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관련 틀 |
LG그룹 제4대 회장 구광모 具光謨|Koo Kwang-mo | |
출생 | |
국적 | |
거주지 | |
본관 | |
직업 | |
현직 | |
학력 | |
부모 | |
형제자매 | |
배우자 | 정효정 (2009년 결혼) |
자녀 | 슬하 1남 1녀 |
신체 | 182cm |
병역 | 산업기능요원 소집 해제 |
재산 | 18억 달러 (한화 약 2조 2,600억 원)[9] |
LG그룹은 가문의 딸들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타 재벌[16]과는 달리 여성의 경영 참여를 허용치 않고[17] 철저한 장자 승계의 원칙이 지켜진다. 구본무 회장은 사고로 외아들을 잃는 참척의 아픔을 겪은 후 51세의 나이에 늦둥이까지 봤는데 딸이었다. 그래서 큰동생인 구본능의 장남 구광모를 양자로 삼게 되었다.
배우자 정효정은 중소기업 보락의 대표 정기련의 장녀로 보락의 LG생활건강 매출 비중이 늘어나면서 보락 주가가 폭등하는 등 그 영향력이 대단했다.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2000년대 중반에 연애를 시작했다고 한다. 주변인에 따르면 정효정은 성격이 원만하고 매사에 성실해 친구들 사이에서 단연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혼인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보락 측에서 굴지의 재벌가와 사돈이 되는 것에 큰 부담을 가졌으나 거꾸로 LG가에서 두 사람의 만남을 지원하고 나서 2009년에 결혼했으며 슬하 1남 1녀를 두었다.
배우자 정효정은 중소기업 보락의 대표 정기련의 장녀로 보락의 LG생활건강 매출 비중이 늘어나면서 보락 주가가 폭등하는 등 그 영향력이 대단했다.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2000년대 중반에 연애를 시작했다고 한다. 주변인에 따르면 정효정은 성격이 원만하고 매사에 성실해 친구들 사이에서 단연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혼인 이야기가 시작되면서 보락 측에서 굴지의 재벌가와 사돈이 되는 것에 큰 부담을 가졌으나 거꾸로 LG가에서 두 사람의 만남을 지원하고 나서 2009년에 결혼했으며 슬하 1남 1녀를 두었다.
2006년 9월, LG전자 재경부문 금융팀 대리로 입사한 후, 2007년,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MBA(경영학 석사학위) 과정에 입학했다 중퇴하고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에서 경험을 쌓았다. 2009년 8월, LG전자로 복귀한 뒤 2011년 LG전자 홈엔터테인먼트(HE) 사업본부 뉴저지법인 차장으로 승진했다.
2014년 1월, 국내로 들어와 3월 HE사업본부 TV선행상품 기획팀 등 LG전자에서 여러 사업 부문을 경험하고 생산 현장도 거쳐 (주)LG 시너지팀 부장으로 이동했고 2016년에는 2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전무 승진 예상과는 다르게 상무 직급을 유지한 채 LG전자 B2B 사업본부 ID 사업부장을 맡게 됐다.
구본무의 사망으로 2018년 6월 사내이사,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구광모 체제 출범 이후 일감 몰아주기 논란 등을 사전에 해소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했다. 지난해에는 물류회사 판토스 지분 19.9%와 소모성 자재 구매 대행 자회사 서브원의 지분 60.1%를 매각했다.
2014년 1월, 국내로 들어와 3월 HE사업본부 TV선행상품 기획팀 등 LG전자에서 여러 사업 부문을 경험하고 생산 현장도 거쳐 (주)LG 시너지팀 부장으로 이동했고 2016년에는 2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다. 전무 승진 예상과는 다르게 상무 직급을 유지한 채 LG전자 B2B 사업본부 ID 사업부장을 맡게 됐다.
구본무의 사망으로 2018년 6월 사내이사,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구광모 체제 출범 이후 일감 몰아주기 논란 등을 사전에 해소하기 위한 조치들을 취했다. 지난해에는 물류회사 판토스 지분 19.9%와 소모성 자재 구매 대행 자회사 서브원의 지분 60.1%를 매각했다.
양부이자 큰아버지 구본무가 1년 간의 뇌종양 투병 끝에 2018년 5월 20일 사망한 이후,[18] 약 한 달이 지난 6월 29일 LG그룹 회장으로 취임했다. 만 40세로 젊은 축에 들긴 하지만 사상 최연소 재벌 총수는 아니다. 최연소는 1981년 한화그룹을 승계할 당시 만 29세였던 김승연이다.
현대중공업그룹 정몽준[19], 현대백화점그룹 정몽근의 사례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 아버지 정주영이 생존한 상태에서 취임한 경우고 저 당시에는 지금처럼 계열 분리되어 독립한 게 아니라 현대그룹의 계열사였기 때문에 그룹 총수가 아니라 계열사 사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현대그룹으로 독립하여 회장으로 취임한 건 정주영의 사후에 생긴 일이다.
