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씨름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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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 Ssireum | ||
스포츠 정보 | ||
참가인원 | 2인 | |
경기 장소 | 씨름장 | |
공격 방식 | ||
공격 강도 | ||
종주국 | ||
국가무형문화재 | 제131호(2017.01.04) | |
유네스코 | 2018년 등재 |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 Traditional Korean wrestling (Ssirum/Ssireum) La lutte coréenne traditionnelle (Ssirum/Ssireum) | |
국가·위치 | |
지정번호 | |
등재연도 | |
목록구분 | 대표목록 |
한반도에서 고대부터 전해졌다고 알려진 일종의 그래플링 스포츠이자 민속놀이. 어원은 중세 한국어 어휘 실훔으로, '논쟁하다', '다투다'의 뜻을 지닌 어휘였다. 이 어휘는 방언에 아직도 "시루다, 씨루다' 의 형태로 남아있다.[3] 택견에 이어 2017년 1월 4일 무형문화재 제131호로 등재되었다. 해외에서는 벨트 레슬링으로 분류 된다.
다만, 여타 다른 무형문화재와는 달리 씨름은 한국 전역에 기반을 두고, 보편적으로 공유 및 전승되었기에 특정 보유자나 보유 단체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4]
2018년 11월 26일 남북 공동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명칭은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이다.
다만, 여타 다른 무형문화재와는 달리 씨름은 한국 전역에 기반을 두고, 보편적으로 공유 및 전승되었기에 특정 보유자나 보유 단체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한다.[4]
2018년 11월 26일 남북 공동으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명칭은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이다.
레슬링, 유도, 브라질리언 주짓수, 스모와 달리 손싸움이나 깃싸움이 없고, 상대방의 허리에 묶인 샅바를 미리 잡고 경기를 시작하는 탓에 일각에서는 힘싸움이라고 폄하되기도 한다. 그러나 붙잡은 상황에서 테이크다운 공방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접전 상황에서 유도나 레슬링은 크게 붙잡히지 않으면서 점수를 따서 경기를 뒤집을 수 있지만, 맞붙잡고 경기를 치르는 씨름의 규칙 때문에 씨름 선수의 균형 감각은 매우 좋은 편이다. 실제로 중심을 잡기 어려운 모래판에서 샅바로 상대방의 손까지 들어간 상태에서 버티고 반격하는 것은 기술과 균형 감각 없이는 불가능하다.
과거에는 한국의 유도 선수 중 씨름 경력이 있는 이들은 벨트라인을 잡는 씨름 기술을 유도에서 쓰기도 했으며 외국 선수들은 생전 처음 보는 기술에 대응하지 못하여 꽤 효과적이었다고 한다.[9] 일본 사람들이 이 점에 강한 인상을 받았는지, 고전 유도소녀만화 《야와라》에서도 언급이 된다.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실전 싸움꾼이라고 하는 조창조의 경우 자기 사정상 당시의 남한에서[10] 배울 수 있는 것은 이것저것 배웠지만 가장 실전에서 효과적이었던 것은 의외로 씨름이라고 한다. 안 배우면 대응이 안 되는데 순간적으로 상대의 균형을 흔들어서 넘어트리기 좋고 그러면 끝나기 때문이라고.[11]
다만, 아무래도 손싸움 없이 미리 맞잡은 상태로 시작하기 때문에 이는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 종목에 진출함에 있어 결코 장점이라 볼 수 없었다.[12] 실제로도 일단 잡거나 잡힌 상황에서 넘어트리는 공방 능력은 높이 평가받았지만, 상대와의 거리를 파악하고 가늠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 스탠딩 상황에서 매우 취약한 편이었다. 이는 당연한 게 씨름은 서로 붙잡은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상대와의 거리를 파악하는 능력이 아예 필요가 없다. 그런데 다른 무술들은 거리를 둔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씨름 선수들이 거리를 가늠하다가 빈틈을 보여 후속타에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씨름은 그 특성상 타격에 대한 대비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타격을 방어하는 능력이 취약한 것도 단점이었다. 그래플링이 타격기를 무조건 압도한다는 통념과 달리 산타를 개발하게 된 계기 중 하나도 유술 위주인 중국권법이 타격 공방에 있어 취약점이 드러났기 때문이고 과거 일본에서도 유도 선수들이 권투 선수들과의 교류에서 안면 타격을 대처하지 못해 크게 밀렸다는 기록이 있다.[13] 씨름 선수들 중에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사실상 유일한 선수가 최강의 리치를 가진 최홍만이었으나 정확히는 씨름 선수 경력이 있는 이들 중에서 그렇다는 거지 전성기 당시 그의 파이팅 스타일은 씨름이 아닌 리치를 활용한 아웃복싱을 하지 않고 무지막지한 피지컬로 압도하는 스타일이어서 이조차 씨름 선수로서 의미있는 결과는 아니었다. 타 그래플링과 달리 그라운드 공방 역시 존재하지 않아 일단 상대를 넘어뜨리는데 성공하더라도 거기서 무언가를 더 진행할 수 없다는 점 역시 걸림돌이 되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씨름이 유도나 레슬링 등 타 그래플링에 비해 덜 체계적이라는 거지,[14][15] 씨름 선수는 당연히 운동 좀 하는 일반인보다는 훨씬 강하다. 당장 강호동과 이만기가 정치계, 연예계 인사 중 계속해서 실전 싸움 순위권에 꼽히곤 한다.
참고로 국내 브라질리언 주짓수의 최강자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황명세 선수가 바로 씨름 선수 출신이다. 레슬링, 유도, 씨름, 주짓수(스탠딩 상황) 등의 그래플링 종목에서 상대선수를 넘어뜨리는 메커니즘 자체는 매우 비슷하기에 가능한 일.
과거에는 한국의 유도 선수 중 씨름 경력이 있는 이들은 벨트라인을 잡는 씨름 기술을 유도에서 쓰기도 했으며 외국 선수들은 생전 처음 보는 기술에 대응하지 못하여 꽤 효과적이었다고 한다.[9] 일본 사람들이 이 점에 강한 인상을 받았는지, 고전 유도소녀만화 《야와라》에서도 언급이 된다.
시라소니 이후 최고의 실전 싸움꾼이라고 하는 조창조의 경우 자기 사정상 당시의 남한에서[10] 배울 수 있는 것은 이것저것 배웠지만 가장 실전에서 효과적이었던 것은 의외로 씨름이라고 한다. 안 배우면 대응이 안 되는데 순간적으로 상대의 균형을 흔들어서 넘어트리기 좋고 그러면 끝나기 때문이라고.[11]
다만, 아무래도 손싸움 없이 미리 맞잡은 상태로 시작하기 때문에 이는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 종목에 진출함에 있어 결코 장점이라 볼 수 없었다.[12] 실제로도 일단 잡거나 잡힌 상황에서 넘어트리는 공방 능력은 높이 평가받았지만, 상대와의 거리를 파악하고 가늠하는 데에 한계가 있어 스탠딩 상황에서 매우 취약한 편이었다. 이는 당연한 게 씨름은 서로 붙잡은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상대와의 거리를 파악하는 능력이 아예 필요가 없다. 그런데 다른 무술들은 거리를 둔 상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씨름 선수들이 거리를 가늠하다가 빈틈을 보여 후속타에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씨름은 그 특성상 타격에 대한 대비를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타격을 방어하는 능력이 취약한 것도 단점이었다. 그래플링이 타격기를 무조건 압도한다는 통념과 달리 산타를 개발하게 된 계기 중 하나도 유술 위주인 중국권법이 타격 공방에 있어 취약점이 드러났기 때문이고 과거 일본에서도 유도 선수들이 권투 선수들과의 교류에서 안면 타격을 대처하지 못해 크게 밀렸다는 기록이 있다.[13] 씨름 선수들 중에 이종격투기, 종합격투기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 사실상 유일한 선수가 최강의 리치를 가진 최홍만이었으나 정확히는 씨름 선수 경력이 있는 이들 중에서 그렇다는 거지 전성기 당시 그의 파이팅 스타일은 씨름이 아닌 리치를 활용한 아웃복싱을 하지 않고 무지막지한 피지컬로 압도하는 스타일이어서 이조차 씨름 선수로서 의미있는 결과는 아니었다. 타 그래플링과 달리 그라운드 공방 역시 존재하지 않아 일단 상대를 넘어뜨리는데 성공하더라도 거기서 무언가를 더 진행할 수 없다는 점 역시 걸림돌이 되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씨름이 유도나 레슬링 등 타 그래플링에 비해 덜 체계적이라는 거지,[14][15] 씨름 선수는 당연히 운동 좀 하는 일반인보다는 훨씬 강하다. 당장 강호동과 이만기가 정치계, 연예계 인사 중 계속해서 실전 싸움 순위권에 꼽히곤 한다.
참고로 국내 브라질리언 주짓수의 최강자 중 한 명으로 일컬어지는 황명세 선수가 바로 씨름 선수 출신이다. 레슬링, 유도, 씨름, 주짓수(스탠딩 상황) 등의 그래플링 종목에서 상대선수를 넘어뜨리는 메커니즘 자체는 매우 비슷하기에 가능한 일.
55가지 씨름 공식 기술 소개│씨름 기술 55수
우리나라의 씨름 기술은 내국(內局:배지기)·외국(外局:등지기)·윤기(輪起:딴족거리) 등으로 구분되어 단조로웠다. 그러나 씨름경기가 민속놀이에서 벗어나 스포츠로 정착, 발전함에 따라 그 기술도 다각적으로 향상되었다.
1983년 9월에는 대한씨름협회와 한국민속씨름협회의 통합에 따라 씨름 기술 용어의 통일 작업을 추진했다. 이 일을 전담할 씨름기술용어심의위원회가 구성되어 마침내 씨름 기술 54수를 확정하고, 한글학회의 인준을 거쳐 1984년 1월 대한씨름협회 이사회에서 가결, 확정하였다.
씨름 기술의 근본은 심신의 힘, 즉 체력이며, 그 원리는 내부적 힘과 외부적 힘의 이치를 바탕으로 하는 임기응변적 몸의 중심상태를 뜻한다. 씨름에 있어서 공격과 방어와 받아치기의 기술은 상대의 힘에 거스르지 않고 그 힘을 이용하는 동시에 자기의 힘을 합쳐서 뜻하는 방향으로 상대의 몸의 중심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씨름 기술의 종류는 크게 손기술·다리(발)기술·허리기술·혼합기술로 나누며,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의 씨름 기술은 내국(內局:배지기)·외국(外局:등지기)·윤기(輪起:딴족거리) 등으로 구분되어 단조로웠다. 그러나 씨름경기가 민속놀이에서 벗어나 스포츠로 정착, 발전함에 따라 그 기술도 다각적으로 향상되었다.
1983년 9월에는 대한씨름협회와 한국민속씨름협회의 통합에 따라 씨름 기술 용어의 통일 작업을 추진했다. 이 일을 전담할 씨름기술용어심의위원회가 구성되어 마침내 씨름 기술 54수를 확정하고, 한글학회의 인준을 거쳐 1984년 1월 대한씨름협회 이사회에서 가결, 확정하였다.
씨름 기술의 근본은 심신의 힘, 즉 체력이며, 그 원리는 내부적 힘과 외부적 힘의 이치를 바탕으로 하는 임기응변적 몸의 중심상태를 뜻한다. 씨름에 있어서 공격과 방어와 받아치기의 기술은 상대의 힘에 거스르지 않고 그 힘을 이용하는 동시에 자기의 힘을 합쳐서 뜻하는 방향으로 상대의 몸의 중심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씨름 기술의 종류는 크게 손기술·다리(발)기술·허리기술·혼합기술로 나누며, 그 방법은 다음과 같다.
① 앞무릎치기: 바른 자세에서 어깨를 맞대어 상대방의 중심을 쏠리게 하다가, 쏠렸을 때 오른어깨와 오른다리를 빼면서 오른손으로 앞으로 나온 상대방의 오른무릎을 쳐서 앞으로 회전시켜 넘어뜨린다.
② 앞무릎짚기: 오른다리를 크게 뒤로 빼면서 오른손으로 상대의 무릎을 짚고 목과 가슴을 오른쪽으로 틀면서 고리를 비켜 위로 당기며 무릎의 손을 고정시키며 넘어뜨린다.
③ 앞무릎뒤집기: 공격수의 앞다리(오른쪽)가 상대의 오른쪽 발 앞까지 크게 비켜 앞으로 들어가면서 상대의 윗몸을 뒤집고, 오른손으로 상대의 무릎을 밑에서 위로 쳐올리면서 상체를 오른쪽으로 회전시켜 뒤집으면서 넘어뜨린다.
④ 오금당기기: 상대의 고리가 아래로 처져 있고 상대방의 앞무릎이 굽어 있을 때 두 손으로 상대의 오금을 공격수의 두 다리 사이로 끌어당겨 넘어뜨린다.
⑤ 앞무릎짚고 밀기: 바른 기본 자세에서 상대의 오른다리 무릎을 짚고 어깨(오른쪽)를 축으로 하여 밀어붙여 넘어뜨린다.
⑥ 뒷오금짚기: 상대의 자세가 왼다리 자세일 때 상대의 중심을 앞으로 약간 끌어당기면 상대가 뒤편으로 움찔 물러서려고 할 때 상대의 왼다리 오금을 걸어 몸의 중심을 낮추면서 밀어붙인다.
