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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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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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합민주당(2008년) 국회의원
- 민주당(2008년) 국회의원
-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 민주당(2013년) 국회의원
-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 무소속 국회의원
- 동구(대전) 출신 인물
- 고령 박씨
- 1952년 출생
- 대전중학교 출신
- 대전고등학교 출신
- 성균관대학교 출신
- 한양대학교 대학원 출신
- 대한민국의 남성 기자
- 기자 출신 정치인
- 중앙일보 관련 인물
- 더불어민주당 소속
- 국민훈장 무궁화장
- 2024년 은퇴
전 울산광역시의원에 대한 내용은 박병석(1966) 문서 참고하십시오.
박병석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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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1대 전반기 국회의장 박병석 朴炳錫 | Park Byeong-seug | |||||||||||||||||||||||||
출생 | |||||||||||||||||||||||||
거주지 | |||||||||||||||||||||||||
본관 | |||||||||||||||||||||||||
현직 | |||||||||||||||||||||||||
재임기간 | 제5대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 (고건 시정) | ||||||||||||||||||||||||
제19대 전반기 국회부의장 | |||||||||||||||||||||||||
제21대 전반기 국회의장 | |||||||||||||||||||||||||
서명 | |||||||||||||||||||||||||
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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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월 25일 충청남도 대전시(현 대전광역시)에서 출판인 박홍구[10] 슬하 3남 1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11] 대전삼성국민학교, 대전중학교,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법률학과를 졸업했다.
1975년 중앙일보에 입사하였고, 1976년 8월 9일 육군에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제99보병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이후 1977년 8월 16일 일병으로 소집해제되어 병역을 마친 뒤 중앙일보사에 복귀하였고, 그 뒤 사회부 기자, 경제부 기자, 홍콩 특파원, 정치부 차장, 산업부 부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홍콩 특파원 시절인 1989년에 천안문 사태를 취재하여 '중국 자오쯔양 총리 체포 구금 기사'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1975년 중앙일보에 입사하였고, 1976년 8월 9일 육군에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제99보병연대에서 복무하였다. 이후 1977년 8월 16일 일병으로 소집해제되어 병역을 마친 뒤 중앙일보사에 복귀하였고, 그 뒤 사회부 기자, 경제부 기자, 홍콩 특파원, 정치부 차장, 산업부 부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홍콩 특파원 시절인 1989년에 천안문 사태를 취재하여 '중국 자오쯔양 총리 체포 구금 기사'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1998년 4월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여 수석부대변인과 정책위 부의장을 지냈고, 1999년에는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에 임명되어 2000년까지 역임하였다. 1998년 재보궐선거 경기 광명시 을, 1999년 재보궐선거 서울 구로구 을에 출마하려 했지만 각각 조세형, 한광옥이 공천되면서 출마가 좌절되었고, 그 대신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고향인 대전광역시 지역구 중에서 서구 갑 선거구에 새천년민주당 공천을 받아 현역 국회의원인 자유민주연합 이원범 후보를 꺾고 당선되면서 처음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이후 새천년민주당에서 원내부총무, 대변인 등을 역임하였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촉구하며 후보 단일화 협의회에 참여했으나, 여론조사 경선으로 노무현이 단일 후보로 확정되자 그대로 잔류하였다.[12] 그리고 2003년 새천년민주당 내의 개혁 소장파 세력 대부분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자 여기에 참여하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출마한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당선되어 재선이 되었으며,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국회 정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한나라당 이명박이 압도적인 차이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한나라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통합민주당 간판으로 당선[13]되면서 3선 고지에 올랐고 같은 해부터 2009년까지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역시 민주통합당 후보로 당선되어 4선 고지에 올랐다. 