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타리스 유적
마크타리스 유적 지도와 헬레니즘식 피라미드 꼴 영묘 |
기원전 3세기 무렵 누미디아가 카르타고의 내륙 팽창을 저지하기 위해 건설한 요새 도시였다. 이후 남쪽의 수페툴라, 동쪽의 시카 (엘 케프), 북쪽의 두가 등과의 교역 거점으로 번영하였고, 마시니사의 치세에 이르러 누미디아의 주요 도시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던 기원전 146년 3차 포에니 전쟁으로 카르타고가 멸망하자 로마군에게 쫓겨난 그 유민들이 남하하여 일대에 정착하였고, 도시는 페니키아어로 마크타름 (𐤌𐤊𐤕𐤓𐤏𐤌)이라 명명되었다. 카르타고 문화를 간직하던 도시는 카이사르에 의해 자유도시 지위를 얻었다. 로마식인 마크타리스로 개칭된 도시는 남쪽의 수페툴라, 서남쪽의 테베사와 함께 베르베르 인으로부터 로마령 아프리카의 리메스 (국경) 수비를 담당하였다.
팍스 로마나 시기 마크타리스는 곡물, 올리브 기름, 가축, 직물 등의 집산지로 번영하였고 트라야누스 황제 시기에 로마식 시가지가 세워지며 로마화가 진행되었다. 서기 146년에는 로마 식민도시 (콜로니아)로 지정되어 주민들에게 로마 시민권이 주어지는 등 점차 로마 문명에 동화되었다. 다만 한동안 기존 카르타고 공동체와 로마 이주민들은 각각 수페테스, 파구스 구역으로 분리되어 있었다고 한다. 3세기 들어 기독교화된 도시는 반달족의 침공과 이슬람 정복을 버텨내었지만 1050년경 파티마 왕조가 파견한 바누 힐랄 베두인들의 습격에 의해 파괴되었다. 한동안 폐허로 남았던 도시는 하프스 왕조 기에 재건되어 현재에 이른다.
트라야누스 개선문
- [마크타리스 유적 기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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