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음악사의 주요 인물 · 기록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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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카푸스틴 Николай Капустин | Nikolai Kapustin | |
본명 | 니콜라이 기르셰비치 카푸스틴 Николай Гиршевич Капустин Nikolai Girshevich Kapustin |
출생 | |
사망 | |
국적 | |
직업 | |
학력 |
소련 우크라이나 SSR 고를롭카에서 태어났다. 7세 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14세 때 모스크바로 이주했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알렉산더 골든바이저에게 피아노를 사사했고, 재학 중엔 재즈에 흥미를 가지게 되어 '독자적인 아이디어'를 기초로 하여 작곡을 하게 되었다.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한 1961년부터 1972년까지 소련에서 재즈 오케스트라로 연주 활동을 했다.[2] 1980년 차이코프스키 홀에서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하는 것을 끝으로 작곡 활동에 전념하게 된다. 그래도 꾸준히 자신의 곡을 직접 연주해서 앨범으로 발매하기도 했다.
2016년까지 만들어진 작품은 161곡에 달한다. 작곡가로서 긴 무명 시절을 보냈지만, 마르크 앙드레 아믈랭이 그의 작품을 연주한 음반을 발매하였고,[3] 일본의 츠지이 노부유키 등과 같은 다른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대표적으로 손열음이 그의 작품을 자주 연주한다.
후기로 갈수록 에너지가 왕년만큼이 아니었는지, 전성기 시절에 비해 간단한 피아노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스로를 재즈 피아니스트가 아닌 그저 작곡가일 뿐이라고 칭했다. 자신은 재즈 음악가가 결코 아니며,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한 적도 없다는 것. 재즈 뮤지션의 핵심인 즉흥 연주(improvisation)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2020년 7월 2일 82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2016년작 Op.161 이후 작품이 더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로 중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의 페이스북 계정으로 오랜 지병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추모글이 올라왔기 때문에 사실로 보인다.
2016년까지 만들어진 작품은 161곡에 달한다. 작곡가로서 긴 무명 시절을 보냈지만, 마르크 앙드레 아믈랭이 그의 작품을 연주한 음반을 발매하였고,[3] 일본의 츠지이 노부유키 등과 같은 다른 피아니스트들이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대표적으로 손열음이 그의 작품을 자주 연주한다.
후기로 갈수록 에너지가 왕년만큼이 아니었는지, 전성기 시절에 비해 간단한 피아노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스스로를 재즈 피아니스트가 아닌 그저 작곡가일 뿐이라고 칭했다. 자신은 재즈 음악가가 결코 아니며,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한 적도 없다는 것. 재즈 뮤지션의 핵심인 즉흥 연주(improvisation)에 관심이 없다고 밝혔다.
2020년 7월 2일 82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2016년작 Op.161 이후 작품이 더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로 중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의 페이스북 계정으로 오랜 지병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추모글이 올라왔기 때문에 사실로 보인다.
자세한 내용은 니콜라이 카푸스틴/작품 문서 참고하십시오.
-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페라, 예술가곡 등의 성악곡을 단 한 곡도 작곡하지 않았기에 기악곡만 남긴 작곡가가 되었다.
- 재즈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활동을 했고 재즈를 배웠기 때문에 재즈의 영향이 상당히 강하다.
- 일반적인 곡명이 아닌 특이한 곡명이 많다.
표제음악?제목에 연연하여 들으면 안된다 - 피아노 소나타를 20곡 작곡하였다. 현대의 기준으로 매우 많은 숫자. 그러나 30개를 넘게 작곡한 캐나다의 Walter Buczynski의 케이스도 있고 해서 아쉽게도 최다작의 영예는 가져가지 못했다.
- 본인의 곡중 가장 잘 알려진 8개의 연주회용 연습곡(op.40)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 '종'에 비유하며 지겹다고 했다.
- 202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활동한 작곡가였어서, 대한민국 저작권 보호기간과 러시아 저작권 보호기간이 모두 사후 70년으로 규정되어 있어[4] 저작권 문제로 그가 만든 곡들의 악보는 아직 IMSLP에서 구할 수 없다.[5] 그래서 카푸스틴이 작곡한 작품들은 2091년 1월 1일에 퍼블릭 도메인으로 전환되기 전까지 저작권으로 보호된다. 이 때문에 카푸스틴 곡들의 악보는 예술의전당 내 대한음악사에 문의하는 방식으로 구해야 한다. 외국 출판사인 Schott music의 홈페이지에서 대부분의 전자판 악보를 구매할 수 있으니 이용해 보자.
- 영어로 된 팬사이트가 있다. (http://www.nikolai-kapustin.info/)
[1] 손열음은 2020년 7월 그의 부음을 접한 직후 자신이 지난 2011년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카푸스틴의 피아노 변주곡(작품번호 41) 영상을 SNS에 올리며 애도의 인사를 올렸다.[2] Oleg Lundstrem 오케스트라.[3] 2003년 음반에는 작곡가의 대표작인 8개의 연주회 연습곡 Op.40과 변주곡 Op.41, 다른 음정에 의한 5개의 연습곡 Op.68 등 여러 곡들이 실렸고, 2008년 음반에 그의 피아노 소나타 2번을 수록했다.[4] 러시아는 2006년 민법전을 개정하면서 사후 70년으로 연장하였고, 대한민국은 한-미 FTA 및 한-EU FTA를 반영하기 위해 2011년 저작권법을 개정하면서 사후 70년으로 연장하였다.[5] 이는 스트라빈스키 등과 같이 사후 70년이 지나지 않은 작곡가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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