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 장편 연출 작품 |
밀양 (2007) Secret Sunshine | |
| |
장르 | |
감독 | |
출연 | |
각본 | |
원작 | |
제작 | |
프로듀서 | 이한나 |
촬영 | 조용규 |
조명 | 추인식 |
미술 | 신점희 |
음악 | 크리스티안 바소 |
분장 | 송종희 |
의상 | 차선영, 김누리 |
편집 | 김현 |
제작사 | 파인하우스필름 |
배급사 | |
촬영 기간 | |
개봉일 | |
상영 시간 | 141분 (2시간 21분) |
제작비 | 50억 원 |
손익분기점 | 150만명 |
월드 박스오피스 | $11,581,469 |
총 관객 수 | 1,710,364명 (최종) |
스트리밍 | |
상영 등급 |
메인 포스터 | |
2019년 〈전도연 마스터피스 특별전〉 재개봉 이신애 역 포스터 |
▲ 예고편 |
비밀이 있습니다 | 이런 사랑도 있다…
33살. 남편을 잃은 그녀는, 어린 아들 준과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가고 있다. 이미 그녀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피아니스트의 희망도, 남편에 대한 꿈도… 이 작은 도시에서 그만큼 작은 피아노 학원을 연 후, 그녀는 새 시작을 기약한다. 그러나 관객은 이내 곧 연약한 애벌레처럼 웅크린 그녀의 등에서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던지는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당신이라면 이래도 살겠어요…?” 삶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는 새로운 전도연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시크릿 선샤인>, 이 영화는 전도연 연기 인생의 새 출발점이다.
밀양 외곽 5km. 그는 신애(전도연)를 처음 만난다. 고장으로 서 버린 그녀의 차가 카센터 사장인 그를 불렀던 것. 그리고 이 낯선 여자는 자신의 목소리처럼 잊혀지지 않는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다. 그는 밀양과 닮아 있다. 특별할 것이 없는 그만큼의 욕심과 그 만큼의 속물성과 또 그 만큼의 순진함이 배어 있는 남자. 마을 잔치나 동네 상갓집에 가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그 누구처럼, 그는 신애의 삶에 스며든다. 그는 언제나 그녀의 곁에 서 있다. 한 번쯤은 그녀가 자신의 눈을 바라봐주길 기다리며… 그리고 송강호, 그의 새로운 도전을 우린 기대하게 된다. 그처럼 평범하지 않은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 그처럼 아파하는 여자의 곁을 지키고 있는 이 남자의 시선과 사랑을 그는 어떻게 표현할까?네이버 영화 소개 링크
이신애 (전도연) |
남편과 사별 후 어린 아들과 함께 밀양에 오게 된 평범한 주부. 불행히도 아들마저 유괴로 잃게 된 후 교회에 깊이 의지하게 되지만 유괴범을 용서하러 교도소에 면회를 간 이후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 믿음을 완전히 잃게 되어 교인들을 상대로 적대적인 기행을 반복한다.
김종찬 (송강호) |
신애를 지켜보는 평범한 남자. 카센터를 운영하는 노총각으로, 차가 고장나 도로에 고립된 신애와 처음으로 만난 걸 시작으로 그녀한테 홀딱 반해 극중 내내 신애를 따라다니며 도움을 주고, 교회까지도 따라 나온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고 다방 여직원을 희롱하거나 독립했음에도 어머니로부터 전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구박을 받는 등 전형적인 투박한 스타일의 노총각. 마당발에 워낙 둥글둥글한 성격이라 사람은 좋지만 한편으론 눈치도 없기 때문에 여자, 특히 예민하고 감성적인 신애와 같은 인물과는 여러모로 상극인 인물. 그러나 고통받는 신애의 옆에 계속 맴돌며 성장을 거듭해 변화하게 된다.
이신애(전도연 분)는 아들 준(선정엽 분)과 함께 밀양으로 오던 중 국도에서 자동차가 고장이 나고 카센터를 운영 중인 김종찬(송강호 분)이 자동차 응급 수리를 하러 오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다. "여행이 아니라 살러 왔다"는 작고 고운 신애에게 종찬은 처음부터 호감을 느낀다.
어릴 적 신애는 피아니스트를 꿈꾸었으나 아버지와 불화를 겪으며 꿈이 좌절되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나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지만 남편이 외도를 했고 교통사고로 사망까지 했다. 이는 신애의 남동생 민기(김영재 분)가 신애를 만나러 오면서 밝혀진다. 그럼에도 신애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가족들 몰래 이주해 온 것이다.
밀양에 정착한 신애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피아노 교습소를 열었지만 원주민들과 쉽게 섞이지 못하고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는데[4] 그들의 텃세를 경계하느라 재산이 많은 듯 말하고 다니며, 종찬을 통해 땅을 보러 다닌다. 종찬은 신애에게 노골적으로 관심을 보이며 접근하지만, 신애는 그런 종찬이 불편하고 귀찮기만 하다.
신애는 돈이 많은 척 허세를 부리고, 자신을 뒤에서 흉보던 사람들과도 어울리며 어떻게든 밀양에 정착하려고 하지만 그녀의 거짓된 행동은 결국 아들의 유괴라는 참극으로 이어지고 만다.
아들이 유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에 빠진 신애가 막상 찾아간 사람은 자신을 귀찮게 쫓아다니던 종찬이었다. 그러나 종찬이 카센터에서 노래방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며 신애는 차마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돌아선다. 그리고는 어두운 밤, 도로를 정처없이 걷다가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유괴범과의 협상 과정에서 신애는 아들의 몸값으로 신문지로 조잡하게 가짜 돈을 준비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의 허세와 거짓을 유괴범에게 시인하고 마는데, 그런데도 아들 준은 돌아오지 못하고 유괴범에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아들을 잃은 신애는 평소처럼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극심한 우울증과 경계심을 가지게 된다.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고 돌아오는 길, 신애는 무언가에 홀린 듯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고 오한에 떨다가 길가에 나부끼는 기도회 현수막을 보고 막연히 교회를 찾아간다. 그 곳에서 피울음 토해내듯 오열을 하는 신애.[5] 신애를 따라온 종찬은 그녀를 말없이 지켜만 보는데, 목사가 신애의 머리 위에 가만히 손을 얹자 신애의 울음은 놀랍게도 뚝 그친다.