그리고 2014년까지 제19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14]을 역임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8년 5월 10일,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에 공식 출마했으나 당내 경쟁자인 6선 의원인 문희상 전 의원에게 패해 탈락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단수공천을 받아 6선에 성공했다. 이석현(6선), 이종걸(5선)이 경선서 탈락했고 이해찬(7선), 원혜영(5선), 추미애(5선)는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에 민주당 현역 최다선 의원이 되었으며, 동시에 제21대 국회의원을 통틀어 최다선이 되었다.[15] 민주당이 원내 1당을 차지한 만큼 국회의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내는 물론 국회 전체에 6선은 박병석 의원이 유일하고, 5선 급에서는 김진표, 설훈 등이 경쟁자로 언급되었다. # 이후 5월 25일 최다선 박병석 VS 최연장자 김진표의 양자대결로 경선을 치르게 되었다. #
그런데 5월 20일, 김진표 의원이 '많은 고심 끝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 라고 하여 양보하고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에 따라 경선을 치르지 않게 되면서 경선을 치르지 않고 국회의장으로 추대되었다.# # #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국민통합21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촉구하며 후보 단일화 협의회에 참여했으나, 여론조사 경선으로 노무현이 단일 후보로 확정되자 그대로 잔류하였다.[12] 그리고 2003년 새천년민주당 내의 개혁 소장파 세력 대부분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하자 여기에 참여하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출마한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당선되어 재선이 되었으며, 2006년부터 2008년까지 국회 정무위원장을 역임하였다.
한나라당 이명박이 압도적인 차이로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한나라당에 절대적으로 유리했던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통합민주당 간판으로 당선[13]되면서 3선 고지에 올랐고 같은 해부터 2009년까지 민주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역시 민주통합당 후보로 당선되어 4선 고지에 올랐다. 그리고 2014년까지 제19대 국회 전반기 국회부의장[14]을 역임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18년 5월 10일, 제20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에 공식 출마했으나 당내 경쟁자인 6선 의원인 문희상 전 의원에게 패해 탈락했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단수공천을 받아 6선에 성공했다. 이석현(6선), 이종걸(5선)이 경선서 탈락했고 이해찬(7선), 원혜영(5선), 추미애(5선)는 불출마를 선언했기 때문에 민주당 현역 최다선 의원이 되었으며, 동시에 제21대 국회의원을 통틀어 최다선이 되었다.[15] 민주당이 원내 1당을 차지한 만큼 국회의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내는 물론 국회 전체에 6선은 박병석 의원이 유일하고, 5선 급에서는 김진표, 설훈 등이 경쟁자로 언급되었다. # 이후 5월 25일 최다선 박병석 VS 최연장자 김진표의 양자대결로 경선을 치르게 되었다. #
그런데 5월 20일, 김진표 의원이 '많은 고심 끝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 라고 하여 양보하고 출마하지 않겠다는 뜻에 따라 경선을 치르지 않게 되면서 경선을 치르지 않고 국회의장으로 추대되었다.# # #
아쉬움 속에 출발한 21대 국회지만, 우리 국회를 마칠 때 국민의 국회, 신뢰받는 국회를 만들 수 있도록 저와 여러분 함께하십시다. 고맙습니다.국회의장으로서 첫 발언
2020년 6월 5일, 제21대 국회의 첫 본회의인 379회 국회 임시회에서 총 투표 수 193표 중 191표를 얻어 국회의장에 최종적으로 선출되었다.
의장 취임 후 6월 7일 원내대표 간 원구성 협상 회동을 중재했다. # 이 자리를 앞두고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내가 결단을 내리겠다."고 강조했다.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두고 양당 원내대표인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미래통합당 주호영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우선 상임위 정원 수를 개편하는 방향을 우선 합의 처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
2020년 6월 15일, 법사위, 기재위, 산자위, 외통위, 국방위, 복지위 6개 상임위를 우선 배정하고 상임위원장 선출을 진행하도록 했다. 나머지 12개 상임위는 일단 비워뒀다. # 이후 6월 15일에 미선출한 상임위원장 선출을 위해 6월 19일에 상임위 구성을 마친다했지만, 여야 협의가 다시 무산되면서 예정됐던 19일자 본회의를 다시 무기한 연기했다.
