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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석 관련 틀 |
제13·14대 경북대학교 총장 박찬석 朴贊石 | Park Chan-seok | |
출생 | |
본관 | |
자 | 대산(大山) |
재임기간 | 제13·14대 경북대학교 총장 |
학력 | |
병역 | |
종교 | |
가족 | 아들 박민우 |
의원 선수 | 1 |
의원 대수 | |
경력 | 경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지리학과 교수 대한지리학회 부회장 경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장 제13·14대 경북대학교 총장 전국국공립대학교 총장협의회 회장 제4대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 회장 제17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6번 / 열린우리당) 열린우리당 최고위원 열린우리당 대구시당위원장 |
- 산청 단계초등학교, 신등중학교, 진주농림고등학교(現 경상국립대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59학번)를 졸업했다. 신등중학교 3학년 때 가출을 시도해 부모님 속을 썩이고, 동네 어른들로부터 '박 서방네 아들은 인간되기는 틀렸어'라는 말을 듣는 등 어린 시절에는 의외로 문제아였다고 한다. 경북대학교 재학 시절 ROTC에 지원해 훈련을 받았으나, 당시 금서였던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가지고 있던 것이 발각돼 제명되기도 했다. 경북대학교 졸업 후 1963년 8월 29일 공군 소위로 임관하여 1967년 8월 31일 중위로 전역했다.
- 주요 연구 분야는 주요 연구 분야는 도시지리학, 지역개발론, 경제지리, GIS 등이다. 단행본으로『계량지리학』(형설출판사, 1992), 『박찬석의 세계지리 산책』 전2권 (이신, 2014) 등을 출간하였고, 많은 논문들을 게재하였다.
- 전국 국립대학교 교수협의회 의장, 경북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학장, 경북대학교 학생부처장, 한국대학사회봉사협의회 회장, 교육인적자원부 지방대학육성위원회 위원장, 대구.경북지역 정보화추진협의회 의장, 방송위원회 대구지역 방송자문위원회 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 국립대 자율화, 지방인재 채용 목표제, 지역대학간 공동사업 추진, 대학의 ‘세계적 표준’에 맞추는 정책 등을 추진했다.
- 1997년 대학 정보화 평가 순위에서 6위에 오르기도 했고 이 시기에 종합정보시스템, 학사행정, 시설관리, 도서관, 각종 통신시설,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을 전산화하였다. 교내의 모든 업무를 통합 관리하는 경북대학교 종합정보시스템(KNUGIS)을 교수, 대학원생, 학부생들이 직접 제작 설치하였다. KNUGIS는 총무처와 대한상공회의소가 개최한 「97 민관 경영 사무혁신사례 발표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였다.
- 1998년 교육개혁 연구부문 최우수대학으로 선정되어 교육부로부터 지원금 5억 4000만원을 받기도 하였다.
- 1999년 국내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Post-doc'제도를 도입하였다.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생들에게 연구비 지원을을 해주는 제도이다.
- 경북대학교 테크노파크를 건립하였다.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04 | 비례대표 | 8,145,824 (39.97%) | 당선 (6번) |
-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 제29신병교육연대에서 중대장이 훈련병의 화장실 청소 상태 미흡을 지적하며 화변기의 배설물을 먹인 육군훈련소 인분사건 당시 훈련병에게 배설물을 먹도록 강요한 중대장을 두둔한 적이 있다. 심지어 이를 비난 받고 사과문을 작성하면서 다시 비호하고 중대장을 용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사과문에서 교사의 학생 체벌도 잘 가르치려다 하는 실수라고 두둔하였다.[15] 박찬석이 교육부 장관으로 거론되던 사람인걸 생각하면 교육부 장관이 되지 않은 것이 다행스러울 정도.
- 교수, 대학총장, 국회의원 시절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수성구 지산동에서 북구에 있는 경북대까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고, 국회의원이 되어서 서울에 살 때도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서 25㎞ 떨어진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자전거로 오갔다고 전한다. ‘자전거 의원’이라는 별명이 붙을만큼, 자전거와 관련한 법안을 만드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 지역균형발전과 지방대학, 교육문제에 대해서 많은 목소리를 내왔다.
- 어렸을 때 아버지와의 일화가 감동적이다. 중학생 박찬석은 부모님의 기대속에서 대구로 유학을 갔으나, 성적이 나빠서 성적표가 나오고 성적표를 조작해서 아버지에게 가져갔었다. 가난한 소작농이었던 아버지는 아들이 1등을 했다고, 아무것도 모른 채 가장 귀한 재산인 돼지를 잡아서 잔치를 벌였고, 이에 충격을 받은 본인은 각성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했다고 한다. 교수가 되고 몇 년이 지나서 아버지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니, 아버지는 아들의 거짓말을 알면서도 모른 척을 해 주었다고 밝혔던 이야기다.#
- 경북대 총장 시절 모발이식을 했다. 집도의는 대한민국 모발이식분야 최고 권위자인 경북대 김정철 교수.
- 혈액형은 A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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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집의공파(執義公派) 26세 찬(贊)◯ 항렬.[3] 석사 학위 논문 : 大邱(대구)능금地域(지역)의 硏究(연구)(1967).[4] 병무청공고제2004-18호(병역사항공개대상자병역사항공개)[5] 족보명은 박성서(朴性緖). 자는 인호(仁浩).[6] 조한기(曺漢基)의 딸이다.[7]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을 앞두고 김대중 후보가 경북대학교를 방문했었는데, 당시 박찬석 총장이 김대중 후보자와의 면담 자리에서 ‘지역인재할당제’를 제안했었고, 김대중 후보가 이를 대선공약으로 삼은 것으로도 알려져있다.[8] 이인제 후원회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정치적 중립 논란이 제기된 적도 있었다.[9] 실제로 교육부총리 제안을 받았으나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자리라고 판단하여 고사했다는 후문이 있다.[10] 새정치국민회의에 흡수 합당.[11]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12]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한 탈당.[13]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14] 민주당과 신설 합당.[15] "잘 가르치려다 실수", 박찬석 '인분옹호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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