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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 나무위키

개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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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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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복음주의
재림교회(a.k.a 안식교)는 안식일이 결부된 구원론과 엘런 화이트에 대한 직통 계시론 때문에 이단 논쟁이 심하다.
강력한 에큐메니컬 성향 교단에서는 정통의 일원으로, 구원론 및 계시론에 민감한 교단에서는 이단으로 분류한다.
국내 개신교계는 조직신학(교의학)에 민감하기에 대체로 이단으로 받아들인다.
같이 보기: 기독교의 종파
개신교 改新敎
프로테스탄티즘 Protestantism
external/www.ref...
1521년 보름스 의회에 출석해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5세 앞에서 증언하는 마르틴 루터의 기록화.
계통
유형
규모
신도
약 8억 ~ 10억 명[1]
교파
약 8,100개 ~ 3만 개[2]
주요 교파[3]
[ 언어별 명칭 펼치기 · 접기 ]
개신교(改新敎)
Protestantismus
Protestantism
Protestantisme
Protestantismus
Protestantismo
Protestantesimo
Протестантизм
プロテスタント
新教(간체), 新敎(번체)

1. 개요2. 특징3. 오해4. 한국의 개신교5. 문제점 및 논란6. 역사7. 명칭8. 교파9. 직분
9.1. 성공회의 직제
10. 교회 협의체11. 각종 오해와 통념들
11.1. 신학 관련
12. 세계의 개신교 통계
12.1. 서, 북유럽의 개신교12.2. 중남미, 아프리카의 개신교12.3. 아시아의 개신교12.4. 국가별 개신교 인구수 순위
13. 가톨릭과의 종교관 비교14. 마르틴 루터와 칼뱅의 종교관 비교15. 개신교의 분열성16. 민족주의와의 결합17. 여담18. 주요 인물19. 개신교 관련 기관 및 단체20. 개신교 주요 교회21.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개신교()는 16세기 초, 종교 개혁의 영향으로 로마 가톨릭에서 분리되어 나온 복음주의 성향을 가진 기독교 교파들을 두루 일컫는 말이다.

개신교는 단일한 교파가 아니며, 각각의 교파 간에도 세부적인 교리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종교 개혁이 일어났던 16세기부터 현재까지 매우 다양한 교파가 탄생하였는데, 어느 교파부터 어느 교파까지를 개신교로 간주할 것인가에 관한 명확하고 통일된 기준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가톨릭, 정교회와 분리되어 있는 복음주의적 교파들을 개신교로 분류하고 있다.

2. 특징[편집]

Sola Scriptura, Sola Fide, Sola Gratia, Solus Christus, Soli Deo Gloria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께 영광

Quinque Sola(Five Solas): 다섯 솔라.[4][5]
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

요도퀴스 판로덴스테인(Jodocus van Lodenstein, 1620–1677)

16세기 유럽에서 마르틴 루터장 칼뱅이 당시 가톨릭 성직자들의 타락을 비판하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지만, 기독교로마 제국에 의해 국교화된 4세기 이래 지배층들이 교계로 편입되면서부터 이러한 비판은 꾸준히 존재해 왔다. 천여년 간 가운데 르네상스 시기만이 특별히 교회의 타락상이 심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종교개혁자들은 중세의 신학이 교회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보았으며, 면벌부사제, 수도원, 신자들의 타락상 같은 것은 그 부작용에 불과했다.

그리하여 초기 교회의 순수했던 신학을 되찾기 위해 성경을 연구했고 이러한 움직임이 점점 커지면서 개신교회가 탄생했다. 한편 잉글랜드 왕국에서는 당시 왕이었던 헨리 8세가 적법한 남계 후계자를 낳기 위한 재혼을 위해서[6] 잉글랜드 성공회(잉글랜드 국교회)를 만들기도 했다. 종교개혁의 기원은 발도파까지 기원이 올라가기도 하는데, 주요한 교리에서 지금의 개신교들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 많아서 개신교 내부에서도 위의 세력을 '종교 개혁의 불씨'라고 하지 '종교 개혁의 시작'이라고 하지 않는다.[7] 마르틴 루터 이전 성서중심 신앙을 강조한 영국의 존 위클리프얀 후스 또한 종교개혁의 선구자 취급을 받기도 한다.

중세 가톨릭에서 교회의 타락만으로 개신교가 설립되었다고 알려져있는데 이는 어느정도 설명은 되어도 완전히 그렇다고 할 수 없다. 16세기 독일 지역의 면죄부 판매로 인하여 마르틴 루터와 이에 동조하는 움직임이 처음 성공한 것이지 그 이전부터 가톨릭 교회의 전례주의와 중앙집권을 비판하고 성경중심의 신앙을 강조한 움직임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루터 이전에는 가톨릭교회에 억눌려 큰 세력을 형성하진 못했다. 초기 교부시대 이후 중세 가톨릭 교회의 타락은 새로운 일이 아니었으며[8]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와 식자층의 증가로 바티칸을 중심으로 하는 가톨릭 조직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의지를 보여주고자, 오로지 성경에 모든 가치관의 기준을 둔다. 종교개혁 초기에는 루터주의, 칼뱅주의, 재세례파 등은 선구자 루터의 영향은 받았으나 각자 서로 다른 정체성과 다른 신학방향으로 분화되었으며 앞서 서술하다시피 그들은 가톨릭교회와의 종교갈등으로 같은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9]

현재는 성경에 대한 해석 차이 및 가톨릭 전통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인해 루터교회, 장로회, 성공회, 감리회, 구세군, 성결교회, 침례회 등의 많은 교파로 갈라졌으나 이들은 서로를 이단시하지 않으며 교회 제도나 강조하는 교리가 다를 뿐이지 같은 개신교로 본다. 이 교파들은 가톨릭교회가 개신교를 향해 형제 교회라고 부르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연대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신앙의 색깔이 다소 차이가 나는 침례교/장로회에서 루터회/성공회로 교회를 옮겨도 개종이라 하지 않는다.[10] 그러나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옮기는 것은 개종(=개신교에 대한 배교)으로 보는 시선이 일반적이다.[11]

3. 오해[편집]

기독교를 달리 이루는 말은 그리스도교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라는 용어를 마치 천주교와 다른 종파로 여기며, 그리스도교 안에 기독교와 천주교가 있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당장 기독교와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만 봐도 백이면 백 그리스도교 전체를 말하는 게 아니라 개신교와 마찰을 일으키는 경우다.

그 원인은 과거에 있는데, 가톨릭(천주교)은 자신을 천주교 혹은 가톨릭이라고 '그대로' 설파한 반면에, 개신교는 자신을 개신교라고 지칭하지 않고, 마치 개신교가 세상 그리스도교의 전부인 것마냥, 그냥 자기자신을 '기독교'라고 PR한 것이다. 마치 그레이 하운드라는 개가 있는데, 어느 사람이 이 그레이 하운드를 그레이 하운드라고 PR하지 않고, 그냥 ''라고만 설파해서, 관련 업계 종사자가 아니라면, 모두가 그레이 하운드를 그냥 '개'라고만 알게 된 경우다. 그러니 일반 대중들 입장에서는, 심지어 개신교나 천주교인들조차도 기독교와 그리스도교, 천주교에 대한 구분을 헛갈리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독교는 그리스도교라고도 하며, 이 기독교 안에 가톨릭과 개신교 등 여러 종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개신교가 오늘날 대중들이 그냥 기독교라고만 알고 있는 종파의 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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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문제점 및 논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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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역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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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국가
주요 가문
왕국
선제후국
초기 부족 공국
1356년 ~ 1623년
16세기에 추가
1803년 이후 추가
관련 용어
주요 종교
관련 유물
군사
주요 사건

프로테스탄트라는 용어는 개신교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개혁 당시 1517년부터 나온것은 아니다. 당시 마르틴 루터는 돈을 받고 죄를 면해주는 면죄부 판매에 대항하여 95개조 반박문을 교회 문에 붙이며 교회의 개혁을 주장했다가 1520년 가톨릭 교회의 파문, 1521년 제국의회의 추방령을 받았다. 그러고 나서도 가톨릭 교회는 물론 루터나 루터의 지지자들까지도 분열이 일시적인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몇 년후에야 실질적인 개신교회의 설립이 이어졌다. 가톨릭 교회 개혁을 주장한 루터와 츠빙글리 그리고 그의 지지자들은 기존의 교회를 개혁하는 입장에서 가톨릭교회의 전통에 성경적 의문을 제기하고 교회전통보다 성경을 우위에 놓으며 전통보다는 성경을 중시하는 복음주의자를 자처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로마교회의 전통으로 변질된 초기 기독교를 회복하는 진정한 믿음을 가진 크리스천이라는 생각이었다.

프로테스탄트라는 용어 자체는 1529년 신성 로마 제국의 제2차 슈파이어 제국의회에서부터 등장했는데 마르틴 루터의 복음주의에 찬성하고 가톨릭교회를 비판하는 6개 제후[12] 와 14개 제국도시[13]의 대표들이 "Verbum Dei manet in æternum(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리라)"이라는 구호를 소매에 적으며 등장하자 이들을 제국의회에서 가리켜 라틴어 Protestantes에서 따와 항의자들이라 부르게 되었다.

구체적으로 이들의 주장은 기존 종교개혁 입장의 루터와 루터 지지자들이 가톨릭교회와 황제의 이단선고에 반발하여 1520년 루터와 지지자들에게 가톨릭 교회에서 파문이 내려졌고, 세속적으로는 1521년 보름스에서 열린 신성로마제국회의에서 제국의회 구성원 400여 명의 대다수의 의사를 무시하고 가톨릭교회와 황제가 루터파에게 제국추방령을 내렸지만, 황제 카를 5세가 1526년 1차 슈파이어 제국 회의에서 오스만 제국의 위협으로 대(對) 튀르크 전쟁협조와 과세를 위해 기존 추방령을 번복하고 새로운 공의회가 열릴 때까지 조치를 제한하며 공의회에서 루터파가 주장하는 교회 개혁 문제를 다루기로 하였는데, 카를 5세와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이 끝나며 강화하자 다시 이전 결정을 번복하여 루터파에게 제국추방령을 다시 때렸고, 신교도 제후와 제국도시들은 이 결정에 항의했다. 루터파 제후들과 제국도시는 루터와 루터파에 내려진 제국 추방령도 적법절차에 따른 공소가 아니어서 무효이며[14] 후속 조치 또한 당연히 무효라고 항변한 것.

이들은 또한 자신들이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기독교인으로 절대 이단이 아닐 뿐더러, 세속적으로 여전히 황제에게 충성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1529년 2차 슈파이어 제국회의 직후, 1530년에는 루터파 교회에서 루터파 교리선언에 해당하는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Confessio Augustana)'을 제출하고, 기존 교회와 교인들에게도 공존을 요구하였지만 황제와 가톨릭교회 세력이 다수 의석을 장악한 제국의회에서 거부당했고, 교회분열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한편 14세기 중반 160여 년 전 현재 개신교와 유사한 기존 가톨릭 개혁을 주장하는 세력이 잉글랜드에서도 있었는데 존 위클리프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가톨릭 교회에선 롤라드파(Lollardy)라 불렀었다. 롤라드는 '중얼거리는 자'라는 뜻으로 이들이 성경을 외우고 다니는것을 미친놈 취급한 비하어였으며, 1517년부터 가톨릭 교회 개혁을 주장한 루터에 찬성한 세력들을 지칭하는 루터파란 용어도 이들은 기독교인이 아니며 루터를 믿는 이단이라 하여 'Lutheran' 즉 '루터 추종자'라 불렀기 때문에 처음에는 비하에서 나온말은 맞다.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은 속된 말이다. 반대로 루터파에선 기존 가톨릭교회를 기독교가 아닌 로마추종자, 교황추종자(Papist)라고 비하했다.

개신교에서는 대체로 16세기 이후 가톨릭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교황의 수위권을 부정하며 제2경전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종파들을 통칭해서 개신교라고 부른다. 또한 개신교에서 갈라져 나온 종파들도 역시 개신교라고 불린다.[15]

그러나 기원 자체가 서방교회에서 떨어져 나온 기독교 종파들의 집합으로 여겼기 때문에 현재에도 어디까지가 개신교 종파인가?"라는 합의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루터파[16], 칼뱅파(츠빙글리)[17], 재세례파[18], 잉글랜드 국교회[19] 같이 현재는 아무런 문제 없이 개신교로 함께 구분되는 종파들 모두가,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에는 서로를 같은 믿음의 형제·자매로 여기지 않았고, (물론 가톨릭을 대하는 정도 만큼은 아니지만) 서로 반목했다.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믿음을 가진 기독교인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당시 이들의 표면적인 공통점이라면 로마 교회에서 이단 선고를 받았다는 점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들 전체를 겨냥한 종교재판, 마녀사냥[20], 성 바르톨로메오 축일의 학살[21], 30년 전쟁 등을 겪으면서 루터파, 칼뱅파, 잉글랜드 국교회(잉글랜드 성공회)는 비로소 로마교회에 대항하는 공동의 신앙을 가졌다고 여기게 되어, 가톨릭에 대항한 일종의 연합전선을 형성하게 된다.[22]

결론적으로 개신교의 정체성은 16세기경 종교개혁자들이 로마 교회의 미신적 악습이라 보는 요소들을 극복하고, 성경에 충실한 '바른 교회'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현대에도 개신교는 '오직 성경'을 가장 중요한 핵심으로 삼으며 이는 교회조직의 전통과 성경을 동등한 위치에 놓는 가톨릭·정교회와의 큰 차이점이다.[23]

같은 개신교 내부에서도 전통에 대한 시각은 다르다. 루터회성공회는 기독교 전통 가운데 성서와 충돌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웬만하면 인정하는 반면에, 개혁주의 계통에선 성서에 언급되지 않는[24] 전통에 대해서는 부정하는 측면이 강하다. 크게 기독교를 동방과 서방으로 나누면,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서방에 속한다. 가톨릭과 사이는 둘째치고 서방교회에서 갈라져 나갔기 때문에 동방교회인 정교회보다 가톨릭 교회와의 신학적 공통점이 많다. 동서방 교회의 신학적 논점에 대해선 거의 모두 가톨릭 입장과 일치한다. 애초에 마르틴 루터가 신학적으로 교조로 삼은 성 아우구스티누스[25] 또한 서방교부로 가톨릭 교회에서 정통으로 여기지만 정교회에선 그다지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26]

7. 명칭[편집]

독일어로는 복음주의 교회(Evangelische Kirche)라고 불리기도 하며[27], 종교 개혁 시기 가톨릭 교회에 대한 저항자라는 의미에서 ‘Protestant’라 부른 데에서 유래하여 프로테스탄트라고도 칭한다.

개신교는 단일한 종파가 아니라, 기독교 내의 특정한 신학적 입장을 공유하는 여러 분파들의 총칭에 가깝다. 기독교에서 어디까지가 개신교인지에 대한 정의는 분명하지 않지만, 대개 종교 개혁 1세대 종파들로부터 거듭 파생된 종파들도 일반적으로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루터 이전의 후스파 등도 종교 개혁 0세대로 포함하기도 한다.