이후 신애는 개신교에 귀의했다. 영화 초반 전도하려는 약사에게 불쾌함을 내비치던 그녀는 이제는 오히려 열성적으로 집회에 참석하고 교회를 찾는다. 그녀는 교인들에게 "이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도 말하고 이웃 주민들에게도 "나는 이제 행복하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러나 그것 또한 자신을 속이는 행위에 불과했다. 혼자 있을 때 신애는 여전히 아들 생각에 눈물을 쏟고, 낯선 타인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6]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행동이 점점 괴리되는 상황에서 그녀가 최후로 선택한 것은 유괴범에 대한 용서였다.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겠다는 결심을 한 신애는 교회 목사와 교인들에게 자신의 뜻을 밝히고, 그들의 격려 속에 "유괴범을 직접 만나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그렇게 신애는 종찬과 함께 교도소에서 유괴범을 대면하는데…
준이 다니던 웅변학원의 원장이었던 유괴범은 신애의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모습에 당황한 신애는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되려 유괴범이 신애를 위로하며 "나는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 마음이 편안하다"는 말을 한다.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은 신애.[7]
유괴범을 만나고 난 후 신애는 이전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피아노학원 운영도 팽개치고 하루 종일 누워만 있거나, 교회에 가서 십자가를 보며 의자를 꽝꽝 내려친다. 보다 못한 교회 사람들이 그녀를 위로하려고 그녀의 집에서 집회를 여는데, 거기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어릴 적 신애는 피아니스트를 꿈꾸었으나 아버지와 불화를 겪으며 꿈이 좌절되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나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지만 남편이 외도를 했고 교통사고로 사망까지 했다. 이는 신애의 남동생 민기(김영재 분)가 신애를 만나러 오면서 밝혀진다. 그럼에도 신애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남편의 고향 밀양으로 가족들 몰래 이주해 온 것이다.
밀양에 정착한 신애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피아노 교습소를 열었지만 원주민들과 쉽게 섞이지 못하고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는데[4] 그들의 텃세를 경계하느라 재산이 많은 듯 말하고 다니며, 종찬을 통해 땅을 보러 다닌다. 종찬은 신애에게 노골적으로 관심을 보이며 접근하지만, 신애는 그런 종찬이 불편하고 귀찮기만 하다.
신애는 돈이 많은 척 허세를 부리고, 자신을 뒤에서 흉보던 사람들과도 어울리며 어떻게든 밀양에 정착하려고 하지만 그녀의 거짓된 행동은 결국 아들의 유괴라는 참극으로 이어지고 만다.
아들이 유괴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절망에 빠진 신애가 막상 찾아간 사람은 자신을 귀찮게 쫓아다니던 종찬이었다. 그러나 종찬이 카센터에서 노래방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며 신애는 차마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고 돌아선다. 그리고는 어두운 밤, 도로를 정처없이 걷다가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리고 만다.
유괴범과의 협상 과정에서 신애는 아들의 몸값으로 신문지로 조잡하게 가짜 돈을 준비하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의 허세와 거짓을 유괴범에게 시인하고 마는데, 그런데도 아들 준은 돌아오지 못하고 유괴범에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아들을 잃은 신애는 평소처럼 일상 생활을 영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극심한 우울증과 경계심을 가지게 된다.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고 돌아오는 길, 신애는 무언가에 홀린 듯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고 오한에 떨다가 길가에 나부끼는 기도회 현수막을 보고 막연히 교회를 찾아간다. 그 곳에서 피울음 토해내듯 오열을 하는 신애.[5] 신애를 따라온 종찬은 그녀를 말없이 지켜만 보는데, 목사가 신애의 머리 위에 가만히 손을 얹자 신애의 울음은 놀랍게도 뚝 그친다.
이후 신애는 개신교에 귀의했다. 영화 초반 전도하려는 약사에게 불쾌함을 내비치던 그녀는 이제는 오히려 열성적으로 집회에 참석하고 교회를 찾는다. 그녀는 교인들에게 "이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도 말하고 이웃 주민들에게도 "나는 이제 행복하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러나 그것 또한 자신을 속이는 행위에 불과했다. 혼자 있을 때 신애는 여전히 아들 생각에 눈물을 쏟고, 낯선 타인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6]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 행동이 점점 괴리되는 상황에서 그녀가 최후로 선택한 것은 유괴범에 대한 용서였다.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겠다는 결심을 한 신애는 교회 목사와 교인들에게 자신의 뜻을 밝히고, 그들의 격려 속에 "유괴범을 직접 만나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 그렇게 신애는 종찬과 함께 교도소에서 유괴범을 대면하는데…
준이 다니던 웅변학원의 원장이었던 유괴범은 신애의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모습에 당황한 신애는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데 되려 유괴범이 신애를 위로하며 "나는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 마음이 편안하다"는 말을 한다. 그 말에 큰 충격을 받은 신애.[7]
유괴범을 만나고 난 후 신애는 이전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피아노학원 운영도 팽개치고 하루 종일 누워만 있거나, 교회에 가서 십자가를 보며 의자를 꽝꽝 내려친다. 보다 못한 교회 사람들이 그녀를 위로하려고 그녀의 집에서 집회를 여는데, 거기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어떻게 용서를 해요? 용서하고 싶어도 난 할 수가 없어요. 그 인간은 이미 용서를 받았다는데… 그래서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는데… 내가 그 인간을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그 인간을 먼저 용서할 수 있어요?
종교를 가진 후 마음의 평화를 얻고 행복하다고 떠들고 다녔지만, 실상은 아들의 괴로움을 미처 극복하지 못했던 신애. 그러다 최후로 선택한 것이 유괴범을 직접적으로 용서하는 것이었으나, 자신이 용서하기도 전에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며 편안한 얼굴로 등장한 유괴범의 모습에 그녀의 거짓과 허위가 또 다시 무너지고 만 것이다.
결국 신애의 정신질환은 종교를 얻기 전보다 더 심해진다. 지렁이를 보고 발작하듯이 놀라서 운다거나[8], 오밤중에 갑자기 일어나서 준이가 납치된 날 유괴범과 통화하던 모습을 토씨 하나 틀린 것 없이 반복하다 뜬금없이 종찬에게 전화해서 "아들이 납치당했다"고 하더니 종찬이 "그놈은 교도소에 있다"고 말하자 현실부정을 하며 소리를 지르기까지 한다. 신애는 거기서 더 나아가 신에게 보복하듯 고의적으로 죄악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물건을 도둑질하고, 다른 교회의 집회를 방해하고, 하나님에 대해 설교하는 교회 집회에 <거짓말이야> 노래 CD를 트는 테러(?)를 저지르고, 나아가 자신을 교회로 끌어들인 장로를 성적으로 유혹하여 간통 미수[9]를 저지르게 유도하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하늘 위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고 믿는 신을 바라보며 대드는데 그 과정에서 환시, 환청, 환촉 등 정신질환자들이 흔히 겪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결국 자신의 손목을 칼로 긋는 자해를 한 신애. 그렇게 피를 흘리며 새벽의 거리를 뛰쳐나가는데, 이내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게 그녀는 토하듯 말한다.
살려주세요…
- 크리스티안 바소 - Criollo
개봉 주 주말 '스파이더맨 3'와 '캐리비안의 해적3'이라는 두 편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무려 1100여개의 스크린을 장악한 채 관객을 싹쓸이했다. 230개 스크린으로 시작한 '밀양'은 시작부터 큰 대작과 싸워 대진운이 좋은 편이 아님에도 다행히 손익분기점을 넘어 성공했다. 전국 관객 171만 364명.