⑦ 옆무릎치기: 상대 자세의 다리(발) 위치가 옆으로 일직선으로 있으면서 상대가 몸 중심을 오른다리에서 왼다리로 옮길 때 오른손으로 상대의 바깥부분을 쳐서 옆으로 넘어뜨린다.
⑧ 콩꺾기: 상대의 앞무릎에 손을 대어 앞무릎치기 동작을 시도하면 상대의 앞다리와 무릎이 펴지거나 굽혀진다. 이 순간 고리를 잡은 손과 오른손으로 상대의 오금을 동시에 끌어당겨 채서 넘어뜨린다.
⑨ 팔잡아돌리기: 고리를 잡고 있던 왼손으로 상대의 오른팔의 윗부분, 즉 상박을 힘차게 잡아당기면서 오른손바닥으로 상대의 오른무릎 바깥 부위를 차면서 상대를 회전시켜 넘어뜨린다.
⑩ 앞다리들기: 통다리들기라고도 한다. 상대의 몸 중심이 뒤로 처져 있을 때 띠를 잡고 있던 손으로 상대의 고리를 깊숙이 잡고 무릎을 굽혀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로 상대의 앞다리를 들어젖혀 넘어뜨린다.
⑪ 손짚이기: 상대의 팔이 힘없이 아래로 처져 있을 때 또는 그와 비슷할 때 순간적으로 공격자의 한 손이나 두 손으로 처진 손을 경기장에 짚게 한다.[16]
② 앞무릎짚기: 오른다리를 크게 뒤로 빼면서 오른손으로 상대의 무릎을 짚고 목과 가슴을 오른쪽으로 틀면서 고리를 비켜 위로 당기며 무릎의 손을 고정시키며 넘어뜨린다.
③ 앞무릎뒤집기: 공격수의 앞다리(오른쪽)가 상대의 오른쪽 발 앞까지 크게 비켜 앞으로 들어가면서 상대의 윗몸을 뒤집고, 오른손으로 상대의 무릎을 밑에서 위로 쳐올리면서 상체를 오른쪽으로 회전시켜 뒤집으면서 넘어뜨린다.
④ 오금당기기: 상대의 고리가 아래로 처져 있고 상대방의 앞무릎이 굽어 있을 때 두 손으로 상대의 오금을 공격수의 두 다리 사이로 끌어당겨 넘어뜨린다.
⑤ 앞무릎짚고 밀기: 바른 기본 자세에서 상대의 오른다리 무릎을 짚고 어깨(오른쪽)를 축으로 하여 밀어붙여 넘어뜨린다.
⑥ 뒷오금짚기: 상대의 자세가 왼다리 자세일 때 상대의 중심을 앞으로 약간 끌어당기면 상대가 뒤편으로 움찔 물러서려고 할 때 상대의 왼다리 오금을 걸어 몸의 중심을 낮추면서 밀어붙인다.
⑦ 옆무릎치기: 상대 자세의 다리(발) 위치가 옆으로 일직선으로 있으면서 상대가 몸 중심을 오른다리에서 왼다리로 옮길 때 오른손으로 상대의 바깥부분을 쳐서 옆으로 넘어뜨린다.
⑧ 콩꺾기: 상대의 앞무릎에 손을 대어 앞무릎치기 동작을 시도하면 상대의 앞다리와 무릎이 펴지거나 굽혀진다. 이 순간 고리를 잡은 손과 오른손으로 상대의 오금을 동시에 끌어당겨 채서 넘어뜨린다.
⑨ 팔잡아돌리기: 고리를 잡고 있던 왼손으로 상대의 오른팔의 윗부분, 즉 상박을 힘차게 잡아당기면서 오른손바닥으로 상대의 오른무릎 바깥 부위를 차면서 상대를 회전시켜 넘어뜨린다.
⑩ 앞다리들기: 통다리들기라고도 한다. 상대의 몸 중심이 뒤로 처져 있을 때 띠를 잡고 있던 손으로 상대의 고리를 깊숙이 잡고 무릎을 굽혀 앞으로 나아가는 자세로 상대의 앞다리를 들어젖혀 넘어뜨린다.
⑪ 손짚이기: 상대의 팔이 힘없이 아래로 처져 있을 때 또는 그와 비슷할 때 순간적으로 공격자의 한 손이나 두 손으로 처진 손을 경기장에 짚게 한다.[16]
① 밭다리걸기: 오른쪽 다리로 상대의 오른쪽 다리를 밖으로 걸어 앞으로 당겨 붙이면서 상대의 뒷면으로 중심이 기울어지도록 감아 밀어붙여 넘어뜨린다.
② 밭다리후리기: 밭다리걸기기술과 비슷한 동작에서 상대를 시계바늘의 반대방향으로 중심을 이동시키면서 공격자의 오른다리로 상대의 오른다리를 감아 후리치는 모양으로 다리를 감아올리면서 넘어뜨린다.
③ 밭다리감아돌리기: 밭다리걸기로 상대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 재빨리 오른쪽 어깨를 빼면서 오른쪽으로 돌면서 감겨 있는 오른다리를 올리면서 감아돌린다.
④ 안다리걸기: 상대 선수를 앞으로 끌어당겨 붙여 오른다리로 상대의 왼다리를 안쪽으로 감아 끌어붙여 밀어 넘어뜨린다.
⑤ 오금걸이: 맞배지기 싸움에서 힘씨름이 되었을 때 상대의 오른쪽 오금을 안쪽으로 걸어 밀어젖혀 넘어뜨린다.
⑥ 호미걸이: 상대를 무릎 위에 들어올려 아래로 놓는 순간 상대의 발목 뒷부분을 발꿈치로 걸어서 끌어당기면서 젖혀 넘어뜨린다.[17]
⑦ 낚시걸이: 두 선수가 맞배지기로 샅바를 당겨 상체가 붙어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공격수가 오른무릎을 밖으로 굽히면서 발목을 상대의 오른발 바깥 발목에 걸어서 낚아 젖혀 넘어뜨린다.
⑧ 뒷발목걸이: 상대가 왼다리자세일 때 오른쪽 다리 발목으로 상대의 왼발 발목을 바깥으로 걸어 밀어붙여 넘어뜨린다.
⑨ 뒤축걸어밀기: 상대를 들어올리지 않고 서 있는 자세에서 오른쪽 발뒤꿈치로 상대의 오른쪽 발뒤꿈치를 걸어당겨 상대를 밀어 뒤로 넘어뜨린다.
⑩ 발목걸어틀기: 샅바를 단단히 잡고 공격자의 오른발목으로 상대의 왼다리 발목을 안으로 걸어 왼쪽으로 틀어 젖혀서 상대를 넘어뜨린다.
⑪ 앞다리차기: 바른 기본자세에서 앞으로 나와 있는 상대의 오른다리 발목을 발바닥으로 오른편에서 왼편 앞으로 차서 낚아채 넘어뜨린다.
② 밭다리후리기: 밭다리걸기기술과 비슷한 동작에서 상대를 시계바늘의 반대방향으로 중심을 이동시키면서 공격자의 오른다리로 상대의 오른다리를 감아 후리치는 모양으로 다리를 감아올리면서 넘어뜨린다.
③ 밭다리감아돌리기: 밭다리걸기로 상대에게 공격을 받았을 때 재빨리 오른쪽 어깨를 빼면서 오른쪽으로 돌면서 감겨 있는 오른다리를 올리면서 감아돌린다.
④ 안다리걸기: 상대 선수를 앞으로 끌어당겨 붙여 오른다리로 상대의 왼다리를 안쪽으로 감아 끌어붙여 밀어 넘어뜨린다.
⑤ 오금걸이: 맞배지기 싸움에서 힘씨름이 되었을 때 상대의 오른쪽 오금을 안쪽으로 걸어 밀어젖혀 넘어뜨린다.
⑥ 호미걸이: 상대를 무릎 위에 들어올려 아래로 놓는 순간 상대의 발목 뒷부분을 발꿈치로 걸어서 끌어당기면서 젖혀 넘어뜨린다.[17]
⑦ 낚시걸이: 두 선수가 맞배지기로 샅바를 당겨 상체가 붙어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공격수가 오른무릎을 밖으로 굽히면서 발목을 상대의 오른발 바깥 발목에 걸어서 낚아 젖혀 넘어뜨린다.
⑧ 뒷발목걸이: 상대가 왼다리자세일 때 오른쪽 다리 발목으로 상대의 왼발 발목을 바깥으로 걸어 밀어붙여 넘어뜨린다.
⑨ 뒤축걸어밀기: 상대를 들어올리지 않고 서 있는 자세에서 오른쪽 발뒤꿈치로 상대의 오른쪽 발뒤꿈치를 걸어당겨 상대를 밀어 뒤로 넘어뜨린다.
⑩ 발목걸어틀기: 샅바를 단단히 잡고 공격자의 오른발목으로 상대의 왼다리 발목을 안으로 걸어 왼쪽으로 틀어 젖혀서 상대를 넘어뜨린다.
⑪ 앞다리차기: 바른 기본자세에서 앞으로 나와 있는 상대의 오른다리 발목을 발바닥으로 오른편에서 왼편 앞으로 차서 낚아채 넘어뜨린다.
① 배지기: 씨름의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적인 공격재간의 하나이다. 바른 자세에서 왼쪽 아래 복부와 왼허리로서 상대를 들고 오른쪽으로 돌면서 상대의 몸안으로 들어가면서 발은 뒤꿈치를 들고 시계방향으로 돌면서 던진다.
② 오른배지기: 바깥샅바잡기 또는 왼어깨자세가 되었을 경우에 오른쪽 허리와 다리가 상대의 몸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상대의 배를 공격하여 던진다.
③ 맞배지기: 서로가 샅바를 단단히 휘어잡고 일어나자마자 몸의 중심을 낮추고 무릎을 굽혀 상대를 정면으로 맞대어 끌어붙여서 뽑아 던진다.
④ 엉덩배지기: 바른 기본자세에서 공격자가 어깨로 상대를 미는 순간 오른편으로 공격자의 몸을 크게 회전시켜 엉덩이를 상대의 배 깊숙이 돌려대어 힘차게 당기면서 상대를 돌려 던진다.
⑤ 돌림배지기: 두 선수가 기본자세로 맞잡은 상태에서 팔과 몸의 힘의 중심을 차츰 오른편 위로 올리는 ‘나선형’회전을 취하면서 상대를 배지기 형태로 돌려 던진다.
⑥ 들배지기: 샅바를 단단히 잡아 무릎을 굽히고 무릎과 무릎 사이를 약간 앞뒤로 붙여서 상대를 무릎 위까지 높이 들어올려 배지기기술로 연결시켜 던진다.
⑦ 들어놓기: 상대를 무릎 위 또는 가슴 부근까지 들어올려 몸에다 바싹 붙여 허리를 당겨 조이면서 그대로 상대가 엉덩방아를 찧게 하고 힘을 가하여 온몸으로 누른다.
⑧ 들안아놓기: 양 무릎을 굽히면서 상대의 왼편무릎을 안다리 오금 안쪽으로 당겨서 상대를 무릎 위에 높이 들어올리면서 띠를 놓은 오른손으로 상대의 두 다리를 오금을 감는 듯 짚으면서 윗몸으로 밀어붙인다.
⑨ 돌려뿌리치기: 두 선수가 무릎을 맞댄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오른쪽으로 회전하여 돌면서 그 탄력과 회전속도에 의하여 상대를 떨어뜨린다.
⑩ 공중던지기: 어깨를 맞잡고 있는 상태에서 빼면서 뒷무릎을 굽혀 약간 앞으로 나오는 동시에 상대를 비껴 앞 위로 당기며 온몸의 힘을 위로 솟구쳐 올리면서 고리와 띠를 잡은 손과 팔을 크게 왼편 위로 올려서 상대를 몸에 붙이지 않고 던진다.
⑪ 허리꺾기: 상대를 끌어당겨 허리띠를 깊숙이 잡고 고리를 잡은 손과 같이 손목을 안으로 굽히면서 허리를 꺾어 당긴다.
⑫ 밀어던지기: 바른 자세에서 뒷무릎을 약간 굽혀서 몸의 중심이 뒤로 기울어졌을 때 샅바를 당기면서 밀어붙인다.
② 오른배지기: 바깥샅바잡기 또는 왼어깨자세가 되었을 경우에 오른쪽 허리와 다리가 상대의 몸 안쪽으로 들어가면서 상대의 배를 공격하여 던진다.
③ 맞배지기: 서로가 샅바를 단단히 휘어잡고 일어나자마자 몸의 중심을 낮추고 무릎을 굽혀 상대를 정면으로 맞대어 끌어붙여서 뽑아 던진다.
④ 엉덩배지기: 바른 기본자세에서 공격자가 어깨로 상대를 미는 순간 오른편으로 공격자의 몸을 크게 회전시켜 엉덩이를 상대의 배 깊숙이 돌려대어 힘차게 당기면서 상대를 돌려 던진다.
⑤ 돌림배지기: 두 선수가 기본자세로 맞잡은 상태에서 팔과 몸의 힘의 중심을 차츰 오른편 위로 올리는 ‘나선형’회전을 취하면서 상대를 배지기 형태로 돌려 던진다.
⑥ 들배지기: 샅바를 단단히 잡아 무릎을 굽히고 무릎과 무릎 사이를 약간 앞뒤로 붙여서 상대를 무릎 위까지 높이 들어올려 배지기기술로 연결시켜 던진다.
