 변경의 한직으로 보내졌다. 그리고 퇴역한 양 함대 간부들은 은하제국 고등판무관부와 동맹정부의 감시를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항복할 때, 양은 동맹이 패배한 이상 예전만금 강대한 무력을 보유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판단하여 자기 휘하에 있는 전력 중 가장 정예를 숨겨 후일을 도모하려고 했다. 양은 움직이는 셔우드 숲에 빗대면서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 메르카츠 제독에게 비밀 함대를 이끌어 줄 것을 요청했다. 올리비에 포플랭과 카스퍼 린츠가 여기에 동참했고, 이들은 시바, 카산드라, 율리시스 등 전함 8척, 우주항모 4척, 순항함 9척, 구축함 15척, 무장수송함 22척, 공작함 2척, 장병 11,820명과 함께 파괴와 전사로 위장된 채 버밀리온 성역을 빠져나갔다.
이들은 버려진 동맹군 부유 보급기지 다얀 칸에 숨어있었으나, 불효자호를 타고 지구를 향하던 율리안 민츠가 양의 전언을 전하자 행동을 개시했다. 그 와중에 포플랭은 메르카츠의 허가를 받아 지구로 떠나는 율리안 일행에 합류하여 지구로 갔다.
6월 16일, 비밀 함대는 레사비크 성역에서 자침 작업 중이던 동맹군을 습격했다. 함정 500여척이 강탈당했고 자침 작업 중이던 장병 4,000명이 메르카츠에 호응해 근무지를 이탈하고 메르카츠에 합류했다. 군함을 강탈한 메르카츠 제독은 다얀 칸으로 들어와 조용히 있었으나, 이 일이 메르카츠 제독이 살아있다는 카더라 통신과 결합하면서 본의 아니게 양 웬리를 위기에 몰아넣었다. 세간에 돌던 헛소문에 동맹 권력자들의 중상모략과 렌넨캄프 상급대장의 열등감, 레벨로의 눈치보기가 겹쳐지면서 양 웬리는 동맹 정부에 의해 체포되었고 모살당할 위기에 놓인다. 그러자 양 웬리의 부하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행동을 개시하여 양 웬리를 구출하고 레벨로를 납치하였다.
양 웬리는 납치된 레벨로와 협상하여 하이네센을 떠나는 대신 정부가 추격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얻어냈고, 납치한 헬무트 렌넨캄프의 신병을 무기삼아 정부를 협박하여 순항함 레다 II호를 얻어내어 수도를 탈출했다. 이들은 메르카츠의 비밀 함대에 합류했지만 무라이, 에드윈 피셔, 표도르 파트리체프는 수도가 아니라 변경에 있어서 합류하지 못했다.
이들은 버려진 동맹군 부유 보급기지 다얀 칸에 숨어있었으나, 불효자호를 타고 지구를 향하던 율리안 민츠가 양의 전언을 전하자 행동을 개시했다. 그 와중에 포플랭은 메르카츠의 허가를 받아 지구로 떠나는 율리안 일행에 합류하여 지구로 갔다.
6월 16일, 비밀 함대는 레사비크 성역에서 자침 작업 중이던 동맹군을 습격했다. 함정 500여척이 강탈당했고 자침 작업 중이던 장병 4,000명이 메르카츠에 호응해 근무지를 이탈하고 메르카츠에 합류했다. 군함을 강탈한 메르카츠 제독은 다얀 칸으로 들어와 조용히 있었으나, 이 일이 메르카츠 제독이 살아있다는 카더라 통신과 결합하면서 본의 아니게 양 웬리를 위기에 몰아넣었다. 세간에 돌던 헛소문에 동맹 권력자들의 중상모략과 렌넨캄프 상급대장의 열등감, 레벨로의 눈치보기가 겹쳐지면서 양 웬리는 동맹 정부에 의해 체포되었고 모살당할 위기에 놓인다. 그러자 양 웬리의 부하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행동을 개시하여 양 웬리를 구출하고 레벨로를 납치하였다.
양 웬리는 납치된 레벨로와 협상하여 하이네센을 떠나는 대신 정부가 추격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얻어냈고, 납치한 헬무트 렌넨캄프의 신병을 무기삼아 정부를 협박하여 순항함 레다 II호를 얻어내어 수도를 탈출했다. 이들은 메르카츠의 비밀 함대에 합류했지만 무라이, 에드윈 피셔, 표도르 파트리체프는 수도가 아니라 변경에 있어서 합류하지 못했다.
메르카츠 제독과 합류한 양은 함대 내부의 공모 중 가장 덜 튀는 것을 골라 함대의 이름을 '양 비정규함대'로 붙였다. 후세에는 '양 웬리 독립함대'라고 불리며, 그들의 적대자들은 '떠돌이 사병집단'으로 폄하했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양 웬리의 기함이 율리시스로 변경되었다.
일단 반제국과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걸었으나, 함대의 무력은 굉장히 처참한 수준이었다. 병력은 함정 약 600척, 장병 약 16,000명에 불과했으며 근거지는 버려진 보급기지 다얀 칸이었고, 이제는 누구의 정치적 보호도 받지 못했다. 거기에다 동맹정부는 양 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우주력 800년 8월 13일, 엘 파실 독립정부가 동맹정부를 상대로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더스티 아텐보로와 발터 폰 쇤코프는 독립정부에 합류하자고 목소리를 높였고 양 본인도 이를 고려했으나, 엘 파실에 합류했다가는 동맹정부가 공황에 빠져 은하제국과 협력하여 공격할 가능성과 제국군 침공 시 동맹정부가 군사 전권을 넘기는 조건으로[8] 자신을 부를 가능성을 고려해 당장 합류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춘우 지엔은 대놓고 양 웬리가 아군으로 복귀한 뒤에야 '대리'를 떼겠다고 선언했으나 레벨로는 사건의 진상을 숨기고 양 웬리를 잡으려는 데만 열중했다. 그리하여 수많은 동맹군이 영문도 모른 채 동맹령 어딘가에 숨어 있는 양 함대를 찾아다녔으나, 효과는 거의 없었다. 딱 한 번 순찰 중이던 함정이 양 비정규함대를 발견했으나, 양 본인이 통신 스크린에 나타나 정부의 특명을 받고 극비리에 활동 중이라고 둘러대자 모두 감동하여 체포는커녕 경례로 배웅해주었다.[9]
그렇게 별다른 활동 없이 잠항만 하고 있었으나, 우주력 799년 11월 10일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선전포고는 양 웬리가 동맹으로 돌아갈 길을 막아버렸다. 라인하르트는 제국 정부의 불명예를 무릅쓰고 사건의 진상을 공표하고 사과하는 한편, 동맹정부의 추태를 거론하며 선전포고 한 것이다. 무력한 동맹정부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제국군의 선전포고를 허용했으며 양은 동맹으로 돌아갈 길이 사라졌다. 그 때문에 양은 동맹과 제국이 아닌 제3세력을 구축해야 했다.
그리고 결국 잠항을 위한 자금이 떨어져 양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양과 카젤느는 페잔 상인들에 자금을 빌리는 방법을 생각해보았으나 페잔인들이 유랑 사병집단인 양 함대에게 투자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스운 것이었고, 결국 이 유랑 사병집단이 제국을 타도할 가능성을 보이기 위해 이제르론 요새를 재탈취하는 방안의 논의되었다. 이렇게 되어, 우주력 799년 12월 9일 양 비정규함대는 엘 파실 독립정부에 투신했다. 독립정부 수장 프란체스크 롬스키 주석은 양 비정규함대의 방문을 환영했고 엘 파실의 신문들은 일제히 양 웬리가 엘 파실에 투신했다는 사실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그리고 양 비정규함대는 엘 파실 독립정부의 실전 군사조직 '엘 파실 혁명군'으로 개편되었다. 군사위원장은 롬스키 주석, 사령관에는 양 웬리 원수, 참모장에는 메르카츠 상급대장, 후방근무부장은 알렉스 카젤느 중장이 임명되어 군대로서의 꼴을 갖추었다. 한편 이 시기 지구로 떠난 율리안 민츠 일행이 다시 합류했다.
일단 반제국과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걸었으나, 함대의 무력은 굉장히 처참한 수준이었다. 병력은 함정 약 600척, 장병 약 16,000명에 불과했으며 근거지는 버려진 보급기지 다얀 칸이었고, 이제는 누구의 정치적 보호도 받지 못했다. 거기에다 동맹정부는 양 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우주력 800년 8월 13일, 엘 파실 독립정부가 동맹정부를 상대로 분리독립을 선언했다. 더스티 아텐보로와 발터 폰 쇤코프는 독립정부에 합류하자고 목소리를 높였고 양 본인도 이를 고려했으나, 엘 파실에 합류했다가는 동맹정부가 공황에 빠져 은하제국과 협력하여 공격할 가능성과 제국군 침공 시 동맹정부가 군사 전권을 넘기는 조건으로[8] 자신을 부를 가능성을 고려해 당장 합류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춘우 지엔은 대놓고 양 웬리가 아군으로 복귀한 뒤에야 '대리'를 떼겠다고 선언했으나 레벨로는 사건의 진상을 숨기고 양 웬리를 잡으려는 데만 열중했다. 그리하여 수많은 동맹군이 영문도 모른 채 동맹령 어딘가에 숨어 있는 양 함대를 찾아다녔으나, 효과는 거의 없었다. 딱 한 번 순찰 중이던 함정이 양 비정규함대를 발견했으나, 양 본인이 통신 스크린에 나타나 정부의 특명을 받고 극비리에 활동 중이라고 둘러대자 모두 감동하여 체포는커녕 경례로 배웅해주었다.[9]
그렇게 별다른 활동 없이 잠항만 하고 있었으나, 우주력 799년 11월 10일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선전포고는 양 웬리가 동맹으로 돌아갈 길을 막아버렸다. 라인하르트는 제국 정부의 불명예를 무릅쓰고 사건의 진상을 공표하고 사과하는 한편, 동맹정부의 추태를 거론하며 선전포고 한 것이다. 무력한 동맹정부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제국군의 선전포고를 허용했으며 양은 동맹으로 돌아갈 길이 사라졌다. 그 때문에 양은 동맹과 제국이 아닌 제3세력을 구축해야 했다.
