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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득구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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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1·22대 국회의원 강득구 姜得求 | Kang Deuk-gu | |||||||||||||||||||
출생 | |||||||||||||||||||
거주지 | |||||||||||||||||||
현직 | |||||||||||||||||||
재임기간 | 제9대 경기도의회 전반기 의장 | ||||||||||||||||||
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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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5월 27일, 경상남도 김해군(現 경상남도 김해시)에서 태어났다.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현재의 안양시 박달동 우성아파트 자리로 이사 와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안양시에서 살아왔다.
만안초등학교, 신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신성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2학년 때 가정 형편으로 인하여 중퇴한 후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1983년 10월 29일 육군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제51보병사단에서 소총수로 복무했고, 1984년 12월 29일 일병으로 소집해제되었다. 이후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한국철학과(90학번)[7]를 졸업하였다.
2004년 2월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정치행정지도자 전공으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만안초등학교, 신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신성고등학교에 입학했으나 2학년 때 가정 형편으로 인하여 중퇴한 후 고등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1983년 10월 29일 육군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제51보병사단에서 소총수로 복무했고, 1984년 12월 29일 일병으로 소집해제되었다. 이후 성균관대학교 문과대학 한국철학과(90학번)[7]를 졸업하였다.
2004년 2월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정치행정지도자 전공으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평화민주당 시절부터 민주당계 정당과 함께해오면서, 정치적 커리어를 쌓아왔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경기도의회 의원 선거[8]에 출마하여 35살의 나이에 당선되었다.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경기도의원 재선에 도전했으나 낙선했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안양시 만안구에 공천받았지만 지도부 내홍으로 인해 공천을 반납하였다.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열린우리당 후보로 도의원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9]
이후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소속으로 57.95%를 득표하며 도의원 재선에 성공하였고, 전반기에는 기획위원장을, 후반기에는 민주당 대표의원과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도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으로 출마, 55.4%를 득표. 3선 도의원의 자리에 오르며 전반기 경기도의회 의장으로 선출된다. 의장 재임시 대표적으로 의회 미화원들의 직접고용을 실천하였고, 본회의에 수화통역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의정활동에 헌신하였다.#
이후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소속으로 57.95%를 득표하며 도의원 재선에 성공하였고, 전반기에는 기획위원장을, 후반기에는 민주당 대표의원과 운영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이후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도 새정치민주연합 소속으로 출마, 55.4%를 득표. 3선 도의원의 자리에 오르며 전반기 경기도의회 의장으로 선출된다. 의장 재임시 대표적으로 의회 미화원들의 직접고용을 실천하였고, 본회의에 수화통역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의정활동에 헌신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본인의 지역구인 안양시 만안구 총선 출마를 위하여 의장직을 중도 사퇴하였다. 당시 같은 당의 이종걸 원내대표와의 경선 여부가 지역 사회의 초유의 관심사로 떠올랐는데, 이종걸 의원의 경우 지역에서 4선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필리버스터 정국에서 맹활약을 하는 등 전국적으로 높은 지명도와 인지도를 가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 시절 원내대표로서 당무거부 사태를 일으키는 등 당 내외의 거센 비난에 직면하였으며,[10] 게다가 안양의 경우 지역구 3구 모두 중진 국회의원들이 의석을 점하고 있는 등[11] 지역구 국회의원 교체 여론이 팽배한 상황이었다. 또한 평촌신도시로 인한 개발효과를 받은 동안구지역에 비해 만안구의 중심인 안양1번가는 그 명성을 잃은 지 오래된 상황이며,[12] 이로 인한 지역구 국회의원 교체 여론이 어느 때 보다 높은 상황이었다. 