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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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극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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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출생 | 1903년 9월 6일 대한제국 한성부 |
사망 | 1988년 11월 15일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85세)
성별 | 남성 |
거주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직업 | 테너 성악가 바이올리니스트 동요 작사가 동요 작곡가 동요 편곡가 지휘자 아동문학 아동문화운동가 극작가 |
장르 | 서양 고전 음악 대한 민족 동요 음악 |
활동 시기 | 1922년~1987년 |
배우자 | 오인경 |
가족 | 자녀는 3남 1녀 아버지 윤희구(유교 성리학자) 고종사촌 형 심우섭(언론인) 고종사촌 형 심명섭(개신교 목사) 고종사촌 형 심훈(소설가) |
종교 | 개신교 |
윤극영(尹克榮, 1903년 9월 6일~1988년 11월 15일)은 동요 〈반달〉을 작사·작곡한 대한민국의 동요 작곡가이자 동화 작가이고, 본관은 해평(海平)이다.
그는 별명이 반달 할아버지일 정도로 대한민국의 많은 어린이들에게 사랑받았다.[1]
생애
[편집]한성부 출생으로, 1922년 도쿄에서 ‘색동회’를 조직하고 다음해에 〈반달〉, 〈고드름〉, 〈설날〉을 비롯하여 30여 편의 동요를 작곡했다. 1926년엔 한국 최초의 동요작곡집 《반달》을 출판하기도 했다. 1945년 8·15 광복(을유해방) 후 만주 지린성 룽징과 국민정부 시대 중화민국 허베이성 톈진에 있다가, 1947년 월남하여 ‘노래동무회’를 조직했으며, 동요 100여 곡도 작곡했다.[2] 동요 이외에도 신석초등학교, 고명중학교의 교가를 작곡하였고, 1987년에 은퇴하였으며, 이듬해 1988년 11월 15일 향년 86세로 별세했다.
경력 및 수상
[편집]대표 경력
[편집]- 색동회 회장
주요 이력
[편집]- 1903년 : 한성부 출생
- 경성법학전문학교 중퇴 후, 일본 도쿄 음악학교, 도요 음악학교에서 성악을 공부
- 1923년 : 소파 방정환, 마해송 등과 함께 색동회를 결성
- 1924년 : 동요 단체인 ‘다리아회’(달리아회)를 조직하여 한국어 동요들을 보급
- 만주의 간도에서 교사로 근무
- 1947년 : ‘노래동무회’를 조직.
학력
[편집]- 경성교동보통학교 졸업
- 경성제1고등보통학교 졸업
- 경성법학전문학교 중퇴
- 일본 도요 음악학교 전문학사(테너 성악 전공)
- 일본 도쿄 예술학교 전문학사(바이올린 전공)
- 일본 오사카 음악학원 전문학사(지휘 및 화성학 전공)
수상
[편집]작품 및 평가
[편집]그는 홍난파·박태준과 함께 동요 작곡계의 개척자로 평가받고 있다.[2] 대표작으로 《반달》, 《설날》, 《고기잡이》, 《기찻길 옆 오막살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