⑦ 들어놓기: 상대를 무릎 위 또는 가슴 부근까지 들어올려 몸에다 바싹 붙여 허리를 당겨 조이면서 그대로 상대가 엉덩방아를 찧게 하고 힘을 가하여 온몸으로 누른다.
⑧ 들안아놓기: 양 무릎을 굽히면서 상대의 왼편무릎을 안다리 오금 안쪽으로 당겨서 상대를 무릎 위에 높이 들어올리면서 띠를 놓은 오른손으로 상대의 두 다리를 오금을 감는 듯 짚으면서 윗몸으로 밀어붙인다.
⑨ 돌려뿌리치기: 두 선수가 무릎을 맞댄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오른쪽으로 회전하여 돌면서 그 탄력과 회전속도에 의하여 상대를 떨어뜨린다.
⑩ 공중던지기: 어깨를 맞잡고 있는 상태에서 빼면서 뒷무릎을 굽혀 약간 앞으로 나오는 동시에 상대를 비껴 앞 위로 당기며 온몸의 힘을 위로 솟구쳐 올리면서 고리와 띠를 잡은 손과 팔을 크게 왼편 위로 올려서 상대를 몸에 붙이지 않고 던진다.
⑪ 허리꺾기: 상대를 끌어당겨 허리띠를 깊숙이 잡고 고리를 잡은 손과 같이 손목을 안으로 굽히면서 허리를 꺾어 당긴다.
⑫ 밀어던지기: 바른 자세에서 뒷무릎을 약간 굽혀서 몸의 중심이 뒤로 기울어졌을 때 샅바를 당기면서 밀어붙인다.
① 모둠앞무릎차기: 어깨로 상대의 어깨 및 윗몸을 약간 위로 밀어올리는 듯하여 발생하는 힘의 반동을 이용, 상대 몸의 중심이 약간 앞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포착하여 어깨를 빼면서 오른손으로 상대의 앞무릎을 치면서 오른발바닥으로 상대의 발목 안쪽을 걷어찬다.
② 차돌리기: 상대의 윗몸을 일으켜 세우는 동시에 오른쪽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상대의 뒷발목 및 다리를 옆으로 후려차며 돌려 던진다.
③ 무릎대어돌리기: 상대의 윗몸을 일으켜 세우는 동시에 오른쪽 발바닥으로 상대편 왼다리 바깥무릎에 대어 오른쪽으로 돌려 던진다.
④ 등채기: 허리띠를 잡고 있는 오른편 손이 상대의 어깨너머로 띠를 잡아서 앞으로 힘껏 잡아당기면서 던진다.
⑤ 등쳐감아돌리기: 오른다리로 상대의 오른쪽 바깥 오금을 감는 동시에 등띠를 잡고 왼쪽 다리를 축으로 하여 왼편으로 중심회전을 하되 감겨 있는 다리를 위로 올리면서 윗몸을 앞으로 굽히면서 크게 회전한다.
⑥ 등쳐감아젖히기: 등띠를 잡은 자세에서 오른다리로 상대의 오른다리를 감고 등쳐감아돌리기의 기술과 반대로 몸을 뒤로 당겨 젖힌다.
⑦ 연장걸이: 바른기본자세에서 오른다리로 상대의 오른다리를 꼬아 감아서 왼쪽 다리를 축으로 하여 중심이동하여 돌며 감아 던진다.
⑧ 잡채기: 기본자세에서 순간적 순발력으로 힘껏 샅바를 당겨 오른쪽 허리를 상대의 허리 및 몸에 붙이는 동시에 상대의 허리를 꺾는듯 젖혀 던진다.
⑨ 애목잡채기: 허리띠를 잡고 있던 손으로 상대의 목을 감아 잡채기 기술요령에 의한 방법으로 공격을 시도하여 던진다.
⑩ 들어잡채기: 오른다리를 상대방의 다리 사이에 넣고 상대방을 가슴 가까이 당겨 든 자세에서 왼쪽으로 젖혀 넘어뜨린다.
⑪ 옆채기: 바깥잡기에서 고리를 잡은 왼손을 놓고 왼쪽으로 돌면서 오른다리를 상대방의 다리 사이에 깊숙이 넣고 허리샅바를 당기면서 옆으로 채올려 넘어뜨린다.
⑫ 업어던지기: 상대의 허리샅바를 놓고 상대의 오른팔을 잡고 오른허리를 상대의 허리부분에 밀착시켜 몸을 왼쪽으로 돌려 상대를 업어서 던진다.
⑬ 어깨넘어던지기: 겹쳐잡기 상태에서 상대편 몸 안에 있던 선수가 뒤로 뒤집는 자세로써 상대를 어깨너머로 던진다.
⑭ 자반뒤집기: 기본자세에서 장기전 상태로 돌입하여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에서 등띠를 잡고 위에서 등을 누를 때 상대편 몸 아래 있는 선수가 뒤집어 젖힌다.
⑮ 샅들어치기: 겹쳐잡은 상태에서 사타구니 사이로 들어가서 머리와 목으로 흔들어 중심을 잃게 하여 뒤로 넘어뜨린다.
⑯ 앞으로누르기: 혼전 끝에 상대의 몸 중심이 앞으로 쏠릴 때 상대의 윗몸을 아래로 눌러 손을 짚게 하거나 앞으로 쓰러지게 한다.
⑰ 꼭뒤집기: 상대의 바깥다리를 피하면서 뒷덜미를 손으로 누르고 왼쪽 다리 고리의 손을 틀면서 오른쪽으로 돌려 넘어뜨린다.
⑱ 빗장걸이: 상대방의 안다리걸기기술이 성립되었을 때 상대의 다리를 사타구니로 죄어붙여 발목으로 상대의 왼다리 오금을 걸어 왼쪽으로 젖힌다.
⑲ 무릎틀기: 기본자세에서 맞배지기 형태로 쌍방 무릎이 굽은 상태에서 쌍방이 오른쪽 부분이 맞닿아 있을 때 상대의 옆무릎을 붙여 왼편으로 틀어젖힌다.
⑳ 덫걸이: 상대가 배지기 공격을 할 때 또는 왼다리를 앞으로 세울 때 오른다리로 상대의 왼다리를 밖으로 걸어당겨 상대를 밀어 덮친다.
② 차돌리기: 상대의 윗몸을 일으켜 세우는 동시에 오른쪽 방향으로 회전하면서 상대의 뒷발목 및 다리를 옆으로 후려차며 돌려 던진다.
③ 무릎대어돌리기: 상대의 윗몸을 일으켜 세우는 동시에 오른쪽 발바닥으로 상대편 왼다리 바깥무릎에 대어 오른쪽으로 돌려 던진다.
④ 등채기: 허리띠를 잡고 있는 오른편 손이 상대의 어깨너머로 띠를 잡아서 앞으로 힘껏 잡아당기면서 던진다.
⑤ 등쳐감아돌리기: 오른다리로 상대의 오른쪽 바깥 오금을 감는 동시에 등띠를 잡고 왼쪽 다리를 축으로 하여 왼편으로 중심회전을 하되 감겨 있는 다리를 위로 올리면서 윗몸을 앞으로 굽히면서 크게 회전한다.
⑥ 등쳐감아젖히기: 등띠를 잡은 자세에서 오른다리로 상대의 오른다리를 감고 등쳐감아돌리기의 기술과 반대로 몸을 뒤로 당겨 젖힌다.
⑦ 연장걸이: 바른기본자세에서 오른다리로 상대의 오른다리를 꼬아 감아서 왼쪽 다리를 축으로 하여 중심이동하여 돌며 감아 던진다.
⑧ 잡채기: 기본자세에서 순간적 순발력으로 힘껏 샅바를 당겨 오른쪽 허리를 상대의 허리 및 몸에 붙이는 동시에 상대의 허리를 꺾는듯 젖혀 던진다.
⑨ 애목잡채기: 허리띠를 잡고 있던 손으로 상대의 목을 감아 잡채기 기술요령에 의한 방법으로 공격을 시도하여 던진다.
⑩ 들어잡채기: 오른다리를 상대방의 다리 사이에 넣고 상대방을 가슴 가까이 당겨 든 자세에서 왼쪽으로 젖혀 넘어뜨린다.
⑪ 옆채기: 바깥잡기에서 고리를 잡은 왼손을 놓고 왼쪽으로 돌면서 오른다리를 상대방의 다리 사이에 깊숙이 넣고 허리샅바를 당기면서 옆으로 채올려 넘어뜨린다.
⑫ 업어던지기: 상대의 허리샅바를 놓고 상대의 오른팔을 잡고 오른허리를 상대의 허리부분에 밀착시켜 몸을 왼쪽으로 돌려 상대를 업어서 던진다.
⑬ 어깨넘어던지기: 겹쳐잡기 상태에서 상대편 몸 안에 있던 선수가 뒤로 뒤집는 자세로써 상대를 어깨너머로 던진다.
⑭ 자반뒤집기: 기본자세에서 장기전 상태로 돌입하여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에서 등띠를 잡고 위에서 등을 누를 때 상대편 몸 아래 있는 선수가 뒤집어 젖힌다.
⑮ 샅들어치기: 겹쳐잡은 상태에서 사타구니 사이로 들어가서 머리와 목으로 흔들어 중심을 잃게 하여 뒤로 넘어뜨린다.
⑯ 앞으로누르기: 혼전 끝에 상대의 몸 중심이 앞으로 쏠릴 때 상대의 윗몸을 아래로 눌러 손을 짚게 하거나 앞으로 쓰러지게 한다.
⑰ 꼭뒤집기: 상대의 바깥다리를 피하면서 뒷덜미를 손으로 누르고 왼쪽 다리 고리의 손을 틀면서 오른쪽으로 돌려 넘어뜨린다.
⑱ 빗장걸이: 상대방의 안다리걸기기술이 성립되었을 때 상대의 다리를 사타구니로 죄어붙여 발목으로 상대의 왼다리 오금을 걸어 왼쪽으로 젖힌다.
⑲ 무릎틀기: 기본자세에서 맞배지기 형태로 쌍방 무릎이 굽은 상태에서 쌍방이 오른쪽 부분이 맞닿아 있을 때 상대의 옆무릎을 붙여 왼편으로 틀어젖힌다.
⑳ 덫걸이: 상대가 배지기 공격을 할 때 또는 왼다리를 앞으로 세울 때 오른다리로 상대의 왼다리를 밖으로 걸어당겨 상대를 밀어 덮친다.
샅바 잡기는 샅바의 고리부분이 걸린 다리나 샅바를 잡는 팔이 상대의 팔보다 위에 있는 경우에 따라, 보통 왼샅바, 오른샅바, 양샅바로 나뉜다. 체계화된 공식경기에서는 왼샅바가 정식이지만, 지역별로는 각기 다르다. 한국의 경우에는 앉아서 샅바를 잡지만 북한의 경우에는 한국 프로 씨름의 더잡기 때처럼 서서 샅바를 잡는것이 보통이다.
상대가 공격을 할 때 반격을 하는 기술이다.
- 되치기: 현재까지 유일한 반격기술, 상대방의 공격을 견뎠거나 받고있을때 역으로 기술을 쓴다. [18]
고구려 시대의 고분 중 각저총의 씨름도 벽화에서 알 수 있듯, 그 역사가 유구한 놀이이자 스포츠다. 한국의 전통 무술이라 할만한 것들 중에서도 특히 투기 중에서는 태껸과 함께 그나마 씨름 정도가 현대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고려 시대까지는 수박이나 격구 같은 무술이 성행했지만, 조선시대는 오랜 기간 전쟁이 없었고[19] 고려 말의 혼란기와 왕자의 난에서 얻은 교훈, 사병 혁파 등으로 말미암아 단체로 무술을 수련하는 것을 반역과 같은 것으로 보게 되어 전통 무술의 명맥이 거의 끊기게 된다. 그러나 씨름이나 택견은 둘 다 무술과 스포츠 두가지의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조선 시대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일제강점기까지 버텨냈다.[20]
어쨌든 씨름에 대한 기록은 꽤나 많이 남아서 고려 충숙왕은 씨름 매니아였다고 전해지며 아들 충혜왕은 아예 궁궐에서 씨름을 즐겼고 공민왕도 국가주관으로 대회를 열어 씨름 대회에서 우승한 씨름꾼에게 쌀을 상품으로 내걸었으며, 용사라고 칭하여 왕을 호위하는 벼슬을 내려주었다.[21] 조선시대에도 국가 주관으로 대회를 열어서 좋은 성적을 걷은 씨름 선수에게 상품을 주기도 했고, 무예연습종목에 씨름을 포함시키기도 했다고 하니 나름대로 씨름을 긍정적으로 본 듯하다. 다만 명종대에 궁궐에서까지 씨름이 성행하던 도중에 경기에서 진 사람이 이긴 사람을 살해하는 살인사건까지 일어나게 되자, 사헌부에서 일시적으로 씨름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는 반짝 단속정도에 그쳤는지 그냥 흐지부지 된 모양으로, 이순신 장군도 씨름 대회를 열어서 경기를 관람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씨름의 명맥은 꾸준히 이어져, 조선 후기에는 단오와 설날이면 지역별로 소규모 경기가 열렸다고 전해지며 우승상품은 황소였다고 한다. 이것이 현대에도 트로피가 황소 모양인 이유다. 때문에 전국 씨름판을 돌며 소를 타가는, 소위 전문 씨름꾼들도 있었다고 하는데[22] 문제는 이 씨름이 워낙에 인기가 높았던 탓에 구경꾼들이 결과를 놓고 도박을 벌이는 등 범죄와 연결되는 문제가 있어서 조정에서 단속을 가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또한 위의 경우와 같이 어디까지나 반짝 단속 정도 수준에 그쳤고,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인기를 이어가서 이는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졌다.