6월 26일에도 양당 원내대표 협상이 타결되지 않자 또다시 본회의를 29일로 미뤘다. 12일, 15일, 19일, 22일에 이어 또 미뤘다. #[16]
6월 29일 오전 마지막으로 협상을 가졌으나 끝내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본회의를 열어 정보위원회를[17] 제외한 모든 상임위원장을 선출했다.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 탓인지 오후 본회의 개회 후 굳은 표정으로 국회의장 및 여야 모두 국민과 역사에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그 어떤 것도 국민과 국익을 앞설 수 없다는 것이 의장의 확고한 신념이라고 강조했다.[18]
2021년 후반기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처리를 강행하려 하자 여야의 협치를 명분으로 일방적으로 당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대한 논란, 여론 의식 등 여러 문제가 겹치며 언론중재법 처리를 무산시켰다. 이 때문에 김승원 의원이 SNS에서 박병석 의장을 GSGG로 지칭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19]
2022년 3월 대선 패배 후 170석의 의석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 드라이브를 걸면서 정의당과 함께 박병석 전 국회의장에게로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20] 그러자 4월 20일 예정되었던 북미 순방을 취소한 뒤 4월 22일 수사 기소 분리 법안의 합의안을 제시했고,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이를 수용했다.[21]
2022년 4월 27일 본회의를 열기로 하였다. 애당초 국민의힘이 조건에 위헌과 문제점을 지적해[22] 보완을 요구했다면 얼마든지 고민할 수 있었겠지만 이미 합의해 놓고 파기와 재협상을 요구하니 박병석 의장으로써는 더 이상 미룰 명분이 없었다.[23] 그리고 오후 5시 열린 본회의에 검수완박 법안이 상정되었고, 국민의힘 측 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필리버스터를 시작했으나 27일로 임시국회 회기 단축안을 박병석 전 국회의장이 상정하여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필리버스터가 사실상 무력화되었다.[24]
2022년 5월 29일, 마지막 본회의를 연 후[25] 제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서의 임기를 마무리했다.[26]
2023년 11월 6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의장 취임 후 6월 7일 원내대표 간 원구성 협상 회동을 중재했다. # 이 자리를 앞두고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내가 결단을 내리겠다."고 강조했다.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두고 양당 원내대표인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미래통합당 주호영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우선 상임위 정원 수를 개편하는 방향을 우선 합의 처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
2020년 6월 15일, 법사위, 기재위, 산자위, 외통위, 국방위, 복지위 6개 상임위를 우선 배정하고 상임위원장 선출을 진행하도록 했다. 나머지 12개 상임위는 일단 비워뒀다. # 이후 6월 15일에 미선출한 상임위원장 선출을 위해 6월 19일에 상임위 구성을 마친다했지만, 여야 협의가 다시 무산되면서 예정됐던 19일자 본회의를 다시 무기한 연기했다.