그리고 결국 잠항을 위한 자금이 떨어져 양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양과 카젤느는 페잔 상인들에 자금을 빌리는 방법을 생각해보았으나 페잔인들이 유랑 사병집단인 양 함대에게 투자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스운 것이었고, 결국 이 유랑 사병집단이 제국을 타도할 가능성을 보이기 위해 이제르론 요새를 재탈취하는 방안의 논의되었다. 이렇게 되어, 우주력 799년 12월 9일 양 비정규함대는 엘 파실 독립정부에 투신했다. 독립정부 수장 프란체스크 롬스키 주석은 양 비정규함대의 방문을 환영했고 엘 파실의 신문들은 일제히 양 웬리가 엘 파실에 투신했다는 사실을 앞다투어 보도했다. 그리고 양 비정규함대는 엘 파실 독립정부의 실전 군사조직 '엘 파실 혁명군'으로 개편되었다. 군사위원장은 롬스키 주석, 사령관에는 양 웬리 원수, 참모장에는 메르카츠 상급대장, 후방근무부장은 알렉스 카젤느 중장이 임명되어 군대로서의 꼴을 갖추었다. 한편 이 시기 지구로 떠난 율리안 민츠 일행이 다시 합류했다.
자세한 내용은 엘 파실 혁명군 문서 참고하십시오.
우여곡절 끝에 비정규함대는 혁명군,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엘 파실 독립정부 혁명예비군'으로 개편되었으나 전력은 여전히 부족했다. 혁명군 전력은 이제르론 요새에 주둔한 코르넬리우스 루츠 함대의 10분의 1에 불과했다. 그러나 양 웬리가 미리 깔아둔 트랩을 이용하여 혁명군은 소수의 병력으로 이제르론 요새를 함락하는 데 성공했으며 제국 수뇌부들의 허를 찔렀다.
이후 자유행성동맹군이 멸망 직전 양 웬리에게 양도한 병력, 동맹이 멸망 한 뒤 엘 파실 독립정부로 망명하는 병력들의 합쳐져 혁명군의 전력은 비약적으로 증대되었다. 어느 정도 허수가 있긴 하지만, 회랑 전투 직전 혁명군의 병력은 함정 약 2만 8천 척, 장병 약 250만 명에 이르렀다.
혁명군은 이후 회랑 전투에서 회랑으로 쇄도하는 제국군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으나 양 웬리 암살사건에서 최고지휘관이자 정신적 지주인 양 웬리와 기타 고급지휘관들을 잃고 엘 파실 독립정부와 함께 해체되었다.
이후 자유행성동맹군이 멸망 직전 양 웬리에게 양도한 병력, 동맹이 멸망 한 뒤 엘 파실 독립정부로 망명하는 병력들의 합쳐져 혁명군의 전력은 비약적으로 증대되었다. 어느 정도 허수가 있긴 하지만, 회랑 전투 직전 혁명군의 병력은 함정 약 2만 8천 척, 장병 약 250만 명에 이르렀다.
혁명군은 이후 회랑 전투에서 회랑으로 쇄도하는 제국군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으나 양 웬리 암살사건에서 최고지휘관이자 정신적 지주인 양 웬리와 기타 고급지휘관들을 잃고 엘 파실 독립정부와 함께 해체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이제르론 혁명군 문서 참고하십시오.
엘 파실 독립정부 해산 이후 양 웬리 함대의 주요 간부들이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세우면서 엘 파실 혁명군도 이제르론 혁명군으로 변모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공화정부를 떠나 전력이 크게 약화되어 제국군에 대한 수세로 일관하였다.
하지만 결국 시바 성역에서 제국군과 격돌하였고 결국 혁명군 사령관 율리안 민츠 중위가 기함 브륀힐트에 침입하여 제국군과 화평을 얻어낻지만, 그 대가로 메르카츠 제독과 쇤코프 중장을 비롯한 20만 장병이 전사했다. 이후 혁명군은 제국군에게 이제르론 요새를 반환하는 대가로 바라트 성계의 내정자치권을 얻어냈으며, 그에 따라 요새 반환과 혁명군 해체를 준비했다.
하지만 결국 시바 성역에서 제국군과 격돌하였고 결국 혁명군 사령관 율리안 민츠 중위가 기함 브륀힐트에 침입하여 제국군과 화평을 얻어낻지만, 그 대가로 메르카츠 제독과 쇤코프 중장을 비롯한 20만 장병이 전사했다. 이후 혁명군은 제국군에게 이제르론 요새를 반환하는 대가로 바라트 성계의 내정자치권을 얻어냈으며, 그에 따라 요새 반환과 혁명군 해체를 준비했다.
함대 사령관 양 웬리를 중심으로 각 분야의 실무를 총괄하는 참모진들이 수뇌부로 부사령관급 인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계급상으로는[10] 알렉스 카젤느가 양 웬리를 제외하고서는 최선임이지만 사무, 보급, 행정 등을 전담하는 사무직이라 전투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에드윈 피셔는 우주 함대의 부사령관이나 실제적인 양 웬리 함대는 우주 함대 + 지상부대 + 군사 시설의 조합이기에 피셔 역시 이 전체의 부사령관은 아니라 할 수 있다. 같은 이유로 요새 방위만 맡고 있던 발터 폰 쇤코프도 2인자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는 경력이나 실적으로 보나 한 함대의 사령관이 되어도 모자람이 없는 인물이고 중장 대우를 받아 계급상으로는 양 웬리 다음갔지만 망명자라는 약점이 있어 스스로도 전면에 나서기를 꺼렸고 양의 참모진들도 은근히 이에 대해 경계를 하고 있었다. 동맹의 붕괴 이후에는 참모장이나 함대 사령관을 맡아 더더욱 2인자와 거리가 먼 행보를 보였다.
한 마디로 '절대적인 1인자를 중심으로 다수의 3인자들이 구성된 구조'인 것이다. 이 구조를 보면 2인자 유해론의 신봉자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이 극찬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 다만 이런 탓에 사령관 양 웬리가 자리에 없다면 총 지휘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게 된다. 양 웬리가 정부의 정치적 음모에 말려들어 수도에 소환되었던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에는 전장 지휘를 총괄할 사람이 없어 일단 최선임자이기는 하나 행정군인인 요새 사무관 알렉스 카젤느 소장이 사령관 대리가 되어 전투를 총괄하는 촌극이 벌어졌고 여러 혼란 끝에 이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제국에서 항복하여 넘어온' 메르카츠 중장 대우의 요청에 의해 함대 전체 지휘권이 그에게 넘어가게 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나름 튼튼한 다수의 3인자 구조는 양 웬리의 갑작스러운 사망에도 조직의 해체를 막아냈지만 구성원 전체에 확실한 믿음을 줄 수 있는 2인자의 부재의 약점을 완전히 틀어 막지는 못하고 이후 이제르론 공화정부로 재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이탈자를 불러왔다.[11]
양 함대의 참모진은 제국의 장군들처럼 만능형은 아니나 어느 한 분야에서는 특출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카젤느는 행정과 보급, 쇤코프는 육전과 백병전, 피셔는 함대 운용, 포플랭과 코네프는 항공전, 아텐보로는 유격전, 무라이는 사령관의 전략을 부하들에게 납득시키고 규율을 잡는 역할과 상식론, 파트리체프는 장병 사기 진작, 바그다슈는 정보공작 부분 등 한 사람씩 한 방면에 뛰어난 능력은 가지고 있다. 다만 그 이상은 하지 못한다. 더 깊게 들어가자면 제국군의 장군들은 오베르슈타인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렌넨캄프 밑에 있었던 크납프슈타인이나 그릴파르처처럼 참모 역할을 수행할 일이 있을지언정 기본적으로 만능형이라 말 그대로 한 함대를 독립적으로 지휘하는 지휘관형 장교들인 것과는 달리, 양 함대의 참모진은 양 제독을 보좌하는 참모들이니, 이들을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사실 무리다. 지휘관이라기보다는 참모집단이기 때문에 양 웬리 대신 양 함대를 지휘할 수 없었던 것.
그나마 자기 자신이 제독으로써 총괄적인 지휘가 가능한 사람을 꼽아보자면 메르카츠와 아텐보로 정도가 있겠지만... 메르카츠는 그 역량 자체는 충분하지만 망명자라는 정치적 한계가 있어 양 함대를 대표하는 지도자가 될 수는 없고, 아텐보로는 다른 3인자 그룹 구성원에 비해 계급과 연령, 경력, 위상이 낮은 편이라 자신이 총 지휘자가 되겠다고 나설만한 입장이 못 되는 것. 또한 실력조차도 아텐보로는 자기가 가장 유리한 회랑 전투에서마저 상성상 불리한 전장에서 싸워야 했던 칼 에두아르트 바이어라인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다. [12]
이들 참모진은 카젤느와 같이 일찌감치 상부에서 인정받던 사람도 일부 있으나, 대부분은 유능하지만 상관에게 아부할 줄 모르고, 입 발린 말도 하지 않는 이른바 출세와는 거리가 먼 성격들이라서 양 웬리가 참모로 데려가지 않았다면 일찌감치 군 경력을 마쳤을 것이란 평을 듣는 인물들이다. 특히 무라이와 파트리체프는 확정급. 이 둘은 원래 변경 성역에서 썩고 있다가 양 웬리가 불러와서 출세한 경우라 빼도박도 못하는 인물들이고 위의 예시에 가장 잘 맞는 인물들이다. 카젤느, 쉔코프나 아텐보로는 이전부터 군 내부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으니 조금 예외라 할 수 있다. 카젤느는 제국령 침공작전의 멍에를 뒤집어쓰기 전에는 미래의 후방근무 본부장으로 촉망받았고, 아텐보로도 꾸준히 공적을 쌓아가고 있던 단계였다. 바그다슈의 경우 구국군사회의에 동참해서 군 생활 끝날 수도 있었지만 눈치 잘 살펴서 양 웬리에게 붙은 덕분에 축출은 커녕 더 잘나갔다.