기독(基督)은 크리스토스, 즉 그리스도의 한자 음차[28]이므로, 기독교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믿는 종교를 총칭한다. 즉 기독교개신교는 동의어가 아니며, 가톨릭, 정교회 등도 다 기독교의 일종이다. 개신교가 한국에서 흔히 '기독교'라고 불리지만, 개신교는 기독교의 전부를 대변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기독교'가 개신교의 동의어로 여겨지게 된 까닭은 꽤 다양하다. 전래 시기와 방식이 모두 달랐기에 천주교로 불린 가톨릭과는 별개로 취급된 경향이 크다. 가톨릭은 개항 이전의 조선에 서학이라는 이름의 학문 일종으로 전파된 케이스였으며, 개신교는 개항기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의 활동과, 해방 이후 한국의 재건과정에 가장 깊은 영향을 끼친 나라인 미국 때문이다.[29][30] 그렇게 국내에서 개신교가 주도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서 기독교라고 하면 곧 개신교를 떠올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와 함께, 가톨릭 교회에서는 스스로를 기독교라고 칭하는 경우가 비교적 적고 주로 '가톨릭', '천주교' 등의 용어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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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직분[편집]

  • 목회자
    • 목사 - 만30세 이상으로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고시를 합격한 뒤 목사 안수를 받은 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도 전도사로 남는 사람도 있다. 몇몇 교단에서는 추가로 기혼자로서 자녀를 두고 있어야 안수 자격을 부여하기도 한다. 남자만 목사가 될 수 있는 교파도 있고, 남녀 모두 목사가 될 수 있는 교파도 있다. 천주교/정교회/성공회 신자들은 성직자 중 사제급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 담임목사(위임목사, 당회장) - 한 교회의 수장이다. 이 때문에 그 교회에서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위임목사는 장로들과 마찰을 일으키거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소속교단 헌법이 정한 정년까지 자신의 교회에서 목사를 뜻하나 오늘날 담임목사로 통칭하는 경우가 많다. 당회장은 교회의 최고의결기관인 당회의 장을 의미하는데, 간혹 담임목사 표현 대신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 부목사 - 담임목사와 직업과 계급이 같은 목사임에도 불구하고 이쪽은 비정규직이나 다름없다. 언제 교회를 떠날 지 알 수 없는 운명이고 아무리 큰 교회의 부목사를 하다가도 따로 독립하여 교회 개척을 한다고 해도 확실히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 강도사/준목/수련목 - 몇몇 개신교단에서만 채택한 직위로, 전도사와 목사 사이의 위치에 있다. '준목사' 또는 '목사 후보자'라고 이해하면 쉽다. 강도사 고시를 합격해야 하며, 설교는 할 수 있으나 교회 운영에는 참여할 수 없다. 예장고신과 예장합동에서는 강도사, 기장에서는 준목이라 하고, 감리회에서는 수련목이라고 한다. 예장통합, 침례회, 성결교회에는 여기에 대응하는 직위가 없으며, 전도사에서 바로 목사가 된다. 대체로 주일 학교나 청년부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전도사와 비슷한 업무를 수행한다.
    • 전도사 - 신학대학 혹은 신학대학원에 재학 중에 목회활동을 하는 자 또는 목사고시 미이수자. 강도사와 같이 주일 학교나 청년부를 담당하거나 장년부의 교구를 담당하기도 한다.
  • 평신도
    • 장로 - 만 45세 이상으로 기혼에 10년 이상 같은 교회를 다닌 신도 가운데 선출한다. 대부분의 교단에선 남자만 가능하나 예장통합, 감리회 등 몇몇 교단은 여자도 장로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31]
    • 권사 - 만 45세 이상으로 기혼에 5년 이상 같은 교회를 다닌 신도 가운데 선출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계열 교단에서는 여자만이 가능하나, 한국기독교장로회감리회에서는 남자도 권사로 임명될 수 있다. 남자도 권사로 임명이 가능한 교단의 경우, 집사를 거쳐야 권사가 될 수 있고 권사를 거쳐야 장로가 될 수 있다.
    • 집사 - 만 30세 이상으로 기혼에 세례교인인 신도 가운데 선출한다.[32] 장로회에서는 안수집사와 서리집사로 구분되는데, 서리집사는 앞의 조건에만 맞고 큰 물의를 일으킨 적이 없으면 무난하게 임명된다. 안수집사부터는 선출이 까다롭다. 서리집사는 남녀 불문이지만, 안수집사는 남자만 가능하다.
  • 기타
    • 감독(총관) - 감리회의 직책으로, 한 연회를 관장하여 그 지역 내의 교회들을 치리한다. 천주교/정교회/성공회주교급.[33] 장로회나 침례회는 개교회주의가 강하기 때문에 감독/주교에 대응되는 직책이 없다. 대감독(대총관)은 몇 개의 교구를 묶어 관장한다. 천주교/정교회/성공회의 대주교급.[34]
    • 감리사 - 역시 감리회의 직책이며, 감독 밑에서 한 지역/교구 내 교회들을 치리한다. 천주교/정교회/성공회의 보좌주교급.
    • 노회장(지방회장) 및 교단 총회장(감독회장) - 아무리 개교회주의가 강한 교단들이라해도, 같은 지역 내에서 같은 교단의 교회들끼리 연합해야할 일이 종종 있기 때문에 노회나 지방회라는 형식으로 연합을 하는데, 그 회의의 수장이 노회장(지방회장)이다. 장로교는 노회를, 다른교파는 지방회제이다. 지방회가 천주교나 정교회의 교구 같은 탄탄한 조직력을 보여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지방회장도 주교와 같은 힘은 없다. 교단 총회장은 말 그대로 그 교단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굳이 들자면 천주교/정교회/성공회의 대주교 정도 되겠으나, 그 권위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 간사 - 주로 큰 교회에서 설교를 제외한, 특수한 업무를 맡기기 위해 두는 경우가 많다.

9.1. 성공회의 직제[편집]

  • 사목자
  • 사제 - 만 24세 이상으로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부제경력이 1년 이상이고, 사제고시를 합격한 뒤 사제서품을 받은 자. 직함때문에 결혼이 불가능 할것 같으나, 결혼이 가능하다.[42][43]
  • 부제 - 만 23세 이상으로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부제고시를 합격한 뒤, 부제서품을 받은 자.
  • 전도사 - 흔히 천주교에서 '학사'라 불리운다.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나, 부제고시를 합격하지 못한 자.

10. 교회 협의체[편집]

개신교(프로테스탄트교)라는 단일 종파는 존재하지 않는다. 개신교는 여러 교파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개신교 전체를 대표하는 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국교로 지정되어 있는 잉글랜드 성공회북유럽루터교회에서도 국왕이 교회에 관여할 수 없다.[44] 그렇다고 해서 불교 조계종처럼 교계 전체를 대표할 만한 하나의 대규모 종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여러 학파가 있는 이슬람순니파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대외적으로 개신교의 입장을 대변하는 교회 협의체가 있다. 한국 개신교의 경우에는, 보수 개신교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진보 개신교를 대표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있다. 2013년에는 한기총의 급진적인 이단 해제 및 선거 부정 등으로 인해 반발한 교단들이 갈라져 나온 한국교회연합이 새로 생겼다.

2017년 1월에는 갈라져 있던 한교연과 한기총이 한국교회총연합회를 출범시켰다. 여기에는 그 동안 둘 중 어디에도 참여하지 않던 교단인 예장고신과 예장합동도 참여한다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NCCK) 홈페이지
    한국의 개신교 교단들과 한국 정교회의 연합으로 구성된 그리스도교 협의체. 1924년 9월 24일 결성된 조선 예수교 연합 공의회를 전신으로 하며, 세계교회협의회(WCC) 가입에 따라 각국별 교회 협의회(NCC)로 개편되었다. 사회 운동, 민주화 운동, 남북통일 운동, 교회 일치 운동 및 종교 간 대화 운동 등에서 대체로 진보적인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45]
  • 한국교회연합(한교연, CCIK) 홈페이지
    한기총을 탈퇴한 교단들이 새로 만든 협의체. 중도-온건보수 성향을 거쳐 현재는 보수 성향의 단체이다.
  •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UCCK) 홈페이지
    한교연과 한기총으로 분열된 개신교 교단의 통합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협의체. 현재 국내 최대의 개신교 협의체이다.
  •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CCK) 홈페이지
    한국의 개신교 중 극우 성향의 종파만 남은 협의체. 본래 1989년 대한 예수교 장로회 교단들을 주축으로 결성된 교회 협의체였으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달리 보수적인 색채를 강하게 나타냈었다. 그러나 2012년~2013년에 대형 교단들이 잇따라 탈퇴하여 대표성을 상실했으며, 현재는 군소 교단의 협의체로 규모가 축소되었다.