6월 26일에도 양당 원내대표 협상이 타결되지 않자 또다시 본회의를 29일로 미뤘다. 12일, 15일, 19일, 22일에 이어 또 미뤘다. #[16]
6월 29일 오전 마지막으로 협상을 가졌으나 끝내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본회의를 열어 정보위원회를[17] 제외한 모든 상임위원장을 선출했다.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여야가 합의에 이르지 못한 탓인지 오후 본회의 개회 후 굳은 표정으로 국회의장 및 여야 모두 국민과 역사에 심판을 받을 것이지만, 그 어떤 것도 국민과 국익을 앞설 수 없다는 것이 의장의 확고한 신념이라고 강조했다.[18]
2021년 후반기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처리를 강행하려 하자 여야의 협치를 명분으로 일방적으로 당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대한 논란, 여론 의식 등 여러 문제가 겹치며 언론중재법 처리를 무산시켰다. 이 때문에 김승원 의원이 SNS에서 박병석 의장을 GSGG로 지칭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19]
2022년 3월 대선 패배 후 170석의 의석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이 검수완박 드라이브를 걸면서 정의당과 함께 박병석 전 국회의장에게로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20] 그러자 4월 20일 예정되었던 북미 순방을 취소한 뒤 4월 22일 수사 기소 분리 법안의 합의안을 제시했고, 국민의힘과 민주당 모두 이를 수용했다.[21]
2022년 4월 27일 본회의를 열기로 하였다. 애당초 국민의힘이 조건에 위헌과 문제점을 지적해[22] 보완을 요구했다면 얼마든지 고민할 수 있었겠지만 이미 합의해 놓고 파기와 재협상을 요구하니 박병석 의장으로써는 더 이상 미룰 명분이 없었다.[23] 그리고 오후 5시 열린 본회의에 검수완박 법안이 상정되었고, 국민의힘 측 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필리버스터를 시작했으나 27일로 임시국회 회기 단축안을 박병석 전 국회의장이 상정하여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필리버스터가 사실상 무력화되었다.[24]
2022년 5월 29일, 마지막 본회의를 연 후[25] 제21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서의 임기를 마무리했다.[26]
2023년 11월 6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경실련이 박병석 국회의장이 현재 거주지인 서울 서초구와 고향인 대전에 2주택을 보유하며 4년간 23억여원의 시세 차익을 봤다고 발표하자, 박 의장은 "대전 집은 처분한 상태이며 현재는 1주택자"라고 해명해 충청도 사람들로부터 "충청을 버리고 강남을 선택했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또한 그 때문에 청주시의 집을 버리고 강남구의 집을 택한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이시종 충북도지사와 같이 비판받게 되었다. # 게다가 공교롭게도 박병석 의원이 자기 지역구의 집을 팔고 남긴 집은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27] 60평으로, 향후 서초구의 대장주로 평가받고 있고 초고급 아파트로 재건축될 아파트 단지인 것은 물론, 펜트하우스까지 노려볼 수 있는 90세대밖에 없는 초희귀 매물이다.
그런데 그 '처분'했다는 대전 집은 알고보니 아들에게 증여한 것이고, 월세살이 한다는 것은 아들에게 월세를 주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기사.
그런데 그 '처분'했다는 대전 집은 알고보니 아들에게 증여한 것이고, 월세살이 한다는 것은 아들에게 월세를 주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기사.
2021년 1월 11일 제5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이장석 전 목포MBC 사장을 추천한 사실이 보도되었다. 이에 한국기자협회·한국PD연합회·방송기자연합회·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 일제히 반발하며 박병석 의장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 #
이장석은 2010년, 김재철 사장 시절 MBC 보도국장의 자리에 올랐으며, 국정원이 2010년 3월 2일 작성한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에 따라 진행된 인사와 프로그램 폐지, 노조 탄압에 협조한 일로 MBC 사내에서 비판을 받아온 인물이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내내 승승장구하며 목포MBC 사장으로 영전한 인물이다. 그래서 민주당에서도 재공모를 검토하고 국회 과방위에서도 지명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는데, 박병석 의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러자 그 배경에 대해 각종 의구심이 제기되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이장석이 박병석 국회의장의 대전고 후배라는 사실이었고, 이로 인해 학연과 개인적 인맥에 근거해 정실인사를 고집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위 단체들은 박병석 의장에게 이번 인사를 철회하는 한편 깊이 반성하고 국민 앞에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 #, # 논란이 거세지자 이장석 전 목포MBC 사장은 방심위 상임위원 후보에서 자진 사퇴했다. #
그런데 박 의장이 이장석 대신 방심위 상임위원으로 재추천한 인사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2021년 3월 23일 김윤영 전 원주MBC 사장을 추천했는데, 과거 방송 출연을 대가로 사업가로부터 주식을 받아 법원에서 유죄 판결[28]을 받은 것이 드러난 것. 논란이 되자 김윤영 전 사장은 며칠 만에 사의를 표명했는데, 알고 보니 김윤영 역시 박 의장의 대전고 동문인 것으로 밝혀지자 정치권에서는 인사에 학연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커졌다. #, #, #