다만 이들은 예외없이 반항적인 인물이기도 해서(쇤코프만 해도 고분고분하게만 군다면 충분히 출세할 것이라는 상부의 평이 있었을 정도다. 무라이와 파트리체프도 상부의 비리를 파해쳐서 찍힌 인물들이고.) 양 웬리 함대에 속하지 않았다면 대부분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찍 퇴역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처럼 개인적으론 능력이 있거나 능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지만 조직과 안맞아서 서로에게 불편함과 비효율을 가져다 주고 있던 상황에서 그 상황을 타파한 것이 양 웬리의 등용이란 것을 감안해서 본다면 이들을 발견한 양 웬리나 이들이나 서로가 없었으면 절대 그 실적을 못거두었을 것이며 결론적으론 서로에게 행운이라는 말 밖에 정확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양 웬리는 "목 아래로는 쓸모없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전략과 전술에는 탁월했지만 세세한 행정이나 함대 운영에는 약점을 보였다.[13] 그래서 양은 전략이나 전술적 계획을 세우는 입장에 있었으며, 그 계획의 실행은 부하들에게 맡겼다. 양 함대에서 양 웬리의 존재는 절대적인 것으로 양 웬리가 이상한 계획이나 의견을 내면 함대 참모나 지휘관들은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양 제독의 말이니까 따르고 보자. ㅇㅇ는 반응을 보였다. 이때 무라이만은 언제나 상식론에 입각한 반론을 펼침으로서 일종의 기준이 되어 주었다. [14]
한 마디로 '절대적인 1인자를 중심으로 다수의 3인자들이 구성된 구조'인 것이다. 이 구조를 보면 2인자 유해론의 신봉자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이 극찬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 다만 이런 탓에 사령관 양 웬리가 자리에 없다면 총 지휘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게 된다. 양 웬리가 정부의 정치적 음모에 말려들어 수도에 소환되었던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에는 전장 지휘를 총괄할 사람이 없어 일단 최선임자이기는 하나 행정군인인 요새 사무관 알렉스 카젤느 소장이 사령관 대리가 되어 전투를 총괄하는 촌극이 벌어졌고 여러 혼란 끝에 이 상황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제국에서 항복하여 넘어온' 메르카츠 중장 대우의 요청에 의해 함대 전체 지휘권이 그에게 넘어가게 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나름 튼튼한 다수의 3인자 구조는 양 웬리의 갑작스러운 사망에도 조직의 해체를 막아냈지만 구성원 전체에 확실한 믿음을 줄 수 있는 2인자의 부재의 약점을 완전히 틀어 막지는 못하고 이후 이제르론 공화정부로 재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이탈자를 불러왔다.[11]
양 함대의 참모진은 제국의 장군들처럼 만능형은 아니나 어느 한 분야에서는 특출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카젤느는 행정과 보급, 쇤코프는 육전과 백병전, 피셔는 함대 운용, 포플랭과 코네프는 항공전, 아텐보로는 유격전, 무라이는 사령관의 전략을 부하들에게 납득시키고 규율을 잡는 역할과 상식론, 파트리체프는 장병 사기 진작, 바그다슈는 정보공작 부분 등 한 사람씩 한 방면에 뛰어난 능력은 가지고 있다. 다만 그 이상은 하지 못한다. 더 깊게 들어가자면 제국군의 장군들은 오베르슈타인같은 예외를 제외하면 렌넨캄프 밑에 있었던 크납프슈타인이나 그릴파르처처럼 참모 역할을 수행할 일이 있을지언정 기본적으로 만능형이라 말 그대로 한 함대를 독립적으로 지휘하는 지휘관형 장교들인 것과는 달리, 양 함대의 참모진은 양 제독을 보좌하는 참모들이니, 이들을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 자체가 사실 무리다. 지휘관이라기보다는 참모집단이기 때문에 양 웬리 대신 양 함대를 지휘할 수 없었던 것.
그나마 자기 자신이 제독으로써 총괄적인 지휘가 가능한 사람을 꼽아보자면 메르카츠와 아텐보로 정도가 있겠지만... 메르카츠는 그 역량 자체는 충분하지만 망명자라는 정치적 한계가 있어 양 함대를 대표하는 지도자가 될 수는 없고, 아텐보로는 다른 3인자 그룹 구성원에 비해 계급과 연령, 경력, 위상이 낮은 편이라 자신이 총 지휘자가 되겠다고 나설만한 입장이 못 되는 것. 또한 실력조차도 아텐보로는 자기가 가장 유리한 회랑 전투에서마저 상성상 불리한 전장에서 싸워야 했던 칼 에두아르트 바이어라인과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다. [12]
이들 참모진은 카젤느와 같이 일찌감치 상부에서 인정받던 사람도 일부 있으나, 대부분은 유능하지만 상관에게 아부할 줄 모르고, 입 발린 말도 하지 않는 이른바 출세와는 거리가 먼 성격들이라서 양 웬리가 참모로 데려가지 않았다면 일찌감치 군 경력을 마쳤을 것이란 평을 듣는 인물들이다. 특히 무라이와 파트리체프는 확정급. 이 둘은 원래 변경 성역에서 썩고 있다가 양 웬리가 불러와서 출세한 경우라 빼도박도 못하는 인물들이고 위의 예시에 가장 잘 맞는 인물들이다. 카젤느, 쉔코프나 아텐보로는 이전부터 군 내부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었으니 조금 예외라 할 수 있다. 카젤느는 제국령 침공작전의 멍에를 뒤집어쓰기 전에는 미래의 후방근무 본부장으로 촉망받았고, 아텐보로도 꾸준히 공적을 쌓아가고 있던 단계였다. 바그다슈의 경우 구국군사회의에 동참해서 군 생활 끝날 수도 있었지만 눈치 잘 살펴서 양 웬리에게 붙은 덕분에 축출은 커녕 더 잘나갔다.
다만 이들은 예외없이 반항적인 인물이기도 해서(쇤코프만 해도 고분고분하게만 군다면 충분히 출세할 것이라는 상부의 평이 있었을 정도다. 무라이와 파트리체프도 상부의 비리를 파해쳐서 찍힌 인물들이고.) 양 웬리 함대에 속하지 않았다면 대부분 자의반 타의반으로 일찍 퇴역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처럼 개인적으론 능력이 있거나 능력을 발휘할 여지가 있지만 조직과 안맞아서 서로에게 불편함과 비효율을 가져다 주고 있던 상황에서 그 상황을 타파한 것이 양 웬리의 등용이란 것을 감안해서 본다면 이들을 발견한 양 웬리나 이들이나 서로가 없었으면 절대 그 실적을 못거두었을 것이며 결론적으론 서로에게 행운이라는 말 밖에 정확히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양 웬리는 "목 아래로는 쓸모없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전략과 전술에는 탁월했지만 세세한 행정이나 함대 운영에는 약점을 보였다.[13] 그래서 양은 전략이나 전술적 계획을 세우는 입장에 있었으며, 그 계획의 실행은 부하들에게 맡겼다. 양 함대에서 양 웬리의 존재는 절대적인 것으로 양 웬리가 이상한 계획이나 의견을 내면 함대 참모나 지휘관들은 무슨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양 제독의 말이니까 따르고 보자. ㅇㅇ는 반응을 보였다. 이때 무라이만은 언제나 상식론에 입각한 반론을 펼침으로서 일종의 기준이 되어 주었다. [14]
함대의 주요 간부는 동맹군에서 아싸나 다름없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프레데리카 그린힐이나 율리안 민츠처럼 군 경력이 짧은 이들 뿐이었다.[15] 아싸가 아니더라도 포플랭이나 코네프처럼 행동거지가 문제가 있기 일쑤.
이런 사람들이 모였다 보니 양 함대의 분위기는 일반적인 군대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예를 들어 이제르론 헌병대장 인질사건에서 쇤코프는 큰일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부사관에게 "양 제독님이 취해서 그린힐을 덮치기라도 했냐" 라고 말했다. 물론 진담이 아니고 농담이었지만 농담이라고 해도 상관에게, 그것도 자기보다 계급은 3계급 높은 사람이고[16] 직위도 자기는 단지 이제르론 요새의 방위사령관에 불과하지만 상대는 요새 전체와 요새 주둔 함대의 사령관인데 이런 사람을 대상으로 섹드립이나 치고 있지만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갔다. 당연히 위에가 이러니 아래는 말할것도 없다.