11. 각종 오해와 통념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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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인 오해와 통념에 대한 반론을 알려주는 문서다. 개신교는 범위가 매우 넓고 종파도 다양해 목사 중에서도 헌금을 떼어먹는 목적으로 한 사기꾼들이 엄연히 존재하며, 의료를 거부하는 집단도 존재하는 등 다양한 모습이 있다. '모든 개신교가 이렇다'라고 단정짓는 오해를 막기 위한 서술이 주된 논거다.
  • 목사성직자가 아니다.
    • 위 문서 참고. 개신교에서 목회자들을 구태여 성직자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개신교 신학에서도 엄연히 성직자가 존재한다. 개신교가 만인사제론을 이론적 근거로 목사를 성직자로 안 본다는 인식이 퍼져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성례를 주관하는 사제를 인정하지 않는 것뿐이고, 실제로 여러 교파의 신앙고백문을 살펴보면 목사를 성직자로 여기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사제와 성직자를 동의어로 판단한데서 기인한 오류로 본다. "목사는 사제가 아니다"와 "목사는 성직자가 아니다"라는 말은 근본적으로 다른 셈이다. 하지만 만인사제론을 더욱 엄격히 해석해 목회자조차도 사제의 성질을 가질 수 있다고 판단해 목사조차 없는 케이스도 분명히 있다. 예외로 성공회는 개신교에 속하면서도 주교, 사제, 부제의 사제직이 존재하는 고교회파와 다른 개신교와 훨씬 비슷한 저교회파가 혼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고교회파라 할지라도 어찌되었든 개신교 신학을 수용한 개신교이므로, 교회에서 평신도들도 성직자들만큼이나 중요한 사목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성결교회의 경우 예배를 주관하고 설교를 하며 성례전을 집례하며 교인의 행정과 권징을 치리한다. 교인을 심방하며, 믿지 않는 자에게 전도하고 과부, 고아, 고독한 사람과 빈궁한 자를 돌보아야 한다. 지교회의 직원회, 당회, 사무총회의 의장이 된다
    • 비슷한 주장으로 "목사는 현대의 레위 지파다" 같은 것도 있다.
  • 목사는 하는일도 없이 일요일에만 일하며 헌금으로 많은 대산을 챙겨먹는 땡보직이자 사기꾼들이다.
    • 여기 참조. 교인 수평이동미자립교회만 봐도 땡보직과는 거리가 멀며, 모든 성직자에게도 일부 해당한다. 목사의 업무는 일요일 예배만 집행하는게 아니라, 평일에도 상주하며 저녁예배, 새벽예배도 집행하고 교인들 관리와 시설관리도 한다. 더불어 모든 예배도 준비하는 과정이 있기에 하는 일이 결코 적지 않고, 헌금이 모두 목사들의 수익이 되지도 않기 때문에 정말 큰 대형교회같은 경우가 아니면 월급이 적어서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한국에만 해도 생각보다 목사는 많다 모든 목사가 돈을 많이 번다면 이미 주류 재력가들은 목사들일 것이다. 게다가 이때문에 목사들이 버는 수익이 부당하다 여기는 사람도 많지만, 이미 생계를 위해 투잡을 뛰는 사람도 많고, 타종교 성직자들도 부업을 금지하는 경우가 대다수라 목사들 더러 일도 안하고 부당히 돈버는 거라고 한다면 다른 성직자들 또한 같은 논리로 비판할 수 밖에 없다.[46]
  • 모든 개신교 계열 신학생들은 나중에 목사가 된다.
    • 목사를 하려면 교단으로부터 인가받은 학교의 신학 교육과정을 거쳐야 하기는 하지만, 모든 신학과 학생들이 100% 목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신학대학 뿐만 아니라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목사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일부 교단의 경우 기혼자에게만 목사 직위를 허가하고, 국내 최대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교단의 경우 여성 목사 안수를 금지한다.[47]
    • 나무위키에도 반례가 작성되어 있다. 바로 우현.
    • 위 사례에서 언급된 분과 같은 신학교 출신으로 지금까지도 절친한 동갑내기 친구 사이인 인물이 안내상, 이대연으로 총 2명이 있다.
  • 개신교는 문제가 많다.
    •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로, 모든 개신교인들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개신교에 대한 반감이 심한 이유는 다른 종교에 비해 개신교에서 더 많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나고, 이를 개선할 기미조차도 안 보이기 때문이다. 중앙집권적인 구조가 아니므로 그만큼 자정작용이나 그에 준하는 제동장치가 부족한 점은 확실히 문제다. 각종 사회적 문제에 침묵하거나 암묵적으로 동조한다는 점에서는 간접적인 책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볼 수도 있다. 개신교는 가톨릭과 다르게 개교회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미 한국 내에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수도 없이 많은 교파, 교단이 있어[48][49] 문제가 되는 신자들 관리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신교의 이미지를 흐리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그저 내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억울해하기만 하면 전혀 해결되지 않는다.[50] 그렇기 때문에 교단을 초월해서 교역자들과 신자들이 이 문제에 대해 해결 할 방법을 잘 고민하고 연구해봐야 할 것이다. 더불어 교파의 연합체들과 각 교단의 총회장 및 개교회의 당회장 교역자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강건너 불구경 하듯 그저 타 교단, 다른 교회라고 외면하거나 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더불어 총회장의 경우엔 소속 목회자들이 올바른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당회장 및 부교역자는 담당하고 있는 교회의 사람들을 사랑하고 섬기는건 기본중의 기본이거니와 올바른 신앙을 가르치도록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 개신교는 무조건적으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기 보다는,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도록 해야 할 것이다.
  • 개신교는 우익이다.
    • 통계자료를 보면 대한민국 우익의 최대 본산이라 할 수 있는 대구, 경북은 한편으로는 개신교의 세가 가장 약한 곳이기도 하다. 대조적으로 전북의 경우 허구한 날 좌편향이라고 정치적으로 까이는 지역이지만 개신교 인구의 비중이 굉장히 크다. 우익=예수쟁이라는 생각은 강남구를 중심으로 한 기득권층이 근본주의 개신교 메가처치 세력과 손을 잡았기 때문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 우파 문서를 함께 참고해도 좋으며 되려 보수우익의 대표적인 텃밭인 경상도에서 세가 압도적인 종교는 불교다.
    • 기독교 좌파 문서를 봐도 좌파 성향인 개신교 신자들은 상당히 많다. 흑인민권운동의 주역인 마틴 루터 킹이나 나는 꼼수다 멤버이기도 한 정치평론가 김용민[51], 세속주의 신학을 창시한 하비 콕스 등이 있으며, 아일랜드 독립운동의 주역들도 상당수가 개신교인이었다.
  • 모든 메가처치는 전부 종교인 납세에 반대하며, 사회복지 사업에 관심이 없고, 철저한 매카시즘에 따라 북한을 적대하고 있다.
    • 이 주장에는 눈에 띄는 반례가 하나 있는데 바로 여의도순복음교회다. 이 교회는 종교인 납세에 대해 이슈화되기 이전부터 전폭적인 찬성을 표해 왔고, 사회복지 사업에도 심장병 수술 등의 여러 분야들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예산을 쏟아부어 온 것으로 유명하다. 대북관의 경우 굉장히 특이한 경향을 보이는데, 일반 신자들은 다른 대형교회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강경한 적대적 관점을 보이는 반면, 여의도순복음교회 상층부에서는 극도로 유화적이고 전향적인 대북관을 갖고 있다. 교회 내의 소식지인 〈순복음가족신문〉 을 보면 아주 공공연히 북한의 "발전상" 과 현대화된 모습들에 대해 칭찬할 정도. 심지어 담임 이영훈 목사의 경우, 2018년 연말 김정은의 방남 여부에 대해 "답방을 환영하는 것이 맞다"고 발언하여 보수단체 회원들로부터 "백두칭송위원회 회원이냐" 는 반발을 사기도 했다.
    • 물론 임진왜란예수회 신부들이 조선인 포로들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해서 한국 천주교의 기원을 16세기 말로 보는 시각은 별로 없다. 하지만 개신교의 기원에 대한 시각을 소개하는 것이 의의를 갖는 것은, 국내 개신교계(특히 장로교)에서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이전의 자생적으로 나타난 성경공부 모임이나 여타 교파들의 활동 동향에 대해서 아예 말소된 역사관을 신자들에게 가르치고 통념화함으로써 미국 근본주의 개신교계에 대한 신앙적 사대주의와 부채감을 주입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시작이 언더우드인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그 이전에 우리 민족이 개신교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식의 암시는 덧붙어서는 안 되는 잘못된 인식이 되는 것이다.
    • 현대의학을 주도적으로 발전시킨 나라가 독일, 영국, 미국 등 개신교 문화권인 걸 감안하면 말이 안된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 일명 신애 사건이 《그것이 알고싶다》에 보도되면서 이런 인식이 늘어났지만, 이들도 아프면 병원 다 가고 치료 다 받는다.[52] 경험적으로 보아도, 병원에 입원해 있다 보면 옆에 누운 환자를 위해 그가 다니던 교회에서 사람들이 병문안을 오는 모습도 자주 보게 된다. 또한 개신교 신자인 의사, 간호사도 아주 많다. 성공회에는 조병성사라고 해서, 아예 병원에 입원해서 주일감사성찬례에 참석할 수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예식이 존재한다.
    • 이런 이해에 아주 잘 들어맞는 교파가 바로 크리스천 사이언스인데, 이들은 주류 교파에 의해 이단으로 지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국내에는 그 세가 꽤나 약하다.
    • 도리어 주류 개신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현대의학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대체의학에 대한 맹목적 신뢰라고 할 수 있다. 간혹 길거리 전도지에도 간단한 대체의학 요법[53]이 적혀 있는 것도 볼 수 있으며, 자격증 없는 카이로프랙틱 강사도 교계에 심심찮게 보이곤 한다. 다만 이런 대체의학의 문제는 개신교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 문제는 개신교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의학적 지식이 빈약한 데 비해 건강에 대한 관심은 많아서 대체의학에 쉽게 솔깃해하는 나이 많은 노인층이나 주부들이 모인 커뮤니티의 고질적인 문제점이며, 아무래도 사회 생활하는 젊은 청년들에 비해 교회 커뮤니티는 시간적 여유가 많은 노인/주부들이 훨씬 많고 더 열성적으로 활동하다보니 잘못된 의학 정보가 돌아다녀도 자정이 안 되는 측면이 크다.
  • 도리어 신애 양의 부모가 자기들 멋대로 신앙치료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으며, 목사는 그런 부모들을 뜯어말리던 역할이었다. 그 목사가 촬영 스탭들 앞에서 한숨을 푹 내쉬면서 "강제로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고 한탄하던 장면도 있었다. 즉, 적어도 목사는 정상인이었다는 말이다.
  • 게다가 시간이 흐르며 의학기술 또한 하나님이 주신 은사로 보는것이 옳다는 정상적인 시각이 자리 잡고 있고 신앙치료 운운하는 사람은 목회자가 아무리 "병원에 가라"고 권유해도 막무가내로 "기도해서 치료해달라"고 떼를 쓰는 광신도 내지는 치료비로 쓰일 돈을 뜯어내기 위한 이단/사이비인것이 점점 드러나고 있는 추세다.[54]
  • 모든 주류 개신교 교파에서는 쩌렁쩌렁하게 통성기도를 하고 방언을 하며 직통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 이러한 신비주의적 양상은 주류 개신교에서도 교단에 따라 편차가 크다. 개신교 전반의 다양성을 판별할 때 가장 중요한 잣대 중 하나는 성령관인데, 통성기도와 직통계시는 다른 성령관이 어떻게 표면화되는지는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한쪽의 극단에는 성령의 소극적 개입 입장을 따르는 예장 총신/고신이 있다. 다른 극단에는 성령의 적극 개입(기적)과 심지어 계시의 연속을 주장하는 오순절 계열(국내의 경우 순복음교회가 대표적)이 있다. 편의상 전자를 '소극파', 후자를 '적극파'라고 한다.
    • 소극파는 장 칼뱅과 존 녹스의 성령관을 따르는 장로회[55]와 일부 침례회가 해당한다. 이들에 따르면 성령의 적극적 역사 개입은 사도행전 시기에 종결되었으며 이후에는 소극적 방식으로만 인간 역사에 개입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에서, 세상의 이상작용은 기본적으로 사탄의 움직임이고 성령의 역사를 악마의 작용으로부터 분리해 파악하기 위해서는 냉철한 이성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요구된다. 장로회 교회 중 이에 따르는 교회들은 방언이니 기적이니 예언이니 하는 요소들을 굉장히 경계하고 심지어 배격하기도 한다. 유명한 일화로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교회의 예배에서 설교 도중 병든 사람이 나아서 소리지르는데, 목사와 신자들이 나서서 말리며 '조용히 하라'고 한 사례가 있다 (하단에 명시된 서적에 나오는 사례). 사도행전에 기록된 방언, 기적, 예언들도 초기교회에 한정된 사례로서 역사적으로 보편화될 수 없다는 녹스의 주장에 따른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따르면 통성기도는 예수가 경계했던 '중언부언하는 기도'에 해당하므로 회피된다. 극단적으로는 교회의 부흥까지도 성령의 역사로 설명하지 않고 시험의 일종으로 여긴다. 즉, 교회가 커지는 것은 자랑할 것이 아니라, 커진 교회에서 일어날 갈등을 늘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소극파의 성령관을 대중이 알기 쉽게 소개하는 책으로 총신 계열 신학자 박영돈의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이 널리 읽힌다.서평
    • 순복음교회를 비롯한 오순절 교단으로 대표되는 적극파에서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성령의 작용을 역사보편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심지어는 계시와 예언까지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러한 흐름에서는 '지금 역사하고 있는 성령을 느낄 수 있는 민감성'이 이성보다 중시된다. 따라서 신비주의라는 오명을 받기도 한다. 물론 무작정 계시와 예언을 인정할 수는 없기 때문에 모든 계시와 예언은 성경의 핵심과 합하여야 한다라는 단서조항이 있다. 따라서 순복음교회와 오순절 교단에서는 이런 성령 경험에 매우 호의적이며, 특히 개인적으로 성령의 역사에 민감할 것이 요구된다. 그중 하나가 바로 방언이다. 심지어 "방언 못 하는 사람은 구원 못 받은 사람" 논란까지 불거진 적도 있다.[56] 사이비성이 있어서 교류금지나 위험한 사상 등으로 결의된 집단에서는 성령사진니 금이빨[57] 이니 소위 "토론토 블레싱" 이라 불리는 장풍 퍼포먼스까지 가기도 하는데[58] 적극파의 경우 대부분 종말론에서도 천년주의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 대부분의 교회들은 중간에 속해있다. 특히 청소년 및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교회 수련회 때에는 통성기도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를 인정은 하되 정도껏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적극파와 중도 모두 성령의 현재 개입을 인정할 경우, 그 명백한 기준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가톨릭, 성공회 그리고 감리회는 이러한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데, 그 이유는 이러한 기준을 확립할 권위를 교단이 가지기 때문이다. 이들 교단은 기적 등 성령의 현재 역사를 인정하되, '교회의 가르침 및 권위와 합할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개교회주의와 성경중심주의를 택하는 장로교와 회중교회 계열은, 개별 항목별로 성령의 역사인지 아닌지 여부를 개교회가 성경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므로, 특히 장로회를 중심으로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를 고민하고 있다.
  • 모든 주류 개신교 교파의 예배는 흥겹고 떠들썩한 록 음악 스타일의 CCM으로 분위기가 UP 되어 있으며,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 펄쩍펄쩍 뛰고 함성을 지르면서 콘서트 분위기가 된다.
    • 예외적인 사례가 바로 그리스도의 교회. 케이씨대학교의 바로 그 교단이다. 이들은 엄연히 주류 개신교에 속하지만 "예배 중에 악기를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가지고 엄청난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이들 중 소위 "무악기파" 라고 불리는 측에서는 진짜로 악기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 이러한 CCM과 콘서트장 느낌의 예배는 개신교에서도 상당히 새로운 것으로서, 90년대 이후에야 등장했다. 예배방식 상의 차이인데, 기본적으로 개신교에서는 설교중심의 변경예배가 표준 예배형식이고, 아직도 많은 교회들이 주일 대예배는 경건한 분위기의 오르간만을 사용하는 예배를 드린다. 하지만 미국의 회중교회 메가처치를 중심으로 젊은층을 포섭하기 위해 형식을 버리고 록 콘서트의 요소를 들여오기 시작한다. 이를 열린예배라고 한다. 이에 자극을 받은 한국 교회들에서도 이를 따라 우선 젊은이 예배에서 열린예배를 시도했고, 이후 그때의 젊은이들(70년대생들)이 나이가 들자 대예배에서도 CCM이 적극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성공회루터교는 한국 내 소수교단이라는 특징 때문에 '전통의 고수'에 골몰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 흐름에 편승하지 못했다. 상대적으로 신자 수가 많은 유럽과 북미의 성공회, 특히 저교회를 보면 열린예배를 받아들인 곳도 많다. 열린예배를 받아들이지 않은 경건파 교회에서는 보통은 콘서트 및 기타 세속적인 무대에서 사용할 법한 알록달록한 무대조명의 사용을 지양하고,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살리며, 파이프오르간 반주에 맞춰 전 교인이 성가를 부른다.