한 달 뒤인 2021년 4월, 이번에는 연합뉴스의 최대 주주인 뉴스통신진흥회의 이사 후보로 전종구 전 대전 시티즌 사장을 추천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전종구는 과거 2006년까지 중앙일보에서 체육부 축구팀장과 중부사업본부장을 역임했고, 이후 대전 시티즌 축구단의 사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야구배트 등 스포츠용품 제조회사 맥스에스엔아이 대표를 맡고 있는 체육계 인사이기에 다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상황. 알고 보니 이번에는 박 의장과 살아온 궤적이 모두 겹치는 인물로, 박 의장의 대전고, 성균관대, 중앙일보 후배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 #
이에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는 "입법부 수장이자 대한민국 권력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이 제 사람만 챙기는 모양새"라며 "지연과 학연에 얽매인 인사라는 지적을 어떻게 부인할 셈인가"라고 박 의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앞선 방심위 위원 추천 후보들을 거론하며 "누구보다 중립적이어야 할 국회의장이 공영언론 감독기관과 심의기구에 이처럼 어이없는 인사들을 연이어 추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전종구 이사 후보의 추천철회를 촉구했다. 정치권에서도 상식선에서 이해하기 힘든 국회의장의 인사 추천이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 #
이장석은 2010년, 김재철 사장 시절 MBC 보도국장의 자리에 올랐으며, 국정원이 2010년 3월 2일 작성한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 방안’에 따라 진행된 인사와 프로그램 폐지, 노조 탄압에 협조한 일로 MBC 사내에서 비판을 받아온 인물이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내내 승승장구하며 목포MBC 사장으로 영전한 인물이다. 그래서 민주당에서도 재공모를 검토하고 국회 과방위에서도 지명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는데, 박병석 의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러자 그 배경에 대해 각종 의구심이 제기되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이장석이 박병석 국회의장의 대전고 후배라는 사실이었고, 이로 인해 학연과 개인적 인맥에 근거해 정실인사를 고집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위 단체들은 박병석 의장에게 이번 인사를 철회하는 한편 깊이 반성하고 국민 앞에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 #, # 논란이 거세지자 이장석 전 목포MBC 사장은 방심위 상임위원 후보에서 자진 사퇴했다. #
그런데 박 의장이 이장석 대신 방심위 상임위원으로 재추천한 인사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2021년 3월 23일 김윤영 전 원주MBC 사장을 추천했는데, 과거 방송 출연을 대가로 사업가로부터 주식을 받아 법원에서 유죄 판결[28]을 받은 것이 드러난 것. 논란이 되자 김윤영 전 사장은 며칠 만에 사의를 표명했는데, 알고 보니 김윤영 역시 박 의장의 대전고 동문인 것으로 밝혀지자 정치권에서는 인사에 학연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커졌다. #, #, #
한 달 뒤인 2021년 4월, 이번에는 연합뉴스의 최대 주주인 뉴스통신진흥회의 이사 후보로 전종구 전 대전 시티즌 사장을 추천한 것이 논란이 되었다. 전종구는 과거 2006년까지 중앙일보에서 체육부 축구팀장과 중부사업본부장을 역임했고, 이후 대전 시티즌 축구단의 사장을 지냈으며 현재는 야구배트 등 스포츠용품 제조회사 맥스에스엔아이 대표를 맡고 있는 체육계 인사이기에 다소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상황. 알고 보니 이번에는 박 의장과 살아온 궤적이 모두 겹치는 인물로, 박 의장의 대전고, 성균관대, 중앙일보 후배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 #
이에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는 "입법부 수장이자 대한민국 권력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이 제 사람만 챙기는 모양새"라며 "지연과 학연에 얽매인 인사라는 지적을 어떻게 부인할 셈인가"라고 박 의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앞선 방심위 위원 추천 후보들을 거론하며 "누구보다 중립적이어야 할 국회의장이 공영언론 감독기관과 심의기구에 이처럼 어이없는 인사들을 연이어 추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며 전종구 이사 후보의 추천철회를 촉구했다. 정치권에서도 상식선에서 이해하기 힘든 국회의장의 인사 추천이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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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적인 폭우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수해 지원 및 복구 법안을 관장하는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박정 의원을 비롯한 최기상 의원, 윤준병 의원과 함께 베트남, 라오스로 해외 출장을 떠나서 지탄을 받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방문 중 국내에서 수해가 일어나자 "수해 중에도 귀국하지 않았다"며 '컨트롤타워 부재'라고 비판한 것과 대비되게 본인들이 그 말을 실천하지 못하는 모습에 국민들이 지탄했으며, 심지어 당내에서도 적절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나오는 걸로 보아 반론의 여지가 없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출장을 떠난 의원들에게 귀국하라 지시했다.