여러모로 제일 비슷한 케이스는 SK그룹의 최태원인데 최태원의 아버지 최종현이 사망했을 당시 만 40세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에도 SK그룹은 재계 10위 안쪽의 그룹이었다. 당시 최종현의 가신 중의 가신이던 손길승이 임시로 SK그룹 회장직을 맡았고, 2004년에야 최태원 본인이 회장으로 취임했다.
2018년 9월 18일,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 4대 그룹 총수 중 한 명으로 사절단에 합류했는데, 취임한지 얼마 안 되어 중요한 행사에 참석했다는 점에서 스타트를 좋게 끊었다고 볼 수 있다.
취임 이후 인공지능, 로봇, 전장, 전기차 배터리 등 신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동시에 적자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는 등 그룹의 체질 개선에 나섰다. 2018년에는 대규모 적자를 낸 LG디스플레이 LCD사업의 구조조정을 단행한 바 있으며, 특히 2021년 1월 20일에는 그동안 적자를 기록한 MC사업부 청산을 발표하는 결단을 내렸다. #
국내외 경쟁 기업들과도 연이어 소송전을 벌였으며 마케팅에서도 경쟁 기업을 상대로 도발하는 등 달라진 LG의 모습을 보여줬다. OLED TV와 LG 그램 광고가 그 예시.
현대중공업그룹 정몽준[19], 현대백화점그룹 정몽근의 사례가 있지만 이들은 모두 아버지 정주영이 생존한 상태에서 취임한 경우고 저 당시에는 지금처럼 계열 분리되어 독립한 게 아니라 현대그룹의 계열사였기 때문에 그룹 총수가 아니라 계열사 사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현대그룹으로 독립하여 회장으로 취임한 건 정주영의 사후에 생긴 일이다.
여러모로 제일 비슷한 케이스는 SK그룹의 최태원인데 최태원의 아버지 최종현이 사망했을 당시 만 40세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에도 SK그룹은 재계 10위 안쪽의 그룹이었다. 당시 최종현의 가신 중의 가신이던 손길승이 임시로 SK그룹 회장직을 맡았고, 2004년에야 최태원 본인이 회장으로 취임했다.
2018년 9월 18일, 평양에서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 4대 그룹 총수 중 한 명으로 사절단에 합류했는데, 취임한지 얼마 안 되어 중요한 행사에 참석했다는 점에서 스타트를 좋게 끊었다고 볼 수 있다.
취임 이후 인공지능, 로봇, 전장, 전기차 배터리 등 신사업을 적극 추진하는 동시에 적자 사업은 과감히 정리하는 등 그룹의 체질 개선에 나섰다. 2018년에는 대규모 적자를 낸 LG디스플레이 LCD사업의 구조조정을 단행한 바 있으며, 특히 2021년 1월 20일에는 그동안 적자를 기록한 MC사업부 청산을 발표하는 결단을 내렸다. #
국내외 경쟁 기업들과도 연이어 소송전을 벌였으며 마케팅에서도 경쟁 기업을 상대로 도발하는 등 달라진 LG의 모습을 보여줬다. OLED TV와 LG 그램 광고가 그 예시.
2019년 1월 18일, LG 트윈스가 KBO에 구단주 변경 신청을 함에 따라 작은아버지 구본준에 이어 LG 트윈스 구단주를 맡게 되었다. 이로써 구광모는 KBO 리그 10개 구단의 구단주 중에서 최연소 구단주가 된다. 다만 실질적인 구단주 업무는 LG스포츠 대표이사 이규홍이 대신할 예정이다.[20] 구본무와는 달리 FA에도 매우 소극적이고 야구단에 큰 관심은 없어 보였는데, 구단주 취임 이후 차명석 단장과의 대화에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21]
1년 반짝이 아닌 지속 가능한 강팀이라는 방향성을 제시했던 구광모는 화수분 야구가 가능한 팜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홍창기 등의 특정 유망주를 직접 언급하며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차명석 단장에게 구체적으로 물어봤다고 한다. 이에 차명석 단장은 '지속적인 강팀으로 거듭나 우승을 넘보는 팀이 되려면 5년 정도는 걸릴 것 같다'고 말하며 팜을 키우는 3년간 내부 육성에 주력하고 외부 FA를 잡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는 그대로 이루어졌는데, 구단주 취임 3년 이후인 2022년 스토브리그 때 삼성 라이온즈에서 외야수 박해민을, 2023년에는 KIA 타이거즈에서 포수 박동원을 영입했다. 그리고 차명석 단장의 예상대로 정확히 5년 뒤인 2023 시즌, LG 트윈스는 꿈에도 그리던 29년 만의 통합우승을 이루는데 성공했다.