이렇게 전국적으로 행해지던 씨름이 현대 스포츠로서의 구색을 갖춘 것은 1927년 9월, 조선씨름협회의 창단 당해[23] 휘문고등학교에서 개최된 ‘제1회 전조선 씨름 대회’로 비록 체급을 나누는 등의 세세한 규칙을 정하지는 못하였으나 지역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던 씨름의 룰을 통합해 현대 씨름의 형태를 규정했다는 의의를 가진 최초의 프로 씨름이었다.
그 이후로도 씨름은 꾸준히 행해졌으나 이미 3.1 운동에 호되게 당한 전적이 있던 일제는 새로운 집회의 불씨가 될지 모르는 씨름 경기를 마땅치 않게 생각했고, 일제의 광기가 극에 치달은 1940년대에 달해선 1941년의 ‘제6회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를 마지막으로 씨름 경기는 더 이상 열리지 못했으며, 이는 해방까지 쭉 이어진다.
그러나 광복 이후 1946년, 조선씨름협회는 대한씨름협회로 명칭을 개명한 뒤 이듬해 기존의 전조선씨름선수권대회의 명칭 또한 '전국씨름선수권대회'로 바꾸어 다시금 씨름 경기를 개최하기 시작했고, 1956년 열린 ‘제12회 전국씨름선수권대회’부터 체급제를 도입함으로써 씨름은 전 국민이 열광하는 현대 스포츠로서 새롭게 도약하게 된다.
해방 후에도 꾸준히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다. 씨름이 프로화 되기 이전인 1950~60년대에는, 명절 때 지역마다 씨름 대회가 열리곤 했다고 한다. 당시 전국을 돌면서 소를 타가는 반(半)직업적인 선수들도 있었다고 한다. 한창 인기가 있었을 때는 동네 단위로 씨름 대회도 있었다. 특히, 큰 동네에서 씨름 대회가 열렸다 하면 힘 좀 쓴다 하는 사람들이 모두 출전했다. 상품으로 소가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기실 고려 시대 때는 삼베가 상품이었고, 조선시대 때는 차등을 줘서 상품을 줬다고 한다.[24] 무조건 소를 준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상품 대신 상금을 주기 시작한 건 1970년대부터라고 전해진다.
대한뉴스 제1회 천하장사 씨름 대회
그러다 1983년 4월 13일부터 4월 17일까지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 제1회 천하장사 씨름 대회를 계기로 씨름 중흥의 장이 열린다. 특히 1회 대회 천하장사인 이만기라는 엄청난 스타가 씨름계의 제왕이 되면서[25] 국민 스포츠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러다 1983년 4월 13일부터 4월 17일까지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 제1회 천하장사 씨름 대회를 계기로 씨름 중흥의 장이 열린다. 특히 1회 대회 천하장사인 이만기라는 엄청난 스타가 씨름계의 제왕이 되면서[25] 국민 스포츠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당시 민속 씨름의 인기는 어느 정도였냐면 천하장사 결승전을 할 때는 길거리가 텅텅 비었고 심지어 밤 9시 메인뉴스가 천하장사 결승전 중계방송에 밀리던 때가 있었다. 1986 서울 아시안 게임 개회식에서 대한민국 선수단 기수를 맡았고 이 대회 역도 남자 최중량급에서 금메달까지 땄던 이민우 선수가 얼마 안 지나 씨름으로 전향했을 정도였다.#[26]
이만기가 국민 천하장사가 되어 1980년대를 호령하면서 폭발했던 국민적인 인기는 훗날 강호동이 혜성처럼 등장하여, 이만기 이후의 2세대 민속 씨름의 간판으로 활약한 1990년대 초까지 유지되었다. 그러나 강호동이 돌연 은퇴 선언 후 방송인으로 전업하고 기존의 씨름 플레이 스타일이 대중으로부터 흥미를 얻지 못한데다 1997년 외환 위기의 영향으로 씨름단이 다수 해체되면서 씨름의 인기는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다.
경기시간을 오전부터 잡아서 거의 하루종일 하는데다 서울특별시나 광역시보다는 각 지방의 군 단위 지역을 순회하며 대회를 열기 때문에 직관을 가고 싶어도 못 가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래도 전국단위 씨름 대회가 열릴 때면 항상 지상파 KBS1을 통해 대대적으로 생중계되는 점이[27]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만일 경기 시간을 구기종목처럼 저녁 시간으로 개선해준다면 직장인들과 학생들을 팬으로 끌어모을 수 있다.
여자 씨름의 경우 해방 전까지 명확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으며, 해방 전후인 1940~50년대에 영남 일부지역에서 간헐적으로 행해졌다고 한다. 1970년대에 전라남도 구례군에서 정식으로 여자 씨름 대회[28]를 개최하면서 최초의 전국규모 대회가 되었고, 1991년부터 대통령배 대회가 개최되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다.
남북분단 이전부터 향유하던 문화이므로 북한에서도 하는데, 기념일이나 명절때마다 국가나 지방정부, 학교 주도로 경기가 열리곤 하며, 각종 체육대회 종목으로 지정되는 등 많이 장려된 종목이라고 한다. 특히 우승자에게는 황소 한 마리 등 푸짐한 상품을 내주면서[29][30] 큰 관심과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참가하는데에 있어서 나이와 직종제한은 일절 없다고 하며 쇠퇴의 길로 접어 결국 없어진 남한의 민속 씨름과는 다르게 여전히 인기가 많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도 씨름 선수나 전직 씨름 선수가 유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는 하다. 다만 남한의 씨름 대회와는 몇가지가 다르기는 한데 우선 남자의 경우에는 상의를 탈의한 채 출전하는 남한의 씨름 대회와는 다르게 상의를 입은 채로 경기에 출전하며 경기장도 모래판이 아닌 매트판에서 진행한다. 물론 기본적인 규칙은 비슷하다.
씨름 선수들은 대체로 체중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군대 신체검사에서 대부분 보충역 이하의 판정을 받는다. 과거에는 BMI 면제 기준이 지금보다 널널해서 씨름 선수가 군대 면제 판정을 많이 받았으나 현재는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프로 씨름이 1990년대 중후반 들어 몰락한 이유는 다른 프로 스포츠의 인기와 젊은 세대의 무관심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는 이만기로 대표할 수 있는 비교적 체격이 작은 선수들이, 현란한 기술과 몸놀림으로 큰 덩치를 넘어뜨리는 화려한 씨름이 점점 쇠퇴하고, 덩치로 승부하는 빅맨들의 게임이 씨름의 주류가 되면서, 재미가 없어졌다는 게 거론된다. 일본의 스모의 몰락과 비슷한 현상이다.
프로 씨름 초기에는 체중 무제한인 백두급 선수라고 해도 120~130kg 정도가 최고였으나, 강호동의 은퇴 이후 160kg에 육박하던 김정필이 체격과 힘으로 버티는 수비 씨름으로 일관한 끝에 정상에 오르면서 150kg를 넘는 초중량 선수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이후 이 거구의 선수들이 버티는 수비씨름만 일삼다보니 지루함에 관객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김칠규 등 기술 씨름의 명맥을 잇는 테크니션들이 김정필을 꺽으면서 열렬한 환호를 받기도 했지만, 점점 대형화하는 선수들과는 반대로 경기 내용은 단조로워졌다. 심지어 200kg이 넘는 씨름 선수가 등장하기도 했으니 말 다한 셈. 이런 빅맨들 중에서도 박광덕이 람바다를 추는 등 쇼맨십을 가진 선수들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31]
자신보다 훨씬 큰 덩치를 화려한 콤보 기술로 내다꽂던 이만기, 고경철, 손상주 등의 기술 씨름과 함께, 이준희, 이봉걸이 3李 시대를 이루며 각자 개성을 뽐내던 시기에서 샅바 잡고 주야장천 밀고 당기기만 하다가 끝나는[32] 지루한 씨름이 대세가 되니, 당연히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여기서 결정적으로 카운터를 날린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백승일과 이태현의 천하장사 결승전이다. 이 경기는 씨름 몰락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백승일은 큰 덩치에도 화려한 기술과 유연성을 보인데다, 끼와 말재주도 좋아 수비씨름으로 일관하던 김정필 부류의 선수들과 차별화 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같은 청구씨름단 소속이자 수퍼루키였던 이태현과의 결승전에서 서로 샅바잡고 빙빙돌다 시간만 끌어대면서 무려 연장전을 포함 7차전 끝에 계체로 승부가 결정되는 볼썽 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던 것. 문제는 이태현이 같은 팀 소속이라 백승일의 체중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승부를 피하다 계체로 가면 자신이 이긴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이다. 계속 승부를 내지 못하고 연장전이 되자 그래도 승부를 보려고 공격을 하는 백승일과 달리, 아예 대놓고 시간끄는 자세로 뒤로 물러서는 이태현은 관중들의 야유가 빗발쳤는데도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둘 다 씨름의 미래라 불리던 10대 선수가 승리에 눈이 멀어 저울 달기로 승부를 끌고가는 추한 모습을 생방송으로 보던 사람들은 씨름에 대놓고 혐오감을 느꼈고, 이 경기를 기점으로 씨름의 시청률과 관심도 대 폭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태현은 이후 백승일이 선점한 수퍼루키의 위치를 자신이 차지하고 씨름계의 최강자로 올라섰지만, 이미 등을 돌린 관객들은 채널을 돌리고 경기장에 발을 끊기 시작한 후였다.
이처럼 씨름계를 대표할만한 초대형 스타의 명맥이 끊긴 것은 씨름의 쇠퇴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잘생긴 외모에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모래판의 황제 이만기,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인간 기중기 이봉걸 이들이 경쟁하던 86~88년 사이는 그야말로 씨름의 황금시대로, 천하장사대회 평균 시청률이 3,40%를 유지했으며, 천하장사대회 결승전에는 길거리가 한산할 지경이었다. 이들의 은퇴 후에도 선수생활 은퇴를 예고하며 황혼기에 접어든 이만기를 꺾으며 새롭게 떠오른 당돌하고 건방진 악동 강호동의 존재로 이만기 은퇴에 따른 충격을 어느정도 상쇄할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초, 새로운 간판으로 떠올랐던 강호동의 갑작스러운 은퇴 후에는, 위에 서술한 것처럼 '슈퍼두꺼비' 김정필을 위시한 비만형 선수들의 수비 씨름이 흥미를 떨어뜨렸고, 한때 '제2의 강호동'으로 불린 백승일, '모래판의 황태자' 이태현, '봉팔이' 신봉민, '들소' 김경수, '모래판의 귀공자' 황규연, '골리앗' 김영현 등이 1990년대 중후반 씨름판을 이끌어 갔지만, 이만기와 강호동이 호령하던 시절의 카리스마와 스타성에는 한 참 미치지 못했다. 이후 여러 유망주들이 등장했지만, 대부분 소리 소문 없이 묻혔다.
1990년대 내내 씨름의 인기가 점점 떨어지면서, 대회 스폰서가 떨어져 나갔다. 1996년까지만 해도 현대 코끼리 씨름단, LG증권 황소 씨름단, 세경진흥 사자 씨름단[33], 부산조흥금고 호랑이씨름단, 일양약품 원비씨름단, 청구 청룡씨름단[34], 한보철강 멧돼지씨름단[35], 진로 두꺼비씨름단[36] 등 8개에 이르렀던 프로 씨름단은 1997년 들어 한보 사태의 여파로 한보 씨름단을 시작으로 1997년 외환 위기 크리까지 겹쳐 세경진흥, 조흥금고, 청구, 일양약품 씨름단이 줄줄이 해체되고[37] 1999년 봄 진로 씨름단마저 끝내 해체되고 삼익파이낸스 백마씨름단과 강원태백건설 곰씨름단이 창단되어 4개 팀으로 겨우 구색을 맞추었지만 이 팀들도 모기업이 자금사정이 좋지 못했던지라 오래 존속하지 못했다. 결국 2000년에 신창건설 코뿔소씨름단이 삼익파이낸스 씨름단을, 지한정보통신 씨름단이 태백건설 씨름단을 인수했지만 지한 씨름단마저 오래 존속하지 못해 프로 씨름은 2004년까지 단 3팀만으로 운영되었다. 또한 지상파 TV 중계가 크게 줄어드는 와중에, 씨름연맹은 대책은커녕 미봉책조차 내놓지 않은 채 그저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천하장사 출신인 최홍만이 이종격투기로 전향하여 K-1에서 성공하고, 뒤따라 이태현, 김영현 등도 씨름판을 떠나 이종격투기로 옮긴 일은 씨름판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서, 어떻게든 씨름 인기를 살려보겠다고 고군분투하는 이만기를 씨름연맹은 시끄럽다고 영구제명해버렸다. 이것은 씨름연맹의 가장 큰 삽질로 평가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로, 씨름이 이 정도까지 몰락하게 된 배경으로는, 씨름에 큰 위기가 닥쳤는데도 무사안일에 가까운 태도로 일관하여 프로 씨름을 망하게 만들다시피 한 한국씨름연맹이 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한국e스포츠협회, 한국성우협회 등 일 못한다고 욕먹는 협회야 많긴 하지만 그래도 판 자체를 부숴버릴 수준으로 일을 개판으로 하지는 않는데, 아예 리그 자체를 망하게 할 정도로 일을 전혀 하지 않은 협회는 한국 역사상 한국씨름연맹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인기 있는 스포츠라도, 스타의 부재와 무능한 협회의 이중고가 작렬하면 리그가 망한다는 대표적인, 그리고 가장 처절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한때는 10팀이 넘어가던 프로팀은 최홍만이 속해있던 LG투자증권이 2004년을 마지막으로 해체되고 신창건설 씨름단마저 2006년 초에 해체되어 사실상 막을 내렸고[38], 유일하게 남아 있던 현대중공업도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에 운영권을 넘기고 실업팀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2017년 유일한 기업팀이었던 현대삼호중공업 씨름단도 해체되고 영암군청[39] 씨름단으로 재창단되었다. 현재는 이처럼 지자체 소속의 실업팀 위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종격투기로 옮긴 전직 씨름 선수는 최홍만을 제외하면 고전을 면치 못하고 대부분 조기 은퇴하거나 씨름계로 복귀했다.