전국적인 폭우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수해 지원 및 복구 법안을 관장하는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박정 의원을 비롯한 최기상 의원, 윤준병 의원과 함께 베트남, 라오스로 해외 출장을 떠나서 지탄을 받고 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방문 중 국내에서 수해가 일어나자 "수해 중에도 귀국하지 않았다"며 '컨트롤타워 부재'라고 비판한 것과 대비되게 본인들이 그 말을 실천하지 못하는 모습에 국민들이 지탄했으며, 심지어 당내에서도 적절하지 못했다는 표현이 나오는 걸로 보아 반론의 여지가 없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지도부는 출장을 떠난 의원들에게 귀국하라 지시했다.
- 국회박물관에 가면 박병석 전 국회의장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있다.
- 앞서 언급했다시피 2002년 대선 당시 후보 단일화 협의회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비노무현 - 비문재인으로 분류되지만[31] 정치 이력상 후단협 참여를 제외하면 오히려 당내 분란에 동조한 일이 전혀 없다.[32] 노무현 전 대통령을 딱히 지지한 인물이 아니었는데도 열린우리당에 참여해 계속 자리를 지켰고, 2015년 말에 안철수를 비롯한 비문/반문 성향 인사들이 대거 탈당해 국민의당을 창당할 때도 어떻게든 문재인 - 안철수 두 사람을 화해시키려는 중재를 적극적으로 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에 잔류하였다. 애초에 정치 입문을 할 때부터 충청권의 맹주나 다름없던 자유민주연합을 마다하고 굳이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여 쉽지 않은 대전 지역구에 꾸준히 출마해 당선되었고, 2015년 말의 새정치민주연합 분당 사태로 탄생한 국민의당이 그렇게도 기고만장하다가 결국 어떻게 됐는지를 보면 정치적 감각이 탁월한 셈.
- 미래통합당 이영규 후보와 무려 5번을 내리 상대해 모두 이겼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까지는 그와 비슷한 위치인 대전광역시 대덕구에서 구청장 선거, 국회의원 선거까지 박영순을 상대로 총 4연승을 거둔 정용기,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을에서 이정국을 상대로 4연승을 거둔 심재철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정용기는 5번째 대결 만에 박영순 후보에게 패배하며 4연승으로 마감했고 심재철 또한 교체 선수로 투입된 이재정에게 패배하며 역시 4연승으로 마감했다. 이로서 박병석 본인 혼자만이 한 후보를 상대로 5연승이라는 유례없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이영규는 한 명에게만 5연패를 당한 충격이 컸는지 부정선거 음모론에 동조하는 추태를 보이고 말았다. #
- 다선 의원들은 혐의가 없더라도 구설수에 한 번 이상은 휘말리기 마련이지만, 이 사람은 현재까지도 도덕적으로 문제되는 논란 몇개 말고는 휘말린 적이 없다. 상술한 일화들을 보면 평소 사생활 관리와 언행을 신중하게 하는 것으로 여겨지나, 정작 당이 뭉쳐서 활동할 만한 지역구 유세는커녕 당의 집단 행동, 특히 더불어민주당의 이미지 쇄신에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었던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나 탄핵 국면마저 모습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뭔가 한 것이 딱히 없다. 좋게 말하자면 신중한 행보를 보고 국회의장으로 뽑혔다고 볼 수 있으나, 나쁘게 말하자면 여타 다선 의원들에 비해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없다시피 해서 정치적 모호성을 이유로 국회의장에 뽑혔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런 행보로 인해 박병석이란 정치인이 대중적으로 자신의 행보를 보이며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다른 위치도 아닌 국회의원의 우두머리인 국회의장인 셈이다.
