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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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큐어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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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
결성 | |||
데뷔 | |||
멤버 | 로버트 스미스 (보컬) 사이먼 갤럽 (베이스) 리브스 가브렐스 (기타) 로저 오도넬 (키보드) 제이슨 쿠퍼 (드럼) | ||
장르 | |||
레이블 | 픽션 레코드, 엘렉트라 레코드 | ||
링크 | |||
1976년, 로버트 스미스(보컬, 기타)가 학교 친구 마이클 뎀시(베이스), 롤 톨허스트(드럼), 동네 친구 포를 톰슨(기타)과 함께 이지 큐어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결성했다. 그들은 즉시 곡을 쓰고 데모를 만들었으며, 1977년 내내 잉글랜드 남부에서 공연을 다녔고, 팬들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1978년 밴드 이름을 큐어로 명칭을 바꾸었고, 포를은 밴드를 탈퇴했다. 이후 남은 세 명은 신생 레이블인 픽션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고. 싱글 "Killing an Arab"과 앨범 <Three Imaginary Boys>를 통해 데뷔하였다. 앨범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영국 전역에 투어를 돌았다.
이후 큐어는 연달아 "Boys Don't Cry"와 "Jumping Someone Else's Train"을 발매하면서 포스트 펑크, 뉴웨이브 밴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의 초기 음악은 전성기때의 음악과는 다르게 매우 밝다. 큐어 초기의 대표곡 "Boys Don't Cry"를 들어보면 잘 알 수 있다.
1979년 말, 마이클은 밴드를 탈퇴하게 되었고, 사이몬 갤럽(베이스)과 마티유 하틀리(키보드)가 밴드에 들어오게 되었다.
1978년 밴드 이름을 큐어로 명칭을 바꾸었고, 포를은 밴드를 탈퇴했다. 이후 남은 세 명은 신생 레이블인 픽션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고. 싱글 "Killing an Arab"과 앨범 <Three Imaginary Boys>를 통해 데뷔하였다. 앨범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영국 전역에 투어를 돌았다.
이후 큐어는 연달아 "Boys Don't Cry"와 "Jumping Someone Else's Train"을 발매하면서 포스트 펑크, 뉴웨이브 밴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의 초기 음악은 전성기때의 음악과는 다르게 매우 밝다. 큐어 초기의 대표곡 "Boys Don't Cry"를 들어보면 잘 알 수 있다.
1979년 말, 마이클은 밴드를 탈퇴하게 되었고, 사이몬 갤럽(베이스)과 마티유 하틀리(키보드)가 밴드에 들어오게 되었다.
1980년 초부터 로버트 스미스는 어두운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첫 히트 싱글 "A Forest"와 함께 정규 2집 <Seventeen Seconds>를 발매하면서 부터 고딕 록에 들어서게 되었다.
월드 투어 이후 마티유 하틀리는 밴드를 탈퇴하게 되었고, 1981년 초 남은 밴드 멤버들은 "Primary"를 발매하고 곧이어 음울한 분위기의 정규 3집 <Faith>를 발매했다. 발매후 두 번째 월드 투어 'The Picture Tour' 중 싱글 "Charlotte Sometimes"를 발매하기도 했다. 투어 이후 스튜디오로 돌아간 큐어 멤버들은 앨범 제작에 힘썼고 4집 <Pornography>에서 포텐이 터진다. 하지만 밴드의 내부 사정은 좋지 못했다. 투어 당시 밴드의 분위기는 좋지 못했고, 결국 사이먼이 밴드를 탈퇴하게 되었다. 사이먼이 탈퇴한 직후 로버트는 싱글 "The Hanging Garden"을 발매했다.
월드 투어 이후 마티유 하틀리는 밴드를 탈퇴하게 되었고, 1981년 초 남은 밴드 멤버들은 "Primary"를 발매하고 곧이어 음울한 분위기의 정규 3집 <Faith>를 발매했다. 발매후 두 번째 월드 투어 'The Picture Tour' 중 싱글 "Charlotte Sometimes"를 발매하기도 했다. 투어 이후 스튜디오로 돌아간 큐어 멤버들은 앨범 제작에 힘썼고 4집 <Pornography>에서 포텐이 터진다. 하지만 밴드의 내부 사정은 좋지 못했다. 투어 당시 밴드의 분위기는 좋지 못했고, 결국 사이먼이 밴드를 탈퇴하게 되었다. 사이먼이 탈퇴한 직후 로버트는 싱글 "The Hanging Garden"을 발매했다.
밴드의 상황이 극한까지 치밀게 되자 로버트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고 팝적인 사운드의 음악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댄스풍의 싱글인 "Let's Go To Bed"을 발매했고 5집인 <The Top>부터는 상업적인 성공도 거두게 되었다. 7집 <Kiss Me, Kiss Me, Kiss Me>의 싱글 'Just Like Heaven'이 엄청난 인기를 끌며 밴드는 미국에서도 꽤 인기를 누리게 된다. 1989년 8집 <Disintegration>을 통해 밴드는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정점을 찍게 된다.
1990년에는 팀 버튼 감독이 큐어의 리더 로버트 스미스의 이미지를 참고하여 영화 가위손을 만들었다.