프로 씨름 초기에는 체중 무제한인 백두급 선수라고 해도 120~130kg 정도가 최고였으나, 강호동의 은퇴 이후 160kg에 육박하던 김정필이 체격과 힘으로 버티는 수비 씨름으로 일관한 끝에 정상에 오르면서 150kg를 넘는 초중량 선수들이 우후죽순 등장했다. 이후 이 거구의 선수들이 버티는 수비씨름만 일삼다보니 지루함에 관객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물론 김칠규 등 기술 씨름의 명맥을 잇는 테크니션들이 김정필을 꺽으면서 열렬한 환호를 받기도 했지만, 점점 대형화하는 선수들과는 반대로 경기 내용은 단조로워졌다. 심지어 200kg이 넘는 씨름 선수가 등장하기도 했으니 말 다한 셈. 이런 빅맨들 중에서도 박광덕이 람바다를 추는 등 쇼맨십을 가진 선수들이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역부족이었다.[31]
자신보다 훨씬 큰 덩치를 화려한 콤보 기술로 내다꽂던 이만기, 고경철, 손상주 등의 기술 씨름과 함께, 이준희, 이봉걸이 3李 시대를 이루며 각자 개성을 뽐내던 시기에서 샅바 잡고 주야장천 밀고 당기기만 하다가 끝나는[32] 지루한 씨름이 대세가 되니, 당연히 인기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
여기서 결정적으로 카운터를 날린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백승일과 이태현의 천하장사 결승전이다. 이 경기는 씨름 몰락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백승일은 큰 덩치에도 화려한 기술과 유연성을 보인데다, 끼와 말재주도 좋아 수비씨름으로 일관하던 김정필 부류의 선수들과 차별화 된 모습을 보였다. 그런데 같은 청구씨름단 소속이자 수퍼루키였던 이태현과의 결승전에서 서로 샅바잡고 빙빙돌다 시간만 끌어대면서 무려 연장전을 포함 7차전 끝에 계체로 승부가 결정되는 볼썽 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던 것. 문제는 이태현이 같은 팀 소속이라 백승일의 체중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승부를 피하다 계체로 가면 자신이 이긴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이다. 계속 승부를 내지 못하고 연장전이 되자 그래도 승부를 보려고 공격을 하는 백승일과 달리, 아예 대놓고 시간끄는 자세로 뒤로 물러서는 이태현은 관중들의 야유가 빗발쳤는데도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둘 다 씨름의 미래라 불리던 10대 선수가 승리에 눈이 멀어 저울 달기로 승부를 끌고가는 추한 모습을 생방송으로 보던 사람들은 씨름에 대놓고 혐오감을 느꼈고, 이 경기를 기점으로 씨름의 시청률과 관심도 대 폭락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태현은 이후 백승일이 선점한 수퍼루키의 위치를 자신이 차지하고 씨름계의 최강자로 올라섰지만, 이미 등을 돌린 관객들은 채널을 돌리고 경기장에 발을 끊기 시작한 후였다.
이처럼 씨름계를 대표할만한 초대형 스타의 명맥이 끊긴 것은 씨름의 쇠퇴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 잘생긴 외모에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모래판의 황제 이만기,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인간 기중기 이봉걸 이들이 경쟁하던 86~88년 사이는 그야말로 씨름의 황금시대로, 천하장사대회 평균 시청률이 3,40%를 유지했으며, 천하장사대회 결승전에는 길거리가 한산할 지경이었다. 이들의 은퇴 후에도 선수생활 은퇴를 예고하며 황혼기에 접어든 이만기를 꺾으며 새롭게 떠오른 당돌하고 건방진 악동 강호동의 존재로 이만기 은퇴에 따른 충격을 어느정도 상쇄할 수 있었다. 그러나 90년대 초, 새로운 간판으로 떠올랐던 강호동의 갑작스러운 은퇴 후에는, 위에 서술한 것처럼 '슈퍼두꺼비' 김정필을 위시한 비만형 선수들의 수비 씨름이 흥미를 떨어뜨렸고, 한때 '제2의 강호동'으로 불린 백승일, '모래판의 황태자' 이태현, '봉팔이' 신봉민, '들소' 김경수, '모래판의 귀공자' 황규연, '골리앗' 김영현 등이 1990년대 중후반 씨름판을 이끌어 갔지만, 이만기와 강호동이 호령하던 시절의 카리스마와 스타성에는 한 참 미치지 못했다. 이후 여러 유망주들이 등장했지만, 대부분 소리 소문 없이 묻혔다.
1990년대 내내 씨름의 인기가 점점 떨어지면서, 대회 스폰서가 떨어져 나갔다. 1996년까지만 해도 현대 코끼리 씨름단, LG증권 황소 씨름단, 세경진흥 사자 씨름단[33], 부산조흥금고 호랑이씨름단, 일양약품 원비씨름단, 청구 청룡씨름단[34], 한보철강 멧돼지씨름단[35], 진로 두꺼비씨름단[36] 등 8개에 이르렀던 프로 씨름단은 1997년 들어 한보 사태의 여파로 한보 씨름단을 시작으로 1997년 외환 위기 크리까지 겹쳐 세경진흥, 조흥금고, 청구, 일양약품 씨름단이 줄줄이 해체되고[37] 1999년 봄 진로 씨름단마저 끝내 해체되고 삼익파이낸스 백마씨름단과 강원태백건설 곰씨름단이 창단되어 4개 팀으로 겨우 구색을 맞추었지만 이 팀들도 모기업이 자금사정이 좋지 못했던지라 오래 존속하지 못했다. 결국 2000년에 신창건설 코뿔소씨름단이 삼익파이낸스 씨름단을, 지한정보통신 씨름단이 태백건설 씨름단을 인수했지만 지한 씨름단마저 오래 존속하지 못해 프로 씨름은 2004년까지 단 3팀만으로 운영되었다. 또한 지상파 TV 중계가 크게 줄어드는 와중에, 씨름연맹은 대책은커녕 미봉책조차 내놓지 않은 채 그저 사태를 강 건너 불구경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2000년대 들어 천하장사 출신인 최홍만이 이종격투기로 전향하여 K-1에서 성공하고, 뒤따라 이태현, 김영현 등도 씨름판을 떠나 이종격투기로 옮긴 일은 씨름판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서, 어떻게든 씨름 인기를 살려보겠다고 고군분투하는 이만기를 씨름연맹은 시끄럽다고 영구제명해버렸다. 이것은 씨름연맹의 가장 큰 삽질로 평가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로, 씨름이 이 정도까지 몰락하게 된 배경으로는, 씨름에 큰 위기가 닥쳤는데도 무사안일에 가까운 태도로 일관하여 프로 씨름을 망하게 만들다시피 한 한국씨름연맹이 있다. 대한빙상경기연맹, 한국e스포츠협회, 한국성우협회 등 일 못한다고 욕먹는 협회야 많긴 하지만 그래도 판 자체를 부숴버릴 수준으로 일을 개판으로 하지는 않는데, 아예 리그 자체를 망하게 할 정도로 일을 전혀 하지 않은 협회는 한국 역사상 한국씨름연맹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인기 있는 스포츠라도, 스타의 부재와 무능한 협회의 이중고가 작렬하면 리그가 망한다는 대표적인, 그리고 가장 처절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한때는 10팀이 넘어가던 프로팀은 최홍만이 속해있던 LG투자증권이 2004년을 마지막으로 해체되고 신창건설 씨름단마저 2006년 초에 해체되어 사실상 막을 내렸고[38], 유일하게 남아 있던 현대중공업도 계열사인 현대삼호중공업에 운영권을 넘기고 실업팀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2017년 유일한 기업팀이었던 현대삼호중공업 씨름단도 해체되고 영암군청[39] 씨름단으로 재창단되었다. 현재는 이처럼 지자체 소속의 실업팀 위주로 근근이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종격투기로 옮긴 전직 씨름 선수는 최홍만을 제외하면 고전을 면치 못하고 대부분 조기 은퇴하거나 씨름계로 복귀했다.
씨름의 침체기 이후로 1980년대 전성기와는 달리, 이제는 천하장사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도 늘어났다. 지금까지도 유명세를 타고 있고, 광고모델은 물론 TV에도 출연한 적이 있었던 이만기나 강호동이나 최홍만까지는 지금도 대다수가 기억하고 있는 편이나[40], 요즘에는 천하장사가 탄생하거나 배출되어도, 그가 누군지 이름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만큼 씨름이 심하게 침체되고 쇠락한 것이다. 그래도 설날과 추석 연휴가 되면, KBS 1TV에서 14~17시 시간대에 꾸준히 편성을 해주니[41], 중계조차 끊어진 다른 종목들에 비하면 민속 종목으로서 우대를 받고 있는 편이다.[42]
그나마 예전에 살덩이들이 시간만 질질 끄는 지루한 경기 패턴을 버리고, 경기의 재미를 살리고자 하는 노력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2003년부터 무제한급에도 체중제한을 도입해, 선수들도 예전 같이 130~150Kg를 넘는 나이 많은 살덩어리가 아니라, 근육질의 건장한 청년들로 바뀌었고, 시합 자체도 꽤나 빠르고 신경전이 만만치 않다. 명절 때 TV에서 시합을 하면, 구경삼아 한두 번 정도는 보길 권장. 일단 선수들 체격도 근육질이 더욱 두드러지게 바뀌었고, 예전보다 기술씨름 비중이 굉장히 높아졌다. 전략적인 측면도 보강되는 듯. 대략 이런 반응들도 나오는 거 보면 마케팅 잘 하고 스타 발굴 잘 하면 중흥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닐 듯 하다.
한편 한국 요리나 K-POP의 중흥에 겹쳐 씨름 또한 한류 스포츠로 정착시켜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였다. 이에 관해 2008년 대한씨름협회가 주도하여 세계씨름연맹이 발족, 걸음마 단계이긴 하나 씨름의 세계화에 노력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세계화 노력탓에 몽골의 부흐 선수들이 한국에 와서 씨름 선수로 등록하여 대회에 나오기도 하고 국제 교류전을 열어 각지의 유사한 스포츠, 레슬링등과 교류를 맺고 친선경기와 교류경기를 하기도 한다. 2014년에는 터키, 스페인, 스위스, 몽골 등 각지의 전통 씨름 선수를 초청하여 각개의 룰로 경기를 치르기도 하였다.
러시아의 연해주에서도 씨름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한러수교 30주년을 맞아 주 블라디보스토크 한국 영사관과 연해주 씨름협회의 주관하에 씨름 대회가 연해주에서 개최되었다.#
그나마 예전에 살덩이들이 시간만 질질 끄는 지루한 경기 패턴을 버리고, 경기의 재미를 살리고자 하는 노력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2003년부터 무제한급에도 체중제한을 도입해, 선수들도 예전 같이 130~150Kg를 넘는 나이 많은 살덩어리가 아니라, 근육질의 건장한 청년들로 바뀌었고, 시합 자체도 꽤나 빠르고 신경전이 만만치 않다. 명절 때 TV에서 시합을 하면, 구경삼아 한두 번 정도는 보길 권장. 일단 선수들 체격도 근육질이 더욱 두드러지게 바뀌었고, 예전보다 기술씨름 비중이 굉장히 높아졌다. 전략적인 측면도 보강되는 듯. 대략 이런 반응들도 나오는 거 보면 마케팅 잘 하고 스타 발굴 잘 하면 중흥이 불가능한 일만도 아닐 듯 하다.
한편 한국 요리나 K-POP의 중흥에 겹쳐 씨름 또한 한류 스포츠로 정착시켜야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하였다. 이에 관해 2008년 대한씨름협회가 주도하여 세계씨름연맹이 발족, 걸음마 단계이긴 하나 씨름의 세계화에 노력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세계화 노력탓에 몽골의 부흐 선수들이 한국에 와서 씨름 선수로 등록하여 대회에 나오기도 하고 국제 교류전을 열어 각지의 유사한 스포츠, 레슬링등과 교류를 맺고 친선경기와 교류경기를 하기도 한다. 2014년에는 터키, 스페인, 스위스, 몽골 등 각지의 전통 씨름 선수를 초청하여 각개의 룰로 경기를 치르기도 하였다.