- TV에서도 계속 방송되었기 때문에 관객수 대비 대중성이 높고 많은 사람들이 본 영화이다.
- 〈밀양〉은 개봉 1년 뒤인 KBS 방송 81년 특선대작으로 지상파에서 첫선을 보였다.
2008년 3월 1일 오후11시27분 KBS 2TV를 통해 방송된 '밀양' 1부는 시청률조사회사 TNS미디어코리아 집계결과, 10.2%의 시청률을 나타냈다. 밤 12시47분 시작된 2부도 8.7%의 시청률로 동시간대 1위를 차지했다. 전도연 칸 수상작 '밀양', 심야에도 10%대
Plumbing the depths of tragedy without succuming to melodrama, Chang-dong Lee's Secret Sunshine is a grueling, albeit moving, piece of beautifully acted cinema.
★★★★★
영화라는 매체가 도달할 수 있는 깊이.
- 이동진
★★★★
인간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
- 김봉석
★★★★☆
응달까지 파고드는 햇살 같은, 미약하지만 끈질긴 구원의 가능성
- 김지미
★★★★
죽고 싶은 명백한 이유, 살아야 하는 은밀한 이유
- 김혜리
★★★☆
멜로영화 → 유괴영화 → 기독교영화 → 메디컬영화. 전도연 연기 작렬!
- 황진미
★★★★
판타지 없이도, 구원의 가능성 없이도,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것
- 남다은
★★★★
외롭고 상처받은 영혼에게 보내는 선물
- 유지나
★★★★
“내 울부짖은들, 뉘라 천사의 열에서 들으리오[10]” 밀양 엘레지!
- 박평식
* CBS 토크프로 ‘크리스천 Q’, 기독교의 근본가치인 ‘용서’와 ‘고통’에 대해 토론에서는 "오히려 ‘모든 종교의 근본가치인 용서를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에 대해 한국 기독교가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결국 한 여자가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영화다, 영화는 이처럼 한 여성의 고통과 싸우는 과정을 다룬 것이다."라며 좋게 평가하기도 하였다. 반기독교적인 영화로 안보는 기독교측 의견도 꽤 많다.
* 2022년 그것이 알고싶다 유튜브 채널에서 영화 <밀양>의 숨은 디테일을 범죄심리학자의 눈으로 분석하다! | 지선씨네마인드 <밀양> (SBS 방송) 편으로 등장하였다.
이렇듯 영화 한편으로 다양한 주제가 나온다.
이렇듯 영화 한편으로 다양한 주제가 나온다.
- 버라이어티와 LA위클리는 이 작품이 "이번 칸 영화제에서 가장 수상이 유력한 작품 중의 하나"라고 호평한 바 있다.
- 평론가 스콧 폰다스(Scott Foundas)는 '밀양'에 대해 "모자람 없이 훌륭하다"며 "매일 일어나는 작은 것들의 성공의 기쁨과 커다란 비극, 그리고 그런 것을 극복하는 우리 인간의 대단한 능력을 찬미한다"고 평했다. #
- 뉴욕타임스는 칸 영화제가 60회를 맞는 올해 새로운 활력을 찾았다는 공감대가 까다로운 비평가들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며 이 감독의 밀양을 소개했다. 이 신문은 소설가 출신으로 문화관광부장관까지 지낸 이 감독이 자칫 멜로드라마나 선정주의로 흐를 수 있었던 이야기에 명상적이고 문학적인 감수성을 부여했다면서 밀양이 황금종려상의 유력한 후보작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고 전했다. 밀양이 초반부에는 우울하고 어색한 코미디 같은 느낌을 주지만 갑작스런 파국이 심리적인 긴장감을 고조시키면서 안정을 갈구하는 여주인공의 절박한 몸짓을 그리고 있다면서 신중한 스타일의 이 감독이 담아내기에 여주인공의 고통이 너무 커보였지만 전도연의 열연이 이를 상쇄시켰다고 평가했다. 또 고통받은 온순한 영혼을 표현해 낸 전도연의 연기가 압권이었다면서 이 같은 명연기가 그녀를 그녀를 올해 칸영화제를 빚내고 있는 격렬하고 두려움 없는 여배우 가운데 하나로 만들었다고 호평하며 전도연의 여우주연상 수상에 대한 기대를 부풀렸다. 기사[11]
- 한국 관람객들이나 시청자들은 밀양을 신과 구원과 용서에 초점을 맞춘 평이 많은데 해외의 다양한 언론에서는 인간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과 방식, 휴머니즘에 초점을 맞춘 평이 많다.
- 미국에서 열리는 제80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의 외국어영화 부문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되었다. 이에 영화진흥위원회는 "6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위원장 김형구)는 "<밀양>은 한 여성이 운명과 맞서거나 순응한다는 휴먼 스토리로 볼 수 있고 여배우의 연기가 감정적 포인트로 표출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가장 아카데미상에 근접한 영화라는 데 합의했다"고 말했다.