실제로 지역언론에서 발표한 강득구 후보와 이종걸 의원의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강득구 후보는 이종걸 의원에 비해 오차범위를 상회하는 우세를 보이고 있었으며, 지역의 여론 또한 심상치 않은 조짐이라는 것이 감지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나 경선을 하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이종걸 의원이 경선도 아닌 단수공천으로 결정되었다. 특히 이종걸 의원은 당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인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 중 한 명으로, 공천 과정에서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었다.[13] 강득구 후보 측은 본 결정에 강하게 반발, 경선 불발시 중대결단을 내리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강득구후보는 이종걸의원의 보좌관 출신인데, 신의, 도의가 없다라고 했다. 이종걸의원은 강후보가 도의원에 낙선하여 힘들게 살아갈 때 보좌관으로 채용하여 오늘에 이르게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총선을 며칠 앞두고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공천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백의종군하겠다. 이종걸 후보의 선거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며, '선당후사유세단'을 꾸려 이종걸 의원의 5선 고지 점령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경선을 하리라는 예상을 뒤엎고 이종걸 의원이 경선도 아닌 단수공천으로 결정되었다. 특히 이종걸 의원은 당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인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 중 한 명으로, 공천 과정에서 특혜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었다.[13] 강득구 후보 측은 본 결정에 강하게 반발, 경선 불발시 중대결단을 내리겠다는 선언을 하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강득구후보는 이종걸의원의 보좌관 출신인데, 신의, 도의가 없다라고 했다. 이종걸의원은 강후보가 도의원에 낙선하여 힘들게 살아갈 때 보좌관으로 채용하여 오늘에 이르게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총선을 며칠 앞두고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공천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백의종군하겠다. 이종걸 후보의 선거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며, '선당후사유세단'을 꾸려 이종걸 의원의 5선 고지 점령에 힘을 보탰다.#
이후 남경필 경기도지사 재임 시절, 경기도 연정부지사에 취임하였다.[14] 또한 남경필 지사는 경기도 연정(聯政) 2기를 맞아 이기우 부지사가 역임하던 '사회통합부지사'의 명칭을 '연정부지사'로 개칭하여 그동안 보건복지국·환경국·여성가족국 등 3개 실·국만을 소관하던 업무에서 보다 나아가 옛 정무부지사처럼 전체 실·국 업무를 아우르게 되는 강한 권한을 부여하였다. 이후 연정의 공식 종료를 선언한 2018년 2월까지 경기도 연정부지사 업무를 수행하였고, 훗날 인터뷰에 의하면 '싸움이 만연했던 도의회에서 싸움이 사라져서 기자들이 심심해 하더라' 라는 평을 남길 정도로 성공적인 도정 운영을 이끌어 갔다. 이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안양시장 출마설이 제기되었으나, 본인은 이번 지선에 불출마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결국 안양시장에는 최대호 후보가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되었다.
안양 만안구 관내에서 '검찰개혁은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을 응원합니다.'라는 내용의 지지 현수막을 내걸고#,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는 등 총선을 앞두고 출마를 위한 정치적 행보를 지속했으며, 예상대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안양시 만안구 예비후보로 등록하여 선거운동을 진행하였다.#
경선에서 안양시 만안구 현역 국회의원인 이종걸 의원을 누르고 공천을 받아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확정되었다. 4년 전의 좌절을 설욕한 셈. 당시 민주당 비주류에서는 이종걸 의원이 문재인과 대립했던 악연으로 문재인 친위세력의 강력한 견제로 탈락되었고 해도해도 너무했다고 뒷말이 무성했다.[15]
그리고 본선에서는 미래통합당 후보인 이필운 전 안양시장과 경쟁하게 되었다. 총선 당일 개표 당시 초반에는 양 후보 간 득표순위가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였는데 밤 10시를 넘긴 후에는 강득구 후보가 여유롭게 표차를 벌렸고 마침내 당선을 확정했다.
동별로 보면 석수동과 박달동에서 많은 표차로 우세를 점했다. 경기도의원 안양시 제2선거구가 석수동, 박달동, 안양2동인데 도의원 시절의 좋은 평가가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 동 중에서는 안양5동에서만 이필운 후보에게 열세를 보였으며[16] 안양4동에서는 매우 근소한 표차로 우세였다.
그리고 본선에서는 미래통합당 후보인 이필운 전 안양시장과 경쟁하게 되었다. 총선 당일 개표 당시 초반에는 양 후보 간 득표순위가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였는데 밤 10시를 넘긴 후에는 강득구 후보가 여유롭게 표차를 벌렸고 마침내 당선을 확정했다.
동별로 보면 석수동과 박달동에서 많은 표차로 우세를 점했다. 경기도의원 안양시 제2선거구가 석수동, 박달동, 안양2동인데 도의원 시절의 좋은 평가가 한 몫 한 것으로 보인다. 전체 동 중에서는 안양5동에서만 이필운 후보에게 열세를 보였으며[16] 안양4동에서는 매우 근소한 표차로 우세였다.
