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도조 유코 (東條 由布子) |
출생 | |
사망 | |
국적 | |
학력 | 고쿠시칸대학 문학부 교육학과 학사 |
가족 |
"아돌프 히틀러도 조국을 사랑한 독재자였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히틀러는 유대인을 학살했다"고 답변했다. 즉, "아돌프 히틀러는 유대인도 죽이고 인종청소 등 별 쓰레기 짓을 했지만 우리 조부님은 자상하시고 애국적이신 분"이라는 뜻으로 비추어진다. 과거 세탁에 앞장서는 일본 우파들한테도 무시당했던 것을 보면 얼마나 이 분이 대단한 말씀을 한 건지 잘 알 수 있다. 도조 히데키의 나머지 자손들, 즉 그녀의 가족과 친척들조차 이런 행동을 비웃고 조롱했다.
물론 일본이 침략전쟁을 벌인 추축국이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 이 인터뷰를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다.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 때 저지른 죄는 일언반구도 없고 그로 인해 입은 피해만 앵무새처럼 조잘대던 사람이니, 본인 인생에 대해 말해 달라는 질문에도 자기가 힘들었던 일들만 강조해서 인터뷰에서 언급했을 수도 있다.
출처가 일베저장소(...)지만 KBS1 아날로그를 캡처한 스크린샷이다.
한국 국립서울현충원에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눈물을 보였다. 그 이유가 가관인데 전사자가 모셔지고 참배가 자유로운 국립서울현충원에 오자 참배가 어렵고 하면 비난을 받는 야스쿠니 신사의 생각이 나서 "대한민국은 전사자에 대해 조의를 갖출 수 있는 것이 부럽다."라는 이유였다.[5][6]
물론 일본이 침략전쟁을 벌인 추축국이라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이 하는 말이니 이 인터뷰를 곧이곧대로 믿기 힘들다.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 때 저지른 죄는 일언반구도 없고 그로 인해 입은 피해만 앵무새처럼 조잘대던 사람이니, 본인 인생에 대해 말해 달라는 질문에도 자기가 힘들었던 일들만 강조해서 인터뷰에서 언급했을 수도 있다.
출처가 일베저장소(...)지만 KBS1 아날로그를 캡처한 스크린샷이다.
한국 국립서울현충원에도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눈물을 보였다. 그 이유가 가관인데 전사자가 모셔지고 참배가 자유로운 국립서울현충원에 오자 참배가 어렵고 하면 비난을 받는 야스쿠니 신사의 생각이 나서 "대한민국은 전사자에 대해 조의를 갖출 수 있는 것이 부럽다."라는 이유였다.[5][6]
천황에 대해서는 여느 일본 극우들과 마찬가지로 극도의 숭배를 보인 바 있다. "천황은 일본의 '상징' 정도가 아니라 '근간'이다"라고 우기는데 이는 현행 일본국 헌법 제1조에도 어긋나는 주장이다. 그러나 도조 유코가 숭배하는 '폐하' 는 어디까지 쇼와 덴노이며 그의 큰아들이자 현재 상황[7]인 후임 천황 아키히토는 아예 '황태자'로 격하하여 부르면서 그의 행보에는 나쁘게 생각했다.[8]
그런데 일본의 상징 천황을 규정한 현행 일본국 헌법은 바로 도조 유코가 숭배해 마지않는 쇼와가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쇼와는 전후에 도조 히데키 총리의 개전을 허가했던 것에 크게 후회했으며[9][10]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들이 합사되자 매우 불쾌해 하며 1989년 노환으로 사망할 때까지 야스쿠니에 두 번 다신 찾아가지 않았을 정도로, 도조에 대한 원망감과 악감정이 엄청났다. 참고로 도조는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된 적이 없다. 자세한 내용은 순국칠사묘 문서를 참고하자.
그런데 일본의 상징 천황을 규정한 현행 일본국 헌법은 바로 도조 유코가 숭배해 마지않는 쇼와가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쇼와는 전후에 도조 히데키 총리의 개전을 허가했던 것에 크게 후회했으며[9][10]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들이 합사되자 매우 불쾌해 하며 1989년 노환으로 사망할 때까지 야스쿠니에 두 번 다신 찾아가지 않았을 정도로, 도조에 대한 원망감과 악감정이 엄청났다. 참고로 도조는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된 적이 없다. 자세한 내용은 순국칠사묘 문서를 참고하자.
[1] 아버지(도조 히데키의 장남)가 눈이 나쁘다는 이유로 전쟁터로 가는 대신 만주의 풍만발전소로 가면서 경성에서 태어났다.[2] 사인은 간질성 폐렴.[3] 도조 히데키의 사형 집행 당시에는 9살이었다. 물론 9살이어도 기억도 못할 수준의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도조 히데키는 유코가 6살이었을 때 전범재판으로 인해 수감되었기 때문에 16살까지 아버지를 기억하는 구드룬 부르비츠와는 너무 다르다. [4] 이게 특별할 건 없는데 원래 악인들 중에서도 생각보다 인상이 부드러운 사람은 꽤 있다. 아돌프 히틀러만 해도 특유의 콧수염만 빼고 보면 평범한 독일인처럼 생겼으며 폴 포트도 문서의 프로필 사진만 보면 매우 선량한 인상이다. 심지어 이 사람의 할아버지도 병사들의 처우에도 신경쓰고 병사들에게는 편안한 웃음과 너그러운 태도를 보였을 정도로 개인적인 인품은 꽤 훌륭했다고 전해진다. 다만 자기 밑의 장교들에게는 시시콜콜 쓸데없는 간섭을 좀 하기는 했다.[5] 히로히토는 어릴 때부터 야스쿠니 신사에 자주 참배하곤 했지만 패망의 원흉인 전범들이 합사된 후 발길을 끊었는데 히로히토 본인부터 큰아들인 아키히토와 함께 도쿄 대공습때 죽을 뻔하다가 살아남아서 그렇다. 그 영향으로 아키히토는 단 한 번도 야스쿠니에 간 적이 없다. 장손인 나루히토 현 덴노도 자주 들은 게 있어서 자민당의 평화헌법 개정에 간접적으로 태클걸고 있다.[6] 그러나 정작 할아버지 도조 히데키가 묻혀 있는 야스쿠니보다 한 술 더 뜬 곳인 상술한 순국칠사묘를 참배했다.[7] 2019년 5월 1일 아키히토의 큰아들 나루히토가 일본의 새 천황으로 즉위하였다.[8] 재밌는건 그 쇼와 덴노도 야스쿠니 신사에 전범들이 합사되기 시작하자 참배·봉헌을 중단했다는 점이다.[9] 심지어 쇼와는 평화주의자에 반전주의자였던 친동생 노부히토와 다카히토에게도 비판을 받았다. 특히 노부히토의 경우 그가 전쟁을 개전 승인한 일에 대해 형을 비판을 하면 할수록 쇼와 본인도 반박조차 못했을 정도였다.[10] 다만 후회했다는 말을 오해해선 안 되는 것이, 전쟁에 대해 참회하는 마음을 가졌다는 것이 아닌 2차대전으로 천황제가 폐지될 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이를 후회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전쟁책임을 인정한 적이 없다. [11] 참고로 이 선거에 일본계인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도 출마했다가 낙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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