러시아의 연해주에서도 씨름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한러수교 30주년을 맞아 주 블라디보스토크 한국 영사관과 연해주 씨름협회의 주관하에 씨름 대회가 연해주에서 개최되었다.#
이 문단은
이후 인터넷을 통해 씨름은 갑작스런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기술씨름의 비중을 늘리도록 룰을 바꾸고, 이로 인해 다시 씨름 중흥기 시절을 연상케 하는 건장한 체격들의 선수들이 주를 이루게 되는 등[43] 단체들이 이전부터 쌓아올려진 변화가 본격적으로 언론이나 SNS, 인터넷 커뮤니티상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것.
이는 유튜브에 올라오는 경기 영상들이 대표적으로, 학산배 전국장사 단체전 결승 경기 영상은 업로드 1년 후 여성 위주의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서 뒤늦게 발굴되며 조회수가 300만 회를 돌파하는 인기를 얻고 있다. 그리고 이 점이 다시 인터넷 상에 퍼지거나 언론의 보도를 타는 등 이전과 다른 관심을 받고 있는 상태이다. 영상 댓글을 보면 유튜브 알고리즘에 납치되어 온 외국인들도 불평 없이 열심히 보고 간다.
이때 현재의 씨름은 과거 침체기의 씨름판과 대비하여 '내가 생각했던 씨름이 아니다.' '과거와 달리 박진감 넘친다.' 등의 반응을 받곤 한다. 또한 고체중 선수들의 파워게임만 비춰지던 과거 씨름판과 달리, '몸 좋은 씨름 선수들의 기술 대결'이라는 점이 색다르게 받아들여지며 인터넷 상에서 주목받게 되었다. 그 외에도 대한씨름협회와 KBS가 협력하여 씨름 예능을 방영 하는 등 이래저래 대외적인 홍보에 박차를 가하는 상태이다. #1 #2 #3 그리고 2019년 11월 30일부터 스포츠 예능으로 태백에서 금강까지 - 씨름의 희열 프로그램이 방영되었고, 씨름의 여왕, 씨름의 제왕, 천하제일장사 등의 씨름 예능이 방영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 때문인지 현재의 씨름은 잃어버린 생활체육으로서의 가능성이 보인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44] 보디빌더들의 선명한 식스팩보다 씨름 선수의 자연스러운 근육을 선호하는 반응도 많고 폭력성이 적어서 배우기에도 부담이 적은 편이기 때문에 새로운 생활체육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보인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다.
워낙 과거의 침체기가 길다 보니 씨름 연맹 측에선 이처럼 선수들의 외모나 스포츠 외적으로 인기를 얻은 점을 인정하고 일시적으로 유입된 라이트 팬들을 보다 확실한 고정 팬층으로 굳히기 위한 여러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45]
경기 외적인 요소로 주목을 받는 것이 잘못되었으니, 이를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것은 씨름은 상업화를 하지 말고 전통문화로 박제되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침체를 극복하는데 단돈 1원만큼도 기여하지 않은 작자들이 말이다.
농구는 선수들의 외모와 그에 못지 않은 실력이 이슈를 타서 여성팬들을 늘리고, 기존의 남성팬들은 그대로 유지하여 스포츠의 인기를 급성장시켜 프로리그 출범까지 이어간 바 있다. KBL출범에 90년대를 풍미한 농구대잔치의 스타들이 있으며, 그들 중 특히 이상민이나 우지원 등의 선수들은 실력은 물론 출중한 외모로 많은 여성팬들을 양산하여 농구의 인기가 급상승하였다.
씨름 역시 전성기를 이끈 이만기만 해도 외모로 많은 여성팬을 모았고, 이것이 씨름의 전성기에 영향을 준 것도 사실이다.
결국은 스포츠도 관중과 관심이 있어야 인기가 끊기지 않고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데 시대가 변화하는 셀링 포인트를 잘 잡은 거라고 볼 수 있다. 씨름은 역사가 2000년 가까이 되는 만큼 우리나라 정서랑 잘 맞아 빠르고 격정적이지만 폭력적이지 않은 스포츠이다. 외적으로 관심을 끌고 스포츠판에 스며들게 하는 작전은 자주 먹혀왔고 씨름은 충분히 그럴만한 매력이있다. 문제는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을 수 있을만큼 씨름협회를 비롯한 선수들이 준비가 얼마나 되어있느냐?" 이다.
다만, 현재 대중과 협회, 언론의 반응은 주로 경기와 선수를 성적으로 소비시키고 소비하는 행태를 보이는데[46][47], 비록 침체기를 겪던 씨름에 도움이 되고는 있다지만 이러한 성 상품화는 스포츠 원칙적으로는 옳지 않은 현상이다.
씨름의 주관 단체로는 현재 대한씨름협회가 유일하다. 과거 민속 씨름(프로)과 아마씨름이 분리됐을 때는 대한씨름협회와 한국씨름연맹 두 단체가 나뉜 적이 있고 여자 씨름의 경우는 국민생활체육전국씨름연합회가 주관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씨름연맹은 프로 씨름의 폭망에 앞장선 원죄 때문에 결국 흑역사화 되어 유명무실해졌고 대한씨름협회 산하 조직으로 들어갔고 국민생활체육전국씨름연합회도 결국 대한씨름협회와 통합해 현재는 대한씨름협회가 유일한 주관 단체다.
대한씨름협회는 1927년에 창립한 씨름계의 대표 조직으로, 현재 대한체육회 정회원 단체이다. 주로 초/중/고/대학부 아마추어 씨름을 관리한다. 재밌는 것은 이 협회 초대 회장이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이라는 것.
그리고 1983년 프로 씨름이 출범하면서 탄생한 민속 씨름위원회가 훗날 이름을 바꾼 게 한국씨름연맹이다. 즉 대한씨름협회와는 별도로 프로 씨름을 관리하는 조직이다. 대한야구협회와 KBO의 관계로 보면 된다. 이만기를 제명하는 등 온갖 벙크를 저지른 건 한국씨름연맹이다. 하지만 씨름계의 무능과 정치적인 내홍으로 프로 씨름단이 모두 해체되고, 한국씨름연맹만 남게 되자, 이만기는 독자적인 프로 씨름 조직 창설을 준비하기에 이르고, 이에 씨름연맹이 발끈해서 이만기를 제명했는데, 그 이후 조직은 공중 분해되면서 연맹의 공금은 증발됐다.
결국 프로팀이 모두 해체되면서, 한국씨름연맹은 대한씨름협회의 산하 조직으로 들어갔다. 이후 대한체육회 회원단체인 대한씨름협회 쪽에서 실업팀을 중심으로 부흥 노력을 하고 있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하면서 대한씨름협회도 국민생활체육회 가맹단체인 전국씨름연합회와 통합에 합의해 통합씨름협회로 새롭게 출범했고 2016년 5월 첫 이사회를 열었다. 2016년 단오장사씨름대회부터는 통합씨름협회가 모든 전국단위 대회를 주최한다. 통합씨름협회는 2017년 5월 15일 대의원총회에서 대한씨름협회로 명칭을 변경하는것을 의결하여 5월 23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승인을 득하여 대한씨름협회로 개칭되었다.
해외의 경우에는 미국 뉴욕에 뉴욕씨름협회가 있으며, 한국에도 잘 알려진 233 cm의 거구 커티스 존슨과 그의 라이벌인 잭슨 하비도 뉴욕씨름협회 소속의 선수이다.
대한씨름협회는 1927년에 창립한 씨름계의 대표 조직으로, 현재 대한체육회 정회원 단체이다. 주로 초/중/고/대학부 아마추어 씨름을 관리한다. 재밌는 것은 이 협회 초대 회장이 독립운동가 몽양 여운형이라는 것.
그리고 1983년 프로 씨름이 출범하면서 탄생한 민속 씨름위원회가 훗날 이름을 바꾼 게 한국씨름연맹이다. 즉 대한씨름협회와는 별도로 프로 씨름을 관리하는 조직이다. 대한야구협회와 KBO의 관계로 보면 된다. 이만기를 제명하는 등 온갖 벙크를 저지른 건 한국씨름연맹이다. 하지만 씨름계의 무능과 정치적인 내홍으로 프로 씨름단이 모두 해체되고, 한국씨름연맹만 남게 되자, 이만기는 독자적인 프로 씨름 조직 창설을 준비하기에 이르고, 이에 씨름연맹이 발끈해서 이만기를 제명했는데, 그 이후 조직은 공중 분해되면서 연맹의 공금은 증발됐다.
결국 프로팀이 모두 해체되면서, 한국씨름연맹은 대한씨름협회의 산하 조직으로 들어갔다. 이후 대한체육회 회원단체인 대한씨름협회 쪽에서 실업팀을 중심으로 부흥 노력을 하고 있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가 통합하면서 대한씨름협회도 국민생활체육회 가맹단체인 전국씨름연합회와 통합에 합의해 통합씨름협회로 새롭게 출범했고 2016년 5월 첫 이사회를 열었다. 2016년 단오장사씨름대회부터는 통합씨름협회가 모든 전국단위 대회를 주최한다. 통합씨름협회는 2017년 5월 15일 대의원총회에서 대한씨름협회로 명칭을 변경하는것을 의결하여 5월 23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승인을 득하여 대한씨름협회로 개칭되었다.
해외의 경우에는 미국 뉴욕에 뉴욕씨름협회가 있으며, 한국에도 잘 알려진 233 cm의 거구 커티스 존슨과 그의 라이벌인 잭슨 하비도 뉴욕씨름협회 소속의 선수이다.
민속 씨름 전성기를 함께 했던 씨름단이 많다. 민속 씨름 최전성기였던 1980년대 중후반의 씨름단으로는 일양약품, 럭키금성, 현대, 삼익가구 등이며 1990년대 중반에 창단한 청구 씨름단이 강호 대열에 합류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 위기의 영향으로 각 기업이 경영난을 이유로 씨름단 운영을 포기하면서 수많은 씨름단이 사라졌고[48], 결국 현대삼호중공업 코끼리 씨름단을 빼고는 모조리 해체하는 비운을 맞이했다. 홀로 남은 현대삼호중공업도 2016년 연말까지만 운영하고 선수단 전원을 새로 창단하는 영암군청 씨름단에 인계했다.
2016년까지는 현대삼호중공업 씨름단이 세미프로 형태로 씨름단을 운영했으나 현재는 지방자치단체 산하의 실업 씨름단이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아래 목록은 2024년 기준 등록 씨름단이다. 협회 페이지 기재순서대로 하였다.[58]
- 남자 씨름단
- 전남 영암군 민속 씨름단 (舊 영암군청)[72]
- 여자 씨름단
- 전남 구례군청반달곰씨름단 (舊 구례군청)[83]
자세한 내용은 씨름/체급 문서 참고하십시오.
외국인의 경우 선수들의 국적 상관없이 남성/여성으로 따로 구분하나 사실상 체급 구분은 없다. 외국인도 남자 프로부와 마찬가지로 결승전은 5판 3선승제를 취한다. 여성 외국인의 경우에는 한국 여자부들과 같이 통합하여 진행한다. 즉, 여자 외국인들도 여자부에 참가가 가능하다는 이야기. 외국인의 경우에는 신장 제한이 없으며 외국인들만의 경기는 세계특별장사라는 특별경기로 분류한다.
- 몽골
- 산자담바
- 우스키바야르
- 바양뭉흥
- 어뜨레겔
- 다시나로우(여성)
- 스페인 - 비슷한 경기인 루차카나리아의 선수들이 한국에서 현역 외국인 선수로도 활동한다.
- 미국 - 미국의 경우 뉴욕에 씨름협회가 있다. 뉴욕씨름협회라는 명칭으로 뉴욕에 씨름 협회가 존재하며, 김일태 회장이 협회장으로 있다. 아래 선수들은 뉴욕 씨름협회에 등록된 선수들.
- 커티스 존슨 - 흑인 장신으로 222cm[89]의 거구. 초대 뉴욕 천하장사를 지냈으며 스타킹에 출연해서 '테크노 골리앗' 최홍만에게 잡채기로 패배한 적 있는 미국을 대표하는 씨름 선수. 한국에서는 미국 선수들을 전담으로 하는 김진수 감독의 지도를 받고 있고, 미국에서는 뉴욕 씨름협회 회장인 김일태 회장의 지도를 받는다. 원래는 농구선수 출신인데 부상으로 그만두고, 미국에서 은행 애널리스트로 일하다가 씨름 연마를 위해서 직장을 옮겼다고 전해진다. 들배지기와 밀어치기를 주특기로 하고 있으며, 안다리 기술에는 약점을 보인다고 알려져 있다. 라이벌 급 선수로는 한국의 안태민과 같은 미국인인 잭슨 하비가 있다.
- 잭슨 하비 - 여자친구 아버지 덕분에 씨름에 입문. 커티스 존슨의 라이벌이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커티스 존슨과 마찬가지로 뉴욕 씨름협회 회장인 김일태 회장의 지도를 받는다.
- 알프레도 그리니은
- 무스 베네토
- 조셉 고
- 한영덕
- 중국 - 조선족들이 한국의 씨름을 실제로 하고 있다.