    • 개신교 가운데에서도, 성공회 가운데 고교회파 성당들[59]천주교 수준으로, 어쩌면 그 이상으로 전례를 중요시한다.[60] 대부분의 성당에서는 매 주일 감사성찬례 때마다 향을 피우기도 한다. 또한 비단 성가뿐 아니라 감사성찬례 중에 행해지는 대부분의 기도문들마저 전통적인 곡조에 맞춰 노래로 부르기 때문에, 장엄함을 느낄 수 있다.
    • 대한예수교장로회 중 가장 보수적이라는 고신의 경우 피아노 외에 악기, 찬송가 외에 CCM을 금기시하기도 했다.
  • 모든 주류 개신교 교파의 소위 현대 개신교 음악들은 밝고 경쾌한 것 일색이다.
    • 일부 진실. 모든 개신교 음악들이 전부 밝은 것은 아니지만 주로 연주되는 것은 밝은 쪽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러나 소위 "복음성가" 나 "가스펠" 로 알려진 수십 년 연륜을 자랑하는 옛날 곡들을 뒤져보면 굉장히 애절하고, 때로는 절규하는 듯한 비통한 음악도 종종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벙어리가 되어도》나 《얼마나 아프셨나》. 이건 작사자가 그 조용기 목사다. 그래도 상당히 인기를 끌기도 했고 꽤 괜찮았는지 개정본 새찬송가에 실리기도 했다.
  • 저 대학이 모 종교에서 만든 대학이라고? 그럼 저기 다니면 나중에 나도 전도하러 다니고 그렇게 되겠네?
    • 기독교, 불교 재단의 대학교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도 무신론자는 얼마든지 많다.[61] 심지어는 신학대학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도 무신론자는 적은 비율이지만 있다. 국외의 사례로는 몰몬교 재단의 브리검 영 대학교는 신자에 한해 학비를 대폭 감면해준다. 다만 신자 이외에는 들어가기도 쉽지 않긴 하다. 그리고 종교계 대학에 간다 해서 그 종교로 강제로 개종시키는 일도 없다. 다만 몇몇 대학은 그 대학이 추구하는 종교를 가진 사람만 입학을 허가하기도 한다. 국내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총신대학교가 있는데, 이 학교 입학조건은 세례를 받은 개신교 신자이다. 따라서 이 학교 학생들은 거의 모두가 기독교인이라 봐도 무방하다.
  • 개신교는 모두 호모포비아적으로 동성애, 동성애자를 배척한다.
    • 개신교 중 엄격한 개혁주의, 복음주의 노선을 취하는 보수적 교단, 교인들은 동성애 문제에 대해 강경하게 반대하지만,[62] 진보적 성향의 교단, 교인들은 오히려 동성애자, 동성애에 대한 태도가 가톨릭보다도 진보적이다.[63] 실제로 미국 성공회, 미국장로교회(PCUSA) 등 진보, 중도 교단들은 동성결혼을 인정할 정도이고, 이 중 성공회는 동성애자 사제, 주교까지 존재한다.[64] 개신교 내 중도보수파의 경우 "동성애 성행위 자체는 죄악시하지만 동성애자를 차갑게 배척할 게 아니라 사랑으로 품어줘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다. 심지어 홍석천도 모태신앙이라고 한다.
  • 개신교에서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믿음을 고백하기만 하면 천국에 갈 수 있고, 구원받은 그 사람은 죽을 때까지 무슨 짓을 하든지 무조건 천국에 간다."고 믿는다.
    • 일부 개신교 종교인들이 섞어놓은 이 교리는 쉼표 전후로 나누어서 두 부분으로 생각해야 한다. 전자와 후자는 양립할 수 없으며 반드시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 즉 AND 가 아니라 XOR 다. 그런데 개인의 의지로 믿음을 고백하는 것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훗날 자기 하기 나름에 따라 구원을 상실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구원의 불변을 강조하는 쪽에서는 개인이 아무리 원하더라도 구원받지 못하는 케이스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럼에도 이 2가지 교리가 합쳐진 이유는 이렇게 해야 신자들의 입맛에 맞고, 신자들을 마구 끌어모으기도 쉽기 때문. 하지만 어느 쪽에서는 일단 믿음이란게 정말 있으면 죄 회개를 하고 새사람이 되기 때문에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여기서 주장하는 회개란 고의로 일 저지른 후 잘못했다 하고 또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용서를 빌고 다시는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는것이다.)
    • 이에 대해서는 이 항목이 항목을 참고. 관련 도서로는 《천하무적 아르뱅주의》 도 같이 참고.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현재 칼뱅파와 함께 양대 축을 이루고 있는 웨슬리안 신학은 알미니안주의와는 차이가 있다. 아르미니우스파가 주장한 신인협력설은 개신교에서 극히 소수설이다. 감리회 계통의 웨슬리파는 알미니안주의를 기초로 하였을 뿐이지 그것과 같지는 않다.
  • 킹 제임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다른 성경들이 변개했다고 생각해서 그걸 읽는다.
    • 성경침례교파 같이 다른 성경은 변개된 사본이라는 생각으로 보는 사람은 소수이며, 대부분은 그냥 오랫동안 봐왔기 때문에 오히려 킹 제임스 성경 문체가 익숙하거나 멋지다고 생각해서 그걸 읽는 것이다.
  • 소위 주류교파가 이단판정을 내리는 기준은 순전히 교세의 규모와 헤게모니 여부일 뿐이다.
    • 의외로 종교적 신념은 강하다. 소위 말하는 메가처치 목사들이라도 엉뚱한 소리 했다가는 수많은 다른 목사들에게 몰매를 맞곤 한다. 당장 세계 교인 수 1위라는 여의도순복음교회조차 한때 이단 논란에 휘말렸다는 걸 상기해 보자. 일부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교세가 크기 때문에 이단 논쟁이 슬그머니 잦아들었다고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교단 차원에서 문제가 되었던 발언을 시정한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이미 교세가 큰 상황에서 이단 논쟁이 불거진 것이었다. 그리고 세계적인 종파인 통일교의 경우에도 국내 개신교인들은 이단 내지는 유사개신교 정도로 여긴다. 역시 세계구급인 몰몬교여호와의 증인도 취급은 마찬가지.
    • 반대로 규모가 작다고 하더라도 주류교파에 무난히 편입되는 교파들은 굉장히 많다. 특히 한국 장로회는 이루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사분오열되어 세세하게 나누어져 있지만 주류 풀에 포함되어 있다.
  • 주류 개신교는 뭐만 걸렸다 하면 "너 이단!" 을 무조건 시전한다.
    • 의외로 이단 판정은 간단치가 않다. 목사 개개인이 이단이라고 몰아갈 수 있는 시스템도 아니고, 각 소속 교단별로 판정을 내리는 조직이 따로 정해져 있어서 거기서 심사한다. 그리고 문제성이 발견된다 해도 곧바로 그게 이단인 건 아니다. 대충 두서없이 예를 들자면, 몇몇 기준에 따라서 참여금지, 교류금지, 불건전한 사상, 위험성, 경계집단, 제명, 출교, 이단성 농후 등등의 다양한 표현이 동원되며 제재 수위에서도 단계별로 차이를 둔다.
    • 그러나 이단은 아니더라도 위에서 언급한 징계 조치를 교회의 권력자나 권력 구조를 옹호하기 위해 악용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단은 이런 데 쓰기에는 지나치게 그 무게가 무거울 뿐.
  • 존 웨슬리와 그가 창시한 교파인 감리회는 알미니안주의 기반의 구원론을 따른다.
    • 현대 개신교의 구원관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루터의 이신칭의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아르미니우스주의자들이 주장한 신인협력설[65]웨슬리가 전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어설프게 개신교 신학을 아는 사람들이 흔히 잘못 아는 부분 중의 하나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주장하는 그 가톨릭조차도 극단적인 신인협력을 주장하지 않고 감리회와 비슷한 하느님의 선재은총과 그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의지만을 중요시한다.[6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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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신학 관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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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 합의사항49
토론 - 합의사항50
  • 유신론적 진화론은 과학을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시도이다.
    • 교황청을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은[68] 과학을 통해 하나님의 존재여부를 증명하는 게 아니라, 진화론을 비롯한 현대과학이 개인의 종교적 신앙을 위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NOMA와도 약간의 관련성이 있다.
  • 유신론적 진화론은 지적설계 Mk.II 일 뿐이다.
    • 애초에 논자들 면면부터가 다르다.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이 결정적으로 지적설계에 등을 돌리는 지점이 바로 간극의 신 논리다. 지적설계는 기본적으로 간극의 신에 호소하지만 유신론적 진화론자들의 입장에서는 거의 수용 불가능하다.
  • 자유주의 신학은 좌익적이다.
    • 실제로는 18세기~20세기의 고전적 자유주의 신학은 제국주의와 자유방임 경제체제의 나팔수였다. 자유주의 신학 자체가 인간의 이성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근대적이고 합리적인 나치 독일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옹호하는 입장이었으며, 아돌프 히틀러 집권 시기에는 히틀러를 예수와 동급으로 놓는 '독일인 교회'가 생겨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원래 자유주의 신학은 좌파라서 까인 게 아니라, 도리어 일제강점기파시즘국가신토에 반대하지 않았다는 점으로 까이는 경우가 많았다.
    • 해방신학이니 민중신학이니 퀴어신학이니 하는 것들은 1960년대를 전후해서 생겨난 후기 자유주의이며 20세기 이전의 자유주의와는 접점이 거의 없다. 보수주의 교파에서는 자신들의 견해와 다르면 구분 없이 "엇, 자유주의 신학이다!" 라고 매도하는 경우도 있다.
  • 보수주의, 근본주의 신학은 세속적, 정치적으로도 수구적이다.
    • 20세기 초에는 의외로 윌리엄 J. 브라이언처럼 근본주의적 신앙관을 가졌다 해도 세속적, 정치적 부분에서는 진보적인 인사들이 더러 있었다. 한국에서도 근본주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반제국주의적이었으며 독립운동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2차대전이 끝나고 냉전을 맞닥뜨리면서 반공주의 성향을 강화하다 보니 현대의 편견처럼 수구적인 이미지가 고착화된 것이다. 현대의 보수주의나 근본주의도 다 같이 묶기는 곤란한 점이 많다.
  • 신정통주의자유주의 신학의 일부이다.
    • 신정통주의 문서 참고. 도리어 당초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등장한 신학 노선이다. 총신대학교를 중심으로 정통주의 노선에서 이러한 오해가 많은데, 이는 영미권과 네덜란드의 보수 칼뱅주의 노선에서 "신정통주의 = 교묘하게 표현만 바꾼 자유주의" 등식으로 주장하는 바를 한국의 개신교계가 상당 부분 흡수했기 때문이다.
  • 성서무오설 = 축자영감설이다. 또는, 일반적인 성서무오설이 극단주의적으로 변한 것이 축자영감설이다.
    • 이는 나무위키 토론 게시판 등지에서도 종종 발견되는 오해다.
    • 뭇 개신교인/비개신교인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심지어 목사들도 2가지 개념이 똑같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저 2가지 학설은 서로 엄연히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다. 공통점이라고 해 봐야 둘 다 똑같이 "계시론" 이라는 신학 카테고리 내부에 존재한다는 것뿐. 성서무오설성경을 다양한 수준에서 판단하는 주체는 누구이고 기준은 무엇인가에 관련된 학설 중 하나이지만,[69] 축자영감설성경의 텍스트 중 얼마나 많은 것들이 신적 계시를 받은 결과인가에 관련된 학설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비개신교인의 입장에서는 전자의 주제에 대해서는 "성서유오설" 이라는 선택지를 고를 수 있지만, 후자의 주제에 대해서는 애초에 어떤 논의 자체가 불필요한 것이다. 어차피 세속적 관점에서 성경은 인간에 의해 쓰여진 경전이므로 계시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 정리하자면, 성서무오설은 성경이 텍스트 혹은 맥락의 차원에서[70] 오류가 없다는 학설이고, 축자영감설은 성경의 저자가 계시를 받을 때 신성한 영감 및 저술하고자 하는 충동(Impulsus ad scribendum)에 이끌려 자신만의 성격과 특기를 성경 저술에 있어 전방위적으로 활용했다고 보는 학설이다. 속칭 "극단적 성서무오설" 이라고는 결코 이해될 수 없는 다른 주제의 학설인 것이다.
  • 보수 개신교 신학에서는 축자영감설 = 유기적 영감설 = 기계적 영감설이다.
    • 먼저 정리하자. 뒤의 둘은 같은 주제이지만 앞의 하나는 다른 주제다. 축자영감설은 부분적 영감설 및 사상적 영감설과 경쟁 관계이지만,[71] 뒤의 둘은 별도의 주제이면서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 학설이다. 대략 성경의 저자들이 어떠한 동기와 방식으로 계시를 받았는가에 관련된 주제. 유기적 영감설(Inspiratio organica)과 달리 기계적 영감설(Inspiratio mechanica)은 성경의 저자들이 일종의 황홀경에 의한 무아의 상태에서 기계적으로 성경을 받아 적기만 했을 것이라는 학설이다.
    • 많은 비개신교인들이 근본주의 개신교 신학에서 기계적 영감설을 채택하고 있으리라고 짐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고대의 몬타누스주의 신학자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 근본주의라도 이 주제에 대해서는 유기적 영감설을 채택하고 있다.
  • 축자영감설과 유기적 영감설은 서로 경쟁 혹은 상충 관계에 있다.
    • 2가지를 동시에 채택하는 것이 가능하며, 예를 들어 이 경우 "성경은 저자의 개성과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방식으로 기록되었으면서도 그와 동시에 결과물에 대해서는 100%의 신적 권위를 인정한다" 는 입장이 나온다. 자유주의 신학에서는 둘 중에 보통 축자영감설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고, 비개신교인의 경우 신 존재증명 자체가 미제로 남아 있으므로 양쪽 모두에 대해 전적인 거부를 할 수밖에 없다.
  • 유기적 영감설은 성경의 유오성을 전제한다.
    • 상술되어 있듯이 성경의 오류에 관련된 학설과 성경 저술의 동기에 관련된 학설은 엄연히 서로 다른 개념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대표적인 근본주의적 교파들에서도 성서무오설을 채택하면서 그와 동시에 유기적 영감설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 가톨릭의 경우 성서무오설 자체를 거부하면서 그와 동시에 유기적 영감설을 채택하고 있다. 따라서 이 2가지는 양립 가능하다고 보아야 하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의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다.
  • 원래 성서무오설, 기계적 영감설, 젊은 지구 창조설이 기독교 주류 의견이었는데 현대에 과학이 발전하고 자유주의가 유입되면서 변질되었다.
    • 기독교 4대 교부 중 하나로 추앙받는 아우구스티누스도 성경을 비유적인 의미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6일 안에 창조했다는 성경 구절에 대하여 "1일이 우리가 아는 1일과 같지 않을 수 있다. 하나님께는 1일이나 1000년이나 다를바 없다."라고 주장했으며 이에 대해서 허튼 지식으로 뭐라 하는건 멍청한 짓이라고 깠다. 또한 개신교의 종교개혁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장 칼뱅도 비슷하게 창세기 비유라고 주장했으며 천문학을 배울거면 성경 말고 딴데가서 배우라고 했다. 정 반대로 위기를 느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더 강조하게 된것에 더 가깝다.
  • 한국에서 성공회 신자들은 죄다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이다.
    • 젊은 타교파 출신 개종자들의 경우 그런 경향이 다수 있으며 일부 정치적인 목소리가 강조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경호 베드로 의장주교는 성공회의 정치적 중립을 강조하고 있으며 지역과 세대, 교회의 환경마다 성향은 다르다. 즉 나머지 교인들은 대한민국의 평균적인 정치 성향 분포 내에 있다. 상대적으로 농촌이 많은 대전, 부산교구로 가게되면 일반적으로 진보적이라고 알려진 성공회의 다른 모습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특히 노년층의 경우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신자들이 더 많다. 또한 김승연 한화 회장[72]조선일보 사주 일가는 성공회 신자들이고 성공회 내부에서도 소위 '좌파 성향'의 사제, 신자들의 언동을 비판 하거나 반발하는 등의 갈등도 상당하다는 점에서 성공회의 정치성향이 꼭 일률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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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세계의 개신교 통계[편집]