1992년에는 싱글 <Friday I'm in Love>[5]가 성공했다.
1990년에는 팀 버튼 감독이 큐어의 리더 로버트 스미스의 이미지를 참고하여 영화 가위손을 만들었다.
1992년에는 싱글 <Friday I'm in Love>[5]가 성공했다.
리더인 로버트 스미스는 사우스 파크에도 얼굴도장 찍은적이 있는데 하필이면 메카스트라이샌드에 대항하기 위해서 모스라(...)로 거대화 변신해서 스트라이샌드와 싸운다(...)
2013년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내한하였다.
2019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연사는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트 레즈너.
로버트 스미스는 14집이 큐어의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라 말했다. 그래선지 2008년 13집 이후 2023년 현재 15년째 앨범이 안 나오고 있다(...)
2021년, 큐어에서 로버트 스미스 다음으로 오래 활동한 멤버, 사이먼 갤럽이 탈퇴했다.
하지만 후에 페이스북 게시물에 질문을 한 팬에게 다시 큐어에 속하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2024년 16년 만의 새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으로 예고한 14집 Songs of a lost world 발매를 발표하며 싱글 Alone을 공개했다.
14집 이후 15집도 연달아 공개한다고 한다.
2025년 앨범과 동명의 투어 진행, 2028년 큐어 일대기 다큐멘터리 방영 후 2029년 1집 발표 50주년 때 공식적으로 은퇴한다고 한다.
2013년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내한하였다.
2019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연사는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트 레즈너.
로버트 스미스는 14집이 큐어의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라 말했다. 그래선지 2008년 13집 이후 2023년 현재 15년째 앨범이 안 나오고 있다(...)
2021년, 큐어에서 로버트 스미스 다음으로 오래 활동한 멤버, 사이먼 갤럽이 탈퇴했다.
하지만 후에 페이스북 게시물에 질문을 한 팬에게 다시 큐어에 속하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2024년 16년 만의 새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으로 예고한 14집 Songs of a lost world 발매를 발표하며 싱글 Alone을 공개했다.
14집 이후 15집도 연달아 공개한다고 한다.
2025년 앨범과 동명의 투어 진행, 2028년 큐어 일대기 다큐멘터리 방영 후 2029년 1집 발표 50주년 때 공식적으로 은퇴한다고 한다.
흔히 더 큐어는 고딕 록으로 분류가 되지만 초기 앨범인 Three Imaginary Boys에서는 펑크의 영향을 받았었고, Wild Mood Swings 앨범 이후로는 고딕이라기 보다는 얼터너티브나 드림팝으로 분류된다. 정작 고딕으로 분류 되는 앨범은 Pornography, Disintegration, Bloodflowers 밖에 없다. 이들을 묶어서 흔히 고딕 삼부작이라 부른다. 사실 로버트 스미스는 밴드가 특정 장르로 분류되는 것을 싫어한다. 본인들은 조이 디비전이나 에코 앤 더 버니멘과 같은 부류로 보길 원한다고.
로버트 스미스가 회고하길 밴드 결성 당시엔 펑크 록 열풍하고는 한발짝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웨스트 서섹스 주 크롤리라는 런던에서 떨어진 한적한 영국 남부 소도시 출신이였고, 당시 펑크 록 열풍에서는 꽤 어정쩡한 위치였다. 그나마 상경해서 수지 앤 더 밴시스랑 어울리긴 했으나 [6] 고딕 록 딱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때문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꽤나 노선 정립이 안 되고, 본인들도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로버트 스미스가 회고하길 밴드 결성 당시엔 펑크 록 열풍하고는 한발짝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웨스트 서섹스 주 크롤리라는 런던에서 떨어진 한적한 영국 남부 소도시 출신이였고, 당시 펑크 록 열풍에서는 꽤 어정쩡한 위치였다. 그나마 상경해서 수지 앤 더 밴시스랑 어울리긴 했으나 [6] 고딕 록 딱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때문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꽤나 노선 정립이 안 되고, 본인들도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 Three Imaginary Boys (1979)
- Seventeen Seconds (1980)
- Faith (1981)
- Pornography (1982)
- The Top (1984)
- The Head on the Door (1985)
- Kiss Me, Kiss Me, Kiss Me (1987)
- Disintegration (1989)
- Wish (1992)
- Wild Mood Swings (1996)
- Bloodflowers (2000)
- The Cure (2004)
- 4:13 Dream (2008)
- Songs Of A Lost World (2024)
[1] 참고로 두 밴드의 프론트맨들(로버트 스미스, 모리세이)는 앙숙이었다.[2] 스미스는 영국에서 인기가 많았고 큐어는 미국에서 인기가 많았다.[3] 실제로 공연중에 막춤을 추거나 몸짓을 보여주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4] 실제로 로버트 스미스의 이미지가 모티브가 된 영화가 있는데 바로 팀 버튼의 가위손이다! 파올로 소렌티노가 감독하고 숀 펜이 주연한 영화 아버지를 위한 노래의 주인공도 로버트 스미스를 모티브로 했다.[5] 영화 어바웃 타임에 수록되기도 한다.[6] 로버트는 수지 앤 더 밴시스가 없었다면 엘비스 코스텔로 같은 음악을 했을지도 몰랐다고 고백한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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