이런 면에서 보듯 양 함대에서 위아래간의 격이나 하는건 별로 없다. 서로간에 최소한의 존중만 있고 그 이외에 따지는 격식은 없는 셈. 물론 대다수의 인물들이 양보다 연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피셔, 무라이, 메르카츠만 빼면 그렇게까지 많이 나는 것도 아니다.[17] 물론 그렇다고 하극상까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군대에서 보기는 힘든 분위기.[18]
이렇다 보니 양 함대에서는 동맹 정치인들이 골칫거리로 여겼을만한 모습이 자주 보인다. 포플랭의 경우엔 툭하면 동맹 정부에 불평불만, 쇤코프는 양에게 자꾸 독재자 권유를 하고 있으니... 거기다가 포플랭은 불평불만도 그렇지만 사생활로 보면 링 파오처럼 호색한에 본인 말마따마 6무주의[19]의 거두라 할만큼 타인들의 눈에 보기엔 문제가 많으며, 코네프 역시도 비슷한 면이 있고 쇤코프도 포플랭에 버금가는 굉장한 호색한이라 방종한 이들도 없진 않다. 이런 가지각색으로 자유분방한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다 보니 양 웬리 함대의 주요 구성원들은 일할 때 빼면 군인보다는 탕아에 가깝다.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을 다루는 원작 7권 5장의 제목이 <탕아들의 귀가>였고[20]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으로 인해 양 함대의 상당수의 구성원들이 동맹정부를 떠난 후 알렉스 카젤느는 분위기가 마치 가출한 사내놈들 모임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양이 그렇듯 양 함대 전체가 겉모양새나 분위기는 정통 군인에서는 확실히 먼 모습이다. 게다가 이제르론 헌병대장 인질사건에서 쇤코프가 말하는걸 보면 헌병대에서도 함대 내 분위기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는듯.
물론 보통의 함대였다면 이런 인물들은 골칫거리일 뿐이고 실제로도 상당수의 멤버들이 상부로부터 실력은 인정받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중용되지 못하던 사람들이었고 이는 사령관인 양 웬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떤 발언에도 딱히 터치하지 않는 양이다 보니 이런 사람들이 양 함대에서 그런 큰 활약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분위기가 자유롭고 풀려있다고 해서 군기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생사가 오가는 전투에서는 양의 명령 한번에 지시받은대로 제깍제깍 움직이며 상명하복에 철저히 하고, 부조리나 전쟁범죄에서도 자유로운데 한 예시로 양은 군 내에서 어떤 이가 부조리를 일으키자 그런 부하는 필요없다는 이유로 함대에서 내보낸 사례가 있다. 또한 당시 동맹군에서는 상관이 부하 공을 가로채는 일도 있었다고 하는데 양 함대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
한편으로 이런 모습은 양 사후에도 양 함대가 해체되지 않고 남은 원동력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그 기저에는 양에 대한 각별한 감정이 있었지만[21] 그 원동력에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철저히 공적에 따라 상을 주고 그러면서도 그 스스로도 타락하지 않은 양의 모습이 있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모였다 보니 양 함대의 분위기는 일반적인 군대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예를 들어 이제르론 헌병대장 인질사건에서 쇤코프는 큰일이 일어났다고 말하는 부사관에게 "양 제독님이 취해서 그린힐을 덮치기라도 했냐" 라고 말했다. 물론 진담이 아니고 농담이었지만 농담이라고 해도 상관에게, 그것도 자기보다 계급은 3계급 높은 사람이고[16] 직위도 자기는 단지 이제르론 요새의 방위사령관에 불과하지만 상대는 요새 전체와 요새 주둔 함대의 사령관인데 이런 사람을 대상으로 섹드립이나 치고 있지만 아무 문제 없이 넘어갔다. 당연히 위에가 이러니 아래는 말할것도 없다.
이런 면에서 보듯 양 함대에서 위아래간의 격이나 하는건 별로 없다. 서로간에 최소한의 존중만 있고 그 이외에 따지는 격식은 없는 셈. 물론 대다수의 인물들이 양보다 연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피셔, 무라이, 메르카츠만 빼면 그렇게까지 많이 나는 것도 아니다.[17] 물론 그렇다고 하극상까지 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인 군대에서 보기는 힘든 분위기.[18]
이렇다 보니 양 함대에서는 동맹 정치인들이 골칫거리로 여겼을만한 모습이 자주 보인다. 포플랭의 경우엔 툭하면 동맹 정부에 불평불만, 쇤코프는 양에게 자꾸 독재자 권유를 하고 있으니... 거기다가 포플랭은 불평불만도 그렇지만 사생활로 보면 링 파오처럼 호색한에 본인 말마따마 6무주의[19]의 거두라 할만큼 타인들의 눈에 보기엔 문제가 많으며, 코네프 역시도 비슷한 면이 있고 쇤코프도 포플랭에 버금가는 굉장한 호색한이라 방종한 이들도 없진 않다. 이런 가지각색으로 자유분방한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다 보니 양 웬리 함대의 주요 구성원들은 일할 때 빼면 군인보다는 탕아에 가깝다.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을 다루는 원작 7권 5장의 제목이 <탕아들의 귀가>였고[20]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으로 인해 양 함대의 상당수의 구성원들이 동맹정부를 떠난 후 알렉스 카젤느는 분위기가 마치 가출한 사내놈들 모임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양이 그렇듯 양 함대 전체가 겉모양새나 분위기는 정통 군인에서는 확실히 먼 모습이다. 게다가 이제르론 헌병대장 인질사건에서 쇤코프가 말하는걸 보면 헌병대에서도 함대 내 분위기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는듯.
물론 보통의 함대였다면 이런 인물들은 골칫거리일 뿐이고 실제로도 상당수의 멤버들이 상부로부터 실력은 인정받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중용되지 못하던 사람들이었고 이는 사령관인 양 웬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떤 발언에도 딱히 터치하지 않는 양이다 보니 이런 사람들이 양 함대에서 그런 큰 활약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분위기가 자유롭고 풀려있다고 해서 군기가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생사가 오가는 전투에서는 양의 명령 한번에 지시받은대로 제깍제깍 움직이며 상명하복에 철저히 하고, 부조리나 전쟁범죄에서도 자유로운데 한 예시로 양은 군 내에서 어떤 이가 부조리를 일으키자 그런 부하는 필요없다는 이유로 함대에서 내보낸 사례가 있다. 또한 당시 동맹군에서는 상관이 부하 공을 가로채는 일도 있었다고 하는데 양 함대에서 그런 일은 없었다.
한편으로 이런 모습은 양 사후에도 양 함대가 해체되지 않고 남은 원동력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그 기저에는 양에 대한 각별한 감정이 있었지만[21] 그 원동력에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고 철저히 공적에 따라 상을 주고 그러면서도 그 스스로도 타락하지 않은 양의 모습이 있었을 것이다.
양 웬리 본인은 자신이 지휘하는 함대의 사병화 및 군벌화를 아예 의도하지 않았으나, 제13함대 창설 이래 줄곧 양 웬리의 지휘를 받아오던 임시 함대인 13함대가 정규 함대로 재편되고 이후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이제르론 요새에 주둔하여 정부의 터치를 덜 받게 되면서, 여기에 더해 동맹군 내부의 이런저런 문제들로 인해 현실적으로 인사 배치를 하지 못함에 따라 점점 양 웬리 개인에 충성하는 사병화가 이루어졌다. 그 저변에는 양 웬리가 국가와 집단보다 개인의 자유와 귄리를 우선하고 부하들을 신뢰하는 것에 감복하여 감화된 것이 큰 이유였지만 동맹정부의 무능과 삽질이 겹쳐 양 웬리 함대의 일원들이 동맹정부에 큰 불만을 품은것도 있다.
13함대 및 후신인 이제르론 주둔 함대가 양의 사병 집단으로 변모한 가장 큰 이유는 동맹군에 양을 대신한 믿을 수 있는 함대 사령관급 인물이 바닥을 드러내 적절할 때 양을 대신하지 못한 것이다. 제국령 침공작전과 암릿처 회전, 뒤이은 구국군사회의 쿠데타가 겹치면서 동맹은 함대 사령관을 맡을만한 중견급 제독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말았다. 제국령 침공작전에 참가했던 중장급 지휘관들은 양 웬리와 뷰코크를 제외하면 전부 전사나 부상 등의 이유로 퇴장했고, 루글랑주는 구국군사회의 쿠데타에 참여했다가 도리아 성역 회전에서 자살했고 그런대로 괜찮았던 그린힐도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때 죽었다. 시톨레 이후의 통합작전본부장을 맡았던 쿠브르슬리마저 앤드류 포크의 테러로 인해 병원신세였고 쿠데타 진압 이후에도 건강 문제로 별 힘을 못 쓰다가 트뤼니히트 일파에게 밀려나다시피 퇴역했다. 이후 함대를 맡는 제독들도 당시로서는 기껏해야 소장급으로서 분함대나 지방 경비함대 및 독립함대를 맡는 정도였다.
때문에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직후 자유행성동맹군에서 정규 함대 사령관을 맡을만한 사람은 양을 빼면 알렉산드르 뷰코크, 파에타가 전부다. 하지만 뷰코크는 우주함대 사령장관인지라 함대 사령관을 겸직하거나 이제르론에서 상시 대기할 수 없었고, 파에타는 동맹에 남은 유이한 상설함대이자 수도방위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제1함대 사령관이기에 역시 전선 배치는 어려웠다.