영화 속 중요한 소재로 개신교가 나온다. 커다란 상처를 입은 주인공 이신애[13][14]가 개신교에 귀의한 뒤 종교를 통해 마음의 안식을 찾고 개신교가 강조하는 그리스도 정신에 따라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하겠다고 마음 먹는다. 마침내 아들을 죽인 살인범에게 교도소 면회를 갔으나 그 살인범은 신애에게 사죄하기는커녕 "나는 이미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면서 멋대로 마음의 짐을 털어낸 뻔뻔한 모습을 보이고[15] 이를 본 신애가 좌절하여 신을 증오하게 된다. 교회 예배 시간에 찾아가 의자를 두들기는 것을 시작으로 정신병적 행동을 하며[16] 신에 대한 증오를 마구 표출하기 시작한다. 김추자의 거짓말이야[17]가 수록된 음반을 가게에서 절도한 뒤[18] 동네 교회 부흥회에서 그 음반을 몰래 밀어넣어 틀어버리는 테러를 저지른다거나[19], 자기 교회 장로[20]를 고의로 성적으로 타락시키려고 한다거나[21] 끝내는 자신의 손목을 긋기까지 한다. 그런 타락의 장면마다 신애는 하늘을 바라보며 "보이니? 보여?"라며 대들고 신을 야유한다.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개신교를 비판한 영화라는 의견이 존재했고 반대로 이 영화를 "개신교 안티 영화다", "대놓고 개신교를 모함한다"며 싫어하는 개신교 신자들도 있었다. 개신교를 싫어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영화 내용을 근거로 들며 기독교의 맹점이라느니 기독교의 거짓말이라느니 하는 감상문이나 평론 등을 쓰기도 했다. 반대로 일부 개신교도들을 이 영화를 기독교의 본질을 상당 부분 폄하해서 해석한 영화로 간주하기도 한다.[22]
물론 영화 속 개신교인들은 대부분 선량하게 묘사된다. 개신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영화 속 집사인 약사의 전도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정작 주인공인 신애는 그 바로 전 장면에서 처음 보는 옷가게에 학원 홍보차 들어갔다가 인테리어를 바꾸라는 오지랖을 부린다.[23] 종찬이 교회 나가는 것을 비웃던 종찬의 주변인들은 다방종업원을 상대로 성희롱에 가까운 농담을 하기도 하며, 종찬의 가족들은 끊임없이 종찬의 삶에 부정적인 간섭을 한다. 그에 비해 약사는 신애가 아들을 잃고 난 후 찾아온 유일한 이웃이었다.[24]
영화 속 다른 개신교도들 역시 신애가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하나같이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도우려고 애썼다. 결정적으로 신애가 신을 증오하게 만드는 계기인 범인 면회에서도 주변 교인들도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말렸다. 그리고 그들은 신애가 걱정되어 교도소에 같이 따라가 주었다. 전혀 교회에 다니지 않을 것 같았던 종찬(송강호)이 신자로 남아있는 장면 또한, 구원의 대상을 종찬이라고 생각한다면 기독교를 폄하하는 주장 역시 과장에 가깝다.[25]
다만 반기독교인, 그 중에서도 반개신교인들은 신애의 자녀를 납치한 진범의 예시를 들면서, "기독교인(그 중에서도 개신교인)들은 자기들 멋대로 죄나 저지르고 다니면서 불리하면 하나님 들먹이고 어떤 죄를 저질러도 용서받는다고 주장하는 파렴치한 쓰레기들이다!"라고 선동하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영화가 개봉했을 당시 개신교를 비판한 영화라는 의견이 존재했고 반대로 이 영화를 "개신교 안티 영화다", "대놓고 개신교를 모함한다"며 싫어하는 개신교 신자들도 있었다. 개신교를 싫어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영화 내용을 근거로 들며 기독교의 맹점이라느니 기독교의 거짓말이라느니 하는 감상문이나 평론 등을 쓰기도 했다. 반대로 일부 개신교도들을 이 영화를 기독교의 본질을 상당 부분 폄하해서 해석한 영화로 간주하기도 한다.[22]
물론 영화 속 개신교인들은 대부분 선량하게 묘사된다. 개신교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영화 속 집사인 약사의 전도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정작 주인공인 신애는 그 바로 전 장면에서 처음 보는 옷가게에 학원 홍보차 들어갔다가 인테리어를 바꾸라는 오지랖을 부린다.[23] 종찬이 교회 나가는 것을 비웃던 종찬의 주변인들은 다방종업원을 상대로 성희롱에 가까운 농담을 하기도 하며, 종찬의 가족들은 끊임없이 종찬의 삶에 부정적인 간섭을 한다. 그에 비해 약사는 신애가 아들을 잃고 난 후 찾아온 유일한 이웃이었다.[24]
영화 속 다른 개신교도들 역시 신애가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하나같이 그녀를 물심양면으로 도우려고 애썼다. 결정적으로 신애가 신을 증오하게 만드는 계기인 범인 면회에서도 주변 교인들도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며 말렸다. 그리고 그들은 신애가 걱정되어 교도소에 같이 따라가 주었다. 전혀 교회에 다니지 않을 것 같았던 종찬(송강호)이 신자로 남아있는 장면 또한, 구원의 대상을 종찬이라고 생각한다면 기독교를 폄하하는 주장 역시 과장에 가깝다.[25]
다만 반기독교인, 그 중에서도 반개신교인들은 신애의 자녀를 납치한 진범의 예시를 들면서, "기독교인(그 중에서도 개신교인)들은 자기들 멋대로 죄나 저지르고 다니면서 불리하면 하나님 들먹이고 어떤 죄를 저질러도 용서받는다고 주장하는 파렴치한 쓰레기들이다!"라고 선동하는 경우도 있기는 했다.
감독은 "기독교를 부정적으로 그릴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문제는 해명할 때 한 말이 오히려 주인공 신애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했다. 신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영화이며, 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주인공 신애 스스로 신의 뜻이라고 해석한 것뿐이라고. 이런 말을 한 감독 본인의 의도는 결코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진 몰라도 사이코패스 살인마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신애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관객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이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이를 납치당해서 살해당해 잃은 거로도 모자라 사이코패스 살인귀에게 티배깅까지 당한 피해자 캐릭터를 보면서 "왜 가만히 있는 신한테 혼자 풀발기하세요?"라고 조롱하고 2차 가해하는 듯한 망언처럼 말하는 사람이 원래 생각한 의도와는 달리 영 이상한 뜻으로 들린다는 게 문제다. 물론 종교인인데도 오히려 이 영화를 보고 신애에게 공감하고 살인마를 대차게 비판하는 강론을 쓴 수녀(성가소비녀회 강신숙 디모테오 수녀)도 있었다.
감독이 촬영한 본 영화의 주제와 의도는 좋게 해석하면 한 여인의 비극적인 인생 속에서 개신교적 가치관과 의미를 되새겨 보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적지 않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이해한 작품 의도는 신에게 이미 용서받았다고 뻔뻔하게 뻗대는 사이코패스 인간 쓰레기의 작태 때문에 (개신교의 가치관을 잘못 이해한) 주인공 신애가 개신교의 모순에 대해 욕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26][27]
한편 평소에 과도한 전도, 독실한 기독교인들의 자기 기독교 중심적 사고에 질린 사람들, 예를 들면 힘들게 기독교인의 개인 소사를 도와주었더니 자신의 SNS에 "하나님에게 감사한다"는 식의 글을 올리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피해를 본 많은 기독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영화의 이런 속사정에 대해서는 잘 인지하지 못한 채 그냥 <밀양>의 내용과 신애의 반감에 크게 공감하는 경향이 많다.
감독이 촬영한 본 영화의 주제와 의도는 좋게 해석하면 한 여인의 비극적인 인생 속에서 개신교적 가치관과 의미를 되새겨 보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적지 않은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이해한 작품 의도는 신에게 이미 용서받았다고 뻔뻔하게 뻗대는 사이코패스 인간 쓰레기의 작태 때문에 (개신교의 가치관을 잘못 이해한) 주인공 신애가 개신교의 모순에 대해 욕하는 내용이라 할 수 있다.[26][27]
한편 평소에 과도한 전도, 독실한 기독교인들의 자기 기독교 중심적 사고에 질린 사람들, 예를 들면 힘들게 기독교인의 개인 소사를 도와주었더니 자신의 SNS에 "하나님에게 감사한다"는 식의 글을 올리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으로 피해를 본 많은 기독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영화의 이런 속사정에 대해서는 잘 인지하지 못한 채 그냥 <밀양>의 내용과 신애의 반감에 크게 공감하는 경향이 많다.