- 김해권
- 리흥철
- 류례
최상위급 대회는 연맹이 무너지고 흥행도 망해서 예전보다 인기가 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각 학교나 각종 단체의 체육대회 종목으로 꼭 껴 있다. 예능방송 등에서도 여전히 사랑받는 스포츠 아이템. 예전에는 남성만의 전유물로 인식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여성들도 씨름을 직접 즐기는 사람도 꽤 있다. 아예 여성 씨름 대회가 생활 체육으로 활성화 돼 있기도 하다. 심지어 지상파에서 해주는 설날, 추석과 같은 명절 씨름 대회에도 여성부가 있다.
다른 격투종목과는 달리 폭력성이나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적어 TV 프로그램에서 대항전 아이템으로 쓰기 좋다. 정규 예능에서도 한 꼭지를 담당하기도 하며, 특히 아육대같은 명절 특선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 씨름 대회가 거의 99% 편성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씨름의 규칙을 역으로 이용한 지는 씨름도 있으며, 여기선 자신의 신체가 먼저 땅에 닿아야 하고, 상대는 필사적으로 이를 막기 위해 힘을 쓰는 모습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이것도 제대로 하면 나름 긴장감 있는 게임이기도 하다.[90]
이만기가 한국씨름연맹의 공중분해 사태 후, "그래도 씨름은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있다. 한동안은 어렵겠지만 다시 씨름이 인기를 얻을 날이 올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했을 정도로 즐기는 의미의 씨름, 생활체육으로서의 씨름의 위치는 지금도 확고하다.
제대로 하려면 모래판과 샅바를 두고 해야되기도하고 옛날에도 그랬지만 일반적으로 배울 수 있는 민간 사설 체육관은 거의 없다. (모래 청결 위생도 생각해야 한다.)
다른 격투종목과는 달리 폭력성이나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적어 TV 프로그램에서 대항전 아이템으로 쓰기 좋다. 정규 예능에서도 한 꼭지를 담당하기도 하며, 특히 아육대같은 명절 특선 프로그램에서는 연예인 씨름 대회가 거의 99% 편성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씨름의 규칙을 역으로 이용한 지는 씨름도 있으며, 여기선 자신의 신체가 먼저 땅에 닿아야 하고, 상대는 필사적으로 이를 막기 위해 힘을 쓰는 모습이 보기에는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이것도 제대로 하면 나름 긴장감 있는 게임이기도 하다.[90]
이만기가 한국씨름연맹의 공중분해 사태 후, "그래도 씨름은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있다. 한동안은 어렵겠지만 다시 씨름이 인기를 얻을 날이 올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했을 정도로 즐기는 의미의 씨름, 생활체육으로서의 씨름의 위치는 지금도 확고하다.
제대로 하려면 모래판과 샅바를 두고 해야되기도하고 옛날에도 그랬지만 일반적으로 배울 수 있는 민간 사설 체육관은 거의 없다. (모래 청결 위생도 생각해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분류:씨름 선수 문서 참고하십시오.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2017 | Republic of Korea, 2016 |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씨름은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모든 지역에서 널리 행해지는 육체적인 게임으로, 두 명의 선수가 사타구니와 몸통 띠를 사용하여 서로 밀치려고 애쓴다. 싸름은 샅바를 사용하고 우승자에게 황소를 수여합다. 고대부터 조선인들은 일터에서 휴식을 취할 때, 특히 민속 휴일에 큰 대회를 벌이는 동안 체육 훈련 목적으로 씨름을 연습했습니다. 민속촌에서는 씨름이 열리면 반지 주위에 많은 사람들 (노인과 젊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씨름 선수는 다양한 기술을 사용하여 경쟁합니다. 관중들은 열정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쪽을 응원합니다. 우승자는 축하 행사에서 황소를 탑니다. 씨름은 전신 운동으로 신체와 정신의 배양을 촉진합니다. 또한 상호 존중과 협력을 장려하고 공동체와 집단의 조화와 단결에 기여합니다. 수도인 평양에선 조선씨름협회를 포함한 많은 공동체, 단체, 기관들로 구성된 씨름을 제정, 보호, 전달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조선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가족과 이웃들로부터 씨름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모든 단계의 교육기관에서 가르칩니다.
대한민국
씨름은 한국 전역에서 즐기는 인기 있는 오락의 한 형태이다. 씨름은 긴 직물 벨트를 허리에 두르고 허벅지 한 명이 상대편의 벨트를 잡고 땅바닥에 내려놓기 위한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는 레슬링의 일종이다. 성인 최종 승자는 농업의 풍요를 상징하는 황소와 '장사'라는 칭호를 수여 받았습니다. 경기가 끝나면 장사는 소떼를 타고 이웃 주변을 행진한다. 씨름 게임은 인근의 사용 가능한 공간에 있는 모래 위에서 이루어지며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연령대의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된다.그들은 전통 공휴일, 시장 일 및 축제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에 참여합니다. 지역마다 특정 배경을 바탕으로 씨름을 개발했지만, 모두 씨름의 사회적 기능을 공유하여 공동체의 연대와 협업을 강화합니다. 부상 위험이 거의 없는 접근 가능한 스포츠인 씨름은 또한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증진시키는 수단을 제공합니다. 한국인들은 그들의 가족과 지역 사회 내의 씨름 전통에 광범위하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씨름 기술을 배우고, 지역 사회는 연례 공개 씨름 대회를 개최하며, 그 요소에 대한 가르침도 학교에서 제공되고 있습니다.
- 상대를 수직으로 들어 자신의 뒤로 넘기는 '뒤집기'는 씨름계의 저먼 수플렉스이다.
- K-1에서 성공을 한 최홍만이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일본 연예인들이 씨름을 한국 스모라고 이야기하는 동영상들이 알려진 적도 있다. 사실 스모의 한자 표기인 '相撲(상박)'부터가 동아시아에서 맨손 격투를 일컫는 일반명사 '相搏(상박)'의 변형이니 이상하게 여길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비슷한 무언가를 들어 설명하는 건 흔한 예이다. 영어권에서도 씨름·부흐·스모를 표현할 때 그냥 앞에 나라 이름을 붙여서 ○○ 레슬링 정도로 부르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엔 스모를 설명할 땐 일본 씨름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요즘엔 스모가 인지도가 높아 일본 씨름이라고 잘 안하지만, 몽골 씨름 또한 부흐라는 이름이 있는데 한국에선 부흐라고 해봐야 평소 여러 무술에 관심있는 사람 정도 빼고는 알아듣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대개의 경우 몽골 씨름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 스위스에서도 씨름과 비슷한 슈빙겐이 있다. 씨름과 동일하게 모래판에서 경기가 치러지며 샅바 대신 경기용 반바지를 착용한다. 샅바와 잡는 위치가 비슷하다.
- 아이슬란드 전통 레슬링인 글리마(Glima)는 씨름과 꽤 유사하다. 허리에 끈을 두르고 그걸 상대방이 잡는다. 즉 한국의 띠씨름과 거의 비슷하다. 서서 경기하고 상대를 넘어트려 쓰러트리는 경기. 이쪽은 상대방을 쓰러트리는 방법이 8개라고 한다.
- 튀르키예에도 야을르 귀레쉬(Yağlı güreşi)라고 불리는 전통 씨름이 있다. 600년 넘게 에디르네 인근의 크륵프나르(Kırkpınar)에서 매년 대회가 열렸다 크륵프나르가 그리스령으로 넘어간 뒤에도 에디르네에서 대회가 열리고 있다. 특이하게도 상의 탈의를 한 뒤 상반신에 올리브유를 바르고 경기를 한다. 스트리트 파이터 시리즈의 하칸이 사용하는 무술이 바로 이것이다. 물론 기름을 끼얹지 않고 하는 귀레쉬도 있다.
- 인도 등 남아시아권에도 크슈테라는 전통 레슬링이 있다.
무언가가 잘 되지 않아 고생한다는 의미다. "너무 힘들면 혼자서 씨름하지 말고 도와달라고 해." 처럼 쓰인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어떤 대상을 극복하거나 일을 이루기 위하여 온 힘을 쏟거나 끈기 있게 달라붙다.는 뜻이고, 예문으로 온종일 씨름 끝에 그 문제를 풀었다., 그는 교지에 원고를 낸다며 하루 종일 원고지와 씨름하고 있다. 등이 실려있다.#
네이버 사전에 따르면, 어떤 대상을 극복하거나 일을 이루기 위하여 온 힘을 쏟거나 끈기 있게 달라붙다.는 뜻이고, 예문으로 온종일 씨름 끝에 그 문제를 풀었다., 그는 교지에 원고를 낸다며 하루 종일 원고지와 씨름하고 있다. 등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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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상대 선수는 이준희.[2] 공동 등재[3] 경상도 사투리 : 머스마가 와 주디없이 시루노? 아가 밥을 덜 무었나? / 표준어 : 사내 아이가 왜 이리 힘없이 (무언가를) 들지 못하냐? 밥을 못먹어서 그래?[4] 이렇게 적혀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현대 씨름은 남북한 모두 경상도식 씨름으로 통일되었고, 타 지역의 스타일들은 씨름 규칙이 통일되며 사장되었다. 현대 씨름은 실질적으로 경상도 지역의 전통 기예라고 봐야 한다. 이 영향 때문인지 내로라 하는 유명 씨름 스타 중에는 이만기, 이준희, 이봉걸, 강호동, 김정필, 이태현, 김칠규, 이승삼, 손상주 등 경상도 출신 선수가 유독 많다.[5] 광목천으로 된 긴 천을 접은 뒤 허리와 허벅지에 묶는 씨름 도구. 청색 샅바와 홍색 샅바가 공식 규정이다. 여기에 군부대의 경우에는 국방색 샅바가 등장하기도.(1박 2일 시즌 1 백령도 편에서 확인된다.)[6] 샅바를 안잡고 상대의 몸(팔, 다리, 뒤통수 등)를 잡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씨름 선수들은 샅바를 잡는데 엄청난 노력을 했기에, 상대의 몸을 잡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샅바를 잡는 것이 유리하다. 물론 샅바 싸움 중 샅바를 포기하고 상대의 몸이나 다리를 잡고 이길 때도 있다. 양선수가 샅바를 놓치면 심판이 중지하고 다시 샅바 잡고 재경기를 한다. 하지만 심판이 중지를 안하면 샅바를 놓친 상태에서 경기를 계속해야한다. 하지만 통합씨름협회규칙제 45조를 보면 다리샅바를 잡고 허리샅바를 잡는다고도 나와있다.[7] 실제로 기술이 점점 발달함에 따라, 샅바를 아예 포기하고 다리나 팔 등을 노려 예상치 못한 전술로 당황하는 순간을 노리기도 한다. 레슬링 기술이나 유도 허벅다리걸기, 엎어치기, 던지기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샅바를 놓고 기술을 펼치는것에 숙달된 선수가 아니거나 완벽하게 허를 찌르지 못하여 기술이 실패했다면 그대로 경기 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8] 씨름 경기 한 판의 제한 시간은 1분이다. 원래 5분이었으나 너무 지루하다는 지적이 있어 1분으로 줄였다. 더구나 기술이 들어가고 선수의 몸이 넘어가는 순간은 불과 몇 초 밖에 되지 않으며, 대부분의 경기들을 30초를 넘기는 일이 잘 없다.[9] 부흐를 익힌 몽골 유도 선수들도 간혹 유도 경기에서 부흐 기술을 쓰기도 한다. 특히 벨트를 붙잡고 매치는 기술. 주짓수에서는 반칙이 아니기 때문에 딱히 생소한 기술은 아니다.[10] 매우 어릴 때 내려왔지만 이북 출신이다.[11] 물론 이 싸움꾼은 현재 격투기에서는 반칙으로 취급하는 공격도 불사하고 씨름 말고도 이것저것 배운 사람이니까 넘어트린 후에도 씨름 말고 다른 것으로 끝낼 수 있으니 그런 말을 하는 것이지만.[12] 주짓수도 화이트 벨트 단계에선 클로즈 가드 등 서로 맞잡은 상태로 스파링하는 것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있지만 이는 말그대로 미숙한 초보자들이 사고를 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일 뿐이다.[13] 이는 조준호의 실험에서도 나타나는데 상대 복서의 스텝과 타격에 전전긍긍하자 복서에게 도복을 입히고 나서야 간신히 승리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 타격이 무조건 그래플링에 약하다는 통념이 편견임을 다시금 보여주었다.[14] 씨름의 실전성은 길거리 싸움을 잘 하던 조폭의 말처럼 길거리 싸움에서 가까이에서 시비가 걸리고 그때 넘어트리기만 하면 구둣발로 밟건 흉기를 사용하건 할 수 있는 의미에서 실전성이 강한 것이지, 현대의 격투기에서는 타 그래플링에 비해 약한 것이 맞다. 