그나마 소장급으로 내려가면 분함대나 성계 경비함대 등을 맡고 있는 지휘관이 몇 명 있다.(랄프 칼센, 라이오넬 모튼, 더스티 아텐보로, 응웬 반 티우, 산도르 알라르콘, 에드윈 피셔) 하지만 이들은 함대 사령관을 맡을 만한 경험이 아직 부족하거나 어른의 사정 때문에 진급을 못한 상태다. 애당초 칼센이나 모튼이 중장 달고 함대 사령관이 된 것도 페잔 점령 작전으로 동맹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서이니.... 더구나 응웬 반 티우와 알라르콘은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전사했고, 아텐보로와 피셔는 애당초 양 함대 소속이다. 여기에 알렉산드르 뷰코크는 사관학교 출신이 아니라서 군 내 비주류파에 속했기 때문에 제국령 침공작전으로 함대 사령관들이 대거 전사한 뒤에야 우주함대 사령장관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이 사람들은 상당수가 정치계와 사이가 안 좋았다. 더스티 아텐보로는 '청년 혁명가'를 표방할 만큼 대놓고 반골 성향이었고, 알렉산드르 뷰코크 역시 정부에 고분고분한 인물은 아니어서 정부가 감시해야 했다. 그나마 파에타는 트뤼니히트에게 잘 보이려고 했지만 워낙 등장이 적어서 트뤼니히트 파인지는 알 수 없고, 칼센, 모튼, 알라르콘, 피셔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동맹 정부 입장에서 정부, 아니 정권에 충성하는 고급 군인은 도슨과 록웰 정도 밖에 없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후방에서 근무한 데다가[22] 지위에 걸맞은 능력은 없는 소인배에 불과했다.
즉 자유행성동맹 정부나 군 상층부 입장에서는 양 함대의 사병화 가능성을 매우 잘 알고 있었지만 이를 막을 대안이 없었다. 그나마 전선이 소강기면 양을 영전시키고 다른 인물을 요새&주둔함대 사령관으로 임명하는 식으로 사병화를 막을 수 있었겠지 당장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과 뒤이은 황제 망명 등으로 전선은 늘 긴박했고 전황의 개선이 없는 상태에서 양을 빼내고 다른 인물을 사령관으로 둔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다. 차선책으로 양 웬리를 길들이기 위해 사문회를 개최했지만 타이밍 나쁘게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이 발발하면서 동맹 정부는 양을 그냥 보내줄 수밖에 없었고 양 함대의 반감만 사고 만다. 또한 사문회의 후폭풍으로 국방위원장 네그로폰테가 사임하면서 동맹 고위층은 예전보다 훨씬 조심스럽게 행동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사유로 사령관을 교체하거나 참모진을 대거 물갈이하는 등 직접적인 견제는 불가능해졌고, 대신 인사권을 활용하여 참모진을 조금씩 하나하나 갈아치우는 방법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 예시가 바로 은하제국 정통정부의 요청을 명분삼아 메르카츠를 양 웬리에게서 떼어내고, 양 개인의 생활을 책임지는 사람이자 이제 갓 소위로 임관한 율리안 민츠를 페잔 주재무관으로 임명하여 떼어내는 것이었다.[23] 양 함대 및 그 구성원들은 메르카츠와 율리안을 이제르론에서 빼가는 조치에 다들 화냈지만 정부 입장에선 겨우 개인 참모 하나와 당번병 출신 소위 하나밖에 못 빼낸 거다.
좋게 말하면 정부가 언제든지 사병화된 조직을 해체시킬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지만, 정작 이 경고를 받은 양 함대는 오히려 동맹정부에 대한 반감이 심해지게 되는데, 그도 그럴 것이 타이밍 나쁘게 이 인사배치 직전에 로엔그람 공작이 자유행성동맹을 향해 선전포고를 날렸기 때문. 당장 이제르론 요새의 전력을 강화해야 할 판에 오히려 전력을 약화시키는 짓을 하니 양 함대로서 동맹정부에 대한 반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 인사배치에는 양 함대 사병화 방지를 겸해 트뤼니히트 정권의 군부 장악력을 높이려는 불순한 목적이 대놓고 드러나 있었으니 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나마 메르카츠는 명목상 은하제국 정통정부에서 군무상서로 임명하였고 양 함대에서도 자신이라도 메르카츠 제독을 군무상서로 임명했을 것이다(양 웬리), 일단 임명하고 보면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쇤코프) 등 납득하는 분위기였지만[24] 율리안의 경우엔 속내가 뻔해도 너무 뻔했다. 그리고 이 방법도 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과 페잔 점령 작전으로 국가적 위기가 닥치면서 더 이상 쓸 수 없었고, 오히려 위기 극복을 위해 양 웬리에게 힘을 실어 줘야 했다.
그나마 전쟁이 계속 소강기였으면 양이 하이네센의 요직으로 영전하고, 그동안 경험을 쌓은 소장급 제독들과 새로이 양성된 장성 및 장교들이 승진하여 양 함대 멤버를 대신하고, 멤버들은 새로이 재건되는 동맹군의 각 함대로 흩어져서 양 함대의 사병화는 풀뿌리 단계에서 소멸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동맹군이 재건될 기회는 끝내 오지 않았고 결국 양 함대는 동맹 붕괴 이후 명실공히 양의 사병 함대가 되기에 이른다. 사실 동맹 입장에서 최선의 선택은 제국령 침공작전 그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었으며, 이랬다면 양 웬리는 13함대 사령관을 조금 더 맡다 다른 직위로 영전 또는 퇴역을 선택했을 것이며 당시 동맹은 지휘관 인적 자원이 그렇게까지 바닥을 드러내지 않았기에 어떻게든 그를 대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기회를 걷어 찬 순간 동맹 정부는 양 웬리와 주변 인물들을 군벌의 길로 몰아 넣고 있었다 할 수 있다.
바라트 화약과 양의 퇴역을 기점으로 동맹군은 본격적으로 양 함대 멤버들 중 퇴역자 및 실종자를 제외한 군 잔류자들 가운데 후방근무본부장 대리라는 직책상 수도에 남을 수 밖에 없던 카젤느를 제외한 나머지 인원을 다 변경으로 보내버리며 본격적인 양 웬리 패밀리의 해체를 시도했다. 추가로 양 본인과 퇴역 간부를 포함하여 주요 멤버에 감시까지 붙여 동향을 체크하였다. 이는 과거부터 양 웬리의 사병화를 경계해 왔고 제국에 침공 핑계를 주지 않기 위해 고민하던 조안 레벨로의 의중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양은 장기적으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쇤코프를 비롯한 로젠리터 연대 역시 비밀리에 지하 활동을 하고 있었기에 감시 자체는 결과적으로 타당한 선택이기는 했다. 심지어 이미 버밀리온 회전이 끝난 직후 이미 양 함대의 주요 간부들은 양에게 충성을 다짐하고 군벌화의 길을 걸었으니[25] 양 함대 쪽에서도 군벌화에 대해 말하면 행위 자체에는 할말이 없다.
하지만 너무나 직설적인 감시의 눈은 동맹의 의도와 다르게, 심지어 양과 전 부하들의 의중과도 다르게 양 패밀리의 규합을 강제로 가속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26] 더스티 아텐보로를 비롯하여 상대적으로 최신 정보 접근이 어려웠던 인물까지 위기감을 느낄 정도로 대놓고 펴놓은 감시망은 당시 하이네센에 없던 사람들을 제외한 양 패밀리 주요 인물들이 다시 결집하고 정보를 주고 받게 만들었다. 여기에 조안 레벨로를 비롯한 동맹 정부의 폭주와 헬무트 렌넨캄프의 열폭으로 인한 과잉 대응이 겹치면서 양 원수가 모살당할 뻔하자 수도에 있던 양 패밀리는 긴급피난과 정당방위를 겸하여 레벨로를 납치/위협하고, 제국군 거점을 습격하여 렌넨캄프를 납치하여 동맹을 탈출하고 만다.
이 시점에서 양 웬리 본인은 원치 않았으나 양 웬리 함대는 동맹과 인연이 끊어진 완전한 사병화가 이뤄지고 말았다. 그나마 양은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잠행하면서 마지막까지 동맹이 자신들을 다시 불러주길 기다렸으나 급격한 상황 변화에 멘붕해버린 조안 레벨로 이하 동맹 수뇌부들은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다가 제국의 선전포고를 허용했고 양은 주변 상황 악화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동맹 이탈을 선언한 엘 파실 독립정부와 손을 잡는 군벌의 길에 들어설 수 밖에 없었다.
양 함대의 특징이라면 불패다. 정확히 말해진 적이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암릿처 회전은 혼자서만 이기고 나머지는 진 전투고 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은 딱히 이기는 게 의미가 없어서 일부러 져줬고 버밀리온 회전은 전술상으로는 잘 싸웠는데 전략상으로 급격히 어그러져졌으며 시바 성역 회전은 전술상으로는 패배했다. 즉 져도 어딘가 납득 가는 구석이 하나씩 있고 졌을 때도 명확하게 졌다고 할 만큼의 손실을 입지 않는다. 설사 큰 손실을 입더라도 적에게도 엄청난 타격을 주고 진다. 함대 내에서도 이러한 불패의 인식이 있고 동맹에서도 양 함대는 안 진다는 인식이 있는 모양.
그러나 그 의미는 반대로 제국군에게는 엄청난 피해를 입혀주는 사신이라는 말도 된다. 실제로 양 함대에 의해 상급대장이 3명이나 사망했을 정도. 사망한 게 3명이지 위기까지 겪은 걸 포함하면 원수 1명, 상급대장 2명이 더 추가된다. 군 수뇌부조차도 양 함대와 싸우면 죽을 수도 있던 셈. 황제인 라인하르트조차 버밀리온에서 전사할 뻔했으니 더 할 말이 없다. 이렇다 보니 패배하면 그에 걸맞은 벌을 받는게 당연한데 양 웬리와의 전투에서는 특별한 실책이 없으면 져도 그냥 넘어가지고 심지어 비텐펠트는 본인 성질 못이기고 명령을 어기고 멋대로 출전했다가 동료 제독인 파렌하이트까지 전사하게 만들었지만 경 다운 실수를 하는게 경 답지 않은 실수를 하는 것보단 낫다며 그냥 넘어갔다.그리고 그에 대한 보답인듯 피셔 제독을 날려버렸다.