위에 작성된 내용은 감독의 의도를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이 영화의 기획의도는 한 여인의 비극적인 인생 속에서 개신교적 가치관과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에게 닥친 고통과 아픔을 타인이 얼마나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 또한 진정한 용서와 화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질문이다.[28]
위에서는 관객들이 신애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사실 감독은 신애를 결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인물로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반복하는 사람이다. 외도한 남편이 사고로 죽은 후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남편의 고향에 산다는 것, 아들이 유괴를 당한 직후 아들의 목숨이 달렸는데도 유괴범을 속이기 위해 가짜 돈을 만드는 것[29] 자체가 납득이 안 되는 행동이다. 그래서 비교 대상조차 될 수 없는 유괴범과 신애, 이 두 사람을 놓고 관객이 신애에게 더 공감을 한다는 말은 애초에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돈 때문에 어린아이를 납치해 잔인하게 죽인 유괴범은 말할 것도 없고, 주인공인 신애조차 관객이 공감하기 어려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애의 주변인물들의 대사를 통해서도 꾸준히 드러나고 있다.
위에서는 관객들이 신애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사실 감독은 신애를 결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인물로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평범한 사람이라면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반복하는 사람이다. 외도한 남편이 사고로 죽은 후 연고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남편의 고향에 산다는 것, 아들이 유괴를 당한 직후 아들의 목숨이 달렸는데도 유괴범을 속이기 위해 가짜 돈을 만드는 것[29] 자체가 납득이 안 되는 행동이다. 그래서 비교 대상조차 될 수 없는 유괴범과 신애, 이 두 사람을 놓고 관객이 신애에게 더 공감을 한다는 말은 애초에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돈 때문에 어린아이를 납치해 잔인하게 죽인 유괴범은 말할 것도 없고, 주인공인 신애조차 관객이 공감하기 어려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애의 주변인물들의 대사를 통해서도 꾸준히 드러나고 있다.
남동생: "나, 솔직히 누나를 이해하지 못하겠어."
(바람피다 죽은 남편 고향에 다른 가족들 몰래 내려와 살면서도, 남편이 보고 싶다고 말하는 신애에게)
양장점 주인: "난 솔직히 이해가 잘 안되거덩. 자꾸 행복하다 행복하다 하는데 뭐가 행복하단 말이고."
(아들이 끔직하게 죽었는데 종교를 얻었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하다 말하고 다니는 신애에게)
종찬 : 난 암만 캐도 마음이 그렇네예.(뭐가요?) 마음으로 용서하면 됐다 아임니까. 근데 교도소에 면회까지 가가…
(신애가 교도소로 향하기 전 교회 앞에서 )
그래서 관객이 누구에게 공감하느냐고 물으면 정답은 유괴범이나 신애가 아닌 바로 종찬을 비롯한 신애의 주변 사람들이다. 그것은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던지는 매우 중요한 질문과 연결된다. 바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얼마나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
그것은 아들의 시신이 발견된 장면을 통해서도 설명이 가능하다. 만약 이 영화가 끔찍한 범죄에 대해 관객이 분노하고 주인공인 신애에게 공감하길 바랐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범죄의 잔혹함을 시각적으로 전시하는 것이다. 아이의 시신을 일부 보여준다거나, 아이의 시신을 발견한 신애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것. 대표적인 예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여중생이 사망한 채 야산에서 발견된 장면이다.
그것은 아들의 시신이 발견된 장면을 통해서도 설명이 가능하다. 만약 이 영화가 끔찍한 범죄에 대해 관객이 분노하고 주인공인 신애에게 공감하길 바랐다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범죄의 잔혹함을 시각적으로 전시하는 것이다. 아이의 시신을 일부 보여준다거나, 아이의 시신을 발견한 신애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것. 대표적인 예가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여중생이 사망한 채 야산에서 발견된 장면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시신은커녕 시신같은 형체를 바라보는 신애와 경찰 관계자들을 멀찍이 비출 뿐이다. 이 장면을 통해 감독이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관객이 '유괴'라는 반인륜적인 범죄에 분노하고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저런 끔찍한 비극도 내가 아닌 타인에게 벌어졌을 때, 우리는 그 타인의 고통을 (영화적 효과나 대사를 빼면) 겨우 저 정도의 거리에서 지켜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30]
이러한 의도를 나타내는 또 하나의 중요한 설정은 바로 신애라는 인물 그 자체이다. 앞서 말한 대로 신애는 평범한 사람들의 눈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지만 또 한편으로는 아주 납득이 안 되는 인물도 아니다. 신애는 아버지와의 불화로 꿈이 좌절된 인물이자, 대안으로 선택한 결혼마저 실패한, 거기다 자신의 실책이 하나뿐인 아들마저 잃는 데 큰 영향을 끼친 여인이다. 일생 동안 이 정도의 좌절을 겪은 인물이라면 관객들은 신애의 행동에 완전한 공감은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살다보면 저런 사람도 있기 마련"이라는 정도의 납득은 가능하다. 그리고 감독은 그러한 신애의 캐릭터와 신애의 주변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애초에 인간이 타인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딱 그 정도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라고 묻고 있는 것이다.
관객들이 영화 속 개신교인들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것에 대해서도, 관객들이 유괴 사건을 통한 개신교의 모순을 발견했기 때문이라는 주장 역시 잘못 짚은 맥락이다. 개신교를 믿지 않는 사람, 특히 서슴없이 개독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시선으로 봤을 때, 개신교에 대한 반감은 영화 초반, 신애를 부르는 약사의 등장부터 시작된다. 약사는 바로 맞은편에 이사온 신애에게 선물을 줄 것이 있다면서 데려와서는 신애에게 이런 말을 한다.
선의를 떠나서 그녀의 이러한 행동은 개신교를 믿지 않으면서,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수도권 또는 대도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오지랖'에 불과한, 충분히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내가 없는 곳에서 내 이야기를 자기들끼리 주고 받고서는 제멋대로 호의를 베풀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구가 얼마 안 되는, 그래서 소문이 금방 퍼지는 지방 중소도시에, 이 정도로 개신교를 믿는 이웃이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면[31], 누구나 한 번쯤 충분히 겪어 봤거나 겪어볼만한 상황이다. 개신교도의 시각으로 보자면 약사의 행동은 표현 방식이 조금 잘못되었을 뿐, 신애를 향한 선의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약사는 신애가 아들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도, 유일하게 피아노 학원 안을 들여다보며 신애를 걱정하는 이웃이다.
이 약사의 사례처럼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개신교도들은 때론 눈치가 없거나, 오지랖이 넓거나, 다소 종교에 집착하듯이 비춰지지만 나름대로 선량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신애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또 기도해준다. 그러면서도 신애의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할 수 있느냐."라는 일갈에는 "하나님이 용서했으면 충분한 것 아니냐."는 딱 그만큼의 공감능력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비개신교 관객들의 시각으로 보면 어떤가. 약사의 오지랖뿐만 아니라 휴일날 모여서 단체로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는 영화 속 개신교도들의 행동들에 당연히 괴리감을 느끼거나 눈살이 찌푸려질 것이다. 감독은 그러한 비개신교 관객들의 시각을 신애 때문에 막 교회에 참석하기 시작한 종찬의 행동으로 잘 보여준다. 종찬은 휴일 아침 모임에 지각을 하거나, 밀양역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도 어색함을 느낀다. 그런 종찬을 보며 비웃는 종찬의 친구들 역시 개신교를 바라보는 비개신교인들의 대표적인 모습 중 하나다.
