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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대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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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박찬대 朴贊大|Park Chan-da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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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5월 10일, 인천시 남구 용현동에서 태어났다. 용현동에서 자라면서 인천용현초등학교, 인천 대건중학교[8], 동인천고등학교[9]를 나왔고 용현동에 있는 인하대학교 경상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인하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88년 9월 29일 육군에 입대하여 제31보병사단에서 행정병(일반행정 특기)으로 복무하였으며, 1990년 12월 27일 병장으로 만기전역하여 병역을 마쳤다. 1998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정계 입문 전까지는 잘 나가던 대한민국 공인회계사였다. 세동회계법인,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했고, 금융감독원에서도 일을 했었으며, 한미회계법인의 경인지역 본부장을 지내는 등, 인천 지역 경제계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러던 그가 정계에 입문하게 된 것은 본인의 말을 따르자면,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계기였다고 한다. 그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막연히 가지고 있던 정치에 대한 생각을 결심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 결과 민주당 계열에 투신하여 정계에 입문했다.
인하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1988년 9월 29일 육군에 입대하여 제31보병사단에서 행정병(일반행정 특기)으로 복무하였으며, 1990년 12월 27일 병장으로 만기전역하여 병역을 마쳤다. 1998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정계 입문 전까지는 잘 나가던 대한민국 공인회계사였다. 세동회계법인,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했고, 금융감독원에서도 일을 했었으며, 한미회계법인의 경인지역 본부장을 지내는 등, 인천 지역 경제계에서는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러던 그가 정계에 입문하게 된 것은 본인의 말을 따르자면,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계기였다고 한다. 그는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막연히 가지고 있던 정치에 대한 생각을 결심으로 바꿨다고 한다. 그 결과 민주당 계열에 투신하여 정계에 입문했다.
그러나 정치 활동의 시작은 좌절이 먼저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나고 자란 용현동이 포함된 남구 을에서 출마를 선언했지만, 여성 우선 공천 원칙이 적용되면서 연수구에서 지역구를 옮긴 안귀옥 후보에게 공천장을 내주고 말았다.[10] 반발을 하기는 했지만 일단 당의 방침을 따르면서 19대 총선에서는 인천시당 대변인을 맡아 활동했다.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당내 공부모임인 사단법인 돌바내(돌아보고 바라보고 내다보고)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2014년 경선 끝에 사고지역구였던 연수구 지역위원장에 선출되었다. 사실 이것도 갈 곳이 없어서 당에서 이 지역에서 활동해 보라고 권유한 것이라고 한다. 성실한 활동 끝에 당 조직을 재건하면서 당의 신망을 사게 되었는데, 이게 20대 총선 공천에서 좋게 작용했다.
연수구는 분구 이래로 민주당 계열에서 당선된 적이 없는 그야말로 험지였는데[11], 인구가 송도국제도시 개발로 늘어 선거구가 2개로 증가하였다. 꾸준히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지역 조직을 재건한 공을 인정받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가장 먼저 단수 공천으로 출마가 확정되면서 일찌감치 선거 준비에 착수할 수 있었다. 마침 이 지역의 터줏대감 격이던 황우여 의원이 새누리당 공천으로 인해 서구로 떠나면서 무주공산이 된 상황이었다. 출구조사에서는 새누리당 정승연 후보에 밀린 2위로 나왔던데다가 국민의당과 표가 갈리기는 했지만, 그간 지역구를 다진 결과 214표 차이로 신승하면서 민주당 계열의 사상 첫 연수구 승리라는 기록의 주인공이 되며 금배지를 차지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원의 세금탈루 의혹제기에 맞서 후보자 스스로 해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후보자가 활짝 미소를 보이며 감사하다는 말을 하여 고마움을 표시하였고 장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세금문제와 관련해서는 후보자가 아무리 꼼꼼히 준비하였다 하더라도 실무를 하는 회계사, 세무사정도가 아니면 적절하게 해명하기 어려운 분야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찬대 의원은 합당한 이유를 제시해 가며 후보자를 변호해주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예비후보로 등록했고, 단수공천을 받았다. 미래통합당 정승연 후보와의 리턴매치에서 넉넉한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전 와중 정승연 후보가 유승민 전 대표가 지원유세를 온 상황에서 '인천 촌구석'이라는 자폭성 발언을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제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날 아침 첫 행보로 부평구 가족공원에 있는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도 제 시계는 0416, 1616, 2번의 알람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 반드시 바뀔 것입니다."라는 추모사를 남겼다.
21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에도 지역구를 돌아다니며 당선 감사인사를 꾸준히 하는 등 성실한 모습을 보였다.
2020년 5월 14일, 21대 국회의원 등록을 마치고 전반기 상임위원회는 교육위원회에 보임되어 더불어민주당 간사위원을 맡았다.