그러나 그 의미는 반대로 제국군에게는 엄청난 피해를 입혀주는 사신이라는 말도 된다. 실제로 양 함대에 의해 상급대장이 3명이나 사망했을 정도. 사망한 게 3명이지 위기까지 겪은 걸 포함하면 원수 1명, 상급대장 2명이 더 추가된다. 군 수뇌부조차도 양 함대와 싸우면 죽을 수도 있던 셈. 황제인 라인하르트조차 버밀리온에서 전사할 뻔했으니 더 할 말이 없다. 이렇다 보니 패배하면 그에 걸맞은 벌을 받는게 당연한데 양 웬리와의 전투에서는 특별한 실책이 없으면 져도 그냥 넘어가지고 심지어 비텐펠트는 본인 성질 못이기고 명령을 어기고 멋대로 출전했다가 동료 제독인 파렌하이트까지 전사하게 만들었지만 경 다운 실수를 하는게 경 답지 않은 실수를 하는 것보단 낫다며 그냥 넘어갔다.
하이네센 탈출 직후의 모습 |
사령관인 양부터 참모진들인 카젤느, 쇤코프, 포플랭, 코네프, 아텐보로까지 독설가들 천지다.[27][28] 단순 고급 장교들 뿐만 아니라 하급병사들까지 독설가 천지고 심지어 제국에서 넘어온 베른하르트 폰 슈나이더도 제국군 시절에는 독설을 내뱉거나 하지 않았는데 양 웬리 함대에 온 이후 자신의 독설가 재능을 개화시켜(...) 버렸다. 예외는 근엄한 숙장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와 프레데리카 그린힐 정도. 하나 메르카츠마저 회랑의 전투 전에 비텐펠트의 항복권유에 아텐보로의 '온건하고 고상한 답장을 보내려고 하자 다들 반대하였음에도 혼자 이걸로 비텐펠트를 낚고 황제에게도 심리적 선제공격을 날릴 수 있다고 옹호했다. 결과적으로는 메르카츠의 의견대로 비텐펠트가 딥빡해서 쳐들어왔다가 자기도 털리고 도우러 온 파렌하이트는 아예 발할라에 가버려서 맞는 말이 되었다.
모범생 타입인 율리안 민츠도 양 휘하의 독설가들의 영향으로 독설이 꽤나 세다. 이 모양이라 웬만한 독설로는 이 함대 참모진에서는 끼워주지도 않는다. 심지어는 이름 없는 전투원들도 심성이 배배 꼬였다.[29] 그래도 딱딱해 보이는 제국 참모진과는 달리 유쾌한 모습[30]이 많아 동맹 팬이 좀 더 많다.
성격도 비교적 상식적인 사람들이 많은 제국에 비해 수평적인 분위기에 주요 인사들의 개성이 강렬한 편. 너무 강직하거나, 아첨을 못하는 등 윗사람들 비위를 못 맞춰주거나, 사회성이 떨어지거나, 성격 자체가 꼬여 있거나 스스로 적을 만드는 것을 즐기는 등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윗사람들 눈밖에 나 여기가 아니었다면 출세는커녕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했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능력치 또한 고만고만하게 만능인 인재풀이 많은 제국에 비해 대부분 한쪽에만 극단적으로 우수한 인물들이 모여 최상의 시너지를 이루어내는 모습 또한 주인공 팀스러운 모습이 강한 면도 있다.[31]
사령관인 양 웬리는 반전사상이 강한 편인데 정작 그 부하들 중에서는 전투광이 많다.[32] 하다못해 도리아 성역 회전 당시 양 함대의 파일럿 상당수는 어제까지의 아군과 싸우게 되었다는 배덕감보다는 같은 기종의 스파르타니안 파일럿끼리 싸운다는 것에 흥분되어 있었다고 하니(...)[33] 이런 인간을 초월한 싸움꾼들을 두고도 나라 말아먹은 동맹정부는 참...
모범생 타입인 율리안 민츠도
성격도 비교적 상식적인 사람들이 많은 제국에 비해 수평적인 분위기에 주요 인사들의 개성이 강렬한 편. 너무 강직하거나, 아첨을 못하는 등 윗사람들 비위를 못 맞춰주거나, 사회성이 떨어지거나, 성격 자체가 꼬여 있거나 스스로 적을 만드는 것을 즐기는 등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윗사람들 눈밖에 나 여기가 아니었다면 출세는커녕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했을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능력치 또한 고만고만하게 만능인 인재풀이 많은 제국에 비해 대부분 한쪽에만 극단적으로 우수한 인물들이 모여 최상의 시너지를 이루어내는 모습 또한 주인공 팀스러운 모습이 강한 면도 있다.[31]
사령관인 양 웬리는 반전사상이 강한 편인데 정작 그 부하들 중에서는 전투광이 많다.[32] 하다못해 도리아 성역 회전 당시 양 함대의 파일럿 상당수는 어제까지의 아군과 싸우게 되었다는 배덕감보다는 같은 기종의 스파르타니안 파일럿끼리 싸운다는 것에 흥분되어 있었다고 하니(...)[33]
라이가르 성역 회전에서 칼 로베르트 슈타인메츠 함대 선봉을 일점집중 포격으로 갈아버리는 장면. |
양 함대의 특기로는 함대의 포격을 특정 공역에 집중시키는 일점집중 포격이 있다. 좁은 공역에 과밀한 화력을 집중시켜 적 전함의 장갑과 에너지 중화자장을 뚫고 확실하게 발할라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암릿처 회전에서 첫 선을 보였으며, 이후 시바 성역 회전까지 양 함대가 주특기로 활약했다.
라인하르트 폰 뮈젤도 제3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비슷한 전술로 동맹군 11함대를 박살 낸 적 있지만, 라인하르트가 보여준 것은 그저 적 함대가 기동력을 잃었을 때 주포를 일제히 퍼붓는 것으로 특정 공역에 화력을 집중시키는 일점집중 포격과는 다르다.
양 웬리가 똥군기나 폭력, 저항할 수 없는 부하를 구타하는 등의 행위들을 극도로 혐오하기에 폭력, 구타 같은 것은 일절 없으나, 훈련할 때만큼은 욕설이나 폭언이 허가된다고 한다. 또 이 함대가 평소 보여주는 엄청난 전투력을 보면 평소 훈련이 엄청나게 힘들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FM으로 훈련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전투력을 보여준다. 당장에 제국의 지크 카이저에 대항하는 뒈져라 카이저는 올리비에 포플랭이 만든 구호다. 근데 진짜 뒈졌다
작중에서 도망 잘 치는 함대로도 유명하다. 철수해야 할 때는 뒤돌아보지 않고 칼같이 철수하여 피해를 최소화하고, 도망치는 척하다 반격하는 유인책 역시 잘 사용한다. 실제로 양 웬리 함대의 무패 전설은 양 웬리 본인부터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지 않기 때문인 데다가 특히 이 도망치는 전술은 유인책에서 늘 빛을 발해서 양 웬리의 유인책에 말려들어 당한 제국군 장성이 한둘이 아니다. 더 무서운 건, 이 유인책이 적군도 그게 유인책이란 걸 알면서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부하들도 마찬가지. 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 전투가 일어나기 전 율리시스가 제국군을 발견했는데 부하들이 맞서 싸우자고 하자 함장인 닐슨 왈 "불패의 비결은 승산 없는 싸움을 하지 않는 데 있다. 뭣들하고 있나 어서 도망쳐라!" 웃기게 들리겠지만 이거 정답이다. 당시 밀려온 제국군 지휘관은 로이엔탈로 한 척 따위가 개긴다면 얼마든지 짓밟을 수 있는 데다가 심지어 도망갔음에도 로이엔탈이 어떻게든 잡으러 가려고 했다면 잡을 수 있었다. 즉 안 개겼어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한 마당이니 진짜 개겼으면 100% 사망. 그리고 무엇보다 닐슨의 저 발언은 얼핏 보면 겁쟁이의 변명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유능한 지휘관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은하영웅전설에서는 물론이고 현실에서도 괜한 공명심으로 인해 무턱대고 행동했다가 골로 가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34]
라인하르트 폰 뮈젤도 제3차 티아마트 회전에서 비슷한 전술로 동맹군 11함대를 박살 낸 적 있지만, 라인하르트가 보여준 것은 그저 적 함대가 기동력을 잃었을 때 주포를 일제히 퍼붓는 것으로 특정 공역에 화력을 집중시키는 일점집중 포격과는 다르다.