합창 장면 |
순수한 종교적인 신념으로 휴일 낮에 모여 광장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비개신교인들의 입장에서는 그저 시끄러운 고성방가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광경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결코 낯선 광경이 아니다.
이 영화는 이렇게 우리가 실생활에서 숱하게 마주하는 개신교 신자와 비개신교인들의 모습들을 리얼하게 그려낸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두 집단(개신교도, 비개신교도)은 같은 지역 내에 함께 살아가면서도 가급적이면 서로 어울리지 않고 자신들만의 영역과 인맥을 구축한 채 다른 집단을 자신들의 시각으로 판단하며 살아간다. 영화 속 인물들의 말과 행동이 우리가 지금껏 아주 익숙하게 보아 온 모습이기 때문에 관객은 영화 속 인물들을 만들어진 캐릭터로만 판단하지 않고 실생활 속 감정도 끌고와 이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러한 '리얼리즘 영화'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비개신교 관객들이 이 영화 속 개신교인들의 행동에 반감을 가지는 것은 그 종교 교리의 모순을 발견해서가 아니라, 실생활에서 느꼈던 평소 감정들이 그대로 투영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리고 감독은 그러한 두 집단의 차이를 통해 관객에게 묻는다.
(개신교도든 비개신교도든) 보통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온전히 느낄 수 있는가.만약 타인의 고통을 결코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 우리는 거대한 시련 앞에 어떤 희망을 가지며 살아야 하는가.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2000년 이후 개봉한 모든 한국 영화 중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이 영화를 선택하며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신애가 아들의 유괴 소식을 들은 뒤 종찬에게 달려가지만, 가게 안에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는 그를 차마 부르지 못하고 돌아서서 걸어가다 주저 앉아 우는 장면"을 꼽았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장면에는 다소 낯선 쇼트 하나가 포함되어 있는데, 바로 무아지경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종찬을 신애가 망연자실하여 바라보는 모습, 그 모습을 종찬의 카센터 안에서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찍은 장면이다. 이 장면에 대해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평론가 이동진 프로그램 진행 중의 한 장면 |
(장면 설명 후) 이 쇼트가 너무 이상한 쇼트에요. 왜냐하면 그 쇼트는 카메라를 유리문 뒤쪽으로 옮겨서 안에서 유리문을 걸고 신애의 망연자실한 얼굴을 잡았는데, 그렇게 찍을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장면은 시점 쇼트가 아니거든요. 다시 말해서 종찬이 노래를 부르다 신애를 봤을 때는 말이 되는 장면이지만, 그게 아니고 종찬은 신애가 온 줄 모르고 노래를 부르고 있기 때문에 유리문 안에서 쳐다볼 누군가라는 존재가 없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메라를 왜 굳이 유리문 안쪽으로 집어 넣어서 카센터 밖에 망연자실한 그녀를 찍었을까?"라는 의문이 있는 건데, 그것은 이 영화가 간접성 자체, 다시 말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도와 주려는 호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백히 존재하는 투명한 장벽을 보여주고 있는 방식이라는 거에요. (중략) 그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다 설명이 되거든요. '아, 이 전쟁은 혼자서 치러야 하는 전쟁이구나.' 신애가 깨닫게 되는 것을, 카메라 위치로 보여주는 것이거든요.[이동진, 김중혁의 영화당 #76] 이창동 감독이 도달한 깊이 (시, 밀양) #
이 영화에 대해서는 종교인들도 '올바른 신앙'에 대해서 생각해 볼만한 영화라고 보는 의견[32]도 많으며(대표적인 것이 <밀양>을 소재로 한 목사 김영봉의 저서 <숨어 계신 하나님>) 원작가 이청준은 개신교적 가치관에 대한 작품들을 다수 남겨[33] 오히려 개신교 신앙인들이나 목회자들에게는 많은 지지와 호평을 받는 작가이다. 벌레 이야기 항목 참조. 이 소설과 영화를 단순히 안티 개신교 작품으로 해석하는 것은 창작자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한 일이자 작품에 대한 모독이라고까지 볼 수 있다. <밀양>에서 다루는 주제 역시 '용서란 무엇인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용서라는 것이 가능한가'와 같이, 복잡하지만 반드시 다루고 넘어가야 하는 기독교의 핵심 사상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영화의 중심 내용은 전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따라서 상처받은 여인을 위로하는 남자의 사랑 이야기라는 멜로를 기대하고 보면 통수 맞을 영화다. 영화 포스터의 광고문구인 '이런 사랑도 있다…'가 로맨스 영화에 으레 붙을 법한 느낌이라서 특히 그런데, 얼핏 보면 영화 내용과는 완전히 따로 노는 것처럼 보이는 저 문구는 사실 작품의 주제를 아주 정확하게 관통하고 있다. 피해자인 신애가 용서하기 전에 그녀의 동의없이 먼저 유괴범을 용서한 '신의 사랑'에 대한 신애의 기막힌 심정을 한 마디로 대변하는 것이거나, 신애의 주변을 맴돌며 곁에 있어 주는 '종찬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34]
이창동 영화답게 무척 암울하고 무거운 영화지만 영화의 완성도 및 전도연의 혼신의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2007년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해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연도 | 시상식 | 부문 | 수상자(작) |
제1회 아시아태평양 스크린어워드 | 최우수작품상 | ||
여우주연상 | |||
제8회 한국영화문화상 시상식 | 한국영화문화상 | ||
제28회 청룡영화상 | |||
제27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 |||
제6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 |||
제3회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 올해의 남자배우 | ||
올해의 여자배우 | |||
제8회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 |||
제10회 디렉터스컷 어워즈 | |||
제2회 아시아 필름 어워즈 | 최우수작품상 | ||
최우수감독상 | |||
여우주연상 | |||
제10회 아시아영화평론가협회 | 각본상 | ||
제44회 백상예술대상 | |||
제19회 미국 팜스프링스 국제 영화제 | 국제비평가협회 남자배우상 |
- 2007년 美 인디와이어, '강추' 외국어 영화 10편에 선정 #
- 2007년 미국의 유력 영화전문지 버라이어티가 〈밀양〉의 주연배우 송강호와 전도연을 '칸의 미래를 이끌 인물 60' 선정 #
- 미국에서 열리는 제80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의 외국어영화 부문 한국 출품작
- 2011년 한국 영화 최초로 미국 고전ㆍ명작영화 DVD 발매 회사인 크라이테리온 콜렉션의 타이틀로 선정돼 출시된다. 엄밀히 말해서 LD로 나온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도 있지만, DVD 시대 이래론 처음인 셈이다.[40]
- 션 베이커는 크라이테리온 콜렉션 Closet picks top 10에서 〈밀양〉을 뽑았다.