이 부분은 영어 위키백과Protestantism by country# 항목을 토대로 하여 작성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의 통계를 반영하여 개신교인 인구수가 늘었다.
  • 세계 최다 개신교 신자 보유국은 역시 미국으로, 약 2억 명의 신자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전체 인구 대비로 봤을 때는 100명 중 46명이 개신교 신자로 주류이긴 하나, 사회적 다수는 아니다. 하술하겠지만 서, 북유럽 개신교는 과거에 비해 쇠퇴한 추세이기 때문에 미국 이외에 실질적으로 개신교가 사회적으로 파워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지역을 들자면 개신교가 성장하고 있는 곳들은 중남미,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국가들 등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 권역별로 나누어 보면 개신교 신자 수가 가장 많은 곳은 북아메리카이며, 전체 인구 대비 신자 수가 가장 많은 곳은 북유럽이다. 반면 북아프리카는 전체 개신교 신자 수로 보나 인구 대비로 보나 꼴찌다.
  • 개신교 포함 기독교 신자는 전 세계 인구의 약 30% 정도이며, 고든콘웰신학교 부설 세계 기독교 연구 센터에 따르면 개신교인 숫자는 8억 남짓으로 추정되는데, 전세계 인구의 12% 정도다.
  • 세계에서 가장 개신교 신자 비율이 적은 국가는 당연히 바티칸 시국으로 그 비율은 무려(?) 0%. 애초에 가톨릭이 아니면 국민으로 들여보내주지 않기에 가톨릭 100%를 자랑하는 나라다. 이슬람 국가같은 건 어떻냐고 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도 지하교회가 있다. 심지어 이란이나 북한과 같이 정말 막장 테크를 타는 국가들에서도 몇몇 지하교회가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바티칸 시국이 유일무이한 개신교 신자 0% 국가다.

12.1. 서, 북유럽의 개신교[편집]

북서유럽 국가들은 오랫동안 개신교가 한국의 유교처럼 열성적으로 믿어야 할 종교라기 보다는 그냥 하나의 문화적 요소 정도로 녹아들어가 버렸고 이는 역설적이게도 대다수 국민들이 개신교와 소원해지는 원인이 되었다. 독일, 스웨덴 등 루터회 신자가 많은 나라들은 아예 세금의 형태로 국민들에게 헌금을 강요하는 바람에 이에 대한 반동이 1960년대 이후의 자유주의, 무신론 정서와 맞물려서 젊은 세대로 갈수록 교회를 다니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대다수는 태어나자마자 교회 명부에 자동으로 등록되고 세례와 견신례, 결혼식, 장례식 등을 대부분 교회에서 치르지만, 가장 중요해야 할 일요일 예배에는 무관심하므로 유로바로미터 등에서 내놓은 설문 조사를 보면 형식적으로 개신교 신자이나 교회 출석은 거의 안 한다고 응답하며 실질적으로는 무종교나 무신론자에 가까운 태도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

유럽의 개신교가 2차 대전 이후 변화된 사회상을 제대로 캐치하지 못한 탓도 분명 있지만, 반대로 사상적인 균형을 잡지 못한 것도 몰락에 일조했다는 주장이 있다. 원래 개신교의 핵심 자체가 "참 인간이면서 참 하나님인 예수를 유일한 구세주로 믿어야 구원받는 것"인데, 이를 배타주의 혹은 근본주의로 여기고 배척해 버리니 날이 갈수록 신자들은 교회에 가거나 신앙생활을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75]

그래서 교회의 실질적인 사회적 영향력은 과거에 비해 매우 약해졌고, 심지어 출석수 감소로 인해 노인정화되거나 아예 문닫고 다른 용도의 건물로 개조되는 교회들도 흔하다. 바이블벨트와 유사한 동네들이 네덜란드와 북유럽에 소수 남아있긴 하나, 이마저도 2010년대 기준으로 위태로운 상황이다.

물론 그들도 자국의 개신교의 이런 현상들에 대해서 위기의식을 가지고 어떻게든 성도를 확보해, 자기들의 신앙을 유지하기 위하여 예나 지금이나 여러모로 고군분투하며, 그래서 흥하는 식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는 교파들도 있지만, 그래도 거듭 말하듯이 과거에 비하면 교회가 사회적으로 가지는 영향력이 약화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12.2. 중남미, 아프리카의 개신교[편집]

중남미는 잘알다시피 인구의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인 가톨릭 문화권으로 알려져 있다. 단, 실제로 와 보면 '나는 가톨릭 신자입니다.'라고 말은 하면서 성당에 안 가본지 오래된 사람들이 있다.

반면 계속해서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개신교 신자들은 가톨릭 교도들에 비해 신앙심의 정도나 정기적 예배 비율이 월등하게 높긴하다

최근 중남미 지역의 전반적인 추세에 따라 주류 가톨릭 교세는 주춤하고 서서히 낮아지는 반면, 개신교, 독립교회나 기타 그리스도교 종파 인구가 늘어나기도 한다. 과거 한국이 그랬듯 성공회, 장로회, 감리회오순절교회 위주로 성장하는것도 주목할 만한 요소. 이는 다양한 악기를 쓰고 체험적 은사를 강요하는 오순절교회의 특징이 감성을 중시하는 중남미인들의 성향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란 시각이 있다.

특히 브라질같은 경우에는 개신교가 비공식적 집계로 거의 20~30% 가깝게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아울러 그동안 잊혀졌던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개신교 역본인 레이나발레라(Reina-Valera) 성경과 아우메이다 헤세비다(Almeida Recebida) 성경의 수요가 나날이 늘어나는 중. 이정도면 브라질에서는 거의 21세기판 종교개혁 수준이다.

한편 미국령인 푸에르토리코는 미국 영향을 받아 개신교가 15% 정도로 어느정도는 있다. 미국 본토에 이주한 푸에르토리칸 장로회 신자도 꽤 있다. 코스타리카도 개신교도가 13%정도에 달한다.

아프리카 역시 기독교, 그 중에서 사하라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오순절교회나 복음주의적 교회가 급속도로 폭증하고 있는 추세다. 이미 여러 통계에서는 개신교의 중심이 서, 북유럽, 북미의 북반구에서 중남미, 아프리카의 남반구로 이동하였다고 여겨지고 있다.