- 20대 국회의원 시절까지는 필요할 시에만 안경을 착용 했는데 21대 국회의원 이후부터는 늘 안경을 착용하고 다닌다.
- 쌍특검 표결인 50억클럽에는 찬성표를 던졌으나 김건희 특검법에는 표결에 불참하였다.[38]
역대 선거 벽보 |
- 대한민국 제6공화국 이래 최초로 한 지역구에서 내리 6선에 성공한 국회의원이다. 심지어 공백기도 없었다. 이 기록은 같은 당 조정식 의원과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각각 시흥시 을, 사하구 을에서 6선에 성공하며 공유하게 되었다. 지역구인 서구 갑은 2000년 신설 이래 선거구 명칭이나 구역이 지금까지 바뀐 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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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음력 1951년 12월 29일[2] 현재 철거되어 재건축 중.[3] 34세손 '炳'자 항렬. 박정희는 그의 5대 조상뻘, 박근혜는 고조할머니뻘 항렬이다.[4] 前 민선 1, 3기 대전 동구청장[5] 1979년 출생.[6] 1981년 출생.[7] 석사 학위 논문 : 한국신문의 대기업 보도 연구(1997).[8] 소집해제.[9] 대전 유성구 원내동 한밭제일교회에 출석 중이다. 출처.[10] 충청북도 제천시 출신으로, 본래 제천에서 서점을 운영하다가 6.25 전쟁 때 대전에 정착하여 1954년, 족보만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회상사(回想社)를 설립, 2012년 사망할 때까지 경영하였다. 현재 회상사는 국내 족보 출판의 80%를 담당하고 있는 독보적인 기업으로, 대전 동구 중동의 발상지에서 그대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11] 출처. 기사에도 나와있듯이 친형인 박병호는 민선 동구청장을 역임했다.[12] 이때 잔류한 인물들은 송영진, 김명섭, 송석찬 등이 있고 한편으로는 김원길, 원유철, 이근진 등의 한나라당 입당 인물들도 있었다. 특히 이중에서 원유철은 계속 당선되어서 새누리당과 자유한국당 간판도 달았고 2020년에는 미래통합당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대표까지 지냈다.[13] 대전 유일의 민주당 당선자였다. 유성구의 이상민 전 의원도 이 선거에서 당선되었지만, 이 때는 자유선진당 당적으로 당선. (이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통합당으로 복당.)[14] 1987년 민주화 이후 국회부의장 최다득표율(98%; 출석의원 대비 득표율)을 기록하여 선출되었다. 이 기록은 2020년 김상희 전 국회부의장에 의해 갱신되었다.[15] 게다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해찬의 7전 7승에 비견될만한 6전 6승을 거두었다.[16] 애초에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놓고 양당이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기 때문에 협상 타결이 이뤄질리도 만무했다.[17] 정보위의 경우 국회부의장의 협의가 있어야 하는데, 야당 몫으로 내정된 부의장 자리에 정진석 전 의원이 선임되었지만, 여당의 상임위 독식을 이유로 자리를 고사하면서 미뤄졌다.[18] 결국 더불어민주당의 상임위 독점은 2021년 7월 23일,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전 원내대표의 양보로 국민의힘 김기현 전 원내대표와 11:7로 상임위를 재분배하는 대가로 원내 정상화 합의를 하면서 해소되었다.[19] 이후 논란이 커지자 김승원 의원이 직접 박병석 전 의장을 찾아가 사과의 뜻을 전했다.[20] 법안 상정권을 가진 박병석 전 국회의장이 이 법을 상정하지 않는다면 민주당이 설사 200석이 넘는 의석을 가진다 한들 표결에 들어가는 것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테러방지법 상정 당시의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같은 처지에 놓여져 있다고 볼 수 있는데, 과거 정의화 의장처럼 직권상정을 강행해 필리버스터 정국이 조성되게 하는 데 역할을 할지 아니면 언론중재법 때의 모습처럼 여야협의를 강조하며 법안상정 자체를 막을지 그 행보가 주목되는 상황이다.