- 2021년 이동진의 21세기 한국 영화 월드컵편에서 64편의 영화 중에서 〈밀양〉이 1위를 하였다.
- 이창동 감독의 네 번째 연출작 ‘밀양’(2007)의 영화 각본집이 개봉 15년 만인 2022년 12월 출간되었다.
- 이창동 감독은 1984년에 5살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이때 그는 신일고등학교에 국어교사로 재직하며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당시 재학 중이었던 학생에 따르면 아들을 잃은 후 학생들에게 자습을 시킨 다음 창문 밖 하늘만 바라보다가 나갔을 정도로 상심이 컸다고 한다. 그때의 상황과 심정은 그의 단편 소설 '불과 먼지'에 구구절절히 묘사되어 있다.
- 이 영화는 제작 단계에서 밀양이란 지명의 한자 의미를 직역한 《시크릿 선샤인(Secret Sunshine)》이란 가제를 사용한 바 있으나 나중에 다시 원래 제목으로 복귀했다. 단, 영문 제목으로는 'Secret Sunshine'을 채택했다. 다만 이 번역에는 다소간의 오해가 있는데 밀양의 밀자는 원래 '숨길 밀'이 아닌 '빽빽할 밀'이라는 뜻이다. 작품 내적으로 햇빛을 신의 뜻 혹은 사랑이라고 해석한다면 감독의 의도적인 오역이라고 볼 수도 있다. 햇빛의 뜻이 그러한데 영화의 제목이 '햇빛 가득한 땅'이라면 이상하니 말이다.
- 원작은 이청준의 《벌레 이야기》(1985)다. 스토리 플롯 자체는 영화와는 딱히 다르지 않지만 여주인공 캐릭터의 성격이 크게 다르다.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암울한, 꿈도 희망도 없는 결말이다. 그림까지 합해 100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이야기. 다만 영화처럼 단순히 신과 용서와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며 29만원만 가진 사람이 광주에서 벌인 일과 그 후의 일들을 은근히 비판하는 소설이다. 감독 이창동도 그 문맥을 읽어내린 적이 있음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다음 두 링크를 참조. 이청준의 인터뷰 기사# 이창동의 인터뷰 기사#[41] 전도연의 인터뷰 기사
- MC 스나이퍼의 4집 수록곡 <김치 한조각>이란 곡이 삽입곡으로 쓰였다.
- 아이가 죽고 사망신고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가족이 죽고 사망신고를 하는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특이하다.
- 첫 부분에서 이신애의 차량 번호가 '서울 15 거 0823'라고 나오는데 당시 이 번호는 실제로 존재할 수 없었던 번호다. 이 번호판은 1995년부터 2003년까지 발행한 번호판인데 15번은 서울 차적에 부여한 번호가 아닌 광주광역시나 경상북도 등지에서 등록한 자동차에 부여한 번호이다. 0으로 시작하는 대한민국의 자동차 등록번호는 2015년에 처음 등장하였는데 이는 가용 번호의 고갈에 따른 조치이다.(관련 기사) 극중에 등장한 차량번호는 작가가 의도한 대로 지어냈을 수도 있다. 더 자세한 사항은 차량 번호판 문서 참조.[42] 실제 차량번호가 나오면 전화번호보다 파급력은 적어도 좀 껄끄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차량 광고 등지에서 의도적으로 어색한 모양의 번호판을 만드는 것도 그러한 이유 중 하나다.
- 미국의 유력지 ‘LA위클리’는 “영화 ‘밀양’의 전도연은 하늘이 선택한 듯한 완벽한 캐스팅이다”고 극찬했다.
- 프랑스의 유력 통신사 AFP는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에 그녀가 등장한다.”며 영화속의 높은 비중을 밝힌 후 “전도연은 배역에 완전히 녹아든 카멜레온 같은 배우”(Jeon is known as a chameleon of Korean cinema, who fully inhabits her roles)라고 평가했다.
- 영국의 세계적인 영화전문지 ‘스크린데일리’는 “전도연은 ‘신애’역을 놀랍도록 완벽한 연기로 보여줬다.”(Jeon Do-yeon gives an astonishingly authentic performance as Shin-ae)며 “그녀가 없었다면 영화는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려앉았을 것”이라며 전도연의 연기력을 극찬했다.
- 미국 일간지 ‘시카고트리뷴’은 “전도연은 젊은 과부이자 어머니역을 기억에 남는 캐릭터 묘사로 보여줬다.”고 여우주연상 수상 이유를 설명했다.
- 전도연은 ‘밀양’의 칸 영화제 공식 시사회 이후 “톱니바퀴 물리듯 꼭 맞는 연기” (버라이어티) “칸 영화제를 빛낸 여자배우의 대열에 합류” (뉴욕타임스) 등 각 언론들의 호평을 받으며 유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거론되었었다.
- 밀양시는 2007년 6월 8일, 영화 <밀양>의 촬영지였던 가곡동 인근 도로를 ‘전도연로’와 ‘송강호로’로 부를 계획이라고 밝혔다.