2024년 8월 26일, 본인의 페이스북에 10월 1일 국군의 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려는 당정을 비판하며 그날이 조선총독부가 세워진 날인데 왜 공휴일로 지정하냐며 윤석열 정부의 역사의식이 있는지 의심이 된다는 비판을 하였다.##
그러나 국군의 날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10월 1일은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육군들 중 가장 먼저 제3보병사단이 38선 위로 북진을 시작한 날로, 일제시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무엇보다 국군의 날을 지정한 사람은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중 가장 반일성향이 짙은 이승만 대통령이다.[17]
해당 발언 직후에 반박성 지적이 이어졌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국군의 날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10월 1일은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육군들 중 가장 먼저 제3보병사단이 38선 위로 북진을 시작한 날로, 일제시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무엇보다 국군의 날을 지정한 사람은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중 가장 반일성향이 짙은 이승만 대통령이다.[17]
해당 발언 직후에 반박성 지적이 이어졌지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추구하는 시민단체인 촛불승리전환행동이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행사를 열도록 국회 대관을 주선했던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즉각 "저급한 반헌법적 행사"라며 반발했고, 대관해준 국회사무처에도 "의정활동과 직접 관련이 없는 행사, 특정인 비방 행사, 국회의 품위를 현저히 손상시킬 수 있는 행사에 대관해준 의도가 무엇이냐"고 했다. #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자제를 촉구하며 선을 그었다. #
반면 강득구 의원은 "탄핵은 헌법에 명확하게 규정돼 있다”며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반헌법적 행태를 막지 못하면 탄핵 열차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반면 강득구 의원은 "탄핵은 헌법에 명확하게 규정돼 있다”며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반헌법적 행태를 막지 못하면 탄핵 열차도 막지 못할 것"이라고 반박했다.
[1] 출생 후 현재의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박달동 우성아파트 자리로 이사했다고 한다.[2] 국회공보 제2020-98[3] 정치행정지도자 전공[4] 석사 학위 논문: 학교도서관 활성화정책방안 연구 : 경기도 지역을 중심으로(2004. 2)[5] 소집해제[6] 병무청 공직자등의 병역사항열람 참조.[7] #[8] 안양시 제2선거구, 만안구 안양2동·박달동·석수동[9]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경우, 정권 말기에 접어든 노무현 정부의 지지율 하락과 열린우리당의 거듭되는 실책으로 인하여 경기도의회 지역구 의석 108석 중 108석 전석을 한나라당이 싹쓸이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10] 실제로 최고위에서 징계논의까지 오가는 등 친노, 친문을 막론한 진보진영 대다수는 이종걸 의원의 본 행위에 대한 깊은 유감을 표명하였다.[11] 안양만안-4선 이종걸, 안양동안갑-5선 이석현, 안양동안을-4선 심재철. 공교롭게도 이들 세 의원 모두 20대 총선에서 승리하여, 도합이 16선이라는 어마어마한 선수를 자랑하게 되었다.[12] 대표적인 예로 안양역 앞의 현대코아 건물은 20년이 넘게 방치되어 있는 상황으로 안양1번가의 대표적인 흉물이다.[13] 실제로 비대위원 7인 중 6인은 해당 지역구에 복수 신청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원 단수공천을 받았으며, 나머지 1인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그 또한 비례대표 2번으로 공천되어 '셀프공천' 논란을 낳는 등의 논란을 빚었다.[14]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 무기명 투표 결과, 총 65표 중 강득구 후보 47표, 이기우 부지사 18표[15] 여담으로 이종걸 의원은 경선 탈락 이후 더불어민주당이 참여한 비례연합정당인 더불어시민당으로 당적을 옮기고 선대위원장을 맡아 총선기간 동안 전국 유세에 나서기도 했었다.[16] 안양5동은 동안구까지 합쳐도 안양시 전체에서 유일하게 미래통합당이 이긴 행정동이다.[17] 당시 이승만의 반일행각은 일본은 물론 미국마저도 기겁할 정도였다. 평화선을 설치하여 아무리 당시에 일본이 주권이 없었다지만 무려 60해리에 달하는 영역을 영해로 확보하였으며, 평화선을 넘어온 일본 선박은 이유불문하고 포박하여 선원을 구금시키고 선박은 국가에 귀속시켰다. 물론 이에 일본 정부가 항의를 하자 나중에 선원은 풀어주긴 하였다.[18] 2016. 1. 14.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선언 및 도의원직 사퇴[19] 민주당과 신설 합당.[20]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을 위한 탈당.[21] 새천년민주당에 흡수 합당.[22]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 합당.[23] 민주당과 신설 합당.[24] 시민통합당과 신설 합당.[25]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 합당.[26] 공직 취임으로 인한 자동 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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