LG가 2023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자 유광잠바를 입고 직접 1, 4, 5차전을 관람하러 왔다. 1차전은 LG가 kt wiz한테 2:2 상황에서 고우석의 방화로 9회초 1점을 허용하며 2:3으로 석패했다. 4차전은 상대 투수들 공략에 성공하며 15:4로 대승하였다. 이 경기에서는 파도타기 응원에 동참했다.# 5차전에서 LG의 3번째 우승을 함께했고# 경기 후 선수단에게 헹가래를 받았다.# 대부분의 사진에서 포커 페이스를 보여 화제가 되었는데, 한국시리즈 우승이 결정되자 그제야 굉장히 기뻐했다.5차전 고우석의 초구 볼을 보고 탄식하는 장면이 잡힌 건 덤이다. # 한국시리즈 MVP를 발표한다고 하자 시계 세레머니를 하는 모습도 포착되었다.#
1년 반짝이 아닌 지속 가능한 강팀이라는 방향성을 제시했던 구광모는 화수분 야구가 가능한 팜 시스템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홍창기 등의 특정 유망주를 직접 언급하며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차명석 단장에게 구체적으로 물어봤다고 한다. 이에 차명석 단장은 '지속적인 강팀으로 거듭나 우승을 넘보는 팀이 되려면 5년 정도는 걸릴 것 같다'고 말하며 팜을 키우는 3년간 내부 육성에 주력하고 외부 FA를 잡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는 그대로 이루어졌는데, 구단주 취임 3년 이후인 2022년 스토브리그 때 삼성 라이온즈에서 외야수 박해민을, 2023년에는 KIA 타이거즈에서 포수 박동원을 영입했다. 그리고 차명석 단장의 예상대로 정확히 5년 뒤인 2023 시즌, LG 트윈스는 꿈에도 그리던 29년 만의 통합우승을 이루는데 성공했다.
LG가 2023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자 유광잠바를 입고 직접 1, 4, 5차전을 관람하러 왔다. 1차전은 LG가 kt wiz한테 2:2 상황에서 고우석의 방화로 9회초 1점을 허용하며 2:3으로 석패했다. 4차전은 상대 투수들 공략에 성공하며 15:4로 대승하였다. 이 경기에서는 파도타기 응원에 동참했다.# 5차전에서 LG의 3번째 우승을 함께했고# 경기 후 선수단에게 헹가래를 받았다.# 대부분의 사진에서 포커 페이스를 보여 화제가 되었는데, 한국시리즈 우승이 결정되자 그제야 굉장히 기뻐했다.
자세한 내용은 범LG가 문서 참고하십시오.
- 마술사 최현우와 20대 시절 친구였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구광모는 LG의 회장이 되었고, 2018년 평양 공연 당시 재회했으나 최현우는 구광모에게 더 이상 반말이 안 나오게 되었다고... "야 너 우리 동갑이잖아. 말 놔야지!"
[1] https://namdi.co.kr/?p=4678[2] 도원수파(都元帥派)-호양공계(胡襄公系) 29세손 ○모(○謨), ○휴(○烋) 항렬.[3] 로체스터 대학교와는 다른 학교다.[4] 혈통상으로는 큰아버지(백부)이다.[A] 5.1 5.2 5.3 구본무 아내 김영식 소생.[B] 구본능 후처 차경숙 소생. 즉 친형제자매는 없다.[9] 2023년 2월 포브스 기준. 대한민국 부자 순위 18위.[10] 구자경의 차남[11] 다음은 출처 사진이다. [12] 출처: 구인회 묘비.[13] 현대차그룹 회장 정의선도 경복초등학교를 나왔다. 정의선은 구정중, 휘문고 출신이다.[14] 봉은중학교 남학생들은 경기고등학교로 주로 배정되나 영동고등학교, 청담고등학교, 압구정고등학교로 배정되는 경우도 있다.[15] 재수를 거쳐 한양대학교에 합격했으나 입학하지 않고 그대로 유학을 갔다.[16] 범삼성가의 이인희, 이명희, 이부진, 이서현을 떠올리면 쉽다.[17] 예외적인 경우로 아워홈 대표이사 부회장 구지은이 있다. 다만 이 경우도 본래 오빠 구본성이 경영했었다가 사고를 쳐버려서 그에게 갈수 있었던 것이다.[18] https://www.sedaily.com/NewsView/1RZLTT4H0A[19] 현대중공업 대표이사 사장과 회장을 거쳤지만 1988년 13대 총선에서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해 정계로 진출한 뒤 현대중공업의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일임하는 등 경영 일선에서는 한 발 물러나 있는 상태. 그러나 현대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되어 나온 후에도 현재까지 HD현대의 최대 주주이며, 현대오일뱅크 인수, 현대종합상사(정몽혁), 현대종합금융(정몽일) 등 사촌동생과 친동생을 챙기는 일은 정몽준 본인의 의중이 반영되는 등 여전히 그룹 경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20] 이후 이규홍이 정년 퇴임하고 김인석이 새로 부임했으며, 구단주 대행은 그의 생부이자 KBO 총재를 맡았던 구본능이 새로 취임했다.[21] 좀 더 자세한 배경을 살펴보면 당시 LG는 끔찍한 DTD로 인해 팀에 대한 기대치가 수직 하락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윈나우 기조를 잡는다는 건 팬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도 말이 안 되고, 구광모의 말처럼 팀의 내실을 다지는 것을 중요시 여겼던 건 기업가이자 구단주 입장에서나, 팬들 입장에서도 충분히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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