이렇게 개신교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당연히도 가톨릭의 권위주의와 경직성에 실망한 사람들이 대거 이동해 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성장하는 개신교를 엄밀히 살펴보면 흔히 생각하는 정통 개신교보다는[76] 오순절교회 및 그 파생교파의 비중이 훨씬 높으며 일부 토착신앙, 주술적인 요소와 섞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오순절주의나 복음주의 교파들은 대체로 누구나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점을 그 어떤 개신교 교파들보다 더욱 강조하는데 이는 빈부격차가 심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상당히 잘 먹혀들어가는 요소이다. 말하자면 1960~80년대 한국 개신교의 성장 과정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중남미에서 가톨릭은 침략자에 의해 강요받은 종교라는 인식이 아직까지 강하다는 점도 개신교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중남미에서 개신교로 개종하는 사람들 중에는 아직도 스페인과 가톨릭에 원한을 가진 원주민들도 상당하다. 한마디로 해방신학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며, 중남미의 오순절교회가 진보 성향이 강하고 국가에 따라서는 좌파 정부의 지원을 받기도 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77]

다만 오순절 은사주의 주도로 성장한 만큼 부작용도 없진 않다. 현지 개신교인들 중에도 성장세인 건 좋은데 잘못된 교리로 막나가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 역시 존재한다. 신사도 운동도 원래는 중남미 개신교의 성령운동을 북반구에서 역수입, 변형시킨 것이 시초이다.

또한 개신교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에, 반미 감정이 극심한 중남미에서는 개신교=침략자 미국의 종파라는 도식이 잘 먹히기 때문에 탄압도 많이 당한다.

과거 한국 개신교의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경향도 많다 보니[78] 기복신앙 논란이나 이단시비, 개신교 근본주의 담론과 이에 따른 전통문화 훼손 등의 문제점도 닮아가고 있다.

12.3. 아시아의 개신교[편집]

흔히들 한국을 제외한 다른 아시아 국가에서도 개신교가 크게 부흥하고 있으며 한국교회처럼 소속 국가의 정치사회 및 문화 분야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을 것이라는 지례짐작을 한다. 물론 아시아의 개신교 또한 아시아 대륙 전체의 신자 숫자로 따지면 유의미하게 성장세를 보이는 것은 맞지만, 아시아의 개신교는 공통적으로 자국의 토착 종교 및 주류 종교와의 경쟁을 통하여 개신교 교세의 성장이 국가적인 차원에서 견제받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나마 대한민국은 불교 및 무속신앙과의 경쟁을 하고 있지만 신자 숫자로 봤을 때 가장 교세가 큰 종교가 되었기 때문에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불교(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이슬람교(서아시아 및 서남아시아), 힌두교(인도), 무신론(북한)이 토착 종교 및 주류 종교의 위치를 점유하고 있기 때문에 개신교에 대해서 서방에서 건너온 외래 종교이자 제국주의 침략자의 첨병이라는 인식이 깊게 박혀있다. 가톨릭이 다수인 필리핀에서도 개신교에 대해서 좋지 않은 감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12.4. 국가별 개신교 인구수 순위[편집]

세계 순위
국가명
인구
비율
대륙 순위
1위
1.53억명
46%
북아메리카 1위
2위
7540만명
37%
아프리카 1위
3위
4279만명
22%
남아메리카 1위
4위
3997만명
2.9%
아시아 1위
5위
3681만명
73%
아프리카 2위
6위
3166만명
48%
아프리카 3위
7위
3200만명
50%
유럽 1위
8위
2112만명
25.4%
유럽 2위
9위
2024만명
7%
아시아 2위
10위
1920만명
47%
아프리카 4위
11위
1676만명
27%
아프리카 5위
12위
1572만명
45%
아프리카 6위
13위
1406만명
58%
아프리카 7위
14위
1371만명
18%
아프리카 8위
15위
1000만명
10%
아시아 3위
16위
918만명
68%
아프리카 9위
17위
876만명
18%
아시아 4위
18위
874만명
55%
아프리카 10위
19위
833만명
26%
북아메리카 2위
20위
810만명
67%
아프리카 11위

13. 가톨릭과의 종교관 비교[편집]

종교개혁시기 가톨릭 교회와 가장 큰 차이점을 일으킨 것은 루터가 재발견한 로마서의 이신칭의이다.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은 성서의 사도 바울로마서의 핵심 문구[79]이며 반복되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석의 통설은 교부시대 아우구스티누스의 해석으로 가톨릭 교회에서도 정통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무슨 차이이냐 싶지만, 가톨릭에서는 '엄밀한 의미에서는 인간 공로가 불가능하지만 유비적(analogous) 의미에서는 가능하다'고 보며 아우구스티누스 해석에 있어서도 개신교와 이견이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반발로 종교개혁가들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참된 해석자를 자처하게 된 것이다.[80] 유비적 의미에서의 공로가 존재한다는 주장을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인간은 아무리 자신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을 많이 찾고, 또한 그로 인해 받은 은혜를 힘입어 아무리 선행을 많이 해도 그 자체로는 하나님 앞에서 객관적으로 아무것도 아니어서 스스로는 자랑할 것이 전혀 없으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그러한 인간의 자유의지를 기특하게 여기신다는 주장이다. 개신교에는 자신도 모르게 유비적 의미에서의 공로의 존재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대표적으로 믿음의 선행을 하면 그만큼 천국의 상급이 쌓인다고 믿는 케이스를 들 수 있다.

가톨릭교도들이 개신교도들에게 행위구원론이라 공격받는 것을 억울해 하듯이, 가톨릭에서 루터주의와 개신교의 이신칭의를 선행이 필요 없는 이상한 믿음이라 주장하는 것도 역시 무지에서 비롯된다. 루터에 따르면 신자들이 복음을 믿어서 구원 받는 것과 별개로 율법에서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라 했기 때문에 선행은 그 결과로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중세 교회에서 행위를 중요시하여 교회에서 정해 놓은 선행을 점수화하여 사소한 일에도 수백년 수천년, 교회에서 정한 악행에 대해선 천문학적 시간 동안 연옥에 갇히는 것으로 선전했고 그대신 교회에서 원하는 선행을 하면 (예: 헌금으로 받는 대사) 잠벌를 없애주는 걸로 선전해왔기 때문에 중세의 대중신심은 선행을 구원론의 대가처럼 취급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중세시기 가톨릭 신자들은 세례를 받으면 지옥에 가지 않는다 믿었고 별의별 악행을 다 저지르고 면죄부 사고 과거를 통째로 용서 받고 또 같은 생활로 돌아가는 짓을 종교 개혁자들은 용납하지 못했다. 죄의 용서는 고해성사같은 일시적 이벤트가 아니라 평생 속죄하는 마음으로 해야하는 것이라 가르쳤다. 그리하여 개신교는 가톨릭에 비하여 세속적 윤리를 엄격하게 강조한다.[81] 선행(good works)의 개념도 다르다. 루터가 강조한 선행이란 가톨릭 교회에서 인정한 성지순례, 고행, 금식 같은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 보기에 합당한 선행으로 교회 전통의 성경적 근거가 불확실한 선행은 인정하지 않았다. 농부처럼 가난하고 자식이나 부양 가족이 있는 자는 교회의 선행을 할 가망이 없고 사제 계급을 독점한 유력계층의 독점물로 여겨졌는데 루터와 칼뱅같은 종교개혁자들은 한낱 농부가 가족들을 부양 하는 것이나 농부의 아내가 그리스도인의 자녀를 교육하는 것을 사제들의 행위보다 더 가치가 높은 선행으로 여겼다.

이처럼 중세 가톨릭의 선행(또는 공로; merits) 개념은 몇 가지 오류를 범하기 쉬웠다. 당시 가톨릭 교회에서 인정하는 선행은 실생활과 동떨어진 것들이었고, 보속의 대가를 선행으로 여겼기에 그동안 여러성인들의 공덕이 축적되는 개념으로 이해하고 이러한 '선행의 보고'를 교회에서 독점적으로 관리하며, 신자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세에 창설된 여러 특수 수도회가 서구사회에서 자선단체의 모태가 되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는데, 이들은 교육을 하거나 의료활동을 하는 식으로 수도회 바깥에서 회칙에 따라 사도직 활동을 벌였다. 하늘나라에 가고는 싶으나 죄로 인한 보속은 받기 번거로운 귀족이나 부유한 평신도들이 이 수도회들을 돈으로 많이 후원하였는데, 선행처럼 어려운 일들을 사제계급에 위임하고, 때에 따라 선행에 동참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특히 흑사병 이후 이런 경향이 심해졌다. 가톨릭 교회에서 점점 손쉬운 보속수단[82]을 점차 제공하기 시작했고, 면죄부는 상설적으로 팔리면서 기존의 이러한 선행들조차도 하려하지 않고, 죄와 구원에 대한 것이 선행이라는 삯으로 사고 파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14. 마르틴 루터와 칼뱅의 종교관 비교[편집]

마르틴 루터에 따르면 의인이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믿음으로 산다. 이를 반대로 보면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곧 의인이다. 의인은 성경에 따르면 구원을 받는 사람이고 이 의인은 믿음과 구원의 약속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일을 그대로 지상에서 실천한다. 즉 마르틴 루터에게 구원이란 믿음을 기반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었다. 진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선행과 구원이 약속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이런 주장은 필연적으로 칭의 전에 예정과 소명이 논리적으로 필요했기에 예정설 논란을 내포했다.

그럼 '참된 믿음을 가지는 사람은 어떻게 구분 가능한가?' 마르틴 루터는 이에 대해서 명확한 대답을 바라는 대중들의 열망을 따르지 않았다.[83]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그건 아무도 모른다, 하나님만이 안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겠다. 다만 성경에서 예수가 자신과 합한 자는 열매를 맺을 거라고 표현했기에, 마르틴 루터는 좋은 행위로 인해 구원을 얻는 것도 구원을 얻는 데에 믿음 이외의 것이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좋은 행위는 '믿음의 증거'가 된다는 논리를 폈다.[84]

하지만 후에 이것을 가지고 장 칼뱅이 기독교 강요에서 이전 종교개혁가 선배들의 노고를 집대성하여 정리하며 답을 제시했다. 즉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지 여부는 이미 예정되어 있다. 그리고 나은 구원이 예정된 사람에게 그 모습을 참된 믿음으로 발현하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주장은 인간이 선을 행할 수 있다는 자유의지를 부정하고[85], 예수십자가 수난을 오직 구원이 예정된 사람을 위한 것으로 해석되기 때문에 개신교계에서 큰 파란을 일으켰다. 장 칼뱅 본인마저도 모질게 들릴 수 있다고 인정할 정도. 이에 반대해서 아르미니우스나 존 웨슬리, 드와이트 요크 등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인이다'[86] 성화(聖化, 믿음 이후 올바르게 사는 삶), 최종적인 구원이란 여정을 말하였다.[87]

마르틴 루터장 칼뱅이 주장한 것들을 바탕으로 길거리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개신교 신자를 흔히 볼 수 있다. 예수 천국 불신지옥 문구 자체는 일단 모든 개신교에서 틀리지는 않았으나 개신교의 구원론은 영혼의 구원을 추구하는 것이고, 믿지 않으면 지옥불 속에 다이빙한다고 협박하여 강제 개종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신칭의에 대한 현대적 해석에 실패했기 때문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무슨 말이냐면 종교개혁 시기엔 전 유럽이 기독교 신자였고, 딱히 잘못된 믿음이라 생각하는 가톨릭에 맞서거나 신앙을 지키려는 측면이 강했지, 비종교인을 세뇌하여 개종하려는 시도는 18세기 유럽 개신교 신학계에서도 이단 취급을 받았다는 뜻이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성경문구는 사도시절에만 해당한다고 보는 게 통설이었기 때문.[88] 이 때문에 장로교회/개혁교회보다 상대적으로 인간의 자유의지를 중시하는 헤른후터(모라비아 형제회), 감리회, 침례회 등에서 선교 활동을 먼저 시작했으며, 공식적으로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는 1793년 자 인도에 파송된 영국 침례교 선교사 윌리엄 캐리(William Carrey)로 보고 있다.

여기에 한국의 개신교에 대한 부가 설명이 필요한데, 장로회가 다수이고,[89] 장로회를 뺀 나머지 가운데도 감리회(약 150만)가 큰 비중을 차지하여, 종파가 생각보다 다양하지는 않다. 이는 구한말 개신교 선교사들이 장로회와 감리회 선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사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장로회와 감리회 외에 침례회와 성결교회, 하나님의 성회(순복음교회) 등이 있다. 유럽에서 세가 강한 개신교의 맏형인 루터교회는 1950년대에 제일 늦게 들어온 데다 교회 수도 압도적으로 적어서 듣보잡 취급이고, 세계 개신교 최대 종파인 성공회도 역시 교세가 약하다. 루터교회와 성공회는 교리적으로는 이신칭의와 유일구원설을 믿고 마리아를 공경하지만 성모몽소승천, 성모무염시태, 평생동정 등의 교리들은 거부하며[90], 마리아가 지상의 신자들을 대신해 중보기도를 한다거나 중보자 노릇을 한다는 가톨릭 교리에는 반대한다.[91] 그러나 예배 형태나 건축, 의복 등 하드웨어상으로는 가톨릭과 유사하며 특히 대한성공회는 고교회파여서 더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하드웨어 상의 이질감이 루터교회나 성공회가 아무래도 따로 노는 듯 보이는 분위기 형성에 기여했다.[92]

이 양대 종파가 서로를 이단으로 간주하여 헐뜯고 싸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른 개신교 종파를 이단으로 규정하는 일이 잦은 상황에서 문제에 대한 책임의 소재를 밝힐 때에만 개신교의 다양성을 주장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도 볼 수 있다. 특정 교회 및 인물의 잘못이 전 종파의 잘못으로 치부되는 것은 옳지 않으나, 또한 절대 다수의 장로회가 다른 개신교 교단들과 다른 점을 아는 신자들도 적다. 장로회는 개교회중심주의라 교회에 따라 분위기가 다르다.

성공회와 일부 루터교를 제외한 개신교는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 공경을 상당히 부정적으로 보는데, 개신교 에큐메니컬 진영의 교단에서도 일단 이것은 성경과 거리가 먼 이단취급하는 교회도 있으며(물론 에큐메니컬 진영은 가톨릭에 대해 대체적으로 '이단'으로 낙인찍기보다는 '우리와 다른 전통을 고수하는 교회'로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더 비판적인 교단(반 에큐메니컬)은 잘못된 전통을 넘어서 19세기에서 20세기에 선포된[93] 가톨릭의 마리아론 교리를 심각하게 보며 "이단도 아니라 이제 이교다" 라며 더더욱 부정적으로 보는 교회들도 속해있다. 그러나 요즘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교리를 제외한 여러 요소에 있어 가톨릭을 좋게 보는 반 에큐메니컬 교회들도 늘었다.

이 문제는 종교개혁 당시는 개신교와 가톨릭 사이를 가로막는 커다른 장애물까지는 아니었다. 자세한 것은 마리아 문서의 개신교 입장 문단 참고.

가톨릭의 개신교 비판 중에는 개신교가 가톨릭과는 달리 교리 해석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가톨릭교황교황청이 중심인 반면, 개신교는 읽는 이에 따라 성경의 해석이 다양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종파가 갈리게 된다. 단일한 권위체계가 존재하는 가톨릭에 비해 개신교는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해석의 권위가 없어 분열이 필연적이라는 비판이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은 성서해석과 역사를 잘 모르는 의견일 뿐이다. 일단 성서 해석에 있어서 제멋대로 해석한다는 주장은 16세기 종교개혁시기에도 나왔는데 가톨릭 교회에서 공인한 신학박사과정을 나온 마르틴 루터는 물론이고 개혁주의의 가장 중요한 인물인 장 칼뱅조차도 가톨릭 교회의 기존 성서해석이 명백히 틀리지 않은 이상 기존 해석을 인정했다. 당시 개혁자들의 성서 해석 문제 제기는 중세후기 스콜라 철학의 연구와 방법론은 물론, 14세기부터 제기된 인문주의의 연구성과를 이어 받은 것이고 구체적으로 인문주의자 로렌초 발라나 에라스무스 등의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전 연구가 뒷받침된 것이지 당시에도 이미 여러 연구성과로 인하여 이의제기가 된 내용을 바탕으로 기존 가톨릭 교회의 정본 불가타판의 오역과 필사본 전수시 오류나 첨삭과 그로 인한 잘못된 해석을 발견하여 원전연구를 재시도한 것이지 개인이 멋대로 해석한다는 주장은 비난에 불과하다.[94]

역사적으론 가톨릭 교회가 로마시대부터 현재까지 같은 모습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비록 전승상은 그렇다고 주장하나) 것은 대단히 무리이며 착각이다. 로마교회는 이미 종교개혁 이전 동방교회와 격렬한 신학적 논쟁끝에 분열했었다. 기독교의 역사 초기만 좁게봐서도 교리상으로만 봐도 로마시대부터 영지주의, 도나투스파[95], 펠라기우스 주의[96] 등으로 시작하여 다양한 의견이 있었고, 한때 로마 교황조차 펠라기우스의 의견에 찬성하기도 하는 등 로마의 의견이 항상 교회 안에 받아들여진 것도 아니다. 니케아 공의회부터 아리우스파 단성론 등 초기 신학적 논쟁은 로마가 아닌 동방에서 주도했으며 훗날 동서 교회의 분열인 필리오케 문제와 성화상 문제 등 주장 자체가 옳고 그름을 떠나, 교회 내에서 다른 목소리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다.