아예 처음부터 싸우기로 하고 멀리서부터 싸움을 시작하고 벨트와 바지가 없는 격투기에서는 씨름은 별로 실전적인 무술은 아니다. 아무래도 현대 격투기에 맞게 진화하지 못한 옛날 격투기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15] 물론 그렇다고해서 씨름 선수의 강함을 의심하지 말자. 균형감각과 기술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씨름도 엄연히 상대선수를 힘으로 이겨야하는 종목이고, 씨름 선수 특유의 큰 체격과 강력한 근력자체가 씨름 선수가 가진 무기이다.[16] 물론 대부분의 경기에서는 샅바를 끝까지 잡고 있거나 놓더라도 어떻게든 다시 잡으려하거나 파고들려고 하기 때문에 팔이 쳐져 있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고, 그만큼 이 기술이 나오는 횟수도 적다. 사실 빈틈만 잘 노리고 순발력만 받쳐준다면 힘들이지 않고 이길수 있는 최고의 가성비를 가진 기술이지만, 나오더라도 워낙 씨름의 이미지와 너무나도 상반되는 기술이다 보니 신기해하며 웃는 것이 대부분이다. 보통 기술을 쓴 선수도 반 정도는 저게 뭐냐며 욕을 먹고, 당한 선수는 말할것도 없이 욕을 배터질 정도로 먹는다.[17] 씨름에서 가장 유명하고 씨름을 대표하는 기술중 하나이자 이만기를 초대 천하장사로 만들어준 마지막 판에서 끝내기로 나온 기술이다.[18] 주로 밀어치기 ,배지기 가 많이 쓰인다.[19] 왜란과 호란이 있긴 했지만 시대적 간격을 보면 한세대에 일어날까 말까 하는 빅이벤트였다. 전근대 시절에는 삼국시대나 일본의 전국시대처럼 허구헌날 피터지게 싸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을 보면 조선은 당대 생각보다 매우 평화로운 국가였다.[20] 다만 향유계층과 지역이 한정되었던 태껸은 사실상 사멸 직전 단계까지 갔었다. 물론 태껸이란 명칭이 아닐 뿐 태껸과 유사한 발차기 놀이는 몇몇 명칭이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각 지역마다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21] 21세기 식으로 표현한다면 씨름 대회 우승자를 청와대 경호원으로 뽑았다는 얘기이다.[22] 당시가로 황소 한마리는 경차 한대 값이었다. 천만원이 가니 못가니 하는게 요즘 한우 성체 한마리 가격이니 이 시대에도 경차 한대값과 그다지 차이도 없다.[23] 대한씨름협회에서는 1927년 개최되었다고 말하나, 휘문고등학교는 1929년에 개최되었다고 말하는 등 서로간의 기록이 엇갈린다.[24] 다만 어떤 상품인지는 문헌에 없다.[25] 사실 프로 씨름 첫 대회가 열릴 때만 해도 천하장사 우승후보로 예상되던 선수는 그 직전까지 아마 씨름 대회 정상을 달리던 이준희, 홍현욱 등이었고, 그 전까지는 무명의 대학생 선수일 뿐이었던 이만기는, 자신의 체급이었던 제1회 한라장사 대회에서는 2위에 그쳤다. 그러나 체급 구별 없이 치러진 천하장사 대회에서, 이만기는 제1회 백두장사를 차지한 우승후보 이준희를 준결승에서 꺾고, 그 여세를 몰아 첫 번째 천하장사까지 차지하며, 말 그대로 '혜성같이 등장한 스타'가 되었다.[26] 물론 이민우가 씨름으로 전향한 것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이기도 했다.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기는 했지만 세계수준과 격차가 너무 심해 1988 서울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가능성이 매우 낮았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얻은 병역특례마저 취소되기도 했다. 이민우는 2006년 9월 9일 간경화로 사망했다.[27] 다만 예선부터 다 보여주지는 않고 각 체급별 8강전부터 결승전까지 중계한다.[28] 본 대회는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현재 여자 씨름에서 권위있는 대회 중 하나로 꼽힌다.[29] 북한에도 농기계가 어느 정도는 보급되어 있지만 농기계가 들어가기 어려운 농지가 남한보다 훨씬 많고, 농기계에 들어가는 기름도 모자라다 보니 여전히 소가 중요한 농업생산 수단이다.[30] 다만 황소를 주는 것은 요식행위에 가깝고 실질적으로는 부상으로 내거는 상품들을 가지고 오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물론 1990년대 중후반 당시에는 이것도 꽤나 귀중한 물건들이었고, 군대에 빠질 수 있다는 이점도 있어서 이걸로 보상은 된다고 한다. 특히 당시 북한의 경제가 한창 어려웠을 때도 씨름 장사에 대한 융숭한 부상은 유효했기에 구미가 안 당길 리가 없었다.[31] 프로 씨름을 잘 접하지 못한 요즘 세대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자면 2017 롤드컵에서 이슈가 됐었던 원딜 몰빵 조합이나 지휘관의 깃발 메타가 매 시즌 나왔다고 생각하면 된다. 상식적으로 프로 스포츠가 재밌으려면 여러가지 돌발적인 변수나 이변이 많아야 하는데 무작정 승리만을 위해 작정하고 드러눕는 경기만 양산된다면 자연스레 인기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나마 롤챔스, 롤드컵은 게임이라는 가상현실 내에서 경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게임회사의 추가적인 밸런스 패치로 양산형 경기를 막을 수 있지만 씨름의 경우 1대1이라는 종목의 특성상 상대 선수가 작정하고 체급을 올려버리면 맞대응하는데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32] 무승부가 되면 양 선수의 몸무게를 달아서 가벼운 쪽이 이기는 계체량 승패제를 실시했다.[33] 1994년까지는 삼익가구에서 운영하고 있었다.[34] 1993년부터 참가[35] 1995년부터 참가[36] 1995년부터 참가[37] 1998년 중반에는 한보를 인수한 동성건설 씨름단마저 해체되어 1년 사이에 씨름단 수가 반토막났다.[38] LG 씨름단 해체 당시 최홍만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몇 달간 농성까지 했지만 해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기본적으로 인기가 바닥이라 홍보 효과가 전혀 없는데 대기업이 큰 돈 들여서 운영할 리가 있겠는가.[39] 현대삼호중공업 자체가 영암군 삼호읍에 근거를 두고 있다.[40] 그나마도 최홍만은 천하장사보다는 이후의 격투기 선수 시절의 이미지가 강하다.[41] 2018년 설날장사씨름대회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와 겹쳐서 KBS N SPORTS에서 중계했고 2023년 추석장사씨름대회는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과 겹쳐서 추석 연휴 2주 전에 진행했다.[42] 2000년대까지는 전국노래자랑과 연계해, 설/추석노래자랑을 씨름이 열리는 체육관에서 생방송으로 진행하기도 했다.[43] 체중제한을 좀더 빡빡하게 만든다던지, 혹은 소외되었던 경량급 대회를 더욱 조명하는 방식으로.[44] 이만기는 씨름 연마가 다이어트나 균형 잡힌 몸 만드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니 일상적으로도 배우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비추곤 하였다.[45]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선수들이 출연하여 영상에 대한 반응을 말하거나, 위에 언급된 것처럼 대한씨름협회와 KBS가 경량급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씨름 예능을 준비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46] 위에서 언급된 유튜브, 커뮤니티 댓글에서의 성희롱적인 표현 등[47] 그외에도 씨름협회의 홍보영상, 경기영상에서의 몸매 강조라던지, 공식적인 언론보도 또한 그러한 성적 소비에 많이 치중되어 있다.[48] 당시 프로 씨름단을 운영했던 모기업은 현대와 LG를 제외하면 대부분 회사의 생사를 걱정하는 수준에 이르던 중소기업이었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전대미문의 경제난에서 가뜩이나 인기가 떨어지고 비용 소모는 극심한 씨름단을 운영할 여력이 있었겠는가?[49] 민속 씨름 전성기 당시 현대, LG, 삼익가구 등과 더불어 최상위권 중 하나로 군림했다. 강호동의 현역 전성기 시절 소속 씨름단이었다. 원비디나 아진탈 포르테 등 1980년대 일양약품 제품 광고에 이준희가 출연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50] 민속 씨름 전성기 당시 현대, 일양약품, 삼익가구 등과 더불어 최상위권 중 하나로 군림하던 팀. 프로 씨름 최후의 씨름단이다. 대대로 장신 선수가 많았는데 이봉걸, 김영현, 박광덕, 최홍만 등이 소속 선수였다. '들소'라는 별명을 얻었던 김경수도 이곳에서 뛰었다.[51] 민속 씨름 초기부터 최근까지 존재했던 씨름단. 창단 당시 오너인 정주영 당시 회장이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를 현장에서 관전할 정도로 열혈 씨름 팬이었다. 현대는 민속 씨름 전성기 당시 LG, 일양약품, 삼익가구 등과 더불어 최상위권 중 하나로 군림했다. 2005년 1월에 씨름단 운영권을 현대중공업에서 현대삼호중공업으로 이관했으며, 2016년 12월까지 운영했다. 이만기의 현역 시절 소속 씨름단이다.[52] '불곰'이라는 별명을 얻었던 강호 황대웅의 소속 씨름단이다. 삼익가구 측이 1995년 1월 씨름단을 건설업체였던 세경진흥에 매각했으나 훗날 세경진흥도 회사 경영난을 이유로 해체했다.[53] 부산지역 최대 상호신용금고였던 조흥금고가 운영했던 팀. 강호동이 일양약품으로 이적하기 전까지 뛰었던 프로 최초 입단 씨름단이고, 김정필이 이 씨름단 소속이었다. 1997년 해체 직전에는 '우리금고'라 불리기도 했다.[54] 대구 지역을 연고로 한 건설업체 ㈜청구가 운영했던 씨름단. 이태현과 백승일 등 당대 최고의 소년 장사를 필두로 창단했다. 1990년대 중반 최강의 면모를 구축했으나 경영난을 이유로 해체했다.[55] 1997년 대한민국 경제를 강타한 한보사태로 인해 해체되었다.[56] 진로 씨름단이 1999년 경영난을 이유로 해체를 선언한 뒤 부산 연고 금융기업이던 삼익파이낸스가 씨름단을 창단해 진로 씨름단 선수들을 인수했으나 이 팀도 얼마 못 가 해체됐다.[57] 현대 코끼리, LG투자증권 황소와 더불어 프로 씨름 최후의 3팀이었다.[58] 장사씨름대회들의 예선 중에는 협회에 등록되지 않은 팀이 몇몇 보이지만 여기서는 이들을 제외하였다.[59] 2000년 12월 20일 창단[60] 2011년 1월 15일 창단[61] 1996년 1월 16일 창단, 2024년부터 연수구청 씨름단에서 변경[62] 2021년 1월 1일 창단[63] 2004년 2월 28일 창단[64] 2003년 1월 1일 창단[65] 2012년 2월 10일 창단[66] 1990년 1월 20일 창단[67] 2009년 1월 1일 창단[68] 1998년 1월 1일 창단[69] 2009년 1월 1일 창단[70] 2023년 1월 10일 창단[71] 2016년 1월 29일 창단[72] 1984년에 창단된 프로 씨름단 현대 코끼리의 후신격이다. 현대삼호중공업이 조선업의 위기와 경영난을 이유로 2016년 말에 씨름단을 해체하고 씨름단의 운영권을 조선소의 소재지 지자체인 영암군청에 넘겼다. 결국 2017년 1월 영암군청 씨름단이 창단됐고 2017년 설날 장사 씨름 대회부터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명칭은 영암군청이 아닌 "영암군 민속 씨름단"으로 경기에 참가하고 있다.[73] 1991년 1월 1일 창단[74] 2001년 3월 19일 창단[75] 2020년 1월 1일 창단[76] 1993년 3월 30일 창단[77] 2013년 1월 1일 창단[78] 2007년 남자팀으로 시작했다가 2018년에 여자 씨름단으로 전환했다.[79] 2018년 1월 1일 창단[80] 2021년 1월 1일 창단[81] 2021년 1월 1일 창단. 여자 이만기라 불리는 임수정이 2021년 콜핑에서 이적했다.[82] 2017년 1월 1일 창단[83] 2011년 9월 1일 창단. 최초로 여자 씨름단을 창단한 여자 씨름의 발상지다.[84] 국내 최초이며 유일했던 실업 여자 씨름단[85] 초대 외국인 천하장사 타이틀을 거머쥔 외국인이다.[86] 루차카나리아 선수로도 활동중이다.[87] 2014 천하장사 씨름대축제에서 여자부 4강까지 올라갔다.[88] 2013/2014 세계특별장사씨름 대회 2연속 천하장사를 지냈다.[89] 한국 활동시 233cm로 활동한다[90] 그리고 실제로 씨름장사들의 훈련 방식 가운데 하나. 대단한 도전에서 최홍만이 알려줬다.[91] 대표적으로 김장과 아리랑[92] 엄일히 기술 문제인데 씨름의 기술들은 전부 잡거나 다리를 걸어서 넘어뜨리는 것뿐들이라 전용 게임이나 캐릭으로 나오긴 무리가 있는 듯 하다.[93] 표태진에게 실전형 씨름 기술 일부를 배웠다.[94] 본명은 백용구. 충북 진천에서 씨름 천하장사였다고 한다. 현재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셰프.[95] 중학교때 씨름부에 속해있었다.[96] 이쪽은 밭다리후리기 등의 기술을 사용하긴 하나 엄연히 따지면 태권도를 주력으로 사용하는 캐릭터인데 잡기들의 성능이 워낙 좋다보니 여차하면 잡기만 쓰면서 운영을 하는 화랑들을 씨름화랑이라고 부르는 별명이 있다.[97] 샅바가 없다는 점을 빼면, 거의 똑같은 수준이다. 실제 1990년대 초반에 루차 카나리아 선수들이 한국에 와서 우리 쪽 씨름 선수들과 친선 시합을 하기도 했는데, 당장 용병으로 뛰어도 손색없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었다. 스페인 선수들 말로는 샅바가 있으니 더 편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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