양 웬리가 똥군기나 폭력, 저항할 수 없는 부하를 구타하는 등의 행위들을 극도로 혐오하기에 폭력, 구타 같은 것은 일절 없으나, 훈련할 때만큼은 욕설이나 폭언이 허가된다고 한다. 또 이 함대가 평소 보여주는 엄청난 전투력을 보면 평소 훈련이 엄청나게 힘들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작중에서 도망 잘 치는 함대로도 유명하다. 철수해야 할 때는 뒤돌아보지 않고 칼같이 철수하여 피해를 최소화하고, 도망치는 척하다 반격하는 유인책 역시 잘 사용한다. 실제로 양 웬리 함대의 무패 전설은 양 웬리 본인부터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지 않기 때문인 데다가 특히 이 도망치는 전술은 유인책에서 늘 빛을 발해서 양 웬리의 유인책에 말려들어 당한 제국군 장성이 한둘이 아니다. 더 무서운 건, 이 유인책이 적군도 그게 유인책이란 걸 알면서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부하들도 마찬가지. 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 전투가 일어나기 전 율리시스가 제국군을 발견했는데 부하들이 맞서 싸우자고 하자 함장인 닐슨 왈 "불패의 비결은 승산 없는 싸움을 하지 않는 데 있다. 뭣들하고 있나 어서 도망쳐라!" 웃기게 들리겠지만 이거 정답이다. 당시 밀려온 제국군 지휘관은 로이엔탈로 한 척 따위가 개긴다면 얼마든지 짓밟을 수 있는 데다가 심지어 도망갔음에도 로이엔탈이 어떻게든 잡으러 가려고 했다면 잡을 수 있었다. 즉 안 개겼어도 목숨이 왔다 갔다 한 마당이니 진짜 개겼으면 100% 사망. 그리고 무엇보다 닐슨의 저 발언은 얼핏 보면 겁쟁이의 변명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유능한 지휘관이 갖춰야 할 덕목이다. 은하영웅전설에서는 물론이고 현실에서도 괜한 공명심으로 인해 무턱대고 행동했다가 골로 가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다.[34]
여담으로 이 전투 하나하나의 결과를 보면 알겠지만 보통은 전술전략상 승리, 못해도 전술적으로든 전략적으로든 한쪽에서는 승리를 거둔다. 괜히 양 웬리가 불패의 마술사라 불리는 것이 아닌 것, 게다가 양 사후에도 결국 제국군은 양 함대를 상대로 시원한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하다못해 시바 성역 회전에서는 제국군 총기함이라 할 수 있을, 무려 황제가 탄 기함인 브륀힐트에 적병이 침투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해당 전투는 많은 함대는 물론 발터 폰 쇤코프 같은 걸출한 인재마저 전사하는 처절한 사투였다. 제국에 하면 그 규모가 적은 걸 감안하면 출혈이 컸지만 율리안 민츠가 라인하르트가 있는 병실까지 난입함으로서 그의 독대를 허락받아 입헌군주제의 중요성을 전함으로서 목적을 이뤘다.
- 제7차 이제르론 공방전: 아스타테 회전에서 거의 소멸한 4, 6함대에 신병을 더해 함선 6,400척, 장병 70만. 이제르론 요새를 무혈점령했기 때문에 손실은 없다.
- 이제르론 주둔함대 편성 당시: 10함대 편입. 10함대는 그 규모가 소설 안에서 명시되지는 않았으나 13함대와 함께 제국령 침공의 최선봉에 설 만큼 정예함대였으므로, 정예인 1함대(14,400)나 2함대(15,000)와 동등한 규모의 전력을 보유했을 것으로 상정할 수 있을 것이다.
10함대는 비텐펠트 함대와의 첫 교전에서 70%의 전력을 상실(40%를 상실한 시점에서 전역 이탈 시도, 절반 탈출)했고, 이후 양 함대에 포함되어 싸웠다. 코믹스에서는 이 시점에서 10함대의 병력이 4,200척이라고 나오지만 양 함대에 포함된 이후의 손실비가 양 함대 본대와 같다(2/9)고 가정했을 때 6.7% 정도의 추가손실이 발생한다. 따라서 10함대의 최초 규모가 1함대나 2함대와 비슷한 15,000척이라고 할 경우 이 시점에서의 잔존병력(23% 내외)은 많아야 4천 척을 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8함대 소속이었던 율리시스(8함대)가 이제르론 주둔함대로 편입된 것을 보면 타 함대의 잔존 함선 중 일부도 양 함대에 합류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들의 대부분은 지방 경비함대를 재편하는데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만큼 그 수는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양 함대는 13함대 잔존병력 12,200 + 구 10함대 4,000 + 타 함대 소규모 편입 등을 합쳐 최대 17,000~18,000척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 구국군사회의 쿠데타: 11함대 본대와의 교전에서 일부 병력 손실이 있었으나 정확한 손실 규모는 알 수 없고, 이후 병력이 보충되었다는 묘사도 없다. 또한 쿠데타 진압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합류했던 지방함대나 치안부대는 사태 종료 후 임지로 복귀한 것으로 보인다.
- 회랑의 조우전: 고참병이 신편 부대의 기간요원으로 빠져나갔다고 하나 함정을 차출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소설판에서는 초계 겸 훈련을 진행하던 아텐보로 분함대가 2200척, 양 웬리가 직접 지휘한 본대가 1만 척 이상이라고 언급되지만 정확한 수치는 나오지 않는다.
-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요새 대 요새 전투) 당시: 일단 칼 구스타프 켐프가 지휘하는 16,000척을 상대로 수적 열세라는 묘사가 나오지 않은 만큼 양 함대의 규모 또한 그와 비슷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내전 종료 후의 규모에서 별로 축소되지 않았을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나이트하르트 뮐러 제독의 패잔병을 쫓던 응웬 반 티우의 분함대가 제국군 쌍벽의 매복에 걸려 전멸했으므로, 최소 3,000척 이상의 손실이 발생했을 것이다.
- 제9차 이제르론 공방전: 수송선 500여 척이 자폭한 것을 제외하면 불명이지만, 일단 함대 교전이 있었으므로 손실이 발생한 것은 분명하다.
- 수송선단-슈타인메츠-렌넨캄프-바렌 4연전: 수송선단 습격전이나 렌넨캄프와의 전투는 몰라도 슈타인메츠나 바렌을 상대로는 전면전이 있었으므로 손실이 발생할 수밖에 없지만, 타실리 성역 회전 종료 후에도 정규함대로서의 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전력은 보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 버밀리온 성역 회전: 14, 15함대의 잔존병력이 합류하여 함선 16,420척, 장병 190만 명. 회전 시점에서 14함대 사령관 모톤이 지휘하던 병력이 3,500척이지만 기존 양 함대의 규모로 유추해 봤을 때 이것이 100% 14함대의 전력이라고 보기에는 어폐가 있고, 실질적인 14/15함대 전력은 그렇게 크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 전투에서 13,400척을 손실했으며, 이후 자유행성동맹군 부대로서의 양 함대는 해산, 소멸한다.
- 양 웬리 원수 모살미수사건: 양 웬리가 버밀리온에서 빼낸 병력은 함정 60척, 병력 11,820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메르카츠가 양 웬리의 밀명을 받아 레사비크 성계에서 폐기 예정이던 군함을 탈취하고 동맹군 장병들을 상대로 합류를 권유하는 등 모병활동을 벌인 결과 숫자는 적지만 실전경험이 많은 병사들이 대거 합류했고, 우주력 799년 여름에는 우주항모 80척에 전함 464척을 보유하는 수준에 다다랐다. 한편 하이네센에서 벌어진 반란에서 양 웬리는 로젠리터 1천 명을 동원했다.
-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 수도를 탈출한 직후 전력은 군함 약 600척, 장병 16,000명에 불과했고 이후 엘 파실 독립정부에 합류하여 엘 파실 혁명군으로 개편된 이후에도 그 규모는 함정 1500척 남짓이었다. 그러나 이제르론 요새가 함락되고, 동맹 시민 및 군인들이 제국의 지배에 항거하여 엘 파실 독립정부로 망명하면서 혁명군은 함정 2만 8,840척, 장병 254만 7,400명으로 불어나 양 함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함대가 탄생한다. 그러나 함선의 30%는 정비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병력의 20%도 제대로 훈련이 되어있지 않았다.
- 회랑 전투: 약 1만 8천 척 가량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 제11차 이제르론 공방전: 손실 불명. 이후 시바 성역 회전에서 동원된 규모를 감안하면 손실률은 높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 시바 성역 회전: 잔류부대 10만 명을 제외한 모든 병력이 동원되었다. 동원 병력은 함정 9800척, 장병 56만 7200명. 하지만 함선 숫자에 비해 운용인원이 부족해서 전체 함대의 10%는 거의 무인함으로 운용되었고, 함선 손실에 대해서는 기록이 없으나 대략 20만 명의 장병이 전사했다.