동서 분열 이후 서방교회에서 조차 교부시대 때부터 다양한 의견들이 나뉘었고, 현재 가톨릭 교회에서(개신교에서도 인정하는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대교부들의 입장이 통설로 정리되어 온 과정이 교회의 역사이다. 그리고 발도파처럼 개신교의 선구자급으로 가톨릭 교회의 내부 개혁을 주장하던 움직임과 목소리가 있으면 열심히 이단으로 사냥하여 태워 박멸한것이 성공한것이지[97], 가톨릭 교회가 교황아래 한치의 의문점도 없이 2천년을 이어왔다는 것은 아니며, 꼭 옳은 점이라 여기지도 않는다.[98]

개신교에서는 오히려 전통의 권위에 의존하여 초기 기독교와 멀어진 근본 원인이 가톨릭 교회에서 성경 해석권한을 교황에 있다하여 (평신도에게 성경 금지, 성서 번역금지 등) 지식을 독점하다 인문주의와 그에 영향을 받은 종교개혁에 공격을 받은 것처럼 권력있는 이나 많은 이가 따르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니며, 따라서 인문주의 모토인 ad fontes(근본으로 돌아감)을 통하여 일반사제는 물론 평신도까지 성경적 지식으로 무장하여 명백히 잘못된 가톨릭 전통주의와의 결별을 통해, '전통에 대한 맹종이 올바른 신앙인가'가 종교개혁시기 논제였고 "권위에 대한 믿음을 믿음의 권위로 대체하려는것이 당시 종교개혁 주의자들의 목표였다.

15. 개신교의 분열성[편집]

한국 개신교에 수백개의 교파들이 있음을 근거로 들면서 개신교의 분열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한국에 있는 수백개의 교단 중 인지도가 어느정도 있으며 사회에 영향력을 가지는 교단은 일반적으로 10-20개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다. 장로회가 60% 이상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데, 장로회 내부에서도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대소요리문답 하이델부르크 신앙고백 등을 공통의 믿음으로 선언하는 교단만 같은 장로회 교단으로 인정하지 수백개의 교단이 나뉘어 삼국지 찍듯이 세력 다툼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가톨릭이나 정교회를 타교로 볼지언정[99] 같은 개신교인 장로회, 감리회, 침례회 등은 서로를 타교로 보지 않으며, 교회제도(감독제 등), 강조하는 교리(침례 등)등이 조금씩 다를 뿐 같은 믿음의 형제로 본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서로 나뉘어서 반목 타령만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에서는 대체로 한국교회총연합, 한국교회연합,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소속 교단이라면 신도들은 물론이고 목회자들간의 교류도 흔하게 이루어지고 이들 교단 중에서 소속 교회를 옮기는 것도 그냥 거기가 집에서 가까워서라고 말하는게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닐 정도로 서로간의 거리감은 크지 않다.

장로회침례회와는 다르게, 전통적인 전례에 부정적이지 않은 (혹은 긍정적인) 루터교회성공회도 타교로 보지 않는다.[100] 이들 교파는 모두 '개신교'라는 이름 아래 연합하고 있다.

개신교 교파의 분열상 자체는 한국만의 특징이 아니고 미국이나 영국, 서북유럽에서도 한참 때 일어났던 현상이다.[101] 당장 먼나라 이웃나라 네덜란드편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통일된 중앙권위가 없음을 아쉬워 하는 것도 일리가 있지만 이것은 가톨릭 교회의 중앙집권화된 역사 이래 수많은 오류와 범죄들을 보면 꼭 좋은 것만으로 보기 어려우며 개신교의 교회정치 시스템들이 무조건 나쁘다고 보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나치독일시대 가톨릭 교회는 교황청과 초기 나치정권의 정교협약에 침묵을 지킬 것을 명령 받았으나[102] 개신교는 일원화된 구조가 아니라서 나치가 조직한 '독일인 교회'에 반발한 목사들이 고백교회를 만들어 반 나치 투쟁을 벌였고, 우리나라에선 선교사와 모국 교단 교회 내부에서도 신사참배 문제를 놓고 격렬한 논쟁 끝에 신념에 따라 참배를 거부한 인물들이 현재까지 존경 받으나[103] 한국 가톨릭 교회는 로마와 일본 가톨릭 교회의 명령에 순응하여, 신앙이 아닌 문화로 받아들이는 한 교리적으로 딱히 문제가 없다고 판단된 신사참배를 문제삼지 않았고 저항도 없었다.

16. 민족주의와의 결합[편집]

보편성을 부정하는 데서부터 (배타적) 민족주의와 결합하기 쉬운 구조이다.[104] '독일 민족'이라는 정체성부터가 종교개혁 시기를 통해 나온 것이다. 한국이나 미국처럼 헌법에 정교분리를 못 박아놓은 나라에서조차도 개신교는 내셔널리즘과 결합하는 경우가 잦고, 영국과 북유럽에서는 아예 국교회라는 개념으로 발전하기까지 했다. 특정한 문화를 배경으로 자생하여 유독 특정 지역에서만 교세가 강한 교파들은 역사적으로 민족주의/국가주의와 결합하려는 시도가 흔히 있어왔다. 대표적인 예로 잉글랜드의 성공회, 스코틀랜드의 장로회, 독일의 루터회 등을 들 수 있다. 현재의 성공회와 루터교회는 전세계에 퍼져 각 나라마다 관구 또는 교구를 두고 있고, 각 관구가 상하관계 없이 서로 평등하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이런 우려가 어느정도 해소된 상황이다.
  • 초기 종교개혁 시기에는 마르틴 루터 쪽에서 가장 성경의 원형에 맞게 살고자 노력하였다고 한다. 그러한 노력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이 개신교파끼리의 성만찬 논쟁인데, 마르틴 루터는 신약에 나오는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을 나누어주며 이것이 자신의 살이라고 한 것, 포도주를 나누어주며 이것이 자신의 피라고 한 것을 두고 '빵에 예수의 몸이 내려오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 이론은 가톨릭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을 받은 스콜라 철학을 바탕으로 한 화체설(化體說)과는 차이가 있다. 빵은 빵일 뿐이며 그것이 신성한 육체로 변하지 않는 것이 큰 차이. 이에 반해 츠빙글리는 '상징적인 것'으로, 후기로 갈수록 종교개혁자들은 루터파와 개혁주의 계통에서도 활발한 논쟁이 이어졌으며 루터 생전에도 루터파의 필리프 멜란히톤, 개혁주의에선 마르틴 부처 등이 둘 사이의 입장을 조절하며 자신들의 이론을 발전시켜왔다. 한 세대 후 칼뱅주의에서는 둘 사이의 영적 임재설을 취한다. 현재까지도 루터주의와 칼뱅주의(개혁주의)의 차이점을 들자면 예정설과 더불어 성만찬 논쟁이다. 다만 현재에는 개신교 교파 내에서 그다지 심각한 신학적 차이점으로 여기진 않으며, 1973년 '로이엔부르그 합의서'에서 루터와 칼뱅의 성찬론은 같은 의미를 표현만 다르게 한 것이라는 데 합의하였다.[105]
  • 삼성직[106]을 인정하는 성공회까지도[107] 만인사제설을 일부 받아들였고[108], 나머지 교파에서는 사제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목사라는 지위는 목회를 이끄는 목회자에 해당하며, 교육자와 설교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칼뱅주의 장로회에서의 목사는 평신도인 장로와 같으며 설교하는 장로일 뿐이다. 장로와 감독(주교)제에 반대하는 회중교회에서는 회중(대중)에 뽑힌 자가 설교자를 할 정도로 성직자 계급을 강하게 반대한다.
  • 개신교에서는 대체로 수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109] 종교개혁자들은 소명(Vocatio)을 강조하여 세속적인 하찮은 일이라도 하나님이 주신 일로 열심히 일하는 것이 수도자성직자의 행위와 다를 것이 없다고 주장했고 이신칭의에 따라 믿음 없는 수행과 수도행위는 우상숭배나 다름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또한 당시의 수도원들이 대부분 타락하여[110] 특권 집단화 되었기 때문에 영국, 독일 북부와 북유럽 국가들은 상당수의 수도원들을 폐쇄 및 파괴했다.
  • 종교개혁 시기 가톨릭의 금육 금식[111]을 비판한 역사에, 오로지 성경만을 신조로 삼는 교리상 신약성서 바울의 서신에서 유대인의 율법 중에 음식에 대한 것은 지킬 이유가 없다고 명백히 밝혔기 때문에[112] 현재 개신교는 전 세계 종교들을 통틀어서 시크교와 함께 육식에 매우 관대한 종교이기도 하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에서도 개신교 문화권은 고기 요리가 발달한 경우가 많다.[113] 대표적으로 영국과 북유럽.[114] 그리고 장 칼뱅의 청부(淸富)사상이나 막스 베버의 영향으로 다른 종교 입장에서는 현세적, 속물적이라고 까이기도 하지만 이것도 교파마다 다르니 무조건적인 일반화는 하지 말자. 참고로 칼뱅은 루터를 우습게 여겼을 정도의 금욕주의자였다. 스위스 목사로 있을 때도 금욕주의를 설파했던 전력이 있다. 이나 담배 같은 기호품에 대해선 종파마다 달라서 애매하지만 가급적 피하는 종파가 많다. 특히 미국이나 그 영향을 크게 받은[115] 한국의 개신교에서는 목회자 뿐만 아니라 평신도들도 술과 담배를 금지하는 경향이 강하다.[116] 구한말 시절 외국 선교사가 보기에 지나치게 술 담배 노름에 빠져있던 민중들에 거듭난 삶을 보여주길 바라는 측면에서 술담배를 금지했던 것이고 현재에는 이전보단 많이 풀렸다. 적어도 예나 지금이나 술 담배 한다고 지옥 간다고 하는 목사는 없다. 예수님와인을 즐기셨는데 이 분이 천국이 아닌 지옥에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신다는 소릴 하는 사람은 없다. 성서에서는 술취하는 것을 죄악으로 규정했지만 술 마시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별도로 규정하지 않았다.[117] 즉 성서대로라면 취하지 않을 정도로 마시는 건 괜찮지만 실제 그렇게 양 조절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금주령이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설령 술 마시고 취했다고 한들 그런 걸로 지옥에 간다고 주장하는 목사도 없다.[118] 다만 장로회에선 목사들은 술 담배 금지 규정을 철저히 지키도록 한다.[119]
  • 이 술과 관련된 문제는 지중해권 지역과 북유럽의 음식 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는데 이 지역에서는 식수를 마실 때 수인성 전염병을 방지하고 그 지역 식수에 석회질이 많아 이 역시 건강에 악영향을 일으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술을 만들어 마시는 것이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었던 시기가 매우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그래서 이들 사회에서 술을 끊는다는 건 밥 숟가락을 놓는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였다. 예수가 성찬에서 빵과 함께 와인을 거론한 것도 당시 식생활에서 와인은 한국인에게 있어서의 김치조차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식탁에서 빠지면 곤란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당시 사회에서 술을 마시되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대인의 생각만큼 그렇게 쉬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대체로 그냥 술에 취해서 살았고 술 취한 삶을 매일 뉘우치는게 일상이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홍차커피가 이 지역에 도입되고 나서야 유럽, 지중해 주민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제정신을 가지고 생활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큰 과장은 없었던 셈이다. 이 시점이 되어서야 사회의 필요악이었던 술이 그냥 악이 되어버렸고 이슬람교 역시 술 대신 커피를 마시는게 가능해진 사회적 환경 속에서 강력한 금주 교리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셈이다. 성서꾸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오래된 경전이기 때문에 꾸란 만큼 강한 금주의 메시지를 전달하긴 어려웠지만 술에 대한 관점이나 우려에 대한 취지는 그 당시부터 단지 대체재를 찾지 못했을 뿐인 별로 좋지 않은 것에 대한 적절한 대처 수준이었으니 현대 기독교에서 술이나 기타 정신활동에 영향을 주는 물질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성서적 취지에서 완전히 벗어난다고 보기는 힘들다. 가톨릭 역시 개신교만큼 강하게 신도들에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는 것 뿐이지 몸에 좋지 않은 이런 것들에 대해 어지간하면 하지 마라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매한가지다.
  • 진보, 중도 성향의 교단은 성(性)에 관한 교리가 (이혼, 피임, 낙태를 절대 금지하는 등의) 가톨릭보다 상대적으로 유연하다. 다만 동성애의 경우, 진보 교단은 가톨릭보다 유연하고(일부 교단에서는 동성애자가 목회자/성직자가 되는 것도 허용할 정도), 보수 교단은 가톨릭보다도 빡빡하다.(예를 들면, 동성애자가 평신도로 입교하는 것도 금지.) 가톨릭의 공식 입장은 "동성 간 육체관계 및 동성결혼은 단호히 반대하나, 동성애자 역시 하느님께서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존엄한 인간이므로, 사랑과 친절로서 대해야 한다." 라는 것인데 개신교의 보수교단의 입장도 가톨릭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가톨릭과 보수 개신교 모두 동성애자는 죄로 인해 고통 받는 상태에 있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개신교와 가톨릭 모두 죄인이라고 해서 미워해선 안 된다는 것이 기본적인 가르침이고 죄인을 정죄할 자격이 인간에게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인간이 죄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애정을 가지고 도움을 주는 것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대하는 모든 기독교 종파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고 이 원칙에서 동성애 문제가 예외가 되지도 않는다.
  • 개신교 교단 중 대부분은 성호긋기, 십자고상,[120] 제단에 촛불 놓는 것,[121] 성만찬의 성변화 등을 가톨릭의 잔재 혹은 비성경적인 행위라 하여 배척한다.[122][123] 또한 가톨릭의 교황 중심적 교회관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가톨릭 신자에 대한 멸칭인 Papist(교황주의자, 교황숭배자)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나온 것.
  • 개신교의 원리 중 만인사제설과 성경자유해석은 교파의 분열과 이단의 난립을 낳았다는 지적이 있지만, 탈권위주의적 교회론과 후기 자유주의 신학의 씨앗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한편 오직 성경은 현대 근본주의의 씨앗이 되다는 비판도 있다. 물론 이러한 비판은 현대 개신교계가 성경신학, 성서비평학 등 성경에 대해서 굉장히 신중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 한국에서는 그리스도교 종파 중에서도 가장 세가 크고 대중적이지만 해외 밈에서는 가톨릭, 정교회와 함께 다루어질 경우 홀로 까이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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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개신교 관련 기관 및 단체[편집]

20. 개신교 주요 교회[편집]

21. 관련 문서[편집]