21대 국회의원으로서의 1호 법률안으로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안'[12]을 발의했다. 또한 코로나19로 제대로 학기를 치르지 못한 채 학비 문제로 어려움에 처한 대학생들을 위해 등록금 반환에도 앞장섰다. 결국 3차 추경안에 관련 예산이 반영되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예비)후보의 수석대변인을 맡았다. 국회 교육위원회 여당 간사이면서도 대선 경선을 핑계로 상임위 일정은 뒷전이어서 야당 국회의원들의 비판을 받았다.#
2021년 국정감사에서는 감사 중간에 교육위원회에서 행정안전위원회로 상임위원회를 이동, 화천대유 건으로 국민의힘의 공격을 받던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를 방어하는 데 투입되었다.#
2022년 4월 30일,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청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자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박병석 국회의장을 비난했다. 그러자 다음 발언 차례였던 박찬대 의원은 "이렇게 나대시는 것" 등의 발언으로 배현진 의원을 비판했다.
2022년 6월 기준으로 대표발의 법안 26개 중 16개를 통과시켰으며 이는 전체 지역구 의원 중 2위에 해당한다. 높은 상임위 출석률을 보여주는 등 의정활동에 성실하게 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대표적인 친명계 인사로 분류되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의원직 후보로 출마하여 3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 정승연 후보와 세번째 매치에서 승리해 3선 고지에 올랐다.
2024년 4월 21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였다. 이재명 대표와 워낙 가까운 관계다보니 이 대표가 사실상 밀어주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다른 후보들이 자진 사퇴하면서 사실상 단일 후보 추대 가능성이 커졌다. 5월 3일 단독 출마, 찬반 투표 끝에 제22대 국회의 더불어민주당 1기 원내대표[13]로 선출됐다. 당선 소감에서 법제사법위원회와 국회운영위원회를 민주당 몫으로 확보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원내부대표를 많이 인선해서 22명의 원내대표단을 꾸려 개혁기동단이라 이름 붙였다.
2024년 5월 9일, 언론 인터뷰에서 "아무리 비싼 집이라도 1주택이고, 실제 거주한다면 과세 대상에서 빠져야 한다"며 '실거주 1주택 종부세 폐지론'을 주장했다.[14] 다만 이와 관련해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그 문제와 관련된 정책적 검토는 없었다"며 "현재로서는 박 원내대표의 개인적 견해라고 생각한다"라고 언급했다. #
2024년 6월 10일 열린 본회의를 통해 제22대 국회 전반기 운영위원장에 선출되었다. # 또한 이재명 대표가 연임 도전을 이유로 6월 24일 사퇴하면서 차기 대표 선출때까지 당대표 직무대행을 겸임하게 됐다.
연수구는 분구 이래로 민주당 계열에서 당선된 적이 없는 그야말로 험지였는데[11], 인구가 송도국제도시 개발로 늘어 선거구가 2개로 증가하였다. 꾸준히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지역 조직을 재건한 공을 인정받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가장 먼저 단수 공천으로 출마가 확정되면서 일찌감치 선거 준비에 착수할 수 있었다. 마침 이 지역의 터줏대감 격이던 황우여 의원이 새누리당 공천으로 인해 서구로 떠나면서 무주공산이 된 상황이었다. 출구조사에서는 새누리당 정승연 후보에 밀린 2위로 나왔던데다가 국민의당과 표가 갈리기는 했지만, 그간 지역구를 다진 결과 214표 차이로 신승하면서 민주당 계열의 사상 첫 연수구 승리라는 기록의 주인공이 되며 금배지를 차지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원의 세금탈루 의혹제기에 맞서 후보자 스스로 해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후보자가 활짝 미소를 보이며 감사하다는 말을 하여 고마움을 표시하였고 장내가 웃음바다가 되었다. 세금문제와 관련해서는 후보자가 아무리 꼼꼼히 준비하였다 하더라도 실무를 하는 회계사, 세무사정도가 아니면 적절하게 해명하기 어려운 분야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찬대 의원은 합당한 이유를 제시해 가며 후보자를 변호해주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예비후보로 등록했고, 단수공천을 받았다. 미래통합당 정승연 후보와의 리턴매치에서 넉넉한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전 와중 정승연 후보가 유승민 전 대표가 지원유세를 온 상황에서 '인천 촌구석'이라는 자폭성 발언을 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제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날 아침 첫 행보로 부평구 가족공원에 있는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잊지 않겠습니다. 지금도 제 시계는 0416, 1616, 2번의 알람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 반드시 바뀔 것입니다."라는 추모사를 남겼다.
21대 국회의원 당선 이후에도 지역구를 돌아다니며 당선 감사인사를 꾸준히 하는 등 성실한 모습을 보였다.
2020년 5월 14일, 21대 국회의원 등록을 마치고 전반기 상임위원회는 교육위원회에 보임되어 더불어민주당 간사위원을 맡았다.