밀양시의 엄용수 시장은 “6월 안으로 가곡동 일대를 재단장하고 테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영남루 등 주변 유적지를 영화와 연계한 관광상품으로도 개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6월 8일 오후에는 이창동 감독을 포함한 세 사람이 밀양에 내려가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
[1] 〈전도연 캐릭터 특별전〉 2015년 5월 21일~ 6월 3일 (14일간)[2] 2019년 12월 12일~ 12월 24일 〈전도연 마스터피스 특별전〉[3] 密(빽빽할 밀/비밀 밀), 陽(볕 양)[4] 전단지를 돌리다가 들린 옷가게 주인에게 뜬금없이 "인테리어를 바꿔보라"고 충고하는데 정작 교회에 나오라고 전도하는 약사에게는 불쾌한 감정을 느낀다.[5] 아들을 잃은 후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우는 순간이다. 신애는 장례식장에서도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한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하지만, 결국 이 순간에 절망이 폭발하듯 울고 만다.[6] 운전을 하다 사람을 칠 뻔 했는데도 차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공포에 떠는 등.[7] 박찬욱 감독은 <밀양> VIP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며 이 장면을 "영화 역사상 가장 잔인한 면회 장면"이라고 평가했다.[8] 이전에 살해당해 호수에 버려졌던 준의 시체에서 주변에 있었던 지렁이를 봤을 수도 있다.[9] 옷을 벗기려고 하다가 장로가 뒤늦게 후회하며 간통을 단념하는데 이것을 본 주인공은 기가 차다는듯이 구토를 한다.[10] 두이노의 비가(悲歌)의 한 소절.[11] 송강호는 그런 그녀를 계속 옆에서 지켜보는 김종찬 역을 맡았다. 이야기는 신애를 중심으로 벌어지므로 이 캐릭터는 짐짓 (코믹한) 보조 역처럼 보이기도 하나, 실제 밀양 사람을 섭외한 것 같은 자연스러운 연기로 여러 평론가들[12]은 <밀양>에서의 연기를 송강호 최고의 연기 중 하나로 꼽는다. 실제로 송강호는 경상남도 김해군 가락면(현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락동) 출신이라 경상도 사투리 연기가 더 자연스럽다.[12] 대표적으로 이동진, 박찬욱, 봉준호[13] 남편을 잃고 밀양으로 온 신애가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하다가 아들 준(선정엽)이가 다니던 웅변학원의 원장에게 아들이 유괴, 살해당하는 사건을 겪으며 나락에 빠지게 된다. [14] 신애가 밀양에 내려온 후 밀양의 땅을 살 것처럼 이곳저곳을 땅을 보고 다녔는데 그래서 신애가 돈이 많다고 생각해 납치했다. 그러나 신애는 남편의 빚을 갚고 밀양에 내려온 후에는 피아노 학원을 차리면서 실제로는 수중에 갖고 있는 돈이 얼마 없었고, 이를 기만이라고 느낀 원장이 준이를 살인한 것으로 보인다. 납치 초기에 준은 살해되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범인은 전화할 때마다 "아들의 목소리를 들려 달라"는 신애의 울음섞인 청을 끝내 들어주지 않는다. 실제로도 많은 아동 유괴범들이 첫 협박 전화를 걸기도 전에 아이를 살해하는데 애초에 돈만 받고 애를 살려보낼 마음이 없는 인면수심이라 그런 경우도 있고, 아이가 엄마를 찾으며 자지러지게 울거나 하는 것에 심리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죽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대다수 아동유괴범은 범인의 요구를 들어주더라도 아이가 살아오는 경우가 희박하다.[15] 이 장면의 모티브가 된 사건이 바로 주영형 유괴 살인 사건이다.[16] 또는 남편에 아들마저 잃으면서 실제로 정신병을 얻게 된 것이었을 수도 있다. 영화 종반부에는 손목을 긋는 자해를 하면서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하는 장면도 나온다.[17] "거짓말이야~ 다 거짓말이야~" 라는 구절로 유명한 노래.[18] 나갈 때 탐지기에 걸려 알바생들과 실랑이를 하다 훔친 음반 하나를 떨어뜨려 상황을 벗어난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훔친 음반을 갖고 있는 걸로 보아 2장을 훔친 듯하다.[19] 여담으로 이때 목사 역을 맡은 배우는 실제 목사이며 노래가 나온다는 건 몰랐다고 한다. 따라서 목사가 당황한 모습은 실제 연기인 셈이다.[20] 신애에게 처음 교회에 다닐 걸 권유한 교회 집사와는 부부 사이다.[21] 시도 자체는 실패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장로가 자제를 하고, 자기 일대로 일이 되지 않자 울컥한 신애는 그 자리에서 구토를 한다.[22] 당장 이 문단도 일부 개신교도들이 교리 운운하며 빈번히 자기 입맛대로 내용을 수정한다. 그들은 영화 속 유괴범의 회개가 성경을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성경 구절까지 인용한다. 하지만 그 장면은 감독이 성경을 자체 해석해서 창작한 것이 아니다. 이 범죄자 회개 장면은 원작 소설인 '벌레이야기'에도 나오며 원작 소설가인 이청준은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의 주범인 주영형과 1988년 5.18관련 청문회를 보며 쓴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그러니까 감독이 왜곡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 모티브가 된 것이다.[23] 그래서 옷가게 주인에게 뒷담화를 당하기도 한다. 물론 이후에 친해져서 옷가게 주인이 진짜 인테리어를 바꾸기도 하지만 말이다.[24] 정작 신애가 잘 지내려보려 노력했던 다른 이웃들은 신애를 찾지 않았다.[25] 게다가 종찬은 신애처럼 주위에서 전도를 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신애한테 잘보이기 위해 교회를 다니게 된 것이고, 신애가 교회를 등진 상황이라 본인도 굳이 계속 교회를 다닐 이유도 없다. 결국 종찬은 예수를 믿으며 폐인과 다름없는 여자를 보살펴주는, 성경대로라면 구원받은 인생을 살게 된 것이다.[26] 그러나 이를 기독교적 관점으로 보자면 이러한 기독교에 대한 신애의 오해조차도 신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27] 어떻든 감독의 위 해명 역시 논란이 되는 것이다. 기독교 교리에 대한 이해가 높고 어느 정도 기독교 신앙과 세계관을 나름대로 내면화해서 이해한 사람일수록 영화가 복잡하고 이상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뭐가 문제인지 아예 모르거나 그냥 '신애 탓'만을 하게 된다. 영화에 대해 다소 피상적으로 이해한 관객들의 반응과 감독의 다소 민감할 수 있는 해명이 맞물려서 결국 더 복잡하게 만든 상황.[28] 이창동 감독은 영화를 통해 관객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진다고 꾸준히 밝혀왔다.[29] 이후에 돈이 없다고 실토하긴 하지만, 이건 조금만 생각해봐도 유괴범을 자극하는 위험천만한 행위다. 아들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상황임에도 신애는 자기가 만든 거짓과 허위를 바로 내려놓지 못한 것이다.[30] 이것은 이창동 감독의 여러 인터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그는 80년대 중반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후, 주변 사람들 대부분 위로해 주었지만 그 고통에 제대로 공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오히려 일어날 수 있는 일로 여기라는 말들에 더 큰 상처를 받았다고. 결국 그의 아픔에 제대로 공감한 사람은 마찬가지로 아들을 사고로 먼저 떠나보낸 학부형이었다고 술회했다.[31] 생각보다 꽤 많다.[32] 정작 성경에는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태복음 5장 23~24절)"라고 쓰여 있다. 결국 <밀양>은 잘못된 신앙이 어떤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지고 있으며, 이 잘못된 신앙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모습을 밀도있게 그렸다고 충분히 평가될 수 있다.[33] 주로 철학적으로 개신교의 의미를 되새기는 형태의 작품을 남겼다.[34] 후자의 경우로 해석할 때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연결된다.[35] 모든 작품의 시나리오도 이창동이 썼으므로, 각본상 역시 심사에 제외했을 것이다.[36] 기자와 방송 PD, 대중문화평론가, 연예기획사 대표 등 엔터테인먼트[37] 영화사학자, 영화제 프로그래머 등 60명을 설문조사[38] 미국 영화전문 웹사이트 인디와이어가 영화평론가와 영화 전문 블로거 1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39] 아시아계는 전도연과 김혜자만 선정되었다.[40]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영화 마니아들이 가장 소장하기 원하는 품목이다. 크라이테리언 컬렉션의 타이틀로 선정된다는 것 자체가 세계 영화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갖는 걸작이나 고전영화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41]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주영형 유괴 살인 사건은 그전에 《친절한 금자씨》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도 본다.[42] <밀양>이 개봉한 지 10년이 지난 뒤에 개봉한 송강호 주연의 영화 택시운전사에 등장하는 택시번호도 마찬가지다.[43] 다소 예외적인 경우가 <공동경비구역 JSA>의 북한군 중사 오경필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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