[1] 출처 1: Hillerbrand, Hans J. (2 August 2004). "Encyclopedia of Protestantism: 4-volume Set." Routledge. ISBN 9781135960285 - via Google Books. / 출처 2: Noll, Mark A. (25 August 2011). "Protestantism: A Very Short Introduction." ISBN 9780191620133. Retrieved 14 February 2015. 참조.[2] 교파의 수를 3만여 개로 보는 것은 '세계기독교백과(World Christian Encyclopedia)'에서 제시한 예상치로, 이 수치에는 교파 집계의 기준이 불확실하다는 비판이 있다.[3] 세계 개신교 인구의 절반은 오순절교회, 감리회, 성공회, 루터교회, 침례회, 장로회의 6개 주요 교파 중 하나에 속해 있다.[4] Quinque는 라틴어로 '다섯'이란 뜻이고, Sola는 '오직'이다. 위의 오직이 붙는 다섯가지 모토를 뜻한다.[5]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기 모토. <오직 성경>은 성경(구약 39권, 신약 27권의 총 66권으로 이루어진 개신교의 정경)이외 다른 책 혹은 경전의 권위를 인정치 않으며 <오직 믿음>, <오직 은혜>는 다른 수단이 아닌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만 구원 받는다는 뜻에 가깝다. 루터파 신학자 필리프 멜란히톤의 해설에 따르면 "우리는 오직 은혜로만 칭의받고, 오직 믿음으로 의로워진다.("sola gratia justificamus et sola fide justificamur")". <오직 그리스도>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믿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내용이고, <오직 주께(하나님께) 영광>은, 구원은 하나님이 시작하고 완성하시는 일이며 거기에 인간이 참여하는 부분은 없기 때문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이 받는다는 내용이다.[6] 드라마의 영향으로 헨리 8세앤 불린과 불같은 사랑에 빠져서 조강지처 아라곤의 캐서린을 버리고 이혼한 걸로 알지만, 헨리 8세가 이혼을 시도한 건 앤 불린이 7세 때부터였고, 적법한 결혼에서 낳은 왕자가 없으면 튜더 왕조가 단절될 위기였기 때문이다. 이혼 전후로도 권력을 이용하거나 아부꾼들이 여자들을 상납하여 수많은 여자들을 후렸고 남자 사생아도 두었다.[7] 다만 현재 후스파발도파는 개신교로 편입되어 있다. 참고로 후스파의 교리를 따르고 있는 교회로는 1918년에 루터교회와 칼뱅교회가 통합되어 생긴 체코 복음주의 형제회(Českobratrská církev evangelická)와 1920년 천주교 내 일부 개혁적인 성직자들이 천주교를 빠져나온 뒤 만든 체코슬로바키아 후스파 교회(Církev československá husitská)가 있으며 이탈리아에서 발도파는 발도 복음교회(Chiesa Evangelica Valdese)로 발전했다.[8] 교황 연대기 저자 존 줄리어스 노위치는 르네상스 시대 15~16세기보다 11~12세기가 더 타락했다고 본다. 그 이전에도 중세 교회의 타락상은 여전했다.[9] 다만 재세례파 일부는 예외다. 가톨릭교회와 개신교에서 나란히 박해했다. 유니테리언도 마찬가지.[10] 극단적인 근본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이렇게 교회를 옮기는 것을 굳이 말리거나 문제 삼지 않는다. 다만 교인들 사이에서 그 사람 신앙에 작지 않은 변화가 있나보다 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11] 가톨릭 측에서는 회심이라고 한다. 돌아왔다는 뜻.[12] 작센 선제후 요한, 헤센 방백 필리프 1세, 브란덴부르크안스바흐 변경백 게오르크(프로이센 공국의 설립자 알브레히트의 형),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공작 에른스트와 하인리히 형제, 안할트-쾨텐의 볼프강.[13] 슈트라스부르크, 아우크스부르크, 울름, 콘스탄츠, 린다우, 메밍겐, 켐텐(Kempten), 뇌르들링겐, 하일브론(Heilbronn), 로이틀링겐(Reutlingen), 이스뉘(Isny im Allgäu), 장크트갈렌, 바이센부르크(Weissenburg), 빈츠하임(Windsheim).[14] 카를 5세는 1519년 황제 선거시의 공약과 1520년 대관식 때 재차 서약하여 적법한 절차가 아니면 제국추방령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15] 다만 여호와의 증인과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몰몬교)는 더 이상 본인들을 개신교로 부르지 않고, 개신교계에서도 이들을 개신교의 일원으로 처주지 않기 때문에 이들은 독립적인 회복주의 교파로 분류되었다.[16] 현재 루터교회의 전신(前身)[17] 현재 개혁교회/장로교회의 전신(前身)[18] 현재 침례회의 전신(前身)[19] 현재 잉글랜드 성공회의 전신(前身)[20] 16세기 후반 가톨릭 예수회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주도로 스페인 치하 베네룩스와 프랑스내 스페인령, 남독일과 폴란드 왕국에서 개신교도 색출을 위한 마녀사냥이 성행했다.[21] 교황청에서 모든 로마 교회의 종을 울리며 기념주화까지 찍어낼정도로 바오로 4세가 매우 기뻐했다. 이런 반응은 오히려 개신교의 결집을 가져와 종교갈등이 더 심화되었다.[22] 특이할만한 점은, 루터파, 칼뱅파, 잉글랜드 국교회가 로마교회에 대항해서 서로 연합을 하던 당시에도, 제세례파(현재 침례회의 전신)는 이들 모든 교파로부터 배척당했다. 유아세례는 의미가 없으므로 "세례를 다시 줘야한다"는 주장은 로마교회/루터파/칼뱅파/잉글랜드 국교회 모두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해괴한 말로 생각되었다. 결국 훗날 재세례파의 다수는 믿음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하게 되고, 이후 침례교가 된다. 현재 미국에서 침례교 교인은 전체 인구 중 25%로, 제일 큰 기독교 교파이다. (그 다음으로 큰 교파가 오순절교회로 전체 인구의 8%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미국 내 침례교의 교세가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23] 이는 에큐메니컬(교회일치 운동)에서 반대 입장의 큰 논거다. 가톨릭 교회에서 전통을 근거로한 교리를 하나라도 철회 할 수 없다고 미리 선포했기 때문.[24] 특히 성상이나 스테인드 글라스 등 시각적 요소는 개혁주의에서 가장 혐오하는 요소이다.[25] 역설적으로 루터가 자신의 신학적 롤 모델로 삼았던 아우구스티누스는 당대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가톨릭교회의 윤곽을 잡은 인물이다.[26]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작은 10세기 경에야 그리스어로 번역되어 동방에 소개되었지만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27] 독어 Evangelische와 영어 Evangelical은 뜻이 다르다. 영어권에서 말하는 복음주의는 후자의 의미.[28] 기리사독교基理斯督敎, 줄여서 기독교.[29] 미국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세속국가지만, 모토나 국가(國歌) 등에 종교적인 표현이 들어있으며 오늘날에도 대통령 등이 연설이나 국민 담화를 발표할 때 잠언, 시편을 인용하는 등 그 색채가 깊게 남아 있다. 애초에 미국의 역사를 보아도 개신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미국의 역대 대통령도 개신교 비율이 압도적이다.[30]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개신교인들이 많이 연루되어서(105인 사건중 92명, 민족대표 33인중 16인, 김구, 안창호, 김규식, 여운형등 독립운동가들) 그 당시부터 개신교가 사회적 주류 종교로 올라왔다고 주장하는 의견이 있으나, 일제강점기 초기 개신교 인구는 1.1~1.3%에 불과했다. 1950년대 후반에도 개신교 인구비율은 3% 대였다. 개신교는 물론이고 천주교 신자 수 또한 폭발적으로 늘어난건 1960년대 이후다. 그리고 저 시절에는 천주교, 개신교 뿐만 아니라 불교도 똑같이 극소수였다. # 한마디로 60년대 이후에 모든 종교들이 늘어난 것이다.[31] 목사도 사제급이라면서 왜 장로도 사제급인지 의아할 수도 있는데, 원래 장로회에서는 목사도 설교를 하는 장로이다.[32] 교파마다 다른지는 확인이 되지 않으나 장로회 중 예장합동의 경우는 30세 미만이어도 "기혼자"에 한해 1년 이상 교회를 다니고 세례를 받은 교인이면 서리집사 자격이 된다. 예장통합, 기장, 감리회 등에서는 예장합동과 달리 30세 이상이어야 하지만 미혼자도 서리집사로 선출될 수 있으며, 일부 교회에서는 안수집사까지 선출되기도 한다.[33] 감리회는 주교제가 확고한 성공회에서 분립되어 나온 교파로, 감독제라는 일종의 주교제를 유지하고 있다. 주교제의 성직 삼품인 주교-사제-부제는 각각 감독제의 감독-목사-집사에 대응된다. 영어권에서는 감독이나 주교나 둘 다 Bishop이라고 한다.[34] 다만 천주교/정교회/성공회 등 보편교회에서는 (관구장)대주교라 할지라도 본인교구에만 관할권이 있고, 타 교구에 간섭할 수는 없다.[35] 서울교구, 대전교구, 부산교구[36] 감리회 자체가 성공회에서 나온것이다.[37] 다만 한국 성공회에서는 교구장 주교와 기타 주교들, 사제, 부제들의 정년을 만 65세로 제한하고 있다. 물론 교구장직이나 보좌주교직에서 물러났다고 해서 '주교'라는 명칭이 사라지지 않는다. 한번 유효하게 받은 서품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교제 교회면 다 해당된다. 다시 말하면, '전(前) 주교'라는 용어는 틀린 말이다.[38] 물론 교구장 주교는 주교좌 성당의 명목상 관할사제이다.[39] 하지만 본인 교구 외의 타교구에 대한 간섭권은 없다.[40] 평신도의 주교 피선은 70년대 초 헌장 개정을 통해 금지되었다. 사실 천주교도 평신도가 교황으로 선출되는 것이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41] 성공회는 임명제가 아니라 선출제(성직자단과 평신도단이 공동으로 선출) 이기에 현직 주교가 은퇴를 해도 다음 교구장이 선출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한 경우에는 '관리주교'라 해서 타교구의 교구장 주교가 그 교구를 명목상 맡는다. 다만, 실질적인 교구 행정의 전반은 해당 교구의 교구장 대리가 수행한다.[42] 오히려 기혼사제가 더 많다.[43] 일러두자면, 성공회의 모든 성직자(수도자, 수도사제. 즉 수사와 수녀, 수도사제 제외. 수도사제를 제외한 수도자는 성직자가 아니긴 하다.)는 결혼이 가능하다.[44] 개신교에서 교회의 머리는 오직 그리스도일 뿐이다. 16세기에 엘리자베스 1세가 잉글랜드 국교회의 수장 지위를 포기한 이후로, 영국 왕들은 위임받은 통치자(Governor)란 직위를 쓰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성공회에 개입하지 않는다. 북유럽 루터파 교회도 마르틴 루터가 세속 군주는 교회를 보호할 책임만 있고 간섭할 권한은 없다고 선을 그어놨다.[45] 물론 예장 통합 및 기하성(순복음) 계열은 보수 성향이 강하지만, 적어도 교회 일치 운동에 대해서는 비교적 전향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46] 목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직업엔 애로사항이 많이 있다.[47] 쉽게 설명하면 모든 목사는 개신교의 신학대학을 나왔지만 모든 신학대학의 학생이 목사가 되는건 아니고, 기독교계열 기업에 취업하거나 다른 직업을 갖는일도 있다.[48] 국내의 장로교만 해도 100군데가 넘는 교파가 있다. 그 외 교단들과 이단/신흥 종파들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한 숫자다.[49] 지나친 개교회중심 활동이 문제라면 문제가 된 경우이다. 교단내에 갈등이나 각자의 생각이 다른 문제로 갈라서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교단을 탈퇴해 새로운 교단을 세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50] 물론 교역자가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해 엇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를 일으키는 교인이 무조건 개신교인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기엔 또한 일반화의 오류가 될 수 있다. 교역자가 최선을 다해 지도했음에도 문제를 일으키는 교인이라면 다른 종교를 믿었어도 그럴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51] 2023년 현재 목사로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매우 독실한 개신교 신자다.[52] 심지어 신애 사건의 경우 이 막장 부모는 자기 교회 목사의 간절한 호소와 충고를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신앙치료를 주장하다 딸을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것이다. 이 담임 목사는 그것이 알고싶다와의 인터뷰에서 신애 부모를 두고 '말로 어찌 할 수 있는 위인들이 아니다, 강제로 해야 한다'고 표현하며 씁쓸해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본 회차 방영을 진행했던 문성근은 문익환 목사의 아들이고, 특집 방영 당시 진행을 맡았던 배우 정진영 역시 개신교 신자였음에도 이 참혹한 광경을 보고 눈물을 쏟거나 망연자실해하기도 했다.[53] 예를 들면 발혈치유나 수지침 요법, 아로마테라피를 통한 의학적 효과 등등이 있다.[54] 하지만 일부 기성 교단의 목회자나 교인이라 할지라도 정신과적 치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남아있거나 의지의 문제라 여기는 경우, "병원에 가지 말고, 기도해서 의지로서 이겨내자. 하나님을 의지하면 낫는다."라고 하는 안 좋은 예가 남아있을 수는 있다.[55] 국내에서는 총신, 고신 등의 신학교들을 주축으로 하는 스펙트럼에 해당.[56] "방언 못 하는 사람은 구원 못 받은 사람"이라는 말은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했던 말로, 이단 시비가 크게 붙어 이에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한 바 있다.[57] "기도를 했더니 충치가 금니로 변했더라!" 따위의 주장[58] 이름에 하필 토론토가 붙는 이유는 "토론토공항교회" 에서 이것이 처음 유명해졌기 때문.[59] 대한성공회는 대체로 고교회파 내지는 광교회파에 해당한다.[60] 고교회파 성공회 성당에서 감사성찬례를 드려보면, 현재 천주교 미사가 간소화되어 있다고 느낄 정도이다.[61] 애초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대학교들 중 하나인 연세대학교도 개신교 계열이다. 그런데 그 많은 학생들이 다 기독교인이겠는가?[62] 그래서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대신의 이단결의에서 퀴어신학을 이단으로 지정했으며, 각 교단이 이단성이 있는것으로 지정했다. 이는 퀴어신학을 따르는 섬돌향린교회도 똑같게 지정했으며, 소속 교단인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만 이단으로 지정하지 않았다.[63] 가톨릭에선 동성 간 성행위는 고해성사를 봐야 할 죄악으로 보며, 동성 성행위와 단절하지 못한 동성애자가 영성체에 참여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64] 물론 이 때문에 세계의 성공회 교회들이 분열되기도 했고, 지금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참고로 한국 성공회의 일부 사제들은 퀴어신학을 옹호하기도 하지만 교회차원에서 공식적인 발표는 없다.[65] 물론 펠라기우스의 그것처럼 극단적인 자력구원론은 아니긴 하다.[66] 가톨릭의 구원관은 '웨슬리안주의와 알미니안주의의 사이에 있다'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실제로 많은 개신교 신학자들은 가톨릭 의화교리를 곡해하며 세미펠라기안이라고 비판하는 경우가 많다.[67] 다만 아르미니우스와 아예 결이 다르다는 주장은 칼빈주의를 어느 정도 수용한 현대 감리회의 주장이고 웨슬리 본인이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실 자체는 맞는다. 사실 아르미니우스주의도 따지고 보면 이신칭의를 완전히 위반하는 구원관은 아니다.[68] 일례로 캘빈 컬리지의 하워드 반 틸이나, 위에서 언급했던 프랜시스 콜린스 등. 정작 하워드 반 틸은 ‘유신론적 진화론’이란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69] 즉 자유주의 신학을 통해 나타난 성서유오설은 성경의 타당성에 대해 인간의 이성을 최우선의 권위로서 동원한다. 신학계에서는 이를 "최종적 참조점" 이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한다.[70] 이것도 현대에 들어서는 신학자 파인버그(P.D.Feinberg) 및 1977년의 소위 "시카고 성경무오 성명서" 등을 통해 상당 부분 극복된 상태이다. 근본주의 신학자들도 어지간해서는 텍스트 하나하나까지 전부 틀림없는 진실이라고 주장하지는 않으며, 성서무오설이 바로 그것을 주장하는 학설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71] 흔히 근본주의 신학 풀로 싸잡아 취급되곤 하는 프린스턴대 워필드 학파에서는 성경의 100%가 신적 권위를 갖고 있다고 여긴다. 물론 비개신교인의 경우 애초에 신 존재증명이 미제로 남아 있으므로 0%로 대답할 수밖에 없다.[72] 다만, 이 사람은 진보주의적인 학풍으로 유명한 성공회대학교와 여러 진보 단체들을 대대적으로 후원하는 만큼, 실제로도 좌파 성향이라는 얘기가 많다. 애초에 재벌이라고 무조건 우파 성향이라고 단정짓는 게 잘못됐는데, 대부분의 대한민국 재벌들이 보수 성향인건 사실이나, 중앙일보의 현 사주인 홍정도 회장은 명백히 진보 성향이다.[73] 유독 대한민국에서만 이단 논쟁이 있는 교단이지만, 대한민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는 기독교회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교회로 규정되고 있다.[74] 투발루를 순위에 포함하지 않을 경우는 6위.[75] 독일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에 반하는 설교를 했단 이유로 목사가 고소당하는 일까지 있었다.[76] 물론 성공회, 루터교회, 장로회, 감리회, 침례회와 같은 정통 개신교 교회들도 늘어난다.[77] 조영현, 《21세기 라틴아메리카 종교 파노라마: 위기에 처한 가톨릭 교회》가 출처. 라틴 아메리카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과 얼켜 있어 중남미의 개신교는 정치색은 상당히 진보적이나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경우가 많다. 이는 오순절 신학의 특성에 기인한다.[78] 한국 다음으로 가장 큰 개신교 교회가 있는 나라가 다름아닌 칠레이다.[79]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로마서 3:28(개역개정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1(개역개정판)[80] 정확히 말하면, 아우구스티누스 본인부터가 은총과 공로의 관계를 애매하게 말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유의지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펠라기우스 이단에 맞서 은총의 무상성을 강조했지만, 또한 마니교의 숙명적 세계관에 맞서 자유의지를 강도했는데, 이처럼 정반대되는 두 적대자들을 논박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은총론은 복합적이고 때로는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많다.[81] 이 점에서 성리학과 통했기에 구한말 유림들이 긍정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개종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러한 점 때문에 20세기 이후 북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경직성에 학을 때고 개신교를 멀리하는 원인이 되어버렸다. 영국의 왕정 복고도 크롬웰 칼뱅주의 공화정의 이러한 경직성과 무관하진 않다.[82] 15세기 초반 교황청 분열시기를 마무리하며 황폐화된 로마 재개발을 위해 재개발 자금 확보를 위해 희년을 자주 선포하며 순례객들을 모았고 교회에선 면죄부를 팔고, 탁발수도자들은 성유물을 팔았다. 특별한 이벤트로만 팔던 면죄부는 그 영역을 넓혀가며 과거행위에 대한 면벌수단, 죽은자를 위한 면벌로 확대되었고 16세기 무렵엔 상설판매된다. 95개조 반박문의 직접적인 원인이던 도미니코회 요하네스 테첼은 아직 짓지도 않은 미래에 지을 죄까지 사면한다고 선전했다.[83] 과격 재세례파들이 선민의식을 가지고 고난받는 자가 선택된 백성이라면서 지배계급을 처단하는것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특히 토마스 뮌처의 농민전쟁 때 농민들의 폭동에 대해서 비판하며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을 받으나 고난받는 이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은 아니며 누가 하나님의 백성인지는 그분만이 아신다"라며 지지를 거부했다.[84] 다만 믿는다고 해서 죄인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복음을 믿음으로 의인으로 칭해지지만 여전히 율법 아래선 죄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자들은 가톨릭처럼 때에 따라 고해성사를 통해 죄를 씻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회개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루터 신학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의인인 동시에 완전히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율법적 죄를 부정하는 것은 초기교부 시대부터나 종교개혁시기에도 비판받은 이단 논리였고, 17세기 이후 이전의 종교개혁 신앙의 선배들의 열정에 비하면 현저하게 영성이 내려간 상태에서 등따습고 배불러지자 "우리는 이미 구원 받은 사람들이다" 라며 느슨한 신앙을 유지했었고 서로간에 죄, 회개, 구원 이라는 말을 교인들에게 말하는 자체가 금기시된 시절이 있었는데 이는 종교편의적 발상(불편한 것은 외면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라며 역시 크게 비판받은 태도다.[85] 칼뱅의 예정설은 역시 아우구스티누스와 루터의 자유의지의 영향을 거의 온전히 받아들였다. 이는 자유의지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유의지 중에 선한 것이 있으나 균형추가 악에 크게 기울어서 악을 행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면 루터는 자유의지는 악으로 완전히 타락하여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견해. 일단 칼뱅의 예정설은 한 마디로 잘라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이론이고 그 갈래도 매우 다양하며 칼뱅 이후에도 보충적인 해석을 덧붙인 신학자들이 많았다. 칼뱅 본인은 인간의 자유의지 자체를 부정한 게 아니라 구원에는 인간의 자유 의지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였다.[86] 일부 침례회에서도 받아들였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 개신교에서는 이를 이단시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피해를 보고 있는 교회들도 많다고 한다.[87] 성화가 성경에 없다는 소리가 있는데 중생(重生, 거듭남)과 성화 (거듭남 후의 삶)이 성경에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단순 발음 드립이면 할말이 없다.[88] 칼뱅조차 선교는 기독교 국가의 영역이지 교회의 영역이 아니라고 보았다. 루터주의나 칼뱅주의나 기존 가톨릭 신자나 사제를 대상으로 개혁신앙으로 변모하길 바란 것이지, 지평선 넘어 이교도들을 찾아다니는 걸 생각하지 않았다. 출처: 앨리스터 맥그래스의 《기독교, 그 위험 한 사상의 역사》[89] 한국 개신교 전체 신자 약 1000만 가운데 650만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장로회 내부에선 에큐메니컬 문제로 갈라진 합동, 통합 양대교단이 절대 다수이고 여러 교단이 있지만 군소교단의 세는 미미하며 10여개 교단이 대부분을 차지한다.[90] 하지만 성공회 내 일부 고교회적 성향을 가진 이들 중 이 교리들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있다. 교구나 교회에서도 개인의 선택을 존중한다.[91] 이것 또한 성공회는 제외이다. 특히나 한국 성공회에서는 80년대 까지만 해도 미사 중 고죄부분에서 성모와 성인들, 그리고 주교/사제와 지상의 교우들에게 전구를 청하는 부분이 있었고, 지금은 이 부분이 집전자가 교우들을 향하여 성호를 그으며 사죄를 선언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나, 성모송이나 여러 부분에서 아직 전구가 남아있다.[92]루터교회는 좀 애매한게, 일단 장로회, 감리회, 침례회등 다른 개신교 교단 신자들이 보기에는 생소하거나 어색한 요소들이 많기에 좀 다르게 보는 시선도 있지만, 한국 개신교의 표준 성경인 개역개정판을 자주 쓰고, 예배에 쓰이는 용어도 타 교단과 크게 차이가 안나며, 다섯 솔라 등을 강조하는 등 개신교적인 정체성에 꽤 뚜렷하기 때문에 크게 이질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또한, 대한성공회와는 다르게 예배당을 가리키는 말도 '교회', 목회자도 '목사'이고, 교회 인테리어도 몆몆 교회에 십자고상이 있는 정도를 제외하면 장로회, 감리회 등과 대단히 차이가 큰 건 아니기도 하며, 한국의 루터회는 신학적으로 대체로 중도적이기도 해서, 예장 고신 등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교단들과도 은근 교류가 있기도 하고 진보적인 교단들과도 교류가 있기 때문에, 신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진보적 색체가 강한 대한성공회보다는 이질감이 적다.[93] 그것도 교황무류성으로 선포된 교리이기 때문. 이 교리에 반발하여 가톨릭에서 분리된 교파가 복고 가톨릭교회.[94] 국내 꽤 많은 교단이 목사를 신격 우상화하고 목사가 멋대로 성서를 해석하고 설교하는 일이 있지만, 이는 타락한 일부가 저지르는 일이지 전 세계적인 현상은 아니다.[95] 북아프리카에 농촌과 산악지역에서 로마 국교화 이전 배교자 출신 주교들을 거부하며 로마 국교화로 타락한 기독교를 거부한 세력.[96] 브리튼섬 출신의 기독교인으로 은혜 없이 선행으로 완전해질 수 있다고 주장. 일시적으로는 로마에서 인기를 끌었다.[97] 아우구스티누스 시절에도 펠라기우스를 이단으로 선고했고, 이단은 두들겨 패서라도 돌아오게 만들어야 한다는게 교부들의 입장이었다. 그리고 단일화된 목소리가 항상 옳았다 주장하는것은 별개다.[98] 가톨릭 교회 내부에서도 개신교 출현 이전 공의회주의 출현, 19세기 교황 무류성 교리 선포 이후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라며 일갈한 영국의 가톨릭 신자역사학자 액턴 경의 경우처럼 가톨릭 내부에서도 절대 단일한 목소리만 나오는것은 아니다.[99] 특히 반에큐메니컬 계열 보수 교단. 교회일치를 강조하는 에큐메니컬 교단들은 가톨릭이나 정교회를 같은 믿음의 형제로 본다.[100] 장로회에서 루터회를 아예 타교처럼 봤다면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행사를 같이 준비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다만 성공회는 특히 보수적인 교파에서 미묘하게 보는데, 이는 대한성공회가 유독 보편교회(가톨릭)주의를 강조하는 고교회파(앵글로-가톨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그렇다. 원래 감리회도 전통적인 전례에 부정적이지 않은 교파이다. 해외에 나가면 성호를 긋는 감리교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장로회의 영향을 많이 받아 전례적인 요소를 많이 없앴다. 애초에 한국에 감리회를 처음 전파한 헨리 아펜젤러부터가 본래 장로회에서 감리회로 이적한 인물이다.[101] 같은 교파라고 해서 교회 분위기나 목사의 신학 스타일이 다를수도 있고 다른 교파 교회랑 더 같을 수도 있다. 개교회주의가 강하다.[102] 교황청이 초기 나치에 동조한 이유에는 무신론자 공산주의자인 소련을 나치가 공격한 것도 있다. 나치가 소련을 공격한 이유는 전혀 달랐지만, 결과적으로 적의 적은 친구니까. 무엇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아직 히틀러가 미쳐 날뛰지 않고 나치는 나름대로 독일의 멀쩡한 신생 정권으로서 기능하고 있었기 때문. 훗날 히틀러가 유대인과 집시를 무차별적으로 잡아들이고 그에 반대하는 가톨릭 사제들 역시 탄압하기 시작하자 곧장, 교황청에서도 성명을 내며 나치를 반대하기 시작했다.[103] 아이러니한 점으로, 독일에서는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이 나치에 저항했지만, 반대로 조선에서는 신정통주의 신학이 일제의 앞잡이로 전락했다는 점이다.[104] 성공회의 교회론에 대해 에큐메니즘 차원에서 긍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한스 큉도 이러한 점을 우려하였다.[105] 최주훈, 『루터의 재발견』, 2017 참조[106] 주교-사제-부제[107] 고해성사가 필수가 아니라는 것 =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중재자가 필요없다는 것을 의미[108] 천주교에서 사제는 서품으로써 세속과 구분된(이를 성별(聖別)이라 칭함) 특별한 존재로 보지만 성공회에서는 성찬을 집전할 권한을 받은 이로 보는 정도다.[109] 성공회는 19세기 옥스퍼드 운동으로 수도회를 부활시켰다. 서울주교좌성당 옆에 위치한 성가수녀회가 유명하다. 그 이외에도 성공회는 국내에 성 프란시스 수도회, 성 분도 수도회 등 다수의 수도회가 있다. 루터교회는 20세기 이후 수도회를 부활시켰다. 한국에서도 널리 알려진 바실레아 슐링크가 바로 독일 루터회 자매회 수녀다.[110] 쉽게 생각해서 고려말 사찰과 조선말기 서원의 폐해를 생각해보면 된다. 면세혜택과 치외법권이 주어졌기 때문에 생긴 폐해다.[111] 금요일엔 금식, 사순절 기간엔 고기는 물론 버터 금지, 양고기를 먹을 땐 양젖금지 등 계율을 어길 경우 중죄로 거의 지킬 수 없는 보속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를테면 스스로 발가벗겨서 회초리로 피가 나도록 매질하고 성벽 몇 바퀴 며칠동안 돌기, 강제 성지순례 등[112] 개신교에서 금육, 금식을 아예 안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사순절에 금식기도회를 가진다든지, 성금요일에 예수의 수난을 기리며 금육, 금식을 하는 식. 다만 가톨릭과 다른 점은 금육, 금식을 신자의 의무로 규정,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113] 애초에 종교개혁 3인방 중 하나인 울리히 츠빙글리가 금육일을 어기고 소시지를 먹은 사람들을 옹호한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다.[114] 독일도 마찬가지다. 루터교회권인 니더작센 요리가톨릭권에 속하는 라인란트 요리를 비교해 보자.[115] 성공회를 제외한[116] 유럽 개신교도 완전금지까지는 아니나 술, 담배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것은 마찬가지다. 일례로 덴마크를 제외한 북유럽 국가들은 술을 아무데서나 살 수 없는데 이는 국교인 루터교회의 영향이다.[117] 담배를 금지할 근거는 없다. 담배는 신구약 시대에서 수천년이 지나서야 신대륙에서 들어온 것이니까 당연히 성서에 안 나온다. 다만 성도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바울 서간의 내용(고전6:19)을 들어서 금주, 금연을 옹호하는 해석 역시 존재한다.[118]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과 섬김을 가르치셨지 죄를 짓지 말아야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가르치시지 않았다. 애초에 복음 자체가 자신이 매우 악한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119] 구약에서 나실인은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규정이 있다. 따라서 성직자에게도 더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120] 루터회의 경우도 십자고상이 아닌 십자가 틀만 부착하는 사례가 있다.[121] 장식으로 양초만 놓는 경우도 있지만, 보수교단을 제외하고 절기에 맞게 초를 켜는 경우도 꽤 많다.(대림절, 부활절 등)[122] 성변화는 성공회를 제외하고 부인하며 성공회의 경우 딱히 말리진 않는다.[123] 개신교적 관점에 따르면 가톨릭 전례 역시 성서의 진짜 율법서인 레위기를 기준으로 보면 딱히 근본이 있다고 할 만한 정통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사도들도 세례, 성찬식, 주기도문 같은 기본 중의 기본이 되는 의례를 제외하면 복잡한 절차 같은 것을 만들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 역시 전례가 무시되는 이유가 된다. 애초에 개신교는 가톨릭 교회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 등이 고대 교회 시절부터의 전례를 이어오는 근거인 성전승을 부정하며 16세기에 새로이 나타난 종파이기 때문에, '정통성'에 대한 관점이 기존 교파들과는 꽤나 다르다.[124] 중세 가톨릭의 신정정치, 권위주의를 타파하려고 나온 것이 개신교다. 특히 청교도들의 사상이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로 이어주는 자양분이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 미국 개신교의 일부 근본주의 또라이들 때문에 개신교가 자유민주주의를 배척하는 것처럼 보이지, 원래 프로테스탄드 정신은 정치적 권위주의는 배격하고 정치적 자유주의를 지향한다.참고글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이 문화적 자유주의를 배격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쳐도. 반면에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는 자유민주주의를 그리 긍정하는 입장이 아니었으며, 교황청과 일치를 이루지 못한 일부 극보수 전통 가톨릭인은 여전히 자유민주주의를 '현대주의의 오류'라며 매우 안좋게 본다.[125] 특정 교파에 속하지 않은 교회(이를 개신교에서는 초교파 교회라고 부른다.)이며, 전례적으로는 성공회를 따른다고 한다. 참고로 세계에서 가장 작은 가톨릭 성당텍사스에 있는 '투르의 성 마르티노 성당'이다.[126] 국내 소재 교회들과 같은 목록에 있지만, 목회자도 한국 사람이 아니고, 소재지도 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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