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안씨
왕기야 할라(여진어: Wo-on (g)ia-an, 만주어: ᠸᠠᠩᡤᡳᠶᠨ
ᡥᠠᠯᠠ Wanggiya Hala, 중국어 정체자: 完顔氏, 병음: Wányán Shì 완안씨[*])는 왕가씨(王家氏), 왕기얀 할라(만주어: ᠸᠠᠩᡤᡳᠶᠠᠨ
ᡥᠠᠯᠠ Wanggiyan Hala)라고도 한다.[1] 사서에 의하면 고려인 승려 금준이 완안씨의 아버지라고 한다.
국가 | 금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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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위 | 금나라 황제 |
민족 | 여진족 |
완연하(蜿蜒河) 부근에 살았기 때문에 완연(蜿蜒)과 음이 비슷한 완안(完顔)을 부족명으로 삼아서 사용했다고 보기도 한다.[2]
요나라 말기에 복간수 완안부는 아무르강의 배수지역인 하얼빈시 아청 구일대에 거점을 두고 살았다. 그들은 요나라의 지배를 받지 않던 생여진의 일부였다. 1115년 완안 아골타가 본거지에 있는 안출호수(按出虎水, (여진어: Anʧu-bira, 만주어: Alcuka Bira)를 따라 국호를 금(金, 여진어: Antʃun, 만주어: Aisin)이라고 지어 여진 제국을 창건하였다.
16세기 무렵 동북 지역에 잔존하던 여진의 주요 부족의 인구 이동이 일단락되면서 이 시기에 여진은 명나라에 의해 건주여진, 해서여진, 야인여진으로 구분되었다. 건주여진은 압록강(만주어: ᠶᠠᠯᡠ
ᡠᠯᠠ Yalu Ula)의 북쪽으로 혼하(渾河, 만주어: ᡭᠣᠨᠡᡭᠠ
ᠪᡞᠷᠠ Hunehe Bira) 상류부터 동가강(佟佳江, 만주어: ᡨᡠᠩᡤᡳᠶᠠ
ᡠᠯᠠ Tunggiya Ula)에 걸쳐 거주했는데, 왕야 부족은 후너허(渾河, 만주어: ᡭᠣᠨᠡᡭᠠ Hunehe)·동오(董鄂, 만주어: ᡩᠣᠩᡤᠣ Donggo)·숙수후(蘇克素滸, 만주어: ᠰᡠᡴ᠋ᠰᡠᡥᡠ Suksuhu)·저천(哲陳, 만주어: ᠵᡝᠴᡝ Jecen)·주셔리(朱舍里, 만주어: ᠵᡠᡧᡝᡵᡳ Jušeri)·너옌(訥殷, 만주어: ᠨᡝᠶᡝᠠ Neyen)과 함께 건주여진을 구성했다.[3]
계보
편집금덕제(金德帝 完顏烏魯) :금시조 함보(金始祖 函普)의 장남 : 완안오로
같이 보기
편집각주
편집- ↑ 태조무황제실록(太祖武皇帝實錄), 時有王家部內一酋,名孫扎七光滾,謁太祖曰:「吾曾被瓮哥落處人所擒,乞貝勒助一旅之師,為我雪仇。」
- ↑ 何光嶽(2004), 《女眞源流史》, 江西敎育出版社, 37~39쪽.
- ↑ 이훈. 《만주족 이야기》. 너머북스. 21쪽. ISBN 9788994606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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