소속 인물 |
소속 함선 |
[1] 엘 파실 혁명군이 된 이후부터 쓰기 시작.[2] 비정규함대는 공식적으로 인정한 함대가 아니므로 따라서 13함대-이제르론 요새 주둔함대와 엘 파실 혁명군-이제르론 혁명군은 법적인 연관성은 없다. 하지만 구 동맹군 시절 주요 인사들이 다시 결집했을 뿐만 아니라 동맹군이 멸망 직전 일부 병력을 양도하여 실질적으로 양 함대는 물론 동맹군까지 계승하게 되었다.[3] 이는 정규함대가 거의 없고 필요할 때마다 지휘관의 계급과 임무에 맞게 차출해가는 제국군 체계의 영향도 있어 보인다.[4] 양 웬리 암살사건으로 인한 승계.[5] 사령관이면서 계급이 고작 중위인게 의아할 수 있는데 이 때에 양 함대는 철저히 군벌화되어서 양 함대에서 계급보다 더 중요한게 양과의 연관성이었다. 그런데 양 함대 내에서는 양의 혈연은 아무도 없었고 그나마 가족이 아내인 프레데리카 그린힐 양과 양자인 율리안 민츠여서 프레드리카는 이제르론 공화정부 주석으로 율리안은 양 함대 사령관으로 추대한 것이다.[6] 엄밀히 말해 주둔지라기보다는 보급기지로 이 시기에 양 함대는 고정된 주둔지를 두지 않고 이곳들을 돌아다니며 보급만 받고 동맹령 전역을 돌아다니며 게릴라전을 벌였다.[7] 숫자 13을 형상화했다. 다른 함대 마크도 똑같이 숫자를 형상화했다.[8]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통합작전본부장과 우주함대 사령장관을 양 웬리가 겸임하는 조건이다.[9] 이를 두고 나중엔 설사 진상을 알았더라도 병사들은 동맹정부를 버리고 양 함대에 투신했을 거라는 말까지 나왔다.[10]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가 중장 '대우'지만 어디까지나 중장 대우를 받는 양의 개인 참모격인 객원 제독이라 공식적인 최선임은 아니다.[11] 단기적으로는 일부 질적 하락은 있었으나 심각한 능력적인 문제를 낳지는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전투를 지휘하는 실전 지휘부가 멀쩡했고 양 웬리의 전략적인 식견을 이어받은 율리안 민츠가 최고 군사 책임자가 되고 양 웬리라는 존재의 정치적인 명분은 미망인인 프레데리카 G. 양이 이어받았기 때문. 하지만 이 조합이 당장 양 웬리의 부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은 수뇌부만 인지, 납득하는 일이었으며 그 아래의 장교나 병사, 민간인들 입장에서 후계자라고 내세운 사람들은 양 웬리의 능력에 근처도 가지 못할 미망인과 양자에 불과한 듣보잡일 뿐이었다. 이들이 남은 자들의 발목을 잡는 세력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무라이 중장이 스스로를 희생하여 불만 세력을 이제르론에서 이끌고 나가야 했다.[12] 율리안의 경우 양 웬리 사후 그 제자로써 미래를 기대하고 손꼽힌 인물이라 이 구도에 넣기는 어려우며 실제로 병력을 지휘할 때 메르카츠와 아텐보로의 보좌를 받아야 했다. 제국으로 치자면 라인하르트의 아들인 알렉산더 지크프리트와 비슷한 입지인 셈. 그리고 양 사후 군사적 후계자를 누구로 할 것인지에 대한 의논에서 가장 먼저 호명된 인물이 아텐보로라는 점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13] 사실 양 웬리는 13함대 사령관 취임 전 양 웬리의 커리어는 대부분 참모로서의 커리어일 뿐인 극단적인 수준이라 세부적인 조직 운영이나 함대 운용을 경험해볼 기회가 거의 없었다. 이 부분이 참모부터 실전 부대 지휘를 고루 경험하며 성장한 후배 더스티 아텐보로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14] 이는 페잔 주재무관 보좌관으로 떠나는 율리안을 배웅하는 자리에서 무라이가 한 말로도 알 수 있다. 지휘관과 참모의 능력을 모두 갖춘 양에게 도움이 되려면,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정확히 알리는 역할이 적절하겠다고 본 것이다. 그 덕택에 양은 무라이의 질의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기상천외한 전략 전술을 자연스럽게 다른 이들에게 설명, 자칫 벌어질 수 있는 격차를 막고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15] 그나마도 프레데리카는 아버지가 쿠데타를 일으킨 후 동맹 정치인들에게 찍혔다.[16] 당시 양은 대장이었고 쇤코프는 준장이었다.[17] 대부분이 20~30대이고 피셔, 메르카츠가 그나마 나이가 많다. 그런데다가 이렇게 나이 많은 이들은 정작 진지하고 격식을 차리는 사람들이다.[18] 라인하르트의 경우에도 휘하 부하들이 하는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편이고 부하들도 꽤나 자유롭게 발언하는 편이지만 양 함대에 비해서는 훨씬 수직적인 분위기다.적어도 라인하르트의 부하들은 라인하르트가 취해서 힐데가르트를 덮쳤냐는 섹드립은 친적 없다. 이건 결국 비슷하게 일어났지만....[19] 무사려, 무분별, 무계획, 무절조, 무책임, 무반성[20] 탕아=양 웬리 함대 집=이제르론 요새[21] 양에게 숭배에 가까운 감정을 품었던 프레데리카 그린힐과 율리안 민츠부터 동맹 정부고 뭐고 양에게만 충성하던 발터 폰 쇤코프나 주의 주장 따위는 살아남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는 바그다슈 역시 양의 사후에도 양 함대에 남았다.[22] 도슨은 사관학교 교장과 1함대 후방주임참모를 역임했고, 록웰은 후방근무본부장 출신이다.[23] 후자는 아예 최고평의회 의장의 결정이 있었다고 뷰코크가 언급했으니 정치적 의도에 따른 것임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뷰코크의 말에 의하면 정말로 양 함대의 핵심인물들을 이제르론에서 빼내려고 했던 모양.[24] 메르카츠 자신도 속내는 알아차렸지만 결국 황제라는 명분으로 인해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25] 위에 나온 카스퍼 린츠의 말이 이 때 한 말이다.[26] 양 웬리 본인부터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시점을 제국의 통치에 균열이 보이기 시작하는 최소 5년 뒤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그 사이에는 연금이나 축내면서 놀고먹을 생각이었다.[27] 회랑 전투가 일어난 것도 할 일이 없던 비텐펠트가 나름 정중하게 양 웬리 함대에 항복을 권했는데 답장이 "매년 거듭되는 실패에도 그때마다 계급이 오른 기적의 인간 비텐펠트 제독에게. 귀관의 단점은 용기와 사려의 불균형에 있다. 그 점을 시정하고 싶다면 아군을 공격하라. 귀관은 실패를 교훈 삼아 성장할 마지막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 유일 이외의 장수, 더스티 아텐보로."였다. 게다가 이게 온건하고 예의 있게 쓰자고 첨삭을 거듭한 거였고 그나마도 양 웬리가 "이게 지금 온건하고 예의 있는 건가?"라고 반문했을 정도였다. 더 가관인건 정작 아텐보로의 답장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인건 그 메르카츠(!)였다. 평소 메르카츠의 온화한 인성을 생각하면 의외인 부분.[28] 사실 엄밀히 말하면 비텐펠트가 쓴 항복문도 양을 '공화주의자 잔당의 유일한 장수'라고 칭하는 등 그리 온건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비텐펠트는 양을 이르러 '동맹의 최고 지장'이라고 칭해주는 등 최소한 예의는 갖춰 보냈는데 아텐보로는 그런 최소한의 예의마저 씹어먹었다.[29] 예시로 율리안이 페잔으로 발령 났을 때 율리시즈의 함장 닐슨은 사랑니로 인한 치통 때문에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 사정을 모르는 병사들은 닐슨이 말을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승진이 보류되었기 때문이라든가, 부부싸움을 했다든가, 쇤코프랑 카드게임을 했는데 개 털렸기 때문이라고 수군댔다. 여기까지는 비교적 정상적이지만(?) 가장 압권은 닐슨이 율리안을 짝사랑했는데 페잔으로 떠나버려서(...) 상심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문도 돌았다.[30] 소설판에서도 소소한 개그 묘사가 동맹 쪽이 훨씬 더 많다. 특히 외전 3권 <율리안의 이제르론 일기>에서 그러한 모습이 잘 나타난다.[31] 슬램덩크로 치면 주인공 팀인 북산만큼 포지션에 따른 분업이 칼 같은 팀을 찾아보기가 힘든 것과 비슷하다.[32] 쇤코프, 포플랭 등[33] 기종이 같은 스파르타니안이기 때문에 성능은 서로 같아 오직 파일럿 자신의 역량에 승부가 결정된다.[34] 다만 닐슨의 말은 은근히 개그스러운데 앞부분을 말할 때는 나름 진지한 표정을 지어 마치 싸울 것 같은 분위기를 내고는 도망치라는 말에서는 고함지르는 듯한 표정을 지어서 부하들이 서둘러 도망칠 준비를 한다.[35] 사관학교 성적은 귀관보다 유능함이라는 의견서를 딸려서 보냈다. 프레데리카 개인적으로 본다면 엘 파실 전투 이후로 역키잡을 실현시킨 기회를 살렸다 봐야하나?[36] 작전짜는데만 능한 양 웬리를 대신해 함대운용을 맡았다. 회랑의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양 함대에서 사실상 2인자로 그의 죽음은 양 함대의 전성기의 종결이었다.[37] 양 웬리 암살사건 이후 이탈[38] 엘 파실 혁명군때부터 참모장으로 활약. 하지만 실질적 역할은 분함대 사령관에 가깝다.[39] 양 웬리 암살사건때 사망[40] 정확한 직책은 나오지 않지만 작중 대부분의 전투에서 아텐보로 함대에 소속되어 있었다.[41]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 산도르 알라르콘과 함께 성급하게 제국군 패잔병 부대들을 추격하다 매복에 걸려 전사.[42] 버밀리온 성역 회전까지는 함대 참모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양이 하이네센을 탈출한 후에는 분함대 사령관으로 활약했다.[43] 13함대 창설 시에는 히페리온의 함장이었다. 이후 분함대 사령관으로 승진.[44] 시바 성역 회전에서 전사[45] 양 웬리 암살사건에서 사망[46] 버밀리온 성역 회전에서 전사[47] 제국령 침공작전 종료 이후부터 소위 임관 전까지는 양 웬리의 당번병,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 전후부터 양 사망 시까지는 사실상 양의 개인 참모[48] 율리안의 호위를 담당했다. 시바 성역 회전에서 전사[49] 이쪽은 정보전을 담당했는데 마침 양 웬리 함대에 이런 역할을 맡을 사람이 이 사람 외에 없어서 신나게 활약했다. 가장 활약을 했다면 루츠를 농락한 제10차 이제르론 공방전[50]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구원군 지휘관으로 참여, 그리고 버밀리온 성역 회전 당시 잔존 부대의 지휘관으로 참여, 전사.[51] 제8차 이제르론 공방전 당시 구원군 지휘관으로 참여, 응웬 반 티우와 함께 성급하게 제국군 패잔병 부대들을 추격하다 매복에 걸려 전사.[52] 버밀리온 성역 회전 당시 잔존 부대의 지휘관으로 참여, 마르 아데타 성역 회전에서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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