21대 국회의원으로서의 1호 법률안으로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안'[12]을 발의했다. 또한 코로나19로 제대로 학기를 치르지 못한 채 학비 문제로 어려움에 처한 대학생들을 위해 등록금 반환에도 앞장섰다. 결국 3차 추경안에 관련 예산이 반영되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예비)후보의 수석대변인을 맡았다. 국회 교육위원회 여당 간사이면서도 대선 경선을 핑계로 상임위 일정은 뒷전이어서 야당 국회의원들의 비판을 받았다.#
2021년 국정감사에서는 감사 중간에 교육위원회에서 행정안전위원회로 상임위원회를 이동, 화천대유 건으로 국민의힘의 공격을 받던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를 방어하는 데 투입되었다.#
2022년 4월 30일,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청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자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박병석 국회의장을 비난했다. 그러자 다음 발언 차례였던 박찬대 의원은 "이렇게 나대시는 것" 등의 발언으로 배현진 의원을 비판했다.
2022년 6월 기준으로 대표발의 법안 26개 중 16개를 통과시켰으며 이는 전체 지역구 의원 중 2위에 해당한다. 높은 상임위 출석률을 보여주는 등 의정활동에 성실하게 임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대표적인 친명계 인사로 분류되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최고의원직 후보로 출마하여 3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되었다.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의힘 정승연 후보와 세번째 매치에서 승리해 3선 고지에 올랐다.
2024년 4월 21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를 선언하였다. 이재명 대표와 워낙 가까운 관계다보니 이 대표가 사실상 밀어주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다른 후보들이 자진 사퇴하면서 사실상 단일 후보 추대 가능성이 커졌다. 5월 3일 단독 출마, 찬반 투표 끝에 제22대 국회의 더불어민주당 1기 원내대표[13]로 선출됐다. 당선 소감에서 법제사법위원회와 국회운영위원회를 민주당 몫으로 확보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원내부대표를 많이 인선해서 22명의 원내대표단을 꾸려 개혁기동단이라 이름 붙였다.
2024년 5월 9일, 언론 인터뷰에서 "아무리 비싼 집이라도 1주택이고, 실제 거주한다면 과세 대상에서 빠져야 한다"며 '실거주 1주택 종부세 폐지론'을 주장했다.[14] 다만 이와 관련해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그 문제와 관련된 정책적 검토는 없었다"며 "현재로서는 박 원내대표의 개인적 견해라고 생각한다"라고 언급했다. #
2024년 6월 10일 열린 본회의를 통해 제22대 국회 전반기 운영위원장에 선출되었다. # 또한 이재명 대표가 연임 도전을 이유로 6월 24일 사퇴하면서 차기 대표 선출때까지 당대표 직무대행을 겸임하게 됐다.
자세한 내용은 박찬대/논란 문서 참고하십시오.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2016 | 인천 연수 갑 | 30,047 (40.57%) | 당선 (1위) | 초선 | ||
2020 | 45,479 (56.87%) | 재선 | ||||
2024 | 58,663 (52.44%) | 3선 |
역대 선거 벽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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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수구 선거구의 제19대 국회의원이다.[2] 판관공파(判官公派) 26세 찬(贊)○ 항렬. (족보)[3] 22대 국회 전반기[4] 외아들로, 2024년 1월 17일 병역을 마쳤다고 한다.[5] 석사 학위 논문 : 利益柔軟化(이익유연화) 現像(현상)이 情報內容(정보내용)에 미치는 影響(영향)에 관한 實證的(실증적) 硏究(연구) : 前期誤診修正損益(전기오진수정손익)을 中心(중심)으로(1998).[6] 페이스북 프로필 참조.[7] 인천 신광교회 안수집사이다.[8] 동구 화수동에 있던 중학교였다. 학교 재단 측의 폐교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1988년 폐교됐다.[9] 박찬대가 재학하던 시기에는 학교가 도화동에 있었다. 현재 학교는 만수동에 있다.[10] 재미있는 점은 안귀옥은 연수구에서 남구로 기반을 옮겼고 반대로 박찬대는 남구에서 연수구로 기반을 옮겼다.[11] 서한샘의 경우 신한국당 당적으로 당선된 이후 새정치국민회의로 당적을 바꾼 케이스이고, 이마저도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출마한 2000년 16대 총선에서 황우여에게 밀려 낙선한다.[12] 학생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약 35만명으로 추정되는 대안학교기관 학생들의 학습권과 안전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13] 5월 30일부터[14] 그런데 정작 박찬대 본인은 이전에는 종부세에 대해 "세계가 부러워할 K-세금"이라고 예찬하는 글을 올린 바 있다. 하위 문서 참조.[15] 국제통상학과, 2017년부터 경영대 소속[16]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17]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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