[21] 중재안 자체는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만족 못하는 구조다. 더불어민주당은 추진하던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가 사실상 실패해 버렸고, 국민의힘도 검찰의 직접 수사권 제한을 완전히 막지 못하고, 현재 검찰이 직접 수사 중인 일부 사건을 경찰에 이첩하거나 마무리 해야 하기 때문이다.[22] 보완수사권 보장이 명시되어 있기에 별건 수사를 막아 여죄 추궁이 불가능하게 만든 게 제일 큰 문제점이다. 단적으로 조주빈이 높은 형량을 받은 건 검찰이 조직 범죄를 적용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재안은 이를 못하게 막았다.[23] 당내 비판과 극성 지지자들의 공격에 시달리면서도 중재안을 낸 것을 국민의힘이 파기한 것이다. 진중권 전 교수는 이를 비판하면서 국민의힘 최악의 자살골이라고 평했다.[24] 이는 국회의장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은 행동으로 볼 수도 있으나, 중재안에 동의한 정당이 사안을 번복하고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는 행위에 대해 국회의장이 배려할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25] 이 자리에서 강원특별자치도 법안과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추가경정예산안 등이 본회의를 통과했다.[26] 70세가 넘는 고령인데다가 전반기 국회의장을 마무리함으로써 이번 국회의원 임기를 마지막으로 정계은퇴할 가능성이 높다.[27] 반포 디에이치클래스트로 재건축 예정[28] 배임수재죄로 벌금 500만원과 추징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다.[29] 박병석보다 더 작은 사람은 바로 옆 지역구 의원 박범계 1명뿐이다. 이른바 도토리즈.[30] 아니면 부산의 모 국회의원일수도.[31] 당내에서는 정세균계로 분류되기도 한다.[32] 2007년 7월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대통합민주신당 창당에 참여한 이력은 있으나, 결과적으론 불과 한 달 만에 열린우리당과 대통합민주신당이 합당한 데다 당시의 열린우리당은 사실상 와해되는 상황이었다. 박병석 본인이 분란을 주도하지도 않았고, 열린우리당 탈당 역시 당시 지도부와의 교감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33] 2020년 5월 30일~2022년 5월 29일[34] 2020년 7월 1일~2022년 6월 30일[35] 다만 울산광역시의회 의장인 박병석은 현대자동차 노동자 출신이며, 민주노동당 - 진보신당에 몸담았던 인물이다.[36] 다만 한자는 '석' 자만 錫(주석 석)으로 서로 같고 '병' 자는 서로 다르다. 박병석의 병은 炳(불꽃 병)이고, 이병석의 병은 秉(잡을 병)이다.[37] 참고로 이름이 같은 탓에 2013년에 해프닝이 하나 발생했는데, 기획재정위원회가 심사한 녹색기후기금의 운영 지원에 관한 법률안 등을 위해 기재위 소속 의원들이 한데 모인 자리에서 나성린이 당시 진행자였던 이병석을 향해 박병석이라고 잘못 부른 것이었다. 기사.[38] 50억클럽 찬성표는 181표이나 김건희 특검법은 180표임.[39] 공직 취임으로 인한 탈당.[40] 열린우리당 창당을 위한 탈당.[41]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42] 민주당과 신설 합당.[43]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44]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45] 국회의장 취임으로 인한 탈당.[46] 전반기 국회부